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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연구원, '취약기업 상환능력 분석' 발표
기업 채무 1,900조원, 양은 늘어나고 '질'은 떨어지고
체감경기도 양극화, 수출기업 업황은 '개선' 내수는 '악화'
기업들이 금융기관에서 받은 대출액이 1,900조원에 육박하는 가운데 상환 능력이 부족한 취약기업의 차입금 비중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만큼이나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여파의 직격타를 정면으로 맞은 기업들의 연체율도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는 와중에, 고물가 장기화에 따른 민간소비 부진과 경기 침체까지 겹치며 기업들의 체감경기 양극화도 심화하는 모습이다.
채무 상환 능력 없는 기업 리스크, 금융위기 수준 '빨간불'
27일 한국금융연구원이 발간한 '위기별·산업별 비교 분석을 통한 국내 기업부채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라나라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225.3%로 글로벌 평균인 157.1%에 비해 무려 68.2% 높은 세계 6위 수준으로 파악됐다. 국내 민간신용 레버리지는 팬데믹 종료 이후 글로벌 차원의 고금리 디레버리징(부채축소) 기간 중에도 지속 상승하며 신흥국 평균(152.1%)은 물론 선진국 평균(160.1%)도 크게 상회했다.
팬데믹 기간 국내 민간신용 레버리지 상승은 주로 기업신용 증가가 견인했다. 특히 은행권보다는 비은행권 대출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대출이 크게 늘며 부채의 질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팬데믹 발발 이후 지난 2019년 말부터 2023년 말 기간 동안 은행권 대출은 45.1%(419조6,000억원) 늘어 1,350조5,000억원이 됐다. 같은 기간 비은행권 대출은 539조1,000억원으로 94.7%(262조2,000억원)가 늘었다. 전체 기업대출 중 비은행권 대출 비중도 지난 2019년 말 29.7%에서 2023년 말 39.9%까지 상승했다. 팬데믹 기간(2019년 말∼2023년 말) 분기 평균 10.8%씩 불어난 것이다.
기업 규모별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대출이 각각 54.3%(98조9,000억원), 56.5%(564조원) 급증했다. 산업별로는 팬데믹 이후 생산성이 낮은 부문으로 인식되는 부동산 관련 업종과 팬데믹 피해가 집중된 서비스 업종을 중심으로 기업대출이 크게 늘었다. 구체적으로 부동산업(175조7,000억원)과 건설업(44조3,000억원)의 대출 증가분이 전체 업종 대출 증가(567조4,000억원)의 38.8%를 차지했다.
특히 부동산 관련 업종의 비은행권 대출이 팬데믹 이후 거의 2배 규모로 확대되면서 이들 업종의 비은행권 대출 의존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팬데믹 피해가 컸던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업 대출도 정부 지원금의 영향으로 각각 92조7,000억원, 27조5,000억원 늘었다.
이에 대해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상환능력이 취약한 기업이 보유한 차입금 비중을 통해 과거 위기별 기업대출 리스크를 비교·평가한 결과 최근 상환능력 취약기업의 차입금 비중은 외환위기 때보다 크게 낮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에 근접하거나 일부 상회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총이자비용)이 1 미만인 취약기업의 차입금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7.4%로, 외환위기 고점(67.8%)보다는 낮지만, 금융위기 고점(34.1%)보다 높았다. 차입금상환배율(총차입금/EBITDA)이 6배를 초과하는 취약기업의 경우도 차입금 비중이 지난해 6월 말 기준 50.5%로 외환위기 고점(62.0%)보다는 낮으나, 금융위기 고점(53.3%)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채구조 안정성 지표인 부채비율(부채/자기자본) 기준으로 취약기업(200% 이상)의 차입금 비중을 계산한 결과에서도 지난해 6월 말 35.8%로, 외환위기 고점(84.3%)보단 크게 낮지만, 금융위기 고점(36.4%)과 비슷한 것으로 파악됐다. 기업 재무 단기 유동성 지표인 유동비율(유동자산/유동부채) 기준으로는 취약기업(100% 이하)의 차입금 비중이 지난해 6월 말 기준 51.9%로 집계됐는데, 역시 외환위기 고점(58.2%)보다 낮지만, 금융위기 고점(47.7%)을 넘어섰다.
기업대출 증가, 건전성 악화의 '뇌관'
이같은 기업대출 규모 증가는 정부 규제와 더불어 고금리, 부동산 시장 침체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가계대출 수요가 급감하자 성장 한계에 부딪힌 은행들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기업대출 시장에서 활로를 모색한 결과다. 여기에 정부의 코로나19 금융지원 조치가 장기간 이어진 영향도 증가세를 견인했다.
