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일본, 원유 의존 속 외교·경제 이중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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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동 의존, 유가 충격 경제 직결 이스라엘은 비판하고 미국은 옹호하며 대미 갈등 회피 에너지 안보와 국제 규범 질서 사이 균형 모색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본이 사용하는 원유의 95%는 중동에 의존한다. 이 구조적 취약성은 먼 지역의 무력 충돌을 곧바로 국내 현안으로 전환시킨다. 6월 13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자 브렌트유는 몇 시간 만에 배럴당 5달러(약 7,000원) 올라 70달러대 중반(약 9만7,000원)을 기록했다. 세계 원유 공급의 5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위험이 즉각 반영된 것이다. 유가 상승은 물류비, 전기료, 건설비 전반으로 확산돼 교통, 산업, 공공 서비스에 부담을 주었다.
이처럼 국내 경제가 외부 충격에 취약한 상황에서 외교 갈등은 단순한 외교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미국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란과의 협력도 놓칠 수 없다. 외교적 균형처럼 보이는 사안은 사실상 재정과 물가에 직결되는 현안이다.

일본의 신중한 외교 행보
이스라엘이 6월 13일 이란을 공습하자 일본은 즉각 반발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외교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의 무력 사용은 용납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어 6월 17일 일본은 주요 7개국 공동성명에 서명해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인정했지만, 동시에 양측 모두 자제를 촉구하며 균형을 유지했다. 그러나 6월 23일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자 이시바 총리는 “이란의 핵무기 획득을 막으려는 미국의 결단을 이해한다”라고 언급하며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이 같은 변화 뒤에는 정치·경제적 계산이 분명했다. 일본은 오랫동안 이란과의 대화 채널을 관리해 왔고, 중동 불안정을 중국이 활용할 가능성을 경계했다. 동시에 물가 압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원유 공급 차질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미국과의 관세 협상과 7월 참의원 선거가 겹치면서 대미 관계를 흔들지 않으려는 의도가 뚜렷했다.
그러나 이런 행보는 일본이 강조해 온 국제 규범 질서와 모순된다. 중국과 러시아에는 국제 규범 준수를 요구하면서, 미국의 선제적 무력 사용에는 침묵한 모습은 이중적이라는 비판을 낳았다. 일본의 신중함은 에너지 안보와 동맹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국제사회에서의 신뢰와 중재자 역할에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가 충격과 경제 파급
국제 석유 시장은 공급 투자가 정체되고 감산 속도가 빨라지면서 언제든 불안정해질 수 있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6월 13일 공습 직후 브렌트유 가격이 곧바로 5달러(약 7,000원) 상승했다고 밝혔다. 비축량이 충분하고 비OPEC+ 생산이 늘었음에도 위험 프리미엄이 빠르게 반영된 것이다. 세계은행은 중간 수준의 분쟁만으로도 브렌트유가 90달러대(약 12만5,000원)에 이를 수 있으며, 심각한 경우 100달러(약 13만9,000원)를 넘겨 세계 인플레이션을 1%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국가 재정과 정책이 이러한 충격에 신속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주: 중동(95%), 기타 지역(5%)
석유 가격 상승은 곧바로 재정 지출 구조에 반영된다. 공공부문은 매년 막대한 전기·가스비를 지출하며, 이는 인건비 다음으로 큰 항목으로 꼽힌다. 상업용 건물 전력 소비에서도 공공시설 비중은 상당하다. 2024년 고등교육 물가지수는 3.4% 올랐는데, 전기·가스 요금 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일부 지방정부는 전력 요금이 15%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예산을 늘려 잡았다. 동시에 인플레이션 압력도 뒤따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석유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 유가가 10% 오르면 1년 안에 인플레이션이 0.7%포인트 상승한다고 분석했고, 미국 연준은 같은 조건에서 미국 물가가 0.15%포인트 오른다고 추정했다. 국가별 수치는 다르지만, 유가가 물가를 끌어올린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주: 유가 충격 규모(X축), 추가 인플레이션(왼쪽 Y축), 구매력 상실 금액(오른쪽 Y축)
정책 전환 과제
에너지 가격과 국제 관계를 외부 변수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예산과 협력의 핵심 요소로 다뤄야 한다. 모든 주요 예산안에는 유가 급등이나 해상 봉쇄 같은 충격을 가정한 스트레스 테스트가 포함돼야 하며, 이를 통해 지출 우선순위와 비상 재원을 사전에 조정할 수 있다. 기관 차원에서는 전력구매계약(PPA), 첨두부하 관리, 효율 투자 같은 최소 관리 기준을 마련하고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국제 협력에서도 원칙은 분명해야 한다. 연구·교류 파트너십의 윤리와 인권 기준을 공개하고, 특정 지역 편중이나 불필요한 단절을 피해야 한다. 걸프 지역의 장학금과 이스라엘과의 연구 협력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채널을 다변화해 어느 한쪽의 정치적 제약이 흐름을 끊지 못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핵심은 모든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에너지 시장과 지정학적 충격이 미칠 파급효과를 사전에 반영하는 것이다. 일본 사례에서 보듯, 중동 의존이 큰 상황에서 무력 충돌 몇 차례만으로도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교훈을 제공한다. 사전에 리스크를 계산하고 대비한 재정·협력 구조만이 위기 국면에서 안정적이고 비용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다시 확인된 교훈
외교와 국내 현안은 분리할 수 없다. 일본 정부는 6월 이란 공습 이후 이스라엘을 비판하면서도 미국과의 마찰은 피했고, 동시에 주요 7개국의 강경한 노선과도 거리를 두었다. 이는 우유부단이 아니라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가 선택한 현실적 전략이었다.
교훈은 명확하다. 평상시일수록 에너지 리스크를 재정에 반영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유지할 수 있는 외교적 네트워크를 설계해야 한다. 중동과의 에너지 거래, 미국과의 동맹,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과의 협력은 동시에 관리돼야 한다. 그래야 돌발 사태가 발생해도 행정과 재정의 대응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는 방어적 선택이 아니라 변동성이 큰 석유 시장 속에서 국가 기능을 지켜내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Classrooms in the Crossfire: Education Policy in an Age of Oil Diplomacy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