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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압박 후 협상 패턴 반복 조짐
이란 반미 감정↑ “진짜 적은 미국”
협상 필요성엔 공감대, 시점은 미지수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 합의 성사를 장담하며 전면에 나섰다. 미국이 직접 공격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을 통한 간접 압박을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하려는 모양새다. 이란 내부에서도 충돌의 상대가 이스라엘이 아닌 미국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며, 트럼프식 강압 협상에 대한 거부감 또한 짙어지는 모습이다. 협상 필요성은 크지만, 과거의 배신감이 여전히 장벽으로 남아 있는 탓이다.
행동은 이스라엘이, 실리는 미국이
16일(이하 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내가 거듭 말하듯, (이란은 미국과의 핵 협상) 합의에 곧 서명할 것”이라며 “이란이 서명하지 않는다면, 그건 멍청하단 이야기”라고 말했다.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다섯 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이어 왔다. 15일 예정이었던 제6차 미-이란 핵 협상은 지난 13일 이스라엘이 이란을 선제공격하면서 취소됐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낙관론은 일부 외교 전문가의 관측과도 일치한다. 미국과 이란 양국 모두 핵 협상 타결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는 만큼 미국이 충돌을 중재하고 원하는 내용의 합의에 도달할 것이란 예측이다. 바이든 행정부 당시 이란 특사를 지낸 로버트 맬리는 “늦지 않은 어떤 시점에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을) 자제시킬 전망”이라며 “트럼프는 여전히 전쟁에 끌려 들어가는 것을 피하고 협상을 타결하길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정 국가의 무력 행위가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 레버리지로 작용한다는 해석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1기 집권 당시에도 그는 강도 높은 제재와 군사적 긴장을 바탕으로 상대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전략을 반복한 바 있다. 이번에도 유사한 접근이 반복되고 있으며, 그 수단이 이스라엘이라는 점만 달라졌다는 평가다. 이로 인해 이란은 미국과 직접 싸우지 않으면서도 일방적으로 밀리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결국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이라는 간접 압박을 통해 직접적인 정치적 성과를 노리고 있는 셈이다.

네타냐후 “트럼프 암살 시도” 발언이 강화한 적대 프레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또한 이란이 트럼프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다며 이 같은 해석에 힘을 보탰다. 그는 15일 자국 매체와 나눈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다른 사람들이 택했던 이란과의 가짜 협상, 즉 우라늄 농축이라는 본질적으로 핵무기로 가는 길을 열어주고 수십억 달러를 퍼주는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또 이란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제거하는 등 ‘핵무기를 가질 수 없고 우라늄 농축도 안 된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밝힘으로써 이란의 최대 적으로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을 트럼프 대통령의 ‘주니어 파트너’라고 칭하며 이란의 핵무기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이번 공습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임박한 위협에 직면해 강경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단 설명이다. 그는 “우리의 선제공격으로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제법 지연됐다고 생각한다”며 “이는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세계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는 사이 이란의 적대감은 점점 미국을 향하고 있다. 겉으로는 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을 이어가고 있으나, 이란 내부의 정치적 담론과 외교적 메시지는 명백히 미국을 향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자국 내 반미 감정을 조장함으로써 외부 압박에 대한 내부 단결을 유도하고 있으며, 국영 언론과 보수 언론은 연일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테헤란은 즉시 대피하라”는 발언과 함께 중동 지역에 추가 전력을 배치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CNN 보도에 의하면 미국 항공모함 니미츠호(CVN-68)가 예정된 기항 일정을 취소하고 중동으로 이동 중이다. 이와 관련해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미군 보호는 우리의 최우선 과제이며, 이번 전력 배치는 중동 내 방어 태세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란 입장에서는 미국이 사실상 전면전에 나설 수 있다는 시그널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미국 ‘합의 성사’와 이란 ‘신중한 계산’ 사이 간극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 협상에서 원하는 지점에 다다를지는 미지수다. 그는 과거 1기 집권 시절 북한과의 싱가포르 회담 이후 직접 서명한 합의를 무효화하며 협상을 일방적으로 무너뜨린 전례가 있다. 이란은 이를 똑똑히 지켜봤고, 당시 국제사회가 이를 제지하지 못했다는 점도 기억하고 있다. 다시 협상 테이블에 나선다 해도 같은 방식으로 배신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란 내부에서도 이러한 경계심은 정치적 스펙트럼을 넘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보수 강경파는 물론 개혁파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신뢰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에 서명하지 않으면 멍청한 것”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이란을 압박하자, 협상 테이블이 아닌 자존심의 전장에서 이번 문제를 바라보려는 움직임까지 거세지는 분위기다. ‘굴욕을 당하지 않겠다’라는 의지가 미국과의 외교적 절충 가능성을 제약하는 형국이다.
문제는 이란이 미국과의 협상을 완강히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난 10여 년간 지속된 미국발 제재로 자국 경제가 극단적인 불안정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통화가치 폭락, 필수품 부족, 청년 실업 증가 등 국민 생활 전반이 위태로운 실정이며, 이로 인한 민심의 피로도 또한 극에 달했다. 이란 정부로서는 이 같은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외교적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이다. 최근 핵 합의 복원 가능성을 시사한 것 역시 이러한 내부 여론과 현실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는 게 외교계의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