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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공개시장운영 대상기관’에 비은행 포함
새마을금고·저축은행도 한국은행과 RP 거래 가능
뱅크런 등 유사시 적시에 충분한 유동성 공급 경로 확충
한국은행이 시장 유동성 확보를 위해 환매조건부증권매매(RP) 거래 대상을 비은행까지 확대한다. 내달 1일부터 1년 동안 공개시장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기관을 선정하면서다. 제2금융권에 유동성 위기가 확대하자 금융당국 차원의 대처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한국은행, 공개시장운영 참여 기관 57개사 선정
2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한은은 향후 1년간 공개시장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기관을 전년보다 20곳 많은 57개사로 선정했다. 유효기간은 오는 8월 1일부터 내년 7월 31일까지다. 공개시장운영은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을 상대로 채권 등 유가증권을 사고팔아 통화량을 조절하는 대표적인 통화정책이다.
공개시장운영은 크게 세 부문으로 나뉜다. 이번 대상기관 선정에서는 부문별로 ‘통화안정증권 경쟁입찰‧모집 및 증권단순매매’ 23개사, ‘RP 매매’ 44개사, ‘증권대차’ 10개사를 각각 선정했다. 이 중 RP 매매는 금융기관이 국채처럼 안전한 고유동성 증권을 한은에 일정 기간 맡긴 뒤에 증권을 다시 되사는 방식으로, 공개시장운영 수단 중 하나다. 고유동성 증권을 담보로 한은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에 한은이 RP 매매 대상기관으로 비은행예금취급기관 중앙회 6개사를 새롭게 선정했다는 점이다. 선정 기관은 △농업협동조합중앙회와 △산림조합중앙회 △상호저축은행중앙회 △새마을금고중앙회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 △신용협동조합중앙회다. 한은 관계자는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제고하고 금융시장 안정 기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은이 직접 유동성 공급, 대응 수월해질 것
한은의 이번 조치는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 불황에 따른 2금융권의 고정이하여신비율(3개월 이상 연체된 채권) 상승,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부실 채권 증가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앞서 한은은 '2024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취약 저축은행의 지난해 말 14.0%였던 고정이하여신비율이 내년 말에는 최대 26.5%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같은 기간 취약 새마을금고와 취약 신협은 10.1%, 10.2%에서 19.4%, 12.3%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최근 저축은행업권은 경영 악화로 인해 제2의 저축은행 사태마저 회자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한은 RP 매매 대상기관 선정 확대에 따라 앞으로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등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응하기가 수월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7월 새마을금고는 경기 남양주지역 새마을금고 합병소식과 연체율 급상승에 고객 불안감이 커지면서 뱅크런 위기가 발생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지난해 6월 말 기준 예금 잔액이 약 259조원에서 같은 해 7월 말 242조원으로 한 달 만에 17조원 넘게 빠졌다.
당시 새마을금고중앙회는 상당한 규모의 국채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를 기반으로 자금을 빌릴 창구가 부족해 유동성 공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새마을금고중앙회가 보유한 채권을 매도하면서 채권시장에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에 금융당국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 각 1조원씩 총 5조원의 자금을 마련하도록 함과 동시에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새마을금고와 RP 매입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자금을 수혈했다.
이런 가운데 제2금융권은 이번 선정으로 유동성 지원 역량 강화를 기대하고 있다. 새마을금고중앙회 측은 “한국은행과의 RP매매를 통한 유동성 확보로, 새마을금고중앙회 보유 유가증권 매각을 최소화할 수 있어 대량 매각에 따른 금융시장에의 부정적 영향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밝혔다.
신협중앙회 관계자 역시 “전국 866개 회원조합을 관리하는 신협중앙회의 위기 대응능력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며 “한은의 RP매매 대상기관에 포함되면서 신협의 유동성이 더욱 유연하게 관리될 수 있을 것이고, 자금 흐름을 보다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업권도 개별 저축은행들이 직접 한은과 RP 매매를 할 수는 없게 됐지만, 저축은행중앙회를 통해서는 가능하기 때문에 “업권의 유동성 리스크 발생 등 유사시 추가적인 유동성 공급경로를 확보할 수 있게 돼 저축은행에 대한 유동성 지원역량이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은이 지원해 주겠지", 모럴해저드 우려도
다만 일각에서는 공개시장운영 대상기관 확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가장 대표적이다. 대상기관을 확대할 경우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한은의 유동성 지원을 기대하고 자체적인 고유동성 자산을 줄이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한은은 가능성이 낮다는 입장이다. 2024년도 제2차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일부 금융통화위원의 도덕적 해이 관련 질의에 대해 한은은 “현재 공개시장운영은 국채, 정부보증채, 통안증권, 주금공 주택저당증권(MBS) 등 고유동성 자산만을 대상증권으로 하고 있어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고 설명했다. 담보로 맡길 수 있는 증권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무분별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고 또 한은은 해당 기관의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분’만을 지원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어 한은은 “회사채를 상당한 수준 보유하고 있는 일부 기관의 경우 국채 등의 보유 규모를 늘릴 계획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오히려 대상기관 확대가 금융기관의 고유동성 자산 규모를 늘리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한은은 너무 많은 기관과 거래를 하게 되면 시장 거래의 일정 부분이 축소될 수 있고, 부실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경영·재무건전성 비율, 총 수신규모, 예치금규모, 자산총액 등을 따져 대상기관을 선정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