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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세계국채지수 WGBI 편입 성공
70조원대 ‘글로벌 유동성’ 유입 예상
금리 인하 및 환율 안정 효과 기대도
대한민국 국채가 세계 3대 채권지수 편입에 성공했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0대 국가 중 해당 지수에 편입되지 못한 국가는 한국과 인도뿐이었지만, 네 번째 도전 끝에 편입이 결정됐다. 2022년 9월 관찰대상국에 들어간 이후 2년 만의 쾌거로, 외환시장 제도를 바꾸고 국채통합계좌를 도입하는 등 외국인 시장 접근도를 높인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다.
FTSE러셀, 한국 ‘채권 선진그룹’ 편입 결정
9일 세계국채지수(World Government Bond Index, WGBI) 산출기관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은 한국 국채를 WGBI에 추가한다고 밝혔다. FTSE 러셀은 한국의 시장 접근성 수준이 WGBI 편입요건인 2단계(Level 2) 기준을 충족했다고 설명했다. WGBI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전체 발행 잔액의 액면가 500억 달러(약 67조원) 이상, S&P 기준 국가 신용등급 A- 이상(무디스 기준 A3 이상), 시장 접근성 레벨 2가 충족돼야 한다.
WGBI는 블룸버그-바클레이스 글로벌 국채지수(BBGA), JP모건 신흥국국채지수(GBI-EM)와 함께 전 세계 기관투자자들이 추종하는 글로벌 채권지수로 꼽힌다. WGBI에 편입된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26개국으로, 북미 지역에서 미국·캐나다 등 3개국, 유럽 15개국이 편입돼 있고 아시아에선 일본·호주·중국 등과 함께 이번 한국의 편입 결정으로 총 8개국이 포함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지난 2002년 BBGA에 이어 WGBI까지 양대 '국채 선진그룹'에 올라서게 됐다. 지수 편입 시점은 2025년 11월로, 1년간 분기별 편입 비중이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발행한 지 오래되지 않아 발행잔액과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국고채 50년물은 편입대상에서 제외된다.
FTSE 러셀의 니키 스테파넬리(Nikki Stefanelli) 채권지수 담당 책임자는 “한국 정부가 WGBI 편입을 위해 엄격한 기준에 부합할 수 있도록 변화하고, 한국 채권 시장에 투자하는 전 세계 투자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했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한국 시장 당국이 시행한 자본 시장 개혁과 WGBI 포함을 위한 엄격한 접근성 기준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의 효과를 면밀히 모니터링했다”며 “내년 말 지수 포함을 앞두고 한국 정부가 준비 활동을 수행함에 따라 시장을 계속 지원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관찰대상국 지정 2년만의 쾌거
FTSE 러셀은 시장 규모, 시장 접근성 수준 등을 고려해 매년 3월과 9월 WGBI 편입 여부를 정기적으로 결정하는데, 그동안 한국은 국채 발행 규모나 국가 신용등급 등 정량적 요건은 충족됐지만, 정성적 지표인 시장 접근성은 기준에 못미친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2022년 9월에 관찰대상국(Watch List) 지정 이후 앞선 세 차례 도전에선 고배를 마신 것도 글로벌 투자자들의 한국 국채 시장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이에 정부는 국채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제도적 기반을 완비하고 지수 편입에 주력해 왔다. 정부는 시장 접근성 제고를 위해 그간 △국채통합계좌 개통 △서울 외환시장의 원·달러 거래 마감시간 연장 △외국인의 국채투자 비과세, 외국인 투자자등록제(IRC) 폐지 등을 시행했다. 아울러 올해 현지 국채 투자기관 대상 라운드테이블을 도쿄·홍콩·런던·싱가포르 등에서 총 9차례 진행하며, 제도 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이 같은 제도적 노력이 가시화하기만 하면 WGBI 국채 편입은 시간 문제였다.
그런데 이번 WGBI 편입 결정은 시장의 예상을 뒤집은 빠른 성과다. FTSE 규정에 따르면 시장 접근성 레벨이 상향 조정된 이후 적어도 6개월(at least six month’ notice)이 지나야 WGBI에 편입될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한국이 가장 빠르게 WGBI에 편입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올해 9월 시장 접근성 레벨 2 상향, 내년 3월 편입이었다. 제도적 접근성이 높아지더라도 바뀐 시장 제도에 대해 실제 투자자들이 체감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WGBI 편입은 글로벌 운용사들 간의 찬반 회의 등을 통해 최종적으로 결정되는데, 회의 결과를 반영하는 시차 등을 고려하면 이번 9월 편입 확정은 고무적"이라며 "그간 정부의 제도 개선 노력과 우리 경제 상황 등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이 신뢰를 보여준 결과"라고 평했다.
최소 70조 해외자금 유입 기대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번 편입 결정에 따라 한국 국채에 대한 투자 신뢰도가 높아지고 한국 금융시장이 안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WGBI 추종자금이 국내에 유입되면서 국채시장 수급과 금리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한국이 WGBI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5% 수준으로 평가되는데, 이는 편입국가 중 9번째로 큰 규모에 해당한다. WGBI 추종자금이 2조~2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을 고려하면, 500억~525억 달러의 자금 규모다. 이에 따라 내년 11월부터 단계적으로 최소 500억 달러(약 70조원)의 자금이 국내 국채 시장에 유입되면서 시중금리와 환율 안정에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채뿐 아니라 회사채 등 다른 채권으로의 낙수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WGBI 추종 자금이 최우량물인 국채를 매입하면서 국채 가격이 오르면 회사채 등으로 투자를 우회하는 기관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는 대출 금리에 인하 압력으로 작용해 가계의 이자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외환 시장 측면에선 국채 투자를 위한 원화 수요가 증가하면서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또 WGBI를 추종하는 해외 자산운용사·연기금 등의 국내 금융시장 투자가 늘면서 투자자 저변도 확대할 수 있다. WGBI 추종 자금은 단기적인 금리 수익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장기 투자 자금으로서 유출입 변동성이 작고 예측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이번 WGBI 편입을 두고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과 재정건전성, 자본시장 선진화에 대한 신뢰가 확인된 것으로 지수 편입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고질적인 채권·외환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됐다”며 “우리 국채 시장이 명실상부하게 제값 받기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정부가 그동안 국가신인도를 계속 높여온 것, 특히 재정을 건전하게 운영해 온 것이 지수 편입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