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릴라이언스와 손잡고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
트럼프 관세 압박 대응 위한 ‘탈중국’ 전략 가속
브라질엔 광저우 모델 이식한 초고속 제조망 구축

미국과 중국의 관세 갈등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중국계 글로벌 패스트패션 브랜드 쉬인이 인도 현지 기업과 인도산 쉬인 브랜드 의류의 글로벌 수출에 나선다. 이는 단순한 생산기지 확대를 넘어 미·중 무역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 이뤄진 전략적 행보라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쉬인은 인도와의 협업뿐 아니라 베트남·튀르키예·브라질 등지로도 생산 거점을 확대하며 ‘탈중국’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인도 공급업체 1년 내 1,000개로 확대

9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쉬인이 인도 최대의 유통업체 릴라이언스리테일과 손잡고 현지 업체를 중심으로 공급망을 강화해 향후 6~12개월 안에 인도산 쉬인 의류를 전 세계 온라인 플랫폼에 판매할 계획"이라며 "현재 약 150곳인 인도 내 공급업체를 1년 안에 1,000곳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쉬인과 릴라이언스리테일은 새로운 대중국 관세 부과와 800달러 미만 수입품 대상의 '소액면제세도(de minimis) 폐지 이전부터 이와 관련된 논의를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쉬인은 현재 7,000곳 이상의 중국 공급업체에서 상품을 조달해 약 150개국에 직배송하고 있다. 그러나 최대 시장인 미국이 최근 20달러 이하의 중국산 직구 제품에도 관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공급망 다변화에 대한 압력이 높아진 상황이다. 쉬인은 2018년 인도에 진출했으나 2020년 중국과 인도의 국경 갈등 이후 인도 정부가 중국계 앱을 전면 금지하면서 퇴출됐다. 이후 올해 2월 릴라이언스와 브랜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인도 현지 생산·공급 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쉬인인디아' 웹사이트를 출범했다.

릴라이언스에 현지 제조·유통·판매 위탁

양사의 파트너십은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인도로 전환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이번 협업에서 릴라이언스는 유통 제휴뿐 아니라 인도 내 쉬인 사업의 실질적인 운영권과 통제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쉬인은 기술, 디자인, 디지털 마케팅 등 글로벌 역량을 제공하고, 릴라이언스는 인도 내 생산, 유통, 데이터 관리 전반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실제로 쉬인은 로이터에 보낸 입장문에서 "인도에서의 브랜드 사용권을 릴라이언스에 부여했다"며 "릴라이언스가 인도 내 제조·공급망·판매·운영을 전담한다"고 설명했다.

릴라이언스는 이미 현지 공급망 확대를 위해 현지 의류 제조업체 150곳과 계약을 체결했으며, 현재 추가로 400여 개 업체와 협의를 진행 중이다. 쉬인의 대표적 생산 전략인 주문형 소량 생산 방식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이 방식은 디자인당 100개만 먼저 생산한 뒤, 시장 반응이 좋은 제품만 대량 생산하는 구조로, 재고 부담을 줄이고 트렌드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릴라이언스 관계자는 “쉬인의 글로벌 베스트셀러를 인도에서 재현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며 필요한 경우 원단과 설비는 수입해 생산 기반을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도 정부도 쉬인의 인도 진출에 우호적이다. 피유시 고얄 인도 상공부 장관은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쉬인의 현지 생산업체 네트워크를 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 인도산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쉬인인디아 앱은 현재까지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총 270만 회 다운로드됐으며 최근 4개월간 월평균 다운로드 증가율은 120%에 달한다. 현재 1만2,000개 디자인이 등록돼 있으며 가장 저렴한 드레스는 349루피(약 4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베트남 물류창고는 수출 우회 경로로 활용

쉬인의 공급망 다변화 노력은 인도에서의 협업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달에는 대중국 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베트남 호찌민 인근에 15헥타르(ha) 규모의 산업용 부지를 임대해 대규모 물류창고를 설치하기로 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 창고는 중국 외 국가에서 생산된 의류를 미국 등 해외 시장으로 수출하는 핵심 경로로 활용될 예정이다. 다만 최근 미국이 베트남이 사실상 중국산 제품을 우회 수입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어 쉬인의 베트남 창고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외에도 쉬인은 튀르키예, 브라질 등 제3세계에서의 생산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튀르키예는 지리적으로 유럽과 중동 시장에 가까워, 유럽 소비자에게 빠른 배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략적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쉬인은 지난해부터 튀르키예의 의류 제조업체와 협력을 확대하고 튀르키예산 제품을 유럽 시장에 직접 공급하는 비중을 늘리고 있다. 이를 통해 쉬인은 중국에서 유럽으로 직접 배송할 때 발생하는 물류비와 긴 배송기간, 관세 부담을 줄이고 유럽 내 소비자들에게 더 빠르고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브라질은 쉬인의 공급망 다변화 전략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쉬인은 지난해부터 저렴한 인건비, 대규모 내수 시장, 남미 전역에 대한 물류 접근성을 활용한 현지 제조 생태계를 구축해 왔다. 중국 광저우의 초고속 패션 제조·공급망 모델을 이식해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2~3주 걸리던 리드타임을 최대 7일 이내로 단축하고 주문형 소량 생산 시스템을 현지화함으로써 재고 부담을 줄이고 트렌드 대응력을 높였다. 현재 2,000곳 이상의 현지 생산공장과 협의를 마쳤으며, 이들 공장을 기반으로 브라질 내수는 물론 미국 등 해외 시장 수출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