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 두 달 새 50억 달러 증발, 환율 방어의 비용은 어디로 향하나
외환보유액 두 달 새 50억 달러 증발, 환율 방어의 비용은 어디로 향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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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개입→실탄 소진 단계 돌입
은행·기업 외화 운용 제약 불가피
‘국민연금 역할론’ 논의 격화 조짐

국내 외환보유액이 지난해 말부터 두 달 연속 감소하며 환율 방어가 실질적인 자금 소진 국면에 진입했음을 드러냈다.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과 외화 유동성 관리 조치에 따른 여파가 수치로 확인되면서 보유 여력 자체가 시장의 관찰 대상이 되는 모습이다. 여기에 은행 및 기업의 외화 운용 부담, 국민연금의 환율 관리 역할을 둘러싼 논의까지 이어지면서 외환·자금 운용 체계 전반이 시험대에 오르는 분위기다.
유가증권 늘고 예치금 줄었다
4일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259억1,000만 달러(약 618조 8,000억원)로 한 달 전과 비교해 21억5,000만 달러(약 3조1,000억원) 감소했다. 한은은 “지난해 연말 외환당국 개입으로 급락했던 환율이 연초 들어 다시 오르면서 외환시장 매도 개입이나 국민연금 외화스와프 같은 시장 안정화 조치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외환보유액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이 국외 자산 매입에 필요한 달러를 외환보유액에서 조달한 뒤 추후 되갚는 외환스와프는 즉각적으로 달러 수요를 줄이는 효과가 있지만, 만기 때까지는 외환보유액 감소 요인이 된다.
항목별로는 외환보유액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가증권이 3,775억2,000만 달러(약 548조원)로 한 달 새 63억9,000만 달러(약 9조원) 늘어난 반면, 예치금은 232억5,000만 달러(약 33조원)로 85억5,000만 달러(약 12조원)감소했다. 특별인출권(SDR)은 158억9,000만 달러(약 23조원)로 전월과 동일한 수준을 유지했고, 금 역시 47억9,000만 달러(약 7조원)로 매입 당시 가격 기준이 적용되면서 수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련 청구권인 IMF 포지션은 43억8,000만 달러(약 6조원)로 전월 대비 1,000만 달러(약 144억원) 줄었다.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12월에도 전월 대비 26억 달러가량 줄어들며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7년 12월(40억 달러↓) 이후 28년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을 그린 바 있다. 통상 12월에는 국제결제은행(BIS)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기관의 외화예수금이 중앙은행으로 유입되며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지만, 해당 시기에는 이 같은 계절적 증가 요인을 상쇄할 정도로 외환시장 안정 조치에 따른 유출이 컸다. 당시 한은은 “유로화와 엔화 등 비달러 자산의 달러 환산액이 소폭 증가했으나, 외환당국의 개입이 전체 감소 흐름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시장 일각에선 외환보유고의 급격한 위축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대해 한은은 “1997년과 현재는 외환보유액의 절대 규모가 크게 달라 단순 비교는 곤란하다”며 “현 수준 대비 감소액은 1%에도 못 미친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 한국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지난해 11월 기준 세계 9위 수준이었으며, 12월 말 4,280억5,000만 달러(약 621조원)로 줄어든 상황에서도 순위 변동은 없었다. 다만 같은 시점 10위인 홍콩의 외환보유액이 4,279억 달러로 집계되며 격차를 줄였고, 외환보유액 규모가 국제 금융시장의 비교 지표로 다시 주목받는 국면이 형성되기도 했다.

자본 유출 압박 속 방어전
지난해 말 잠시 주춤하는 듯했던 환율은 올해 들어 다시 오름폭을 키우며 1,400원대 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와 외환당국이 구두 개입과 실개입을 병행하기 이전 수준으로 사실상 되돌아간 흐름이다. 총력 대응에도 환율 상승 압력이 쉽게 꺾이지 않는 배경으로는 달러 수요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된다는 점이 꼽힌다. 지난해 해외로 빠져나간 외화 규모는 196억 달러(약 28조원)로 추산된다.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순매수 금액 역시 올해 들어서만 20억5,000만 달러(약 3조원)를 넘어섰다. 이러한 자본 유출 흐름은 단기간에 되돌려지기 어려운 성격을 띤다.
