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 Home
  • 딥폴리시
  • [딥폴리시] 공공 조달 재협상 허용, ‘저가 낙찰 후 인상’ 구조 고착

[딥폴리시] 공공 조달 재협상 허용, ‘저가 낙찰 후 인상’ 구조 고착

Picture

Member for

1 year
Real name
송혜리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수정

재협상 허용으로 입찰가는 낮아지고 지출은 증가
경쟁 약화와 사후 검증 의존으로 제도적 허점 노출
지수 연동 조정 및 계약 변경 공개 통한 공정 경쟁 확보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럽 정부는 매년 공공 조달에 2조 유로(약 2,900조원)를 지출한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14%에 달하는 규모로, 도로와 철도 같은 사회간접자본부터 각종 물품과 서비스 구매까지 모두 포함된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이 움직이는 시장에서는 제도의 작은 변화가 전체 지출 구조를 흔들 수 있다.

최근 연구는 그 영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낙찰 이후 계약 금액을 재협상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지면 입찰가는 낮아진다. 하지만 계약 변경 건수는 급증하고, 총지출은 오히려 늘어난다. 평균적으로 최종 계약 금액은 변하지 않지만, 일부 대형 사업에서 비용이 불어나면서 전체 재정 부담이 커진다. 겉으로는 절감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사후 조정으로 비용이 다시 채워지는 구조다. 결국 ‘낮은 가격으로 낙찰받은 뒤 나중에 조정하는 방식’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경쟁이 아니라 제도가 허용한 왜곡된 순환일 뿐이다.

경쟁 약화와 제도의 허점

낙찰 이후 가격 조정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업체는 초기 입찰 단계에서 낮은 가격을 제시한 뒤 사후 인상을 전제로 전략을 설계하게 된다. 실제로 재협상이 허용된 환경에서는 입찰가는 하락했지만, 계약 변경과 추가 지출은 오히려 확대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용이한 수정 구조는 실질적 가치 창출로 이어지지 못한 채 협상 비용과 행정 부담만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대규모·장기 계약에서는 단일 사업의 변동만으로도 전체 예산 집행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경쟁 약화와 결합될 때 더욱 뚜렷해진다. 유럽연합(EU)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단독 응찰 비중은 증가한 반면, 수의계약과 국경 간 경쟁은 감소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경쟁 참여자가 줄어드는 환경에서는 ‘저가 낙찰 후 인상’ 전략의 실행 가능성이 높아진다. 시장에서 가격 검증 기능이 입찰 단계가 아니라 사후로 옮겨지는 셈이다.

EU 외 지역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확인된다. 2024~2025년 미국에서는 이미 집행된 8억7,000만 달러(약 11조9,000억원) 규모 계약이 감사 과정에서 가격 검증 문제를 드러냈다. 같은 시기 영국에서는 공공 건축물 보수 공사 입찰을 둘러싸고 담합 의혹이 제기되며 규제 당국의 조사로 이어졌다. 두 사례를 곧바로 부패로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가격 적정성 검증이 사후 단계에서야 이뤄진다는 점에서 제도 설계상의 취약성이 드러난 사례로 평가된다.

위험을 사전에 반영하는 계약 설계

재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측은 원자재 가격 변동성을 주요 근거로 제시한다. 실제로 2020년 이후 건설 자재 가격은 약 40% 상승했고, 철강 가격 역시 관세와 에너지 비용 영향으로 지난해부터 불안정한 흐름을 보였다. 다만 이러한 변동성이 계약 변경의 무제한 허용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합리적인 대응은 계약 시점부터 공식 지수에 연동한 조정 장치를 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설 계약의 경우 EU 통계국(Eurostat)의 건설비 지수나 자재 생산자물가지수를 기준으로 삼는 방식이 가능하다. 가격 상승뿐 아니라 하락 국면까지 반영하도록 상·하한 범위를 명확히 설정하면, 계약 당사자 간 위험 분담이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뤄진다. 이 경우 입찰 평가는 지수 경로를 반영한 현실적 가격을 중심으로 재구성된다.

계약 수정의 시점도 중요하다. 체코는 2016년 법 개정을 통해 재협상 요건을 대폭 완화했는데, 문제가 된 것은 소급 적용 조항이었다. 개정 이전 3년간 체결된 계약까지 새로운 규정을 적용하면서, 기존에는 재협상이 불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높은 가격이 책정됐던 계약들이 다시 협상 대상에 포함됐다. 그 결과 이미 높게 설정된 금액이 추가 인상으로 이어지며 공공 지출이 크게 확대됐다. 이 사례는 소급 규정 변경이 재정 부담을 얼마나 빠르게 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면 적용 범위는 향후 계약으로 한정하는 원칙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또한 저가 입찰의 위험은 가격 수준 자체보다 그 이면에 내재된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는 만큼, 관세 인상, 자재 가격 변동, 인력 수급 문제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반영한 비용 현실성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 동시에 공급업체별 계약 변경 이력을 공개 표준(OCDS)에 따라 투명하게 공개하는 체계가 구축될 때, 시장 내 정직한 경쟁 환경이 유지될 수 있다.

경쟁 촉진 장치 강화

경쟁은 가격 왜곡을 막는 가장 확실한 장치다. 단독 입찰이 늘어난 상황에서는 대형 계약을 분할해 여러 업체가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일정도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아울러 지나치게 낮은 가격 제안을 걸러낼 수 있는 심사 절차가 필요하다.

교통, 장비 교체, 청소 등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수요는 장기 계약안에서도 주기적으로 추가 경쟁을 실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업체들이 자동으로 비용을 인상하는 관행을 차단할 수 있다. 나아가 계약 변경을 과도하게 반복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입찰 자격을 제한하거나 추가 보증을 요구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이는 제재의 성격이라기보다, ‘저가 낙찰 후 인상’ 전략의 유인을 낮춰 보다 현실적인 가격 제시를 유도하는 설계에 가깝다.

입찰의 본질 회복해야

재협상이 허용되는 순간 입찰은 형식적 절차로 전락하기 쉽다. 해법은 불확실성을 계약 초기 단계에서 흡수하는 데 있다. 지수 연동형 조정 장치, 소급 적용 금지, 명확한 오류 수정 기준, 비용 현실성 검증, 계약 변경 내역의 투명한 공개가 핵심 축을 이룬다. 무엇보다 입찰 단계에서 형식적 절감 효과에 의존하기보다, 성실한 사업자가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달의 목표는 예측 가능성과 공정성이다. 명확한 원칙이 정립될 때 행정적 비용은 줄어들고, 제한된 재원은 실질적 가치 창출로 연결된다. 조달 개혁은 협상 절차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지속 가능한 경쟁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Bid Low, Renegotiate Later: Why Education Procurement Must Break the Lowball Trap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Picture

Member for

1 year
Real name
송혜리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