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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임기 초반 핵협상 나선 트럼프 이스라엘의 공격 이후 강경 선회 美 군사 개입 통해 이란에 요구 수용 압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겨냥한 군사작전 계획을 승인했지만 최종 공격 명령은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개입이 이란 정권 붕괴까지 촉발할 경우 내전 등 극심한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되 정권 붕괴는 방지하려는 미국의 전략은 이란을 미국 주도 질서에 편입시키기 위한 시나리오로 수렴된다. 이는 이라크 전쟁 이후 학습된 권력 공백의 대가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선택이자, 중동 패권 재편을 미국의 통제 하에 두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트럼프, 이란 공격 동참 관련 ‘모호성’ 유지
18일(이하 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공격에 미국이 가세할지 여부를 아직 최종적으로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탈리아 명문 축구팀 유벤투스 선수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에 동참할지 여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그는 "나는 무엇을 할지에 대한 생각들이 있다"고 밝힌 뒤 "나는 시한 도래 1초전에 최종 결정을 하고 싶다"면서 "왜냐하면 상황은 변하기 때문이다. 특히 전쟁은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오전 이란에 대한 공격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에서 모호성을 견지한 것이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싸우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그것이 싸움이냐 (이란의) 핵무기 보유냐 사이의 선택이라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이란의 신정체제를 이끌어온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란은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고 나는 오랜기간 말해 왔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그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기까지 몇 주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이란 핵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역설했다.

외교에서 군사 옵션으로 선회 움직임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이후 이란 핵 협상 타결을 위해 상당한 공을 들여 왔다. 하지만 양측의 이견으로 협상이 지지부진했고 13일 이스라엘이 이란 핵 시설과 군사시설 수십 곳을 기습 타격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16일 캐나다 캐내내스키스에서 열리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긴급히 떠나 워싱턴으로 귀국하면서 ‘외교로 이란 사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으로 보인다. 이란 핵 역량은 갈수록 고도화되는데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고 줄곧 이란에 대한 강경 대응을 촉구해 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끈질긴 설득까지 더해져 미국이 직접 군사 개입을 검토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줄곧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이 핵무기를 신속하게 제작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기 전 압도적인 군사 공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이 결코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외교 협상을 성공시키려면 군사 압박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지난달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하메네이 제거 계획까지 주장한 네타냐후 총리를 만류했다. 하지만 이란 핵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그의 생각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가능성을 보고하자 공격 자체는 반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격을 만류했던 기존 입장과 달라진 것이다.
그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공격에 직접 동조하진 않고 이스라엘에 최소한의 지원만 해준 뒤, 추후 이란에 양보를 압박하는 방식을 택했다. 5일 뒤 이스라엘은 이란을 공격해 호세인 살라미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등 군 수뇌부를 제거했다. 이란이 궁지에 몰리자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또한 강경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이란과의 지지부진한 핵 협상을 마무리할 ‘골든타임’으로 여겨 ‘최대 압박’ 기조로 선회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이스라엘 공격에 하메네이 정권 무너질 위기
실제 트럼프가 바라는 최선의 시나리오는 이란이 핵개발을 포기하면서도, 정권 자체는 무너지지 않고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복귀하는 구도다. 이는 단순히 핵 확산을 막는 것을 넘어 이란을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 내에 편입시키려는 전략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중동에서 이란의 붕괴는 오히려 불확실성과 권력 공백을 낳아 미국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이 뼈저리게 배운 교훈 중 하나는 ‘정권 제거 이후의 공백을 감당하지 못할 경우 전략적 손실은 오히려 더 크다’는 사실이다. 그런 만큼 이란의 현 정권이 붕괴하지 않도록 ‘체면’을 살려주는 방식의 협상 조건을 마련하면서도, 그들이 미국의 조건에 수용하도록 외부 압력을 유지하는 구조로 작동할 공산이 크다.
문제는 이번 이스라엘의 공습만으로도 이미 이란 정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공습 이틀째인 14일부터 가스전과 유류 저장고 등 에너지와 산업 시설로 타깃을 넓히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테헤란에서 원인 불명 사고로 하수관이 파열되면서 분뇨가 거리에 흘러넘쳤고 자동차들은 드론 공격으로 잇달아 폭발하는 등 그야말로 아비규환인 상황이다. 잇따라 공습을 당한 이란의 주요 도시 고속도로에는 피란을 떠나는 차량이 길게 늘어서는 등 이스라엘의 작전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공습 직후 테헤란 북동쪽에 있는 지하 벙커로 몸을 옮겨 은신하고 있다. 자국민들이 공포에 질린 사이 공습을 피해 모처로 피한 것이다. 주요 외신들은 하메네이 정권이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고 보고 있다. “이스라엘이 공격을 멈춘다면 보복도 중단할 것”이라는 아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의 최근 발언 역시 이러한 상황 인식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저항의 축’이라 불리며 대리전을 펼쳐온 하마스와 헤즈볼라, 후티 등 무장 정파들도 사실상 와해 상태며, 이란 내부에서도 히잡 의무화 반대 시위를 비롯해 젠더·세대 시위가 이어지는 등 균열이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