시장은 외환보유액 감소가 은행이나 기업의 부담으로 전이될 가능성에 주목하는 모양새다. 외환당국이 환율 방어 과정에서 은행권의 외화 유동성 활용을 요청하거나 기업들의 외화 운용에 직간접적인 조정을 가할 경우, 금융권과 실물 부문의 부담이 동시에 커질 것이란 관측에서다. 실제로 당국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은행권의 달러 유동성 관리와 기업들의 환헤지 확대를 반복적으로 요청해 왔다. 은행으로서는 외화 예치금과 외화 대출 운용 여력 축소가 불가피하고, 기업 역시 시장 변동성 속에서 추가적인 환위험 관리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는 다시 기업의 해외 영업과 투자 판단 전방에 제약으로 작용한다. 매달 20억 달러 안팎의 외환 소진이 이어지는 국면이 이어지면, 은행의 외화 조달 비용과 기업의 외화 결제 부담은 동시에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원자재·부품·에너지 등 달러 결제 비중이 높은 산업일수록 환율 변동의 영향이 즉각적으로 비용 구조에 반영된다. 고환율 국면이 수출 채산성 개선으로 직결되던 과거 공식이 무너지고, 제조원가 상승과 물류비 부담이 먼저 드러나는 구조로 굳어지는 형국이다.
중소기업이 체감하는 부담은 대기업보다 더 크다. 환위험 대응 수단이 제한적인 중소기업은 환율 변동이 손익에 곧바로 반영되는 구조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서 국내 중소기업들이 제시한 손익분기점 평균 환율은 1,334.6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최근 환율은 이 같은 수준을 크게 웃돌면서 대부분 기업이 이미 감내 가능한 범위를 넘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시장에서는 외환보유액 감소가 단순한 숫자 변화에 그치지 않고 금융권 유동성과 기업 경영 전반으로 부담을 확산시키는 연결 고리가 됐다는 점을 강하게 경계하는 상황이다.
“국민연금 정치화 논란은 기우”
환율 불안정 국면이 이어지면서 국민연금의 역할을 둘러싼 논의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은 지난달 29일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환율 변동성은 국민연금 입장에서 회피할 수 없는 핵심 위험 요인”이라면서도 “외환스와프 등 환 관련 운용은 한은이나 정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위험 관리 차원에서 마련된 대응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시장참여자가 국민연금이 환율 방어에 동원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자, 이를 일축하기 위한 의도로 읽힌다.
제도적으로도 국민연금의 외환 운용은 해외 자산 비중이 확대된 포트폴리오 구조에서 발생하는 환 변동성을 관리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 김 이사장은 “그간 국민연금의 환 전략은 시장에 과도하게 노출되면서 오히려 운용에 부담으로 작용했던 사례가 대부분이었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재정경제부, 한은, 보건복지부와 함께 논의 중인 ‘뉴 프레임워크’ 역시 기금 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차 손실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틀에 가깝다”고 힘줘 말했다.
그럼에도 환율이 급등할 때마다 국민연금의 역할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는 배경에는 환율 방어의 비용이 어디로 귀결되는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자리한다. 단기적으로는 당국의 시장 개입과 외환스와프, 기관투자가의 환 대응 전략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며 급격한 변동성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환율 상승 흐름이 장기화할 경우, 시장 안정에 필요한 부담이 국고와 공적 기금으로 누적될 것이란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김 이사장이 “국민연금의 정치화 논란은 기우”라고 거듭 강조한 것도 국민연금의 본래 목적과 무관한 해석이 덧붙여지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 가깝다.
한은 역시 최근 환율 흐름을 우리 경제 시스템 전반의 위기 신호로 해석하는 데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권용오 한은 국제국 국제금융연구팀장은 최근 정책 심포지엄에서 “(환율 상승은) 과도한 비관론과 대미 투자 확대에 따른 외화 유출 위기감, 환율에 대한 일방적 기대가 단기적인 수급 불균형으로 반영된 결과”라고 잘라 말했다. 단기외채 비중이나 경상수지, 국가신용등급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할 때 향후 외화 조달이나 대외채무 불이행과 같은 위기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