[미국·이란 전쟁] 장기전 불사하는 美-이란, 에너지 위기·동맹국 지원 부담 목전
[미국·이란 전쟁] 장기전 불사하는 美-이란, 에너지 위기·동맹국 지원 부담 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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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장기화 조짐,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국제유가 급등 산유국 감산 가속화, 유럽·한국·일본 등 부담 확대 미국 지원 요청 본격화할 시 동맹국 압박 가중 전망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국제 사회의 혼란이 눈에 띄게 가중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국제유가가 치솟고, 중동 핵심 산유국들의 감산 행보가 본격화하며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피해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일각에서는 향후 미국의 지원 요청이 본격화할 시 유럽 및 동아시아 우방국들의 부담이 한층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美-이란 전쟁 장기화 우려 확산
8일(이하 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투자자들은 중동 전쟁으로 인한 국제 유가 충격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와 비슷한 양상으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날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전장 대비 16.19% 상승한 배럴당 107.70달러(약 16만1,190원)에 거래됐으며,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도 108.15달러(약 16만1,870원)로 18.98% 급등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 유가는 배럴당 90달러(약 13만4,600원) 수준에서 120달러(약 17만9,470원)까지 치솟은 바 있다.
시장에서 이 같은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중동 지역 내 충돌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현시점 이란은 탄도미사일 발사 여력을 점차 잃어가는 중이다. 제공권을 장악한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가 갱도 등에서 나올 때마다 이를 파괴한 탓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이란이 미사일을 쏘면 4분 안에 발사대를 타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대공무기와 방공망이 제거됐고 공군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란의) 미사일과 발사 능력은 각각 약 60%, 64% 줄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 시 이란이 보유한 2,000발 이상의 탄도미사일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
문제는 '드론 선진국'으로 꼽히는 이란의 공격용 드론이다. 이란은 30㎏ 폭탄을 싣고 약 2,000㎞를 비행해 중동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샤헤드 드론을 1만 대 이상 보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 등의 정보 수집 역량을 감안하면 향후 이란의 드론 생산 능력은 빠르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지만, 이란이 보다 적은 드론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전술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일각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위협이 1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좁은 해협으로,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에너지 요충지다.
외교적 해법 역시 좀처럼 도출되지 않고 있다. 지난 5일 트럼프 대통령은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차기 지도자로 거론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베네수엘라에서처럼 후계 구도에 자신이 관여하겠다고 나섰다. 이란의 최고지도자였던 알리는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해 숨졌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 조건으로 이란 측의 '무조건 항복'을 앞세웠다.
하지만 이란의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헌법 기구 전문가 회의는 9일 성명을 내고 모즈타바가 이란의 새로운 최고지도자로 선출됐다고 발표했다. 모즈타바는 부친 생전에도 최고지도자 직속 군사 조직 혁명수비대(IRGC), 친정부 민병대 바시즈 등과 손을 잡고 영향력을 키워 온 강경파 핵심 인물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출이 전쟁 상황 속 체제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선택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존스홉킨스대 이란·시아파 이슬람 전문가 발리 나스르는 뉴욕타임스(NYT)에 "모즈타바를 선택한 것은 아버지와의 연속성을 고려한 결정이며, 다른 후보들보다 권력을 신속히 공고히 할 준비가 돼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수입 에너지 의존국 '비상'
향후 전쟁이 길어지며 국제유가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에너지 수입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막대한 충격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과 일본, 한국 등이 대표적인 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유럽통계청(Eurostat),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등 기관 통계에 따르면 이들 국가는 세계에서 원유 수입 의존도가 가장 높은 지역에 속한다. 일본과 한국은 국내 원유 생산이 거의 없어 수요의 대부분을 수입을 통해 충당하며, 유럽 역시 원유 및 석유 제품 수입 의존도가 97.7%에 달한다.
이들 국가가 직면한 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중동의 주요 산유국들이 전쟁 발발 이후 줄줄이 감산에 나선 탓이다. 쿠웨이트의 국영 석유회사 KPC는 7일 ‘불가항력 조항’을 발동하며 석유 제품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석유를 운송할 선박이 부족해졌고, 저장 시설도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쿠웨이트는 걸프 해역 가장 안쪽에 위치한 국가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만 석유를 수출할 수 있다. 쿠웨이트가 발동한 불가항력 조항은 전쟁, 자연재해와 같은 통제 불능의 이변이 발생할 시 계약상 의무를 불이행해도 책임을 면제하거나 이행을 미뤄주는 장치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 국영 석유회사(ADNOC)도 같은 날 “저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해상 유전의 생산량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있고, 장기간 지연 없이 정상 운영을 재개할 수 있게 할 것”이라며 사실상 감산에 돌입했음을 시사했다. 이 밖에도 이라크에서는 미국 HKN에너지가 운영하는 사르상 유전이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인해 하루 약 3만 배럴 규모의 원유 생산을 중단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도 최대 정유 시설이 있는 라스타누라 단지의 가동을 일시적으로 멈췄다. 카타르 또한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시설이 공격을 당해 불가항력 조항을 발동했다.

대미 지원·안보 리스크까지 부상
향후 미국의 지원 요청이 본격화할 경우 국제 사회가 짊어지는 부담은 한층 가중될 수 있다. 현재 미국은 우선적으로 유럽 국가들과의 협력 가능성에 주목하는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회담에서 독일을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들이 이란과의 전쟁에 도움을 줬다고 밝히는 한편, 지원을 거부한 영국과 스페인을 향해 강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에 응한 유럽 국가들은 직접적으로 사태에 개입하기보다는 공군 기지 이용을 허가하는 등 간접적인 지원을 단행하며 외교적인 해법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할 시 한국이 받는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미국이 과거 중동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할 때마다 한국에 지원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의료 지원단과 항공 수송단을 파병했고, 2003년 이라크 전쟁에 자이툰 부대, 2010년 아프간 전쟁에 오쉬노(Oshino) 부대를 각각 보냈다. 이들 부대는 파병 지역의 치안 및 재건, 의료 지원 임무를 맡았다. 전문가들은 현시점 에너지 자원 수입 의존도와 이란과의 국교 상황 등을 고려하면 이번 전쟁에서 한국의 지원은 과거보다 제한적인 수준에서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일본과 대만 등 일부 아시아 국가는 대미 지원에 앞서 역내 안보 부담에 짓눌리고 있다. 최근 로이터통신이 일본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 3일 미국 측에 인도·태평양 내 미군 자산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지 않겠다고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2일 집권 자민당 의원들이 참석한 비공개회의에서는 “미국이 중국 억지를 위해 운용해 온 함정과 미사일을 중동 전선으로 이동시킬 경우 아시아 방어에 공백이 생기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대만 의회 외교·국방위원회 소속 천관팅 민진당 의원 역시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작전이 신속하고 제한적으로 끝나 자원이 곧 아시아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며 "미국이 중동 문제에 집중하는 사이 중국이 대만을 상대로 '강압적 행동'을 강화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