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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發 강경 이민 규제로 이민자 감소 농업, 요식업 등 저임금 서비스업 직격타 노동생산성 저하로 美 경제 타격 가능성

미국 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경 이민 정책에 반발한 반(反) 트럼프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올해 미국이 50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순이민자 수(net immigration)’가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 규제가 저임금 산업의 노동력 감소, 생산비용 증가, 인플레이션 심화 등으 로 이어지면서 미국의 노동시장은 물론 국가 경제 전반에 구조적 충격이 본격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트럼프 취임 후 美 유입 이민자 감소세
16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는 브루킹스연구소와 미국기업연구소(AEI)가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해, 올해 미국의 순이민자 수가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순이민자는 약 50년간 매년 수십만 명에서 100만 명 이상 증가해 왔으나 2025년 들어 상승 흐름이 꺾일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순 이민자 감소는 미국 내로 유입되는 이민자보다 출국 또는 추방되는 이민자가 더 많다는 의미"라며 "이번 사안은 추방의 문제라기 보다는 유입 자체가 너무 줄어든 데 따른 결과"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순 이민자 수 감소의 원인으로 △남부 국경의 실질적 봉쇄 △유학생 비자 제한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 시절 체류 허가 상실자 증가 △추방 확대 등이 지목하며 여러 정책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이 중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이민 정책이 이민자 감소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를 '이민 규제의 분기점'으로 설정하고 불법체류자 추방은 물론 합법 이민자에 대한 규제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실제 순이민자 수의 감소 시점과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강화 시기가 일치한다.

학교·교회 등 민감구역도 불법체류자 단속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직후 올해 말까지 불법체류자를 포함한 이민자 100만 명을 추방하겠다는 목표를 공식화했다. 이를 위해 미군 최정예 부대를 국경에 배치하고 국경 장벽 건설을 재개하는 등 이민자 유입을 억제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나아가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는 단속을 자제했던 학교, 교회 등 민감 구역에서도 단속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토안보부의 관련 법과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이미 1,500억 달러 규모의 이민 단속 예산안이 하원을 통과했으며 현재 해당 예산안은 상원에서 심의가 진행 중이다.
지난달에는 최종 추방 명령을 받고도 미국을 떠나지 않은 이민자 4,500명에게 벌금 부과 통지서를 발송했다. 야후 뉴스는 백악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해당 조치는 불법체류자의 자진 출국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강제 추방보다 벌금 부과를 통해 스스로 떠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 조치는 하루 998달러씩, 최대 5년 치까지 누적 계산돼 적용되며 벌금 총액이 180만 달러에 이르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야후 뉴스에 따르면 이들에게 부과한 벌금의 규모가 5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15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LA, 시카고, 뉴욕 등 수백만 명의 불법 이민자가 주요 도시에서 이들을 구금하고 추방하는 노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당 지역은 민주당 권력의 중심지로 민주당은 불법 이민자를 이용해 유권자 기반을 확장하고 선거에서 부정행위를 하며, 복지를 확대해 근면한 미국 시민들의 일자리와 혜택을 빼앗고 있다"며 "이민단속국(ICE)과 국경순찰대의 위대하고 애국적인 법 집행관들은 범죄가 만연하고 치명적인 도심과 피난처 도시의 단속에 집중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美 노동인구 감소, 이민자 이탈로 한계 노출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기조 속에 전문가들은 미국의 순 이민자 수가 0으로 떨어지거나 마이너스로 돌아설 경우, 미국의 인구 구조와 경제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미 현장에서는 이민자 감소에 따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6일 미 노동부가 발표한 일자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노동력 규모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노동자의 수 역시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이민자 유입이 급증하며 외국인 노동자 비중이 사상 최고치(19%)를 기록했지만, 올해 3월 이후부터 100만 명 이상이 이탈한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미국 노동시장의 이민자는 3,270만 명으로 전체 근로자 5명 중 1명이 해외 태생이다. 바이든 대통령 임기 동안 불법체류자를 포함해 580만 명의 이민자가 미국 노동시장에 합류했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 이민 증가가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이민 규제로 이제 그 효과가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민자 감소가 단순히 인력의 손실 차원을 넘어 노동력 부족에 따른 생산성 저하와 인플레이션 심화라는 연쇄 효과로 이어지면서 미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지 사라벨로스 도이체방크 외환 리서치 책임자도 "모두가 미국의 관세 정책에 주목하고 있지만, 진짜 문제는 이민 감소"라며 "이민자 수는 지난 몇 년 대비 90% 이상 감소했는데, 이는 노동력 향상 속도가 200만 명 이상 둔화한 것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는 관세보다 경제에 훨씬 더 지속적이고 부정적인 공급 충격을 의미한다"며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이민 노동자 의존도가 높은 농업, 건설, 숙박업, 요식업, 요양 서비스 등 저임금 중심 서비스 산업의 출혈이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드리아나 쿠글러 연준이사회(FRB) 이사는 "이민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저임금 산업에 종사하며 미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며 "그러나 현재는 농업, 숙박업 등에서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면서 이미 재화 가격의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령화와 베이비붐 세대 은퇴로 노동력이 감소하는 흐름 속에서 이민자 감소까지 더해지며 노동시장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며 "이는 미국의 사회보장제도, 재정정책, 장기 성장률 등 국가적 차원의 구조적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