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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 직전'의 VC 펀드, VC 회복도 '지지부진' 고금리 장기화 우려 커지는데, 정부는 "글쎄" 투자 유치 '전쟁'의 서막,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 필요해"
올해 상반기 기준 투자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벤처펀드 자금이 10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와 비교하면 5,000억원 감소한 정도에 그친 수치다. 특히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오히려 2조5,000억원이 늘어났다. 앞서 정부가 펀드 조기투자를 위해 인센티브 등 대책을 내놨음에도 투자시장의 '돈맥경화'를 해소하는 데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VC 펀드 미투자 자금 약 11조, "투자 혹한기 장기화"
31일 중소벤처기업부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VC들이 결성한 펀드 중 미투자된 자금(드라이파우더)은 10조8,000억원에 달했다. VC의 미투자 자금은 △2020년 말 7조1,000억원 △2021년 말 8조2,000억원 △2022년 상반기 8조3,000억원으로 완만하게 증가해오다 금리인상이 본격화된 △2022년 말 11조3,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엔 그나마 미투자 자금이 5,000억원 줄었지만, 이를 VC 투자세 회복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 올 상반기 신규 VC 결성 금액(4조5,951억원)이 지난해 하반기(8조6,092억원) 대비 46.6%나 급감했기 때문이다. 즉 올 상반기 미투자 자금은 '조금이나마' 줄었다기보단 '조금 밖에' 줄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게 옳다. 시장에 풀린 자금 자체가 급격히 줄어들었음에도 VC가 살아나지 못했다는 방증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한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투자 혹한기라는 말이 실제 유동성 부족은 아닌 것"이라며 "풍부한 유동성이 스타트업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발생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돈맥경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투자 촉진 인센티브 등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앞서 중기부는 지난해 11월 '역동적 벤처투자 생태계 조성 방안'을 통해 모태펀드 출자를 받은 벤처펀드가 결성일로부터 1년 내 40% 이상의 자금을 투자할 경우 초과분의 1%를 관리보수로 추가 지급하고 성과보수 지급 기준을 0.5%p 하향하는 등 인센티브를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정부는 해당 인센티브 정책이 벤처펀드 간 원활한 자금 분배를 촉진하는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인센티브 정책, 현장선 의미 없어"
그러나 투자 업계 현장에선 정부의 인센티브 정책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사실상 인센티브 정책이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모습이다. 이에 대해 한 VC 심사역은 "금융시장뿐 아니라 실물경기도 위축되면서 스타트업이 경영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1%p가량의 관리보수 인센티브 등 때문에 투자 전략을 바꾼 심사역은 거의 없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전문가는 "한국은행 기준 금리가 0.5%에서 3.5%까지 수직상승한 상황이고, 시중 이자율은 이제 6~7%를 우습게 아는 수준"이라며 "고금리 상황에서 1%, 0.5% 정도의 인센티브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가 의미 없는 인센티브 정책으로 시장에 휘둘릴 때, 스타트업 업계는 자금 부족으로 직격탄을 맞은 모양새가 됐다. 지난해 메쉬코리아, 왓챠 등을 시작으로 올해는 그린랩스, 뱅크샐러드, 정육각, 클래스101 등 예비 유니콘 급 기업들이 잇달아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위기에 빠진 스타트업들은 사업 모델에 문제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일부 스타트업의 경우 구제금융 성격의 투자가 이뤄졌으면 심각한 위기까지는 겪지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크다"고 전했다.
업계에선 당분간 상황이 급반전되기는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금리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탓이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벤처투자 자체 집계액은 2조626억원으로 전년 동기 집계액 1조9,276억원 대비 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고금리 등 거시경제 악화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을 경우 투자 혹한기는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의 뜻을 밝혔다.
정부 '낙관론'에 '속 터지는' 업계 현장
최근 들어선 모태펀드 결성 자체도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금이 순환을 이루지 못하고 경색되다 보니 펀드 결성에도 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측의 설명이다. 실제 올해 모태펀드 결성 완료율은 15.5%에 불과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미결성 펀드가 65개에 달함을 고려하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모태펀드에 편성된 정부예산이 줄어들면서 운용사(GP) 선정 경쟁률이 역대급으로 높았는데, 이후 펀드 결성에 난항이 있다는 건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의미"라며 "올해가 이제 2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인데, 이대로라면 내년 모태펀드 GP들과 뒤엉켜 투자 유치에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간 주도 벤처투자를 이끌겠다던 중기부와 한국벤처투자의 장담이 무색해진 만큼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한 보다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다소 낙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열린 중기부 국정감사에서 '모태펀드 출자사업을 통한 자펀드 결성이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10개 펀드 모두 연내 결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기부에 따르면 지난 4월 선정된 모태펀드 1차 출자사업 결성 시한은 6개월 후인 10월 14일까지지만, 고금리 등의 여파로 자금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결성을 완료한 GP는 열 곳 중 한 곳에 그쳤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 투자심리가 위축됐고 실리콘밸리은행 파산부터 시작해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다"며 "그러나 보통 결성을 다 못하면 기한을 한 달씩 연장하는데, 연내에는 다 완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VC 업계는 이 장관의 발언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모태펀드 출자사업을 주관하는 한국벤처투자가 펀드 결성에 어려움을 겪는 GP들에 기한 연장 등의 혜택을 주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차라리 펀드 결성에서 손을 떼고 GP 자격을 반납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GP 자격을 반납하면서 받는 제재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반면 심의 항목에 조기결성 능력이 포함돼 기한을 넘길 경우 평가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 VC 임원은 "기한에 맞춰 펀드를 결성한 VC와의 형평성을 고려하는 건 맞지만 기한 연장 제도가 투자자 확보의 어려움에서 비롯된 것임을 감안하면 최소한 불이익은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정부의 낙관론에 야당도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제가 어려우면 모태펀드의 출자 비중을 높이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하는데 현 정부는 오히려 여성기업 관련 분야는 60%에서 50%로 줄이고, 창업초기 분야는 53.8%에서 48.2%로 10%p 가까이 줄였다"며 "이러니 당연히 민간 차원에서 펀드 결성이 어려워진 것 아니냐"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