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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공기업에서 징계 처분을 받은 직원 수가 1년 새 50%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선 현장에서 정부 정책을 수행하며 공익에 앞장서야 할 공공기관의 기강 해이가 위험 수준이 이르렀다는 방증이다. 무단결근이나 음주운전은 물론이고 업무상 얻은 정보와 권한을 이용해 투기를 하거나 개인 사업을 벌이는 일까지 잇따라 발생하면서 공공 부문 전반에 걸쳐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기업 징계 건수 360건, 전년 동기 대비 51.9% 증가
국내 공기업 32곳(시장형·준시장형)의 징계 처분 결과를 전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징계 건수는 총 360건에 달했다. 지난해 상반기 237건 대비 51.9% 증가한 셈이다. 공기업 32곳에서 징계를 받은 직원 수는 전체 직원 14만8,498명의 0.24%를 차지했다. 올해 들어 1,000명당 2~3명이 직무 태만, 품위유지 위반, 기밀 누설 등 다양한 사유로 내부 징계를 받은 것이다.
올해 상반기 공기업 32곳 중 징계 건수가 가장 많은 기업은 총 94건을 기록한 한국철도공사(코레일)였다. 다음으로는 한국전력공사(63건), 한국토지주택공사(LH·30건), 한국도로공사(27건), 한국동서발전(21건), 한국수자원공사(19건) 순으로 많았다. 전체 직원 가운데 징계자 비율은 수서고속철도를 운영하는 SR이 1.21%로 가장 높았다. 직원 659명 가운데 올 상반기에 8명이 징계를 받았다. 한국동서발전(0.83%),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0.78%), 주택도시보증공사(HUG·0.67%), LH(0.34%), 한국공항공사(0.33%), 한국도로공사·한국수자원공사(0.3%) 등도 평균치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362개 공공기관 임직원 수는 2018년 37만9,000명에서 지난해 44만5,176명으로 4년 만에 17.5% 증가했다. 그러나 경영 실적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갔다. 공공기관의 부채 규모는 동 기간 501조원에서 670조원으로 33.7%나 늘었다. 부채 비율도 158.6%에서 174.4%로 높아졌다. 징계 건수 증가 등 기강 해이가 주요한 원인이 됐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주요 공공기관의 징계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 은 자체적인 관리·감독만으로 비위 행위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방증”이라며 “최소한 대형 공공기관에는 감사원 소속 공무원을 파견하는 등 전문 인력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순살 아파트' 사태에 공기업 기강 해이 '도마 위'
최근 LH가 아파트 단지를 지으며 무더기로 철근을 누락한 '순살 아파트' 사태가 발생하면서 지난 기간 동안의 공기업 기강 해이 사태도 함께 도마 위에 올랐다. 앞서 지난 2021년 3월 LH 직원들은 줄줄이 신도시 땅 투기에 나섰다가 적발된 바 있다.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는 "기존 병폐를 도려내고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으나, 불과 2년 만에 LH 출신 전관들이 시공·감리·설계 업체 요직을 장악하고 LH로부터 일감을 받아 가는 관행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LH 등 공기업의 내부통제는 이미 예전부터 무너져 있었다는 평가가 많다. 징계 건수만 봐도 지난 5년간 뇌물이나 금품수수, 음주운전 등으로 임직원이 재판에 넘겨진 사례는 22건에 달했다. 한국전력도 현재 감사원의 감사를 받고 있다. 임직원 180여 명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태양광 사업을 벌였다는 비위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이들 가운데엔 심지어 태양광 업무를 직접 담당했던 직원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해 승진시험 준비를 위해 무단결근한 직원들을 징계했다.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이상이 없는 데도 출근하지 않고 근처 독서실에서 승진시험을 준비하는 사례가 적발된 건데, 직원 중엔 무려 14일간 무단결근한 직원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조폐공사에선 해마다 음주운전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5월 음주운전을 한 직원은 정직 1개월의 처분을 받았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음주운전으로 다른 직원에게 감봉 처분이 내려졌다. 2021년과 2019년에도 동일한 사례가 있었다.
복리후생비 잔치 벌이는 공공기관들
공공기관이 복리후생 잔치를 벌이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2일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의 복리후생 제도 운영현황 점검 결과'를 발표에 따르면 564건(11.4%)이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 등에 맞지 않게 운영됐다. 특히 시중 금리보다 낮게 특혜 대출을 해주거나 잘못된 규정을 방치한 공공기관이 점검 대상 134곳 중 47곳(34.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가스공사와 한국도로공사 등 16곳은 무주택자가 85㎡ 이하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에 한해 주택자금 대출을 지원하도록 한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LH와 한국전력거래소 등 27곳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준수하지 않거나 근저당권을 설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공기관의 기강 해이도 심각하다. 파주도시관광공사는 자체 감사에서 한 직원이 납품받은 수억원대 컴퓨터를 사적으로 시중에 되팔아 거액의 금품을 챙긴 사실을 적발한 바 있다. 공직유관단체 및 지방자치단체, 국립대 등에서 근무하는 공직자들의 청탁금지법(부정청탁·금품수수 등) 위반 사례도 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청탁금지법 위반 공직자는 416명으로 법이 시행된 2016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주요 공기업에서 직원들의 비위 행위가 잇따르면서 공공기관의 기강 해이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모든 공공기관이 자체적으로 감사실을 운영하고 있긴 하나 감사 대상이 동료들이다 보니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며 "내부 직원들이 업무를 돌아가며 맡는 경우가 많아 감사 기능이 사실상 제대로 작동하기가 힘들다"고 전했다. 전문가들도 공공기관의 자체 역량만으로는 이 같은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