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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26일(현지 시각) 재정 운영에서 재정준칙은 매우 좋은 원칙이라고 강조하며 재정준칙의 도입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인 윤영석 의원실은 윤 의원이 유럽 방문 출장을 통해 유럽중앙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스페인 국회 등의 정상급 인사들을 면담했으며,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재정준칙의 도입 필요성과 유연한 운영, 탄소중립을 위한 국회 지원 방안 및 고금리 등 대외불확실성 지속에 따른 국제 금융 정책 공조 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고 전했다.
반면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재정준칙안을 확립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1990년대 유럽연합에서 산정한 수치가 아닌 우리나라 재정상황에 맞게 수치를 재조사해 준칙안을 도출해야하며, 당장의 경제살리기를 위한 목적이라면 경제정책이 아닌 다른 정책으로 해결점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 "재정 건전성 확보 위한 ‘재정준칙’ 중요"
윤영석 의원실은 지난 26일 윤 의원이 독일 프랑크푸르트 ECB 타워에서 라가르드 총재를 만나 한국의 저출생 문제 등을 들어 “한국의 유례없는 저출생·고령화 상황을 감안할 때 향후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유럽연합과 같은 재정 규율 시스템 도입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라가르드 총재는 재정 운영을 할 때 국가채무를 줄이고 지출을 구조적으로 개혁하는 방향성은 매우 중요하다며 윤 의원의 말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6일 발표한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결정문(Combined monetary policy decisions and statemen)에도 “재정정책에는 우리 경제를 더 생산적으로 만들고, 점진적으로 높은 공공부채를 줄이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는 내용을 반영하는 등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는 점이 강조된 바 있다.
두 사람은 우리나라의 신성장 4.0 정책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의원이 한국이 추진 중인 ‘신성장 4.0(New Growth Strategy 4.0)’ 전략을 소개하자 라가르드 총재는 "유럽 역시 코로나 상황이 마무리된 후 재정이 생산성을 증진시키고 구조적인 개혁을 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한국도 지금처럼 생산성을 높이는 혁신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화답했다. 이후 윤 의원은 라가르드 총재에게 빠른 시일 내에 한국에 찾아와 세계적 리더로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달해 줬으면 좋겠다며 방한을 권유했고, 라가르드 총재는 “이른 시일 내 한국을 방문해 한국과 EU의 긴밀한 경제협력을 강화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편 윤 의원은 라가르드 총재와의 만남에 앞서 25일 오후 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 사무소를 찾아 최근 유로 지역의 경제 동향 및 전망에 대한 업무보고를 받고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한 유럽연합의 ‘그린딜 산업계획’ 추진이 우리나라 공급망과 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또 프랑스에서 미국 국무부 차관보를 역임한 케리-안 존스(Kerry-An Jones) OECD 사무차장 및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한 자비에 무스카(Xavier Musca) 프랑스 크레디아그리콜(Credit Agricole) 은행장 등을 만나 녹색 전환과 탄소중립을 위한 OECD 역할과 향후 방향을 논의하고 글로벌 통화 긴축에 따른 은행을 비롯한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엘로이 수아레즈(Eloy Suarez Lamata) 스페인 하원 재정·공공기능위원장, 카예타나 알바레스 데 톨레도(Cayetana Álvarez de Toledo) 부위원장, 호세 루이스 아세베스 갈린도(José Luis Aceves Galindo) 하원의원, 마리아 루이사 빌체스(María Luisa Vilches) 하원의원과도 만나 재정준칙 도입의 효과와 유연한 준칙 운용의 적절성 및 한국과 스페인의 경제 협력 강화 방안 등에 대해 심도 있게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재정준칙 법제화, 여야도 학계도 찬반 극명히 갈렸다
최근 국회에서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재정준칙’의 법제화를 두고 여야와 학계가 찬반으로 갈려 맞붙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 3월 재정준칙 법제화 문제를 놓고 공청회를 진행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5년간 국가채무가 416조원 늘었다”며 “개인과 가정도 소비, 지출액에 제한을 두는데 국가가 안 한다는 건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말하며 재정준칙의 법제화를 주장했다. 반면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정 건전성 유지 노력도 필요하지만,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분들을 위해서 재정을 더 풀어 도와줘야 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며 반박했다.
경제 안정화 정책은 불경기에는 확장적 재정·통화정책을 통해 위축된 경기를 회복하고, 경기가 과열돼 인플레이션 위험이 나타날 경우 긴축적 재정·통화정책을 써 경기를 냉각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불경기에는 소비가 줄어 물건이 팔리지 않아 생산량이 줄어드는 상황이고, 경기과열은 소비량이 생산량을 뛰어넘어 물가가 상승하기 때문에 반대 방향으로 경기를 유도할 때 안정화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 안정화 정책을 실시할 때는 언제나 시장 내 불확실성과 정책 간 시차가 존재해 변수가 생긴다. 때문에 정책 수행 시 ‘정책의 수행을 준칙에 의해 할 것인가, 재량에 의해 할 것인가’의 문제가 바로 지금처럼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된다.
