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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배터리·반도체 공장 건설 중단 잇따라, 자재난에 인건비 상승 겹치며 기업들 ‘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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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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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 美 4공장 건설 백지화
건설 일정 연기·예산 확대 줄줄이
정부 보조금 집행 연기에 기업 ‘이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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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이오주 제퍼슨빌 인근에 건설 중인 LG에너지솔루션·혼다 합작법인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시설/사진=LG에너지솔루션

적극적인 보조금 정책을 앞세운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온쇼어링’ 전략에 제동이 걸린 모습이다. 미국 현지에 반도체 및 배터리 공장 건설을 추진해 온 아시아 기업 중 생산시설 건설 계획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다.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현지 공장 건설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탓으로 풀이되는 가운데,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까지 늦춰지며 기업의 시름을 더하고 있다.

미국 내 산업용 생산시설 건설비용 3년 전 대비 33%↑

3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완성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와 함께 인디애나주에 네 번째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던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WSJ은 미국 내 공장 건설비용이 급격히 치솟자 두 회사가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했다. 나아가 LG에너지솔루션이 GM 외에도 혼다, 토요타 등과 합작공장 설립을 논의하는 등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점도 인디애나 4공장 건설 계획 무산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SK온 또한 2026년 가동을 목표로 추진 중이던 켄터키주 2공장 건설을 연기한다는 방침을 최근 밝혔다. SK온은 포드, 현대자동차와 각각 127GWh(기가와트시), 35GWh 생산량의 합작공장을 짓기로 한 후 세부 사항을 논의 중이었지만, 미국 내 건설비용 상승세가 가팔라지며 현지 공장 건설에 큰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내 공장 건설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비단 우리 기업들만의 일이 아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는 400억 달러(약 53조3,760억원)를 투입해 애리조나주에 건설하던 생산 시설 완공이 2년가량 연기될 것이라고 밝혔으며, 일본 파나소닉은 오클라호마주에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려던 계획을 전면 중단했다. 이와 관련해 파나소닉은 “비용 절감에 중점을 두고 기존 공장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든 후 재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기업이 공사 중단 또는 무효 방침을 밝히며 일제히 그 원인으로 비용 절감을 지목한 만큼 업계에서는 미국 내 공사비 증가세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실제로 미국 노동부 통계국(BLS)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준 산업용 생산시설 건설비용은 3년 전과 비교해 약 33% 늘었다. 특히 건설에 필요한 필수 자재인 철강 가격은 이 기간 70% 이상 치솟으며 공사비 증가를 주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재 수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대규모 생산 시설에 들어가는 일부 제품의 공급이 제한되며 공사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전기·전자 제품이 대표적 예로, WSJ에 의하면 공장에서 전기를 통제하거나 조절하는 데 사용하는 스위치기어, 변압기 부품 등은 주문 후 납품까지 2년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종종 포착된다.

급격한 공사비 증가와 자재난이 맞물리며 다수의 사업장이 건설을 멈춘 것과 관련해 케네스 사이먼 미국건설업협회(AGCA)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당분간은 많은 공간 건설 프로젝트가 취소되거나 중단 또는 축소될 것”이라고 진단하며 “계속 공사를 진행하는 사업장의 경우, 생산 규모를 줄이거나 당초 예상했던 수준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을 치르는 것 중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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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TSMC가 미국 애리조나주에 건설 중인 생산시설/사진=TSMC

공사 진행 사업장은 예산 확대 불가피

미국 내 건설비용 폭증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본격화했다. 철강을 포함한 건축 자재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 인건비까지 치솟으며 전반적인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 것이다. 삼성전자가 텍사스주에 건설 중인 반도체 공장은 이같은 자재비 상승과 인건비 폭증의 직격탄을 맞은 사업장 중 하나다.

당초 해당 공장을 건립하는 데 170억 달러(약 22조6,950억원)를 투입할 계획이던 삼성전자는 공장 완공을 위해 최소 80억 달러(약 10조6,800억원)의 추가 투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2022년 11월 착공해 4개월 남짓한 기간에 100억 달러 가까운 비용을 들였지만, 공사가 속도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2024년 공장을 완공해 2025년에는 인공지능(AI)과 5G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첨단 칩을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추가 자금 투입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외에도 인텔, TSMC 등이 신규 생산 시설을 위한 예산을 줄줄이 확대하고 나섰다. 이를 두고 현지 업계에서는 “공장 규모 자체가 커지는 것도 있지만, 공사비 증가분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국이 아닌 한국이나 대만에 첨단 로직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필요한 자금의 78%로 충분하다는 미국반도체산업협회의 조사 결과 또한 이같은 업계의 분석에 힘을 실어 준다.

일자리 창출 기대감에 기업 유치한 미 정부는 ‘먼 산’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회복세가 다소 주춤한 가운데, 대규모 공장 건설 프로젝트마저 줄줄이 차질을 빚자 미국의 온쇼어링 전략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그간 미국 행정부와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이후 줄곧 국가 안보에 중요한 반도체 등 주요 기술의 아시아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22년 제정된 반도체지원법은 이같은 취지에서 비롯된 제도다. 미 정부는 해당 법에 의거해 정부 지원을 받는 외국 기업들에 지원금을 비롯한 각종 혜택을 부여해 단기적으로는 자국 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주요 기술에 대한 해외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반도체지원법과 관련해 갈등이 끊이지 않으며 정부의 지원안 발표 및 집행이 미뤄지는 모습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하원 공화당 의원들은 특정 산업만을 위한 혜택을 제공하는 일은 적절치 않다는 점을 들어 반도체지원법의 시행을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와 TSMC 등 많은 기업이 미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으로 막대한 투자 비용을 일정 부분 충당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만큼 악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결국 경기 과열에 따른 부작용은 미국 정부의 지원책을 믿고 서둘러 행동에 나선 외국 기업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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