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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3%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5월 전기·가스요금 인상에도 석유류·농축수산물 가격 등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19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다만 주요국 통화 긴축 지속 우려 등 대외 변수에 따라 올 하반기 물가 하락폭은 점차 둔화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5월 소비자물가지수 전월 대비 0.3%, 전년 동월 대비 3.3% 상승
통계청이 2일 발표한 '2023년 5월 소비자 물가동향'에 따르면 5월 소비자물가지수(2020년=100)는 111.13으로 전년 동월 대비 3.3% 상승했다. 2020년 10월(3.2%) 이후 1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폭을 기록한 셈이다. 고점이었던 지난해 7월(6.3%)과 비교하면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품목별로는 석유류 하락이 주효했다. 석유류는 1년 전보다 18.0% 내리며 2020년 5월(-18.7%) 이후 3년 만에 최대 감소폭을 보였다. 특히 전체 물가상승률에 대한 석유류의 기여도는 -0.99%포인트로, 이는 석유류가 물가상승률을 1%포인트가량 떨어뜨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전기·수도·가스요금은 23.2% 오르며 지난해 7월부터 두 자릿수 상승률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전기요금 인상 소식과 맞물리며 전기료는 25.7%, 도시가스는 25.9%, 지역 난방비는 30.9% 올랐다.
이 밖에도 서비스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했다. 주요 품목 가운데 외식 물가는 외부 활동 재개 영향이 이어지면서 6.9% 상승했다. 반면 농축수산물은 전체 0.3% 하락하며 2020년 2월(-0.7%) 이후 처음으로 내림세로 돌아섰다.
‘물가 잡기’ 총력전 벌여온 정부의 성과
이처럼 소비자물가가 3%대 초반까지 떨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간 물가 안정에 총력을 기울였던 정부와 중앙은행의 의지가 있다. 실제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7월 "지금 물가를 잡지 않으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의사를 밝히며 한국은행 역사상 최초로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향후 경기 흐름에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지만 정부가 나서 물가 위험에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기대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고물가 상황이 지속될 거란 판단에서다.
정부도 독과점적인 성격이 있는 품목의 가격을 통제하는 등 개입을 통해 물가 안정을 꾀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특히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분간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고 상반기 물가 안정 기조가 확고하면 하반기 경기부양 정책으로 전환하겠다"고 말하며 정책 방향을 설정해 왔다.
정부가 물가 잡기에 총력을 벌인 것은 인플레이션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 때문이다. 통상 인플레이션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될 경우 시중에선 돈의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쓰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저축이 줄고 소비가 늘게 된다. 그러나 결국 치솟는 물가에 비해 임금은 오르지 않아 실질 소득이 지속적으로 줄어들 경우에는 소비가 줄면서 경기 둔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기업도 경기 둔화에 따른 이익 축소와 투자 위축으로 생산 활동마저 줄이게 되면서 결국 경제 전반이 고물가·저성장 늪에 빠질 우려가 있다.
여전히 높은 근원물가, 올 연말까지 대외 변수 많아 물가 안정 '불투명'
근원물가 둔화는 여전히 더디다. 농산물과 석유류같이 가격 변동이 큰 품목을 제외해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3% 올랐다. 지난해 5월(4.1%) 이후 상승률이 가장 낮았지만, 여전히 4% 수준에 머무는 셈이다.
다만 또 다른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의 상승률’이 3.9%로 하락한 점은 긍정적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결정에 참고하는 이 지표는 지난해 7월(3.9%) 이후 10개월 만에 다시 3%대로 떨어졌다.
한국은행은 이번 물가 지표 둔화가 “전반적으로 기저효과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향후 물가 흐름에 대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올해 중반까지 뚜렷한 둔화 흐름이 이어지며 2%대로 낮아질 가능성이 있으나, 이후 다시 높아져 연말에는 3% 내외 수준을 나타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근원물가 상승률에 대해서는 “올해 중반경까지 소비자물가에 비해 더딘 둔화 흐름을 이어갈 전망"이라고 밝혔다.
향후 물가 경로는 국제유가 추이와 국내외 경기 흐름, 공공요금 인상 정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다. 특히 물가만 놓고 본다면 미국 등 주요국의 긴축적 통화정책 지속 여부에 따른 국제유가 등 에너지 가격의 향방이 주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고물가를 잡기 위해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던 미국이 올 하반기 경기 침체 우려에 완화적으로 통화정책을 전환한다면 국내 물가 상승률이 재차 상승할 우려가 있다”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줄어들 경우 미국 내 가계 소비 및 기업 투자 확대로 국제 유가 등의 에너지 가격이 상방 압력을 받으면서 이것이 곧 국내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