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쿠르스크 일대, 러·北 맹공에 속수무책 잃어 美, 무기·정보 지원 중단 및 위성사진 접근권 제한 "유럽 제때 지원 안 하면 우크라군 괴멸할 수도"

전쟁 격전지인 러시아 북서부 쿠르스크 지역에서 러시아군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 북한군과의 합동 작전으로 우크라이나가 차지했던 쿠르스크 영토의 상당 부분을 되찾는 데 성공한 것이다. 미국의 군사·정보 지원이 끊겨 우크라이나군이 전황 파악에 어려움을 겪자 그 틈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러, 빼앗긴 영토 일부 탈환
9일(이하 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도네츠크 시에서 서쪽으로 약 50㎞ 떨어진 코스티안티노필 마을을 점령했으며 중부의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방향으로 진군 중이라고 밝혔다.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주는 우크라이나 내륙과 남부 항구 도시(오데사, 미콜라이우)로 연결되는 주요 도로망이 연결된 전략적 요충지로, 우크라이나군의 중요한 군사적 거점이자 방어선이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한국·서방 정보당국에 의하면 러시아군은 북한군의 합동 작전으로 우크라이나군에 빼앗겼던 쿠르스크 영토의 3분의 2를 수복했다. 지난 7일에는 자국 쿠르스크주의 수드자에서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 영토인 수미주 북쪽으로 진군하는 데도 성공했다. 러시아군이 수미주 북부에 진출한 건 전쟁이 시작된 원년인 2022년 이후 처음이다.
현재 북한 보병들은 자국 포병대와 러시아의 엘리트 드론 부대와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전선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복수의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인용해 “북한군은 드론이 활약하는 전장에 더 잘 적응하고 있다”며 “북한 포병대와 러시아 드론 부대의 지원 아래 전술 적용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쿠르스크에서 완전히 철수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을 고립시키기 위해 쿠르스크와 인접한 우크라이나 영토인 수미주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드론과 북한군을 투입해 보급로를 차단하고 쿠르스크에 있는 우크라이나군을 포위하는 작전이다. 우크라이나 군사 블로그 딥스테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쿠르스크에 남은 우크라이나군의 75%는 이미 포위됐다.

우크라이나군 손발 묶은 美
러시아군의 공세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정보 지원을 잇따라 중단하면서 더욱 가열되는 양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일 군사 지원 중단을 시작으로 정보 공유와 위성 영상 제공도 끊기로 했다. 우크라이나가 적극적으로 종전 협상에 나서도록 하는 한편 그동안의 지원을 대가로 희토류 등 광물자원에 대한 이권을 보장하라는 압박성 움직임이다.
우크라이나로서는 수세로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지난주 동안 우크라이나에 2,100건 이상의 공습을 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려 러시아군이 유도 공중 폭탄 1,200개, 공격용 드론 870여 대, 다양한 유형의 미사일 80여 개를 배치했다고 전하며 동맹국들에게 러시아 제재 조치를 강화해 줄 것을 호소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에 따르면 미사일 공격 건수는 지난주보다 4배 증가했다.
이런 상황 속 우크라이나군이 자국이 확보한 쿠르스크 영토에서 철수하면 향후 평화 협상 국면에서 러시아에 대항할 강력한 카드가 사라지게 된다. 또 미국의 무기 지원이 중단되고 전장 정보까지 받아볼 수 없는 상황이 길어지면 재반격은커녕 현재 전황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전방뿐 아니라 후방에서도 불리하다. 우크라이나 영공 방어에 활용되고 있는 패트리어트 방공미사일 포대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데다 정보 부족으로 방공망을 제대로 가능하는 것도 어려워질 수 있다.
러 "유럽의 우크라 지원, 전쟁 장기화하는 것"
이에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유럽이 제때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 군대가 사실상 괴멸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현재 영국은 우크라이나 평화 유지를 보장하거나 보장할 의향이 있는 국가들을 느슨하게 묶는, 이른바 '의지의 연합'을 구성 중인데 지금까지 약 20개 국가가 관심을 표명한 상태다. 프랑스는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할 준비가 된 유럽연합(EU) 국가의 군 참모총장들을 불러모아 11일 회의를 열 계획이며, 미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 보유 핵무기로 유럽을 보호하는 '핵우산' 카드도 꺼내 들었다.
EU도 우크라이나의 후원군으로 나섰다. 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특별정상회의에서 친(親)트럼프·친러시아 성향 헝가리를 제외한 26개 회원국은 "유사 입장국 및 동맹들과 협력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치·금융·경제·인도·군사·외교적 지원을 강화하고 방공체계, 탄약, 미사일 등 우크라이나의 시급한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결의했다. 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가 추진하는 '최고 8,000억 유로(약 1,250조원) 규모 방위비 확대 방안'에 대해서도 잠정 합의가 이뤄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EU 방위비 일부를 우크라이나 방위 산업에 써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러시아는 즉각 비난에 나섰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유럽 국가들의 회의는 적대 행위를 지속하도록 하는 일”이라며 “젤렌스키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누군가 그가 평화를 원하도록 만들어야 하며, 유럽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칭찬받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회의 후 영국 수출금융 16억 파운드(약 2조9,000억원)를 활용해 우크라이나에 방공 미사일 5,000기를 공급하겠다고 밝힌 점을 언급하며 “그렇게 하면 전쟁을 장기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