이처럼 은행권 기업대출이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건전성 악화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권 부실채권 규모는 전 분기 말보다 1조원 증가한 12조5,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기업여신이 전체의 80%(10조원)를 차지했다.
특히 지난해 4분기에만 5조7,000억원의 부실채권이 발생했는데, 이 역시 기업여신 신규부실이 4조4,000억원(전분기 대비 +1조3,000억원)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어려움을 커진 데다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 등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까지 덮친 영향이다.
문제는 기업대출 부실이 앞으로 더 확대될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이 고강도로 관리하는 가계대출 대신 기업대출을 실적 돌파구로 택한 은행들이 고객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기업대출 증가세는 올해 들어 더욱 가파른 모양새다. 지난해 3월까지 19조원이 늘어난 데 비해 올해는 같은 기간 무려 25조원이나 증가했다.
특히 지난달의 경우 가계대출 잔액은 한 달 전보다 1조6,000억원 줄어 1년 만에 감소 전환한 반면, 기업대출 잔액은 10조4,000억원 급증했다. 가계대출을 억제한 풍선효과로 은행들의 공격 영업과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맞물린 결과다. 이는 역대 3월 기준 두 번째로 높은 증가폭이다.
눈에 띄게 커지고 있는 부실 위기감에 저축은행부터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까지, 금융권 전반의 건전성 관리에도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그야말로 곳곳이 지뢰밭으로, 벌써 자영업자가 많이 몰린 인터넷은행과 지역 거점 중소기업 위주의 대출을 취급하는 지방은행의 경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수출-내수 양극화, 수출기업 +5p·내수기업 -1p
국내 기업들의 체감경기도 양극화하고 있다. 경기 전망이 개선 흐름을 보이고 있음에도 대기업-중소기업, 수출-내수 기업 간의 온도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지난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4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달 전산업 업황지수는 전달보다 2포인트 상승한 71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월 3년 5개월 만에 최저인 68까지 하락했다가 두 달 연속 소폭 상승한 것으로, 지난해 9월(73) 이후 가장 높은 수치지만, 지난 20년간의 장기평균(77)에는 못 미친 수준이다. 업황지수는 현재 경영 상황에 대한 기업들의 진단으로, 부정 평가가 긍정보다 많으면 100을 밑돈다.
특히 제조업의 4월 업황지수(73)가 전달보다 2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지난해 6월(73)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업 규모·형태별로 살펴보면 대기업(+3)과 수출기업(+5)은 상승했으나, 중소기업(-1)과 내수기업(-1)은 내렸다. 이로써 대기업(80)과 중소기업(64), 수출기업(80)과 내수기업(69)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10포인트 이상으로 더 벌어졌다. 5월 업황 전망도 대기업(81)과 수출기업(80)은 개선 흐름을 보였으나, 중소기업(67)과 내수기업(72)은 하락 또는 보합세를 나타냈다.
실제로 총 수출 규모에서 중소·중견기업이 차지하는 수출 비중은 최근 5년간 제자리걸음으로, 대기업과의 수출 격차는 점점 심화되고 있는 추세다. 통계청이 28일 발표한 기업규모별 수출 동향을 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의 전체 수출액 중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6~19%, 17~18% 선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경우 2020년 20%를 넘어서는 듯했으나 2021년 17%대로 하락했고, 중견기업도 2020년부터 3년간 17%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3대 수출국인 중국·미국·유럽연합(EU)에 대한 비중도 뚜렷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9년 중소기업의 대중국 수출액 비중은 17.1%(232억 달러)였으나 2022년 13.8%(214억 달러)로 큰 하락폭을 보이다 지난해 소폭 상승(15.4%)했다. 대미 수출 비중도 2020년 17.4%(128억 달러)에서 2023년 14.8%(171억 달러)로 하락세다. 중견기업의 대미 수출 비중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9년 중견기업의 대미국 수출 비중은 19.1%에 달했으나 2023년 16.1%로 쪼그라들었다.
이런 가운데 무역기술장벽(TBT)마저 최고로 치닫고 있다. 국가기술표준원에 의하면 올해 1월부터 3월(1분기)까지 누적 무역기술장벽은 1,194건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1,121건)와 비교해 6.5%(73건) 증가한 수준으로,최근 3년간 1분기 TBT 통보 건수는 2022년 916건에서 작년 1,121건으로 늘었고 올해 1,194건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TBT는 한계기업의 퇴장을 촉진하고 신규 기업 진입을 억제하는 등 수출 기업 수 감소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