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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휴업일 공휴일 제한 가능성↑ "온라인 급성장에 유통 환경 변화" 반발 "전통시장 보호 효과 미미" 실효성도 의문

여당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법정 공휴일 지정’ 등을 뼈대로 하는 다수 유통 관련 규제 법안을 본격 추진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유통업계에 초비상이 걸렸다. 특히 내수침체 장기화 속 이미 온라인 등에 주도권을 빼앗기며 실적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대형마트업계에선 2012년 도입된 의무휴업 사례와 같은 ‘잃어버린 13년’을 되풀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평일 휴일’ 지자체 재량 차단
1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형마트들이 법정 공휴일에만 휴업할 수 있도록 법안을 처리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오 의원은 “일요일에 두 번 쉬었다고 해서 꼭 적자를 보는 것은 아니다. 그건 그들의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대형마트들의 실적 부진은 과다·출혈 경쟁으로 인한 구조적 문제지, 평일이 아닌 공휴일에 휴업하도록 하는 규제 때문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개정안은 현행 지자체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의무휴업을 명할 수 있다는 조항을 '명해야 한다'로 바꾸고 공휴일 중에서 지정하되 협의를 거쳐 변경 가능하다는 문구도 '공휴일 중에서 지정해야 한다'로 수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지난해부터 조례로 이해당사자들과 협의가 있다면 평일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를 막겠다는 것이다. 이는 유통업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규제로 꼽힌다. 현재는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휴업일을 조정할 수 있으나 여당 법안이 통과되면 대형마트는 한 달에 두 번꼴로 반드시 공휴일에 문을 닫아야 한다. 해당 법안은 국회 소위원회를 통과했으며 조만간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민주당은 대형마트가 지역 협력 계획을 이행하지 않으면 강제금을 부과하는 유통법 개정안도 내놓은 상태다. 허영 의원이 내놓은 개정안은 대규모 점포를 개설하기에 앞서 제출하게 돼 있는 상권 영향평가서의 작성 대행 기관을 지정해 공신력을 높이고, 지역 협력 계획서 이행 실적이 미흡한 경우 지자체장이 개선 권고 외에도 이행 명령이나 이행 강제금 같은 행정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했다. 지역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개정안을 통해 대형마트와 지역 상권이 상생할 수 있는 유통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공휴일 의무휴업, 시대착오적
이 같은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통상 소비자가 휴일에 몰리는 점을 고려할 때 공휴일 의무휴업 제도는 대형마트 매출에 직격타를 줄 수 있어서다. 가뜩이나 대형마트들은 이미 의무휴업, 영업시간 제한 등 각종 규제로 인해 매출 감소와 구조조정 등 경영난을 겪고 있다. 여기에 골목상권 보호 정책이 강화되면, 추가적인 영업 제한과 소비 분산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대형마트의 주말 매출 감소, 소비자 유입 저하, 인력 구조조정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게다가 ‘전통시장을 살리자’는 명분 아래 시작된 규제의 실효성에도 의구심이 짙은 상황이다. 실제 그간의 통계는 오히려 대형마트 휴업일과 상권 회복 사이에 뚜렷한 인과관계가 없음을 보여준다. 전통시장의 매출은 10년 전보다 소폭 증가했지만 시장 점유율은 오히려 하락했고, 점포 수와 고용은 정체 상태다. 카드 단말기나 POS 기기, 온라인 판매 시스템 도입 등 기본적인 현대화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구책 없이 규제만 덧씌워진 결과다.
그렇다고 대형마트가 반사이익을 본 것도 아니다. 오프라인 유통시장 전반이 구조적 침체 국면에 빠졌기 때문이다. 최근 유통시장의 경쟁 구도는 대형마트 vs 전통시장이 아닌, 온라인 vs 오프라인의 싸움으로 전환됐다. 규제로 손발이 묶인 대형마트는 이미 온라인 플랫폼에 소비자를 뺏겼고, 전통시장은 여전히 낙후된 환경 속에 머물러 있다. 결과적으로 승자는 아무도 없고, 소비자 선택권만 침해받은 셈이다.
전통시장·대형마트 시너지 내는 방안 찾아야
업계를 중심으로 시장 상황에 맞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쿠팡은 지난해 41조원의 매출을 기록해 국내 백화점의 연간 판매액 40조6,595억원, 대형마트 판매액 37조1,778억원(통계청 기준)을 뛰어넘고 국내 유통업계 왕좌에 올랐다. 이처럼 온라인 쇼핑으로 수요가 빠르게 이전된 지금, 오프라인 유통업체에 대한 강제 규제는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다.
반대로 최소한의 골목상권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유통 환경이 변화한 건 맞지만, 대형마트가 전통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트 노동자들의 반발도 거세다. 이들은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변경하는 것이 오히려 건강권과 휴식권 침해라고 비판한다. 정준모 마트산업노동조합 서울본부 사무국장은 "전통시장 상인들은 대형마트가 일요일에 영업하면 상권에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고, 이에 대한 반대 의견서도 작성했다"며 "10년간 정착됐던 제도를 흔들거나 마트 노동자들의 삶을 다시 일요일 없는 삶으로 되돌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전통시장과 대형마트가 시너지를 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형마트의 주차장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함께 이용하는 식이다. 구진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형마트가 이미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상실해 마트를 규제하는 것만으로는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졌다"며 "유통업체를 규모별로 분리하기보다는 복합상권을 개발하는 게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소비자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오게 해서 유동인구를 늘려야 자영업자도 도움이 된다고 보는데, 대형마트가 전통시장과 경쟁 구도라는 것은 좁은 시각이라고 볼 수 있다"며 "대형마트와 주변 상권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