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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반값 팹’ 러브콜 뿌리친 K-반도체, 천문학적 건설비와 기술 안보의 충돌

일본 ‘반값 팹’ 러브콜 뿌리친 K-반도체, 천문학적 건설비와 기술 안보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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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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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안보·국가 자산 보호 우선순위
일본 반도체 부활 총력전 가속 흐름
보조금 유인에도 현실적 제약 뚜렷

일본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자국 내 생산라인 구축을 위해 보조금·세제·인프라를 묶은 패키지를 제시했으나, 두 기업은 기술 유출 우려와 국내 반도체 생태계 보호 등을 이유로 거절한 정황이 전해졌다. 글로벌 반도체 보조금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대만 TSMC 등이 일본에 안착했지만, 한국 기업들은 용인 클러스터를 비롯한 국내 거점 투자 계획을 강화하며 독자적인 기술 격차 유지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천문학적 비용 시대에 기술 안보를 최우선으로 설정한 K-반도체의 전략적 행보에 시장의 이목이 쏠린다. 

전략 기술 통제권 등 안보 변수 고려

24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IT 전문매체 Wccftech에 따르면 그간 일본 행정부는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완성을 위해 한국 기업에 천문학적인 보조금과 물류 인프라 패키지를 반복적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와 국내 반도체 생태계 보호를 우선순위에 두며 이 같은 일본 내 공장 건설 제안을 모두 거절한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21일 보도에서 “SK하이닉스가 일본 내 메모리 팹 구축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지만, SK하이닉스 측은 이를 즉각 부인한 바 있다. 

일본 정부의 유인책은 부지 무상 제공과 전력 및 용수 등 총소유비용(TCO)을 한국 대비 50%까지 낮춰주겠다는 파격적인 경제적 보상에 있다. 통상 첨단 반도체 팹 한 기를 건설하는 데 20조원 안팎의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기업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수조 원의 현금을 지원받는 것과 다름없는 압도적인 제안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고위 관계자 역시 “투자 비용을 비롯한 TCO 측면에서 일본에 메모리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비용이 국내 대비 절반 수준”이라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기술 안보를 우선순위에 두고 국내 잔류를 택했다. 첨단 메모리 공정은 국가 핵심 기술로 분류되는 만큼 해외 생산 시설 구축은 의도치 않은 기술 전수나 핵심 인력 유출의 통로가 될 위험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두 기업 입장에선 비용 누수와 정권에 따른 분산 투자 압박 등 사업 본연의 집중을 방해하는 국내 리스크가 상존하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기술의 독자적 우위 유지와 국가 안보 차원의 통제권 확보를 위해 국내 클러스터 조성을 강행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용인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에 오는 2042년까지 각각 360조원과 600조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국내 집중 투자 의지를 실천하는 중이다. 이는 제조 효율성과 보안이 절대적 가치로 여겨지는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대목으로, 장기적인 기술 주권 수호와 국내 제조 생태계 안정화가 최대 과제임을 시사한다. 일본의 지원책이 일시적인 이익을 안겨줄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국내 고용 위축과 산업 주도권의 해외 전이라는 부메랑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日 국가 주도 반도체 재건 전략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2022년 미국의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가 칩스법(CHIPS Act)을 제정하며 5년간 527억 달러(약 70조원)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이후 대규모 보조금을 앞세운 공급망 재편 경쟁 국면으로 전환됐다. 자국 내 생산거점을 확보하려는 정책 경쟁이 본격화됐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주요 기업들도 미국 현지 투자에 나섰다. 중국은 846억 달러(약 122조원)가량의 자금을 투입할 계획을 밝혔으며, 유럽연합(EU) 또한 426억 달러(약 61조원) 규모의 ‘EU 칩스법’을 통해 기업 유치에 착수했다. 국가 재정이 반도체 산업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은 흐름이다.

