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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해군부-韓 방위사업청 접촉
올해 최대 10척 정비 가능성
정비→건조 협력 수위 높일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위시한 미국 행정부가 자국 해군 군함 유지·보수·정비(MRO) 등 조선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 확대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자국 군함 5, 6척에 대한 MRO를 국내 조선업체에 맡기고 싶다는 뜻을 전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이번 제안을 계기로 미국과의 전략적 방산 협력을 확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비전투함 5~6대부터 정비
7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미 해군부 관계자는 지난달 말 한국 방위사업청과 접촉해 국내 방산업체가 미군의 군함 MRO를 맡아줄 수 있는지 의사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정비가 시급한 군함 5척 내지 6척에 대한 정비 업무가 주요 내용이며, 진행 상황에 따라 정비 함정은 10척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전언이다.
미국 측이 정비를 요청한 군함은 해양조사선과 해양감시선 등 전투 기능이 없는 비전투함으로 파악됐다. 미 해군은 지난해 한국이 정비한 월리 시라함 등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 조선업체들의 기술력과 시설 능력에 대한 분석에 나선 바 있다. 이를 토대로 한국의 기술력과 품질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번 미 해군의 MRO 위탁 요청은 트럼프 대통령 강조한 한미 조선업 협력을 구체화하는 첫 사례로 평가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미국 조선업계의 고령화와 설비 노후화 등을 지적하며 “군함 등 미국 주요 함정의 건조와 정비에 있어 한국과 협력이 절실하다”고 지속적으로 언급해 왔다. 미국이 자국 조선소가 아닌 해외에 군함 정비를 위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는 미국 해군이 올해 최대 10척까지 국내 조선업체에 정비를 맡길 가능성을 밝힌 만큼 한미 양국 간 방산협력이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업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면, 향후 미국이 추진하는 전투함 정비사업에도 진입할 기회가 생길 것이란 기대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최근 발표한 ‘미국 해양 조선업 시장 및 정책 동향을 통해 본 우리 기업 진출 기회’ 보고서에 의하면 미 해군의 연간 MRO 시장 11조원 규모에 이른다.
미 해양 패권 위기감 고조, 동맹국 역할 커져
미국은 1920년 연안 항구를 오가는 민간 선박은 자국 내에서만 건조하도록 한 ‘존스법’을, 1965년과 1968년에는 두 차례에 걸쳐 미국 군함을 자국 조선소에서만 건조하게 한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을 각각 도입해 자국 조선 산업을 보호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국 조선업 약화로 중국에 전투함 숫자가 역전되는 등 해양 패권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자, 서둘러 불필요한 규제를 철회하고 나섰다.
지난달 5일(현지시각) 마이크 리, 존 커티스 미 공화당 상원 의원 주도로 발의된 ‘해군준비태세 보장법’이 대표적이다. 해당 법안에는 “미국이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국가 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 미 해군 함정 건조를 맡길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세부 조건으로는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비용이 미 조선소보다 낮아야 하고, 중국 자본이 섞여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현재 글로벌 선박 수주 시장의 약 90%는 한국과 중국, 일본이 점유하고 있다. 따라서 해군준비태세 보장법이 제시한 조건을 충족하는 선박 제조 국가는 사실상 한국, 일본뿐인 셈이다. 업계는 한국 조선업의 역량이 일본을 크게 앞선다는 평가를 듣는 만큼 한국이 최대 수혜 국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오션, HD현대 등 “미국 투자 적극 고려”
미국 내부에서는 해군준비태세 보장법이 상·하원 다수를 차지하는 공화당에서 발의된 만큼 의회 통과도 무난할 것이란 평이 우세하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국내 조선 업체들은 MRO 협력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군함 건조 파트너로 도약할 수 있다. 미 해군은 현재 296척의 함정을 보유하고 있으나, 오는 2054년까지 함정을 381척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다. 함정 수 증가와 노후 함정 교체 수요로 인해 향후 30년 동안 매년 평균 43조원 규모의 신규 군함 발주가 예상된다.
거대한 시장을 앞두고 기업의 발걸음도 분주해지는 모습이다. 지난해 7월 미 해군과 함정정비협약(MSRA)을 맺은 HD현대와 한화오션은 일찌감치 MRO 사업에 발을 담근 상태다. 특히 한화오션은 지난 한 해에만 MRO 수주 2건을 따낸 데 이어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필리조선소를 1억 달러(약 1,46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HD현대 또한 올해 미 함정 MRO로 최소 2건 이상을 수주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김지훈 HD현대 특수선사업부 책임은 지난달 미국 워싱턴 허드슨연구소에서 열린 대담에서 “세계 최고 조선사로서 선박 건조와 수리 분야에서 더 많은 역량과 지속 가능성을 제공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미국 방위산업에 더 많은 미국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투자 기회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