재정준칙은 정부의 재정 운용을 통제하는 제도이다. 정책 당국이 사전에 여러 경우에 대해 일정한 대응 정책을 미리 결정하여 이를 일반에 고지하고, 그에 따라 정책을 그대로 추진하는 것을 뜻한다. 반면 재량에 의한 정책 수행은 상황에 따라 정책 당국이 정책적으로 대응할 것인지, 또는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정책을 실시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을 뜻한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이후 계속해서 ‘건전 재정’을 강조해 왔다. 이에 지난해 9월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 및 국민연금·사학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 등 사회 보장성 기금 수지를 뺀 재정수지) 적자의 연간 상한을 3%로 제한하고,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60%를 넘으면 상한을 2%로 낮추겠다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런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도 함께 발의돼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경제에 있어서 ‘기대’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재량보다 준칙을 더 선호해야 불확실성이 줄어든다고 말한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역시 “정상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나라치고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가 한국 외에 거의 없다”며 “대부분 선진국이 재정준칙과 함께 중기 재정 계획, 독립적 재정기구를 같이 운용한다”고 덧붙였다. 경기가 좋을 때 재정을 아끼고, 불황 시 돈을 풀 수 있는 재정 여력 비축 수단으로써, 또 예측가능한 결과를 국민들과 해외투자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재정준칙의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부 명예교수도 “재정준칙 입법화는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라며, 이를 통해 재정의 효율적인 사용과 증세 논의를 본격화하고, 대외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특히 정치권에서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경기 진작과 고용 증대를 목표로 무리한 정책을 집행하는 경우가 많아 준칙에 의한 안정화 정책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반면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정부 준칙 안의 맹점으로 “정부가 제시한 재정적자 상한 3%와 국가채무 비율 상한 60%는 유럽연합(EU)에서 1990년대 당시 재정 상황에 맞춰 도입한 수치를 그대로 베낀 것”이라며 어떠한 이론적 근거도 없다고 비판했다. 또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 역할론’이 힘을 받으며 세계 각국에서도 기껏 도입한 재정준칙을 거스르는 경우가 빈번하고, 일부 국가들은 아예 준칙에 대해 재검토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최근 경기 악화가 심화하여 꼭 필요한 정부 지출을 제한하는 걸림돌로 재정준칙이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전했다. 고정된 재정 적자 비율 기준에 얽매여 지출을 강제적으로 줄이면 경제에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번 정부의 재정준칙안을 반대하는 학자들은 재정준칙을 세워야 한다면 원점에서 경제적 실질을 반영한 뒤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경제살리기가 목표라면 기업 살리는 정책 강구해야
결국 중요한 것은 경제 정책이 아닐 수 있다. 경제 전문가들 대다수는 대공황과 같은 큰 사건이 있을 때 확장적 재정·통화정책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대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그다지 크지 않은 교란이 있을 경우에도 적극적으로 안정화 정책 활용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찬반이 첨예하게 갈린다. '불확실성'과 정책이 갖는 '일정 시차' 때문이다. 각각의 경제 주체들은 동일한 정책에 대해 매 순간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효과도 매번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사전 예측과 다른 결과가 나올 경우 정책의 효과성은 급격하게 하락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장래의 경제 상태를 올바로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도 포함된다. 또 정책은 실시해야 할 필요성을 감지하고, 이에 대한 시장 상황을 검토하여 법과 제도로 구체화한 다음 예산을 받아 실시하게 된다. 이때 문제와 해결 시점의 시차가 발생해 정책의 효과가 예상대로 적절할지 확신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부채 상황, 재정상태, 수지개선 방안 등을 고려해 재정준칙을 세우고 법안을 마련하는 것은 긍정적인 시도가 될 수 있으나 자칫 잘못하면 경제살리기는커녕 인플레이션만 악화될 수도 있다. 이에 한 기업 관계자는 “재정준칙도 중요하지만 지금보다 경기 상황이 악화된다면 정말 힘들어질 수도 있다”며 “경제에서 ‘기대'효과가 많은 것을 좌지우지하는 만큼 정부의 목표가 경제살리기라면 경제 주체인 기업들의 생산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업의 생산성을 강화해 수출을 활성화하여 국가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는 것이다. 최근 경기도의 공격적인 해외기업 투자 유치를 비롯해 각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중소기업들에 대한 여러 특혜를 부여하는 것처럼 기업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