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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지역 경제가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속에서 지속적인 부진을 겪고 있다. 생산·소비가 감소한 가운데 제조업과 서비스업 업황 모두 저조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물가는 오름세 둔화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 지속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도 유럽 중앙은행(ECB)의 금리인상 종료에 대한 종전의 기대와는 반대로, 에너지가격 상승에 따라 국채시장 금리는 큰 폭 상승하고 주가는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글로벌 주요 기관들은 국제 유가 급등으로 인한 향후 인플레이션 고착화와 통화 긴축 장기화 등을 우려하며 경제성장률 전망을 일제히 낮추고 있다.
최근 유로지역 실물경제 동향
12일 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사무소는 ‘최근 유로지역 경제동향 및 전망’ 보고서를 통해 지난 7~8월간 유로지역 주요 실물지표에서 둔화된 성장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먼저 실물경제를 살펴보면 경기의 부진한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 7월 중 유로지역 산업생산지수는 전월보다 1.1% 하락했으며, 8월 중 유로지역 소매판매지수도 전월보다 1.2% 하락했다.
기업의 공급관리자로부터 신규 주문, 생산, 고용, 재고, 수출 등의 상황을 설문 조사한 결과를 지수화한 구매자관리지수(PMI)도 제조업과 서비스업 모두 기준치(50)를 하회했다. 항목별로는 서비스업이 소폭 상승(47.9→48.7)했지만, 제조업의 부진은 계속(43.5→43.4)됐다.
물가의 경우 오름세는 둔화됐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9월 중 유로지역 소비자물가(HICP) 상승률은 전월보다 0.9%p 하락(5.2%→4.3%)했고, 에너지와 음식료품을 제외한 근원물가도 전월보다 0.8%p 하락(5.3%→4.5%)했다. 다만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2%를 하회했던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특히 영국은 지난 8월 소비자물가(CPI) 6.7%를 기록하며 인플레이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악화된 경기와 인플레이션 속에서 대외거래의 흑자 폭은 소폭 줄었다. 7월 중 유로지역 역외 무역수지는 지난 6월 85.7억 유로(약 12조2,28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으나 7월 흑자는 29억 유로(약 4조1,378억원)에 그쳤다. 대외수요 둔화 등에 따라 화학, 기계장비 등을 중심으로 수출이 감소한 가운데, 국제유가 상승 등으로 수입은 증가했기 때문이다.
반면 유로지역 고용시장의 호조는 계속되고 있다. 8월 중 유로지역 실업률(전체 연령)은 전월보다 0.1%p 하락한 6.4%를 기록 중이며, 청년 실업률(25세 미만)도 전월보다 0.1%p 하락한 13.8%로 집계됐다.
주요국 국채금리 급등에 주식시장도 함께 무너져
실물경제 부진은 유로지역 금융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유로존의 시장금리를 대표하는 독일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8월 말 2.46%에서 9월 말 2.84%로 큰 폭 상승했다. 지난달 14일(현지 시간) ECB의 완화적인 통화정책회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천연가스 및 국제유가 등 에너지가격 상승에 따라 인플레이션 장기화 우려가 가중된 탓이다.
유로지역 주변국의 10년물 국채금리 상황은 독일보다 더 좋지 않다. 한은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금리 변동 폭(전월 말 대비, bp)은 이탈리아(+66.3), 그리스(+57.7), 스페인(+45.1), 포르투갈(+40.8)로 집계됐다. 이들 4개국 국채 스프레드는 8월 말 117.2에서 9월 말 132.4로 15.2bp 가까이 확대됐다.
국채금리 급등에 유로지역 주가(STOXX50)는 기업가치 평가 하락 등으로 8월에 이어 지난달에도 -2.8% 하락했다. 국가별로는 독일(DAX30, -3.5%), 프랑스(CAC40, -2.5%), 이탈리아(FTSEMIB, -2.0%), 스페인(IBEX35, -0.8%) 등 주요국 증시가 모두 하락했다. 고금리 장기화 경계감과 유로지역 성장둔화를 우려하는 시장의 분위기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한편 미 달러화 대비 유로 환율(USD/EUR)은 8월 말 1.0843에서 9월 말 1.0573으로 2.5% 하락했다. 한은 관계자는 “금년 상반기 중 유로지역의 실물경제는 연초 전망보다 양호했으나 3분기 들어 소비 지표가 악화되면서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경기가 둔화되고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졌다”면서 “여기에 달러 강세 흐름과 유로지역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더해지면서 금융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향후 경제전망은?
향후 유로지역 실물경제는 긴축적 통화정책 지속과 중국 등 대외수요 둔화로 인해 부진이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3분기 들어 서비스업 업황도 둔화세를 보이는 가운데 고물가와 고금리의 누적된 영향으로 소비심리 개선도 정체된 상태다.
실제로 주요 기관들도 유로지역 성장률 전망치를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유로지역 경제성장률 전망을 0.9%에서 0.7%로 하향했고, 2024년 전망도 1.5%에서 1.2%로 낮췄다. ECB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각각 0.2%, 0.3%씩 낮췄고, 내년도 전망도 각각 0.5%, 0.4%씩 하향 조정했다.
물가에 대한 전망은 오름세가 둔화될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ECB의 긴축적 통화정책 영향 파급 등에 따라 에너지와 음식료품 가격 등을 중심으로 물가상승률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다만 향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의 전개 양상에 따라 국제유가 등 에너지 가격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고착화를 무시하기 어렵게 됐다.
한은 관계자는 “유로존 국가들은 여타 주요국에 비해 에너지 가격 변동에 민감한 편”이라며 “여기에 임금 상승 및 기업이윤 축소 등으로 서비스 물가가 당분간 높은 상승률을 나타내면서 전반적으로 물가 둔화 속도는 완화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고물가의 장기화가 예견되고 있는 만큼 향후에도 시장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은에 따르면 유로지역 주요 투자은행들은 독일 국채금리의 하락 기조 전망을 유지하면서도 최근의 에너지가격 상승에 따른 글로벌 장기금리 상승을 반영해 금리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유로화 전망 역시 상승 기조 전망을 유지하면서도 수정된 국제기구의 경제성장률 전망치 등을 반영해 하향 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