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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상위 수준인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규모와 증가 속도가 우리 경제의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 같은 위험이 금융 불안정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제한적으로 보면서도, 과도한 가계부채가 장기성장세 제약이나 자산불평등 확대 등의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거시건전성 정책 및 통화정책 조합을 통해 가계부문의 디레버리징을 점진적으로 달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현황과 특징
한은이 17일 발표한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과 영향 및 연착륙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4분기 기준 105%로, 주요 43개국 가운데 스위스(128.3%)와 호주(111.8%)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주요국 대비 낮은 수준을 유지했으나, 2002년 신용카드 사태, 2014~2017년 가계대출 규제 완화 등을 거치며 크게 높아졌다. 특히 2020~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아파트 등 실물자산들의 가치가 폭등하면서 대출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보인다. 먼저 소득수준이 높은 차주와 가구 중심으로 대출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가계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소득 분위별로 살펴보면 소득 수준이 낮은 소득 1·2분위의 대출잔액 비중은 차주단위 기준 11% 수준에 그치나, 소득 4·5분위의 경우 76%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두 번째로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만기일시상환 비중과 차환 비율이 높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가계대출의 53.7%가 만기일시상환 방식이며, 특히 신용대출의 경우 가계가 대출을 상환하기보단 만기 도래 시 재연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으로 조사됐다. 이는 통상 1~2년 내외로 주택담보대출보다 만기가 짧은 우리나라 신용대출의 특징과 금융회사 영업방침 변화 등에 따라 신용대출 차주가 차환리스크에 주기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 등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가계부채 누증의 주요 원인
가계부채 규모가 이토록 증가하게 된 구조적인 원인은 크게 공급·규제·수요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공급 측면에서 살펴보면 가계대출의 높은 수익성·안전성과 낮은 자본규제 부담은 금융기관이 기업대출보다 가계대출 취급을 선호할 환경을 조성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에 대한 재무건전성 규제 강화 등으로 대기업의 자금조달원은 다양화된 반면, 가계부문 신용 규제는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 소비자 금융 규제 완화 등의 영향으로 완화됐다. 이는 결국 가계대출이 기업대출 비중을 지속 상회하는 환경을 만들면서 거시경제 전체적으로는 가계부채 규모가 증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규제 측면에서 차주 단위 대출 규제가 뒤늦게 이뤄지거나, 상당수 대출이 규제 적용에서 벗어난 점도 가계부채 증가를 촉발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의 신용대출은 소득 및 신용이 양호한 경우 담보제공 없이 소득의 약 50~150%에 달하는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주요국 대비 완화적인 편이다. 특히 가계대출에서 주택담보 대출을 제외한 기타 대출의 GDP 대비 비중은 약 37%로, 주요국인 미국(25%), 호주(21%), EU(15%) 등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이다.
수요 측면에서는 저금리 기조 장기화와 보증보험을 통한 전세대출 확대 등이 주택과 같은 자산시장 투자 확산으로 이어지면서 가계부채가 급증한 것으로 분석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가계의 차입비용 및 안전자산의 실질수익률이 크게 하락했고, 이는 결국 가계가 여타 자산으로의 투자를 확대하는 유인이 됐다.
마지막으로 전세대출의 확대도 가계부채를 증가의 배경으로 꼽힌다. 2016년 이후 전세대출은 연평균 약 20~30% 증가하면서 전세대출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6년 5%에서 2022년 14%로 크게 확대됐다. 전세대출은 구매력이 낮은 가계의 주거 서비스를 개선하는 효과를 냈으나, 지원대상이 넓다는 특성으로 인해 신용공급을 확대 시켰고, 결국 전세값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가계부채 누증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정책적 대응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위험이 금융시스템 불안을 야기할 거란 언론의 경고와 달리, 금융 불안정이 확대될 위험을 제한적으로 보고 있다. 미국에선 채무상환능력이 낮은 저소득층에까지 신용 대출이 확대된 탓에 '서브프라임 사태가' 불거졌던 반면, 우리나라는 채무상환능력이 높은 고소득·고신용 차주를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이뤄져왔다는 설명이다.
다만 한은은 “가계부채의 과도한 확대가 장기성장세 제약이나 자산불평등 확대 등의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이에 따라 거시건전성 정책 및 통화정책 조합을 통해 가계부문의 디레버리징을 점진적으로 달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가계부채를 GDP 수준 이내로 줄이고 연착륙에 성공하기 위해선 공급과 수용의 거시건전성 정책과 통화정책 측면에서 관련 정책들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거시건전성 정책 측면에서는 △가계부문 경기대응완충자본 적립 △전세대출 보증한도 조정 △기업대출 유동화 지원 등을 통해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취급유인을 조정하는 한편 △DSR 예외대상 축소 △LTV 수준별 차등금리 적용 △일시상환 방식에 대한 가산금리 적용 등을 통해 대출수요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통화정책 측면에서는 완화적 통화정책이 가계의 과도한 레버리지 활용 및 위험자산 투자로 이어지지 않도록 금융안정을 적극 고려하는 한편, 가계가 미래의 금리변동 위험을 과소평가하지 않도록 커뮤니케이션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통화정책의 경우 거시건전성 규제의 효과가 제약될 경우 이를 보완하는 역할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