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감세, 재정건전성에 치명적” 지적
재정지출↑ 세입↓ 역설적 재정구조
일론 머스크 등 경제 리더들 공개 비판

미국의 국가부채가 36조 달러(약 4경9,490조원)를 넘어선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감세와 부채한도 폐지라는 이중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며 경제 불안을 가중하고 있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추진해 온 감세안이 향후 10년간 24조 달러(약 3경2,700조원) 의 부채를 추가로 발생시킬 것이라는 경고에는 아예 부채한도를 없애자는 주장으로 시장을 충격에 빠트렸다. 이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기업인들과 시장 전문가들은 “지금 필요한 것은 감세가 아닌 구조 개혁”이라며 공개 반발에 나섰다.
재정 압박 해소보다 시장 친화가 우선?
4일(이하 현지시각) 월스트리스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올해 초 기준 미국의 국가 부채는 36조 달러로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22% 수준을 기록했다. 막대한 부채에 따라 매년 지급해야 하는 이자 또한 1조 달러(약 1,374조원)를 상회한다는 설명이다. WSJ은 “재정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고 워싱턴 정가의 무책임한 살림살이가 이어지고 있다”며 여러 전문가의 말을 빌려 경고의 메시지를 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을 지낸 피터 오재그 라자드 CEO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재정 적자와 부채의 지속 불가능성을 외쳤던 이들은 양치기 소년 같았다”면서 “지금이야말로 진짜 늑대가 우리 주변에 어슬렁거리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헤지펀드의 대부라 불리는 레이 달리오 역시 “미국 경제가 ‘심장마비’를 피하려면 길어야 3년 정도 남았다”고 단언했다.
여러 경고 메시지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감세안 역시 재정 악화를 부추길 것이란 진단이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 정책이 현실화할 경우 향후 10년간 연방 부채가 24조 달러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단순한 재정 악화 수준을 넘어 국가신용도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법인세 인하, 소득세 감면 등 친기업 조치를 중심으로 구성된 문제의 감세안은 트럼프식 ‘친(親)시장주의’의 연장선으로 평가된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단기 부양 효과도 불확실할뿐더러, 장기적으로는 미국 재정의 구조적 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주를 이룬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 내 양극화가 심화한 가운데 상층부를 위한 감세가 다시 등장할 경우, 정치적 반발은 물론 아니라 소비 심리 위축과 정책 신뢰 저하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가 신용도·달러 신뢰성 저하 우려까지
이러한 비판 여론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부채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경제적 재앙을 막기 위해 (연방) 부채 한도는 전적으로 폐지돼야 한다”며 “부채 한도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과 전 세계에 끔찍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 의원 역시 같은 견해를 밝혔다”며 “공화당과 민주당이 초당적으로 협력해 달라”고 덧붙였다.
미국 의회는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빌릴 수 있는 금액에 상한을 두는 부채 한도를 설정하고 있다. 현행 부채 한도는 36조1,000억 달러로, 이 한도가 채워지면 추가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는 기존 채무를 상환할 수 없어 정부가 채무 불이행(디폴트)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 재무부는 부채 한도 도달 시점을 늦추기 위한 특별 조치를 시행하며 시간을 벌고 있으나, 이를 상향하거나 유예하지 않으면 디폴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부채 한도 폐지 발언은 사실상 정부 지출을 무제한 확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며 비판 여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미 부채 부담이 임계점에 도달한 상황에서 책임 있는 대응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감세와 지출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면서 이를 재정수지나 세입 개선 없이 지속하려는 구조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며 “연방정부의 지급 여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경우, 미국 경제의 기축통화 지위조차 도전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치적 계산과 시장 우려 충돌 국면
머스크 CEO도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안을 겨냥해 “법안을 폐기하라(KILL the BILL)”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4일 소셜미디어 X를 통해 “미국을 파산시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새로운 지출 법안은 적자를 엄청나게 키우지 말아야 하고, 부채 한도를 5조 달러(약 6,798조원)나 늘리지 않도록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도한 지출이 미국을 부채의 노예 상태로 이끌 것이란 게 그의 주장이다.
머스크는 전날에도 X에 열 개가 넘는 게시물을 직접 올리거나 공유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추진안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미안하지만 더는 참을 수 없다”면서 “이 거대하고, 터무니없고, 군살로 가득 찬 지출 법안은 역겹고 혐오스럽다”고 일갈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감세안을 가리켜 ‘크고 아름다운 법’이라 표현한 것을 비꼬는 듯한 발언이다. 이에 지난달 말 백악관을 떠난 머스크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면충돌을 시사하는 것이란 평가 또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