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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기여도 낮은 산업서 고용률 증가 보건·사회복지 등 저임금 일자리 늘어 청년 취업 감소하고 고령 취업자 확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대에 그칠 것이란 부정적인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지난달 고용률이 70%를 넘기며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찍었다. 일반적으로 고용률과 성장률은 정비례하지만, 저임금 일자리가 많은 분야에서 취업자 수를 늘리면서 경기 침체 상황에서도 고용률이 증가했다. 산업별로 보면 제조업과 건설업 분야의 취업자 감소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의 고용률이 증가하며 '성장 없는 고용'을 시현했다.
15~64세 5월 고용률 70.5%, 역대 최고
11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15~64세 고용률은 전년 동월 대비 0.5%포인트 상승한 70.5%를 기록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89년 1월 이후 5월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치다. 연령별로는 취업난을 겪고 있는 15~29세 청년층 고용률이 46.2%로 전년 동월 대비 0.7%포인트 하락했다. 또한 건설업·농림어업·숙박및음식점업의 고용 둔화 영향으로 50대 고용률(77.6%)도 같은 기간 0.5%포인트 떨어졌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한 전 연령대의 고용률이 고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고용률(77.2%)이 보합세를 보인 가운데 여성 고용률은 1.0%포인트 오른 63.5%로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경제 활동이 활발한 30대(73.8%)와 40대(69.0%) 여성 고용률이 각각 2.7%포인트, 1.9%포인트 상승했다. 산업별로는 보건업및사회복지서비스업(23만3,000명), 전문과학및기술서비스업(11만7,000명), 금융및보험업(7만2,000명)에서 취업자가 늘었고 건설업(-10만6,000명), 제조업(-6만7,000명), 농림어업(-13만5,000명), 숙박및음식점업(-6만7,000명)은 취업자가 감소했다.
특히 건설업은 13개월 연속 취업자가 줄며 2013년 1월 11차 산업분류 이후 역대 최장 기간 감소했다. 제조업 역시 11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농림어업은 이상 기온 영향으로 모내기 작업이 지연되면서 전달에 이어 지난달에도 10만 명대 감소를 기록했다. 숙박및음식점업은 15개월 만에 감소 전환하면서 2021년 11월(-8만6,000명) 이후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장주성 기획재정부 인력정책과장은 "건설 수주 영향, 아파트 입주 물량 등 선행 지표를 감안하면 3분기에도 건설업 취업자의 감소세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15세 이상 실업자 수는 85만3,000명으로 3만2,000명 감소했다. 실업률은 전년 동월 대비 0.2%포인트 하락한 2.8%로 집계됐다. 30대(-0.3%포인트)와 60세 이상(-0.2%포인트) 연령대에서 실업률이 줄면서 전체 실업률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청년층 실업률은 0.1%포인트 하락해 6.6%를 기록했다. 취업자와 실업자 수를 더한 경제활동인구는 3,001만2,000명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99년 6월 이후 최대치를 달성했다. 취업자가 늘고 실업자가 감소한 데다 인구 증가의 효과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제조업·건설업 등 양질의 일자리는 감소
이렇듯 전체 취업자가 늘어나고 실업자는 감소하는 고용 흐름을 보였지만, 올해 한국 경제의 초저성장이 예견된 상황에서 '착시효과'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지난달 29일 한국은행은 '5월 경제전망'에서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0.8%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0.8%로 맞춰 잡았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1% 수준으로 보고 있다.
5월 고용지표가 외형상 회복세를 보이긴 했으나 전망은 밝지 않다. 취업자 수 증가가 60세 이상 고령층에 편중되며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당 연령대의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37만 명이 증가한 704만9,000명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 7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같은 고령층의 고용 증가는 정부 주도의 보건·사회복지 일자리 확대가 큰 역할을 했다. 여기에 요양병원, 돌봄시설 등 고령화에 따른 인력 수요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로 평가받는 제조업과 건설업의 고용 부진도 한계로 지목됐다. 제조업의 경우 전자부품, 컴퓨터, 금속 가공제품 등 주력 업종에서 일자리가 줄었다. 반도체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고용유발계수가 낮아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지 않는 모양새다. 건설업 역시 민간 부문의 건설 수요 위축과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축소의 영향으로 고용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특히 민간 건설사의 착공 지연이나 중단 사례가 늘어나 향후 고용 회복 전망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아시아 개발도상국도 청년 실업률로 몸살
고용의 양극화는 비단 한국 만의 일은 아니다. 중국, 인도 등 빠르게 성장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청년 실업률이 두 자릿수로 치솟아 지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2023년 국제노동기구(ILO)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과 인도, 방글라데시의 청년(15~24세) 실업률은 16%에 육박했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도 각각 13.9%, 12.5%로 두 자릿수 실업률을 기록했다. 이들 아시아 국가에서 적절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15∼24세 인구는 3,000만 명에 달하는데 이는 ILO가 집계한 세계 청년 실업자(6,500만명)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국가별로 보면 방글라데시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6.5%의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청년 실업률은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었다. 인도는 청년 실업률이 수년간 하향 추세를 보였음에도 여전히 세계 평균보다 높다. 중국의 경우, 2023년 청년층의 5분의 1 이상이 일자리를 찾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자 아예 정부 차원에서 청년 실업률 공개를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세계적으로 청년 실업률이 전체 평균보다 높은 경향이 있지만, 특히 아시아 개발도상국은 발전 사다리가 끊겼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앞으로의 고용 전망도 어둡기만 하다. 방글라데시, 인도 등은 세계의 의류 공장 역할을 하며 빈곤에서 벗어났지만, 전자·반도체·중장비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돋움하지 못하면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미국 등 선진국의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움직임과 생산 자동화가 맞물리면서 노동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노동 수요와 공급간 미스매치도 과제로 꼽힌다. 실제로 이들 국가에서는 고학력 구직자가 선호하는 사무직 일자리가 많지 않아 대졸자의 실업률이 전체 실업률의 2~3배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