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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소리' 반복되는 스타트업계, '쑥맥' 정부의 규제 혁파 실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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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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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근거리를 비추는 등불은 앞을 향할 때 비로소 제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과거로 말미암아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비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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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이 뽑은 100대 킬러 규제가 발표됐다. 이들 규제는 다방면에 걸쳐 있어 기업들의 혁신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었다. 지금껏 규제 개혁을 울부짖은 정권은 많았으나, 실질적으로 규제 개혁이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잠시 규제가 줄어든 적은 있었으나, 현장에서 체감될 만한 개혁이 이뤄진 바는 사실상 없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관료 중심의 규제 개혁 체계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기중앙회, '100대 중소기업 킬러 규제' 발표

중소기업중앙회가 28일 '100대 중소기업 킬러 규제'를 선정해 발표했다. 중소기업이 꼽은 100대 킬러 규제는 △신산업 규제(10개) △입지 규제(9개) △환경 규제(9개) △노동 규제(26개) △인증 규제(18개) 등 다방면에 걸쳐 있었다. 대부분의 규제들이 현실과 괴리된 기준으로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경우였다. 경기도의 한 콘크리트 업체는 공장 안에 먼지 모래 자갈 등을 재흡입하는 첨단 정화시설을 갖췄지만, 오염물질 배출량이 아니라 발생량을 기준으로 하는 대기환경보전법 때문에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아용 내복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경기도의 한 의류 제조업체는 안전 인증 비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모든 제품에 ‘KC 인증’을 받았지만 동일 공정이라도 제품 색상이 다르면 추가로 인증받도록 한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 때문이다.

특히 의료 분야 스타트업 업계에선 '신의료기기'에 대한 규제 장벽이 지나치게 높다는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스타트업이 혁신적인 신의료기기를 제조해도 신의료기술평가 규제를 제대로 넘지 못해 뿌리내리기조차 힘들다는 게 골자다. 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이 만든 의료기기를 사용한 의료행위로 ‘수가’가 발생하려면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 평가 기간이 5년 넘게 걸린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며 "자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스타트업은 제풀에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의료기술평가 유예제도 신청 대상’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기중앙회가 적시한 킬러 규제의 사슬은 중소기업 특화 업종에도 촘촘히 파고들어 있었다. 슬립테크 기기를 생산하는 서울의 한 업체는 첨단기술 제품과 일반 온수매트를 구분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규제를 적용하는 불합리성을 지적했다. 이 회사는 수면 측정 후 발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적의 온도 알고리즘을 제공하는 제품을 생산하는데 일괄적으로 온수매트 제품으로 분류된 탓에 원격제어 기능을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업종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안전 규제가 오히려 안전에 위협을 불러일으키는 사례도 있었다. 경기 안산에 있는 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는 공장 내 방화벽 설치 기준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현행 건축법에 따르면 연면적 1,000㎡ 이상인 건축물의 경우 바닥 면적의 합계가 1,000㎡가 넘지 않도록 구획해 방화벽을 설치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공장 내부에 설치된 방화벽은 물류 이동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각종 설비의 설치와 가동에도 제약이 많다. 업체 대표는 "너무 많은 방화벽으로 시야가 가려지면서 오히려 화재 현장을 초기에 발견하지 못하는 위험도 크다”고 일갈했다.

거미줄처럼 퍼진 규제들, '규제 혁파' 울부짖던 정부 어디 갔나

각종 규제가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이미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만큼, 중소기업들은 정부의 규제 개혁 움직임에 대한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500개 기업(대기업 250곳, 중소기업 250곳)을 상대로 규제개혁 체감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규제 개혁 체감도는 95.9에 불과했다. 규제개혁 체감도는 100을 기준으로 초과하면 만족, 미만이면 불만족을 의미한다. 기업들은 △규제의 신설·강화(25.8%) △핵심 규제 개선 미흡(24.7%) △보이지 않는 규제 해결 미흡(19.1%) △공무원의 개혁 의지 부족(18.0%) 등을 불만족 이유로 꼽았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당시 규제 혁파를 국정과제로 삼았다. 정권이 규제 개혁을 시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98년 김대중 정부는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규제 개혁에 칼을 뽑아 든 바 있으며,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규제 총량제를 앞세워 규제와의 전쟁을 벌였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도 규제 개혁을 시사했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취임과 함께 '손톱 밑 가시 뽑기'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역대 정권이 규제 개혁에 나선 건 벌써 17년째다. 그러나 산업 규제는 여전한 상황이다. 잠시 규제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정부 스스로 집계한 규제 수가 줄었을 뿐 기업들이 현장에서 느끼기로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정부 규제 개혁이 실질적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건 그 아래 숨어 있는 '꼼수'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조항 합치기다. A를 규제하는 조항과 B를 규제하는 조항을 합쳐 'A와 B를 금한다'는 조항을 만드는 것인데, 규제 수는 두 개에서 하나로 줄었지만 실제 규제는 똑같다. 인허가 사항을 신고제나 등록제로 바꾸는 꼼수도 성행한다. 언뜻 보기엔 규제가 크게 완화된 것 같지만, 막상 절차를 진행해 보면 담당 공무원이 신고나 등록 접수를 일방적으로 거부해 규제 완화의 효과를 무력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4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구로디지털산업단지 G밸리산업박물관에서 열린 킬러 규제 혁파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관료 중심 개혁 체계부터 변혁돼야"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규제 개혁의 끈을 관료가 붙잡고 있는 상황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관료는 직업 공무원이다. 5년마다 바뀌는 정권에 일일이 장단을 맞추다간 감사원 등 정부조직에 의해 자신의 경력에 금이 갈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관료가 규제 개혁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는 이유다. 대통령의 질책으로 관료들이 잠깐 규제를 푸는 시늉을 할 수는 있어도, 결국 실질적인 규제 개혁은 관료의 손 아래선 이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규제 개혁을 이뤄내고 싶다면 관료 중심의 규제 개혁 체제부터 손봐야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관료의 규제 개혁으로 경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란 '착각'도 버려야 한다. 행정 개혁은 점진주의의 관점에서 이뤄진다. 정책학적 관점에서 규제 개혁을 포함한 정부·행정 분야의 개혁은 느리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관료들의 안전제일주의도 문제다. 관료들은 비용도 리스크도 투입하지 않고 안전한 개혁을 이뤄내길 원하지만, 이는 사실상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개혁에 나서려면 위험을 떠안아야 하는데, 관료주의 체제 안에서 위험 부담을 떠안으려 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진짜 규제 개혁을 원한다면 규제에 목매는 관료들을 다그치기만 해선 안 된다. 관료를 배제하고 직접적인 규제 개혁에 나서는,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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