일본 역시 같은 기조 아래 공격적인 재정 투입을 단행했다. 일본 정부는 자국에 공장을 짓는 대만 TSMC에 총액 1조2,000억 엔(약 11조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구마모토현에 설립되는 TSMC 일본 자회사 JASM의 2개 공장에 투입되는 총 2조9,600억 엔(약 27조원) 자금 가운데 1공장에 4,760억 엔(약 4조3,000억원), 2공장에 7,300억 엔(약 6조7,000억원)을 지원하는 구조다. 2024년 12월 가동에 들어간 JASM 1공장은 12~28나노미터(nm) 로직 반도체를 양산 중이며, 2공장은 6nm급 생산을 목표로 2027년 가동을 예고했다. 이는 일본이 기존 40nm급에 머물던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는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최근에는 국책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에 대한 지원이 더욱 확대됐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라피더스의 2026~2027년도 사업에 최대 1조 엔(약 9조2,000억원)을 추가 지원한다고 발표했는데, 이 가운데는 정보처리추진기구(IPA)를 통한 1,000억 엔(약 9,200억원) 규모 정부 직접 출자도 포함됐다. 이에 따라 2027년까지 라피더스에 투입되는 누적 정부 지원액은 2조9,000억 엔(약 27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과거 단순 보조금 방식에서 나아가 국가가 민간 기술 기업 지분을 직접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정한 점도 정책 전환의 특징이다.

라피더스는 2027년 2nm 로직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홋카이도 치토세 IIM-1 공장을 가동 준비 중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에는 ASML의 양산용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비롯해 200대 이상의 첨단 장비를 설치했다. 2nm 제조 리드타임을 기존 120일 수준에서 50일로 단축해 긴급 물량의 경우 15일 내 생산이 가능하도록 만전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일본 정부가 2030년까지 인공지능(AI)·반도체 분야에 10조 엔(약 92조원)을 투입해 생산 기업 총매출을 15조 엔(약 184조원)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일본의 반도체 전략은 보조금 정책을 딛고 국가 주도 산업 재건 모델로 확장되는 양상이다.

SK하이닉스 청주 신규 팹 조감도/사진=SK하이닉스 뉴스룸

‘슈퍼사이클’ 속 비용·효율성 복합 셈법

반도체 공장 건설에 소요되는 자금 규모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면서 각국 정부가 제시하는 대규모 보조금과 비용 절감 패키지는 기업 입장에서 실질적 투자 변수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첨단 팹 건설 비용은 1기당 10조원 안팎으로 거론됐지만 최근에는 20조원 이상으로 치솟았고, 전체 공장 건설을 위해서는 100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필요하다는 관측까지 제기된다. 일례로 삼성전자가 추진 중인 평택캠퍼스 5공장에는 60조원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2014년 완공된 평택 1공장 투자금액 15조6,000억원과 비교해 4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SK하이닉스 역시 청주 M15X 팹 건립에 이미 20조원을 투입했고, 2027년 상반기 완공 예정인 용인 1기 팹은 이보다 큰 규모로 예상된다. 용인 반도체 일반산단 전체 계획과 관련해서는 당초 2019년 총 120조원이 예상됐으나, 현재는 공장 하나당 120조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전체 투자 규모도 600조원으로 뛰었다. 대규모 부지 확보와 용적률 상향, 2층에서 3층으로 확대된 공장 설계, 클린룸 증설 등이 비용 상승 요인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전력 사용 증가에 따른 냉각 설비 확충, 고도 청정 시스템 구축, 신재생 에너지 및 용수 재활용 설비 도입 등 총투자비는 계속 확대되는 구조다.

다만 이 같은 상황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기술 안보와 운영 효율성이라는 가치에 더 집중하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최근 메모리 업황이 이른바 ‘슈퍼사이클’ 국면에 접어들며 수익성이 개선된 만큼 건설비 절감만을 이유로 생산 거점을 이전하기에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매우 복합적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메모리 산업은 경기 변동에 민감해 대규모 증설이 공급 과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이 때문에 해외 생산 확대는 기술 관리와 정책 리스크를 동시에 수반하는 사안으로 인식된다. 기업으로서는 보조금 규모보다 시장 전망이나 기술 보호, 투자 연속성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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