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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 시각) 러시아가 중국에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의 항만 사용권을 승인했다. 한 외교 전문가는 러시아가 특별히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이던 땅까지 내주는 걸 볼 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 사회의 압박 속에서 중국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심화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중국은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을 초청해 첫 대면 다자 정상회담을 개최하며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협력을 고리로 영향력 확대에 나선다.
더욱 끈끈해지는 러시아와 중국, 163년 만의 블라디보스토크 개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부터 중국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행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우크라이나를 돕고, 러시아에 대한 각종 제재에 나섰기 때문이다. 중국은 러시아의 편을 들어주며 북·중·러라는 강력한 연대를 만들어 국제사회에 대항하고 있다.
최근 관찰자망 등 중국 매체는 16일 동북 지역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곡물을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항만을 통해 남방으로 운송하는 바닷길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중국 세관총서(GAC) 역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이 국내 화물 운송을 위한 환승항 목록에 추가됐다는 공지를 내놨다. 이는 1860년 대청에 의해 항구가 러시아 제국에 양도된 후 163년 만에 일어난 역사적인 일이다. 항만 사용권에 대한 대가로 중국이 러시아에 무엇을 지불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바다가 없는 지린성과 헤이룽장은 그동안 물자를 남방으로 운송하기 위해 다롄 등 랴오닝성의 항구를 이용했다. 다만 그 거리가 1,000km에 달해 운송비 부담이 컸다. 특별히 중국 동북 지역의 경우 에너지, 원자재, 상업용 곡물의 생산 및 비축기지로 인식되었으나 수송 능력의 한계로 남쪽으로의 물자 반출이 이뤄지지 않아 지역 경제 발전을 제한하는 주요 병목 현상 중 하나가 되었을뿐더러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도 어려웠다. 이에 북한의 나진항을 동북 지역의 해상 출구로 삼아 나진항과 청진항 부두의 30∼50년 장기 사용권을 확보했으며, 북한과 공동으로 나진항을 중계 무역항으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북한의 핵실험과 그에 따른 유엔 제재 강화로 북·중 경제 협력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북·중 국경까지 폐쇄되면서 나진항 사용이 중단됐다.
그러나 이번에 승인받은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이용한다면 러시아 접경인 헤이룽장성 수이펀허나 지린성 훈춘 통상구에서 200㎞ 이내 거리에 있어 물류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중국 해관총서(GACC)는 "이 소식은 관련 국가 간의 상호 이익 및 상생 협력 모델"이라고 말했다. 청나라 때까지 중국 지린성 소유였던 블라디보스토크는 태평양에서 가장 큰 러시아 항구로, 유라시아 대륙 북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연간 컨테이너 처리량은 거의 100만 TEU(1TEU=6m 길이 컨테이너 1개)에 육박한다. 또 이 도시는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모항이기도 하다.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올해 3월 러시아를 국빈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대만과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공조를 약속하고, 에너지 협력을 강화키로 하는 등 끈끈한 연대를 과시한 바 있다.
중국과 러시아, 우크라 전쟁 이후 러시아서 강력해진 중국 영향력
외신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공조를 두고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로 인한 산업 전반 둔화로 내부 자금이 절실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현 상태로 마무리하는데 중국의 ‘중재자’ 역할이 간절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4일 프랑스 매체 로피니옹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핀란드와 스웨덴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하도록 해 러시아는 이미 지정학적으로 패배했다며, 이제는 중국에 굴종하는 형태로 돌입했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끝나는 극동 가스 파이프라인 경로를 통해 중국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정부 간 협정을 승인하는 명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중국 여론 역시 블라디보스토크 개항을 우크라이나 전쟁의 ‘보너스’라고 부르며 러시아의 중국 의존 결정을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싱가포르 난양 기술 대학교 라자라트남 국제학부 선임 연구원 제임스 도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러 관계의 균형은 중국으로 옮겨갔고 러시아는 중국을 더 필요로 했으며 양국 간 경제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외신의 분석에 대해서는 중국과 러시아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연결시키면 안 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중러 관계는 전략적 파트너 관계이며 의존과는 무관하다”고 일축했다. 또 “중국과의 관계는 전략적, 특별한 동반자 관계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이는 누군가의 의존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마크롱의 발언에 절대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 역시 블라디보스토크 항구가 중국 무역 시스템에 참여하는 것은 수년 동안 중국-러시아 무역 협력이 지속적으로 발전한 예시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전했다. 실제로 GACC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의 양자 무역은 2023년 첫 4개월 동안 731억5,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1.3% 급증했다.
시진핑의 꿈 일대일로, 러시아는 결국 중앙아시아마저 뺏길까?
한편 중국은 중동과 아프리카, 중남미에 이어 중앙아시아로 영향력 확장을 위한 세력 규합의 일환으로 중앙아시아 5개국의 정상들을 18~19일 산시성 시안으로 초청했다. 초청된 국가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으로 시 주석은 전체 회의와 함께 개별 정상들과 양자 회담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 관계 전문가들은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약화된 틈을 파고들면서 미·중 갈등 속 우군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고 전했다. 위쥔(于駿) 중국 외교부 유라시아사 부사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6개국 정상은 중요 정치 문서와 경제무역 투자 등 다양한 영역의 협력 문서에 서명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러시아의 앞마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중앙아시아 5개국을 동시에 초청해 대면 다자 정상회담을 열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 5개국은 옛 소련에서 독립했지만, 독립 이후에도 러시아 영향권 아래 있던 나라들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발생 이후 안보 위협을 이유로 러시아와 거리를 두었는데, 그 틈에 중국이 들어간 것이다. 중국 외교부에서도 이번 회담이 2023년 중국의 첫 주요 홈그라운드 외교 행사이자 수교 31년 만에 6개국 정상이 처음 실체적 형식으로 개최하는 정상회의라며 특별한 이정표적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또 코로나19 발생 이후 3년 가까이 중국을 벗어나지 않았던 시 주석이 지난해 9월 첫 해외 방문지로 택한 곳도 중앙아시아였다고 덧붙였다.
중앙아시아는 시 주석이 추진해 온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도 상징성을 갖는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의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정상회담의 위치가 옛 실크로드의 시발점인 시안이라는 점에서도 중국의 의도가 파악된다. 비슷한 시기(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는 것도 중국이 이번 정상회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대중 견제를 화두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선진국이 결집하는 데 맞서 개발도상국의 맏형 역할을 자임하며 세력을 과시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중국 관영매체들은 정상회담에 관련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으며, 회담 이후 중국과 회담 참석 국가들 사이 새로운 무비자 이니셔티브가 시작될 가능성도 점쳐졌다. 미국 전략 싱크탱크 대서양위원회 글로벌 차이나 허브의 니바 야우는 “중국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비슷한 협정을 맺고 영향력을 키웠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미국, 일본과의 공조를 통해 동아시아에서 중국에 맞설 동맹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은 러시아와 손을 잡은 것이 거의 확실하며, 북한 역시 중국과 손을 놓을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의 세계 패권을 노린 한판 전쟁, 이번 G7 정상회의는 대중 전략으로 어떤 방안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