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로이터 "프랑스 규제당국 엔비디아 기소 예정, 첫 제제 사례"
美 법무부·FTC, 지난달 엔비디아·오픈AI·MS '빅3' 조사 착수
AI 칩과 SW 모두 장악한 엔비디아 대항해 빅테크 동맹 강화
엔비디아가 프랑스 규제당국으로부터 반경쟁적 행위 혐의로 기소될 전망이다. 지난달 미 법무부가 엔비디아의 반독점 위반 행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유럽연합(EU) 등 각국에서 엔비디아의 반독점 위반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까지 엔비디아가 반독점 위반 혐의로 제재 대상에 오른 적은 없지만 기소가 현실화할 경우 엔비디아를 겨냥한 타국의 움직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佛, 엔비디아의 칩 공급량·가격 정책 등 집중 조사
2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프랑스 규제당국이 지난해 9월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GPU) 부문을 압수수색 한 이후 엔비디아에 대해 집중 조사를 진행해 왔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조사 내용은 AI 칩의 역할과 가격 정책, 공급 부족이 가격 변화에 미치는 영향 등으로 프랑스 규제당국은 조만간 기소장을 발부할 예정이다. 프랑스 규제당국이 조치를 확정할 경우 엔비디아를 반독점 혐의로 제재를 가하는 첫 사례가 된다.
프랑스 반독점법은 반독점 위반 행위에 대해 최대 연 매출의 10%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지난해 매출은 609억2,000만 달러(약 79조1,900억원)다. 앞서 지난해 11월 브루노 르메르(Bruno Le Maire) 프랑스 재무장관은 "엔비디아의 지배력이 AI 산업에서 국가 간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지난달에는 프랑스 규제당국이 'AI 경쟁 보고서'를 통해 생성형 AI 산업에서 반도체 기업들이 보유한 독점적인 지배력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특히 해당 보고서는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쿠다(CUDA)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위험 요소로 꼽았다. 쿠다는 AI 개발자들에게는 필수 소프트웨어지만 쿠다로 만든 프로그램은 엔비디아의 GPU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인텔, AMD 등 경쟁 기업이 AI 가속기 신제품을 출시해도 엔비디아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프랑스 규제당국은 엔비디아가 코어위브(CoreWeave)와 같은 AI 특화 데이터센터 업체들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해당 투자가 AI 기술에 대한 독점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美 "AI 빅3 체제 견고해 다른 기업 진입 불가능"
엔비디아를 주시하는 국가는 프랑스만이 아니다. 최근 메타과 애플의 디지털시장법(DMA) 위반 사례를 적발하는 등 미국 빅테크 견제에 힘을 쏟고 있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엔비디아의 반독점 위반 여부를 면밀히 살피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지난 2월 엔비디아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과 중국의 규제당국도 엔비디아에 GPU 관련 정보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법무부 역시 연방거래위원회(FTC)와 함께 엔비디아,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MS)에 대한에 반독점 조사를 진행 중이다. 미 정부는 AI 산업 생태계의 3대 빅테크 체제가 너무 견고해 다른 기업이 진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최근 AI 칩 가격이 급등한 데다 이마저도 구할 수 없어 고객사들의 어려움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해당 기업들이 AI 전문 인력까지 싹쓸이해 가면서 기술 독점력이 더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주요국들이 초거대 AI 기업을 본격적으로 견제하고 나선 데는 이들이 기술을 독점하면서 안보, 보안 등의 측면에서 국가를 위협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다. 일례로 지난해 10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국가 안보와 안전 등을 위협할 수 있는 AI 개발자는 안전 시험 결과를 정부에 제출하도록 정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 캘리포니아 주의회도 AI로 인한 각종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첨단 AI 시스템을 위한 안전과 보안 혁신법'을 하원에서 통과시켰다.
폐쇄적인 '엔비디아 생태계'에 대항하는 빅테크들
한편 AI칩 과 소프트웨어 부문을 망라하고 AI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엔비디아에 맞선 빅테크 기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구글, 인텔, 퀄컴, 삼성전자 등은 엔비디아에 대항하기 위해 'UXL 재단'을 설립하고 쿠다에 대항하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구축하고 있다. UXL 재단 관계자는 해당 프로젝트는 "모든 반도체 칩이나 하드웨어 기반의 컴퓨터에서 구동하는 소프트웨어와 도구, 제품군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구글은 자체적으로 범용 AI 소프트웨어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중에 기술 사향을 확정하고 기술적 세부 사항을 성숙한 상태로 개선한다는 구상이다. 또 개발된 소프트웨어가 모든 칩이나 하드웨어에 배포될 수 있도록 다른 칩 제조사와 MS, 아마존 등 클라우드 컴퓨팅 회사의 동참을 요청하고 있다. AMD와 인텔도 쿠다에 대항해 각각 자사의 GPU를 위한 프로그래밍 플랫폼을 개발했다. 해당 플랫폼은 자사는 물론 엔비디아, AMD, 인텔의 GPU와 호환이 되도록 했다.
인텔과 네이버도 'AI 동맹'을 공식화했다. 양사는 엔비디아의 독주를 막고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엔비디아 대신 인텔의 AI 가속기 '가우디(Gaudi) 2'를 기반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결과물은 오픈소스 등의 형태로 공개할 방침이다. 인텔은 가우디 칩을 제공하고, 네이버 클라우드는 연구를 주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네이버는 이를 통해 AI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동시에 엔비디아 칩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인텔의 칩은 엔비디아보다 크게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빅테크들은 AI 칩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픈 AI는 7조 달러(약 9,400조원) 투자를 유치해 자체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추진하고 소프트뱅크는 1,000억 달러(약 134조원)를 투입해 '이자나기(Izanagi)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AMD도 지난해 12월 엔비디아의 H100에 버금가는 강력한 AI 칩 'MI300X'를 출시했고 아마존과 구글 역시 자체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를 제작하고 있다. 중국의 AI 스타트업인 '무어 스레드' 등도 쿠다에 대항한 AI 컴퓨팅 센터를 구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