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산 돼지고기에 관세 부과" 무역 보복 나선 中, 관세 전쟁 속 싹텄던 협력 조짐 물거품 됐나
입력
수정
中, EU산 돼지고기에 4.9~19.9% 반덤핑 관세 부과 관세 앞세워 중국산 전기차 밀어내는 EU에 '맞불' 美 관세 장벽에 협력 가능성 시사하던 양국, 관계 재차 냉각

중국이 유럽연합(EU)에서 수입되는 돼지고기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다. 지난해 6월부터 진행한 반덤핑 조사 결과 EU산 돼지고기가 자국 산업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 같은 중국의 조치가 사실상 EU의 중국산 전기차 추가 관세 부과 조치에 대한 보복의 일환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中, EU에 무역 보복 단행
16일 중국 상무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EU산 수입 돼지고기와 돼지 부산물에 대해 4.9%에서 19.9%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해당 조치는 지난해 6월부터 중국축산업협회 신청에 따라 시작된 반덤핑 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상무부는 “법과 규정에 따라 조사를 진행하고 각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폭넓게 청취하며 각자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해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공정한 조사 결론을 도출했다”면서 “판결 보고서에 따르면 EU에서 수입한 돼지고기 및 돼지 부산물이 덤핑돼 중국 국내 산업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이미 지난 9월부터 EU산 돼지고기에 최대 62.4%의 임시 반덤핑 관세를 부과 중이다. 반덤핑 조사에 협조한 스페인·덴마크·네덜란드에는 15.6~32.7%의 관세율이 책정됐고, 나머지 국가에는 62.4%의 관세율이 적용됐다. 이번 조치에 따라 최대 관세율은 19.9%로 낮아지게 됐다. 관세는 이달 17일부터 부과되며, 시행 기간은 5년이다. 반덤핑 관세는 세관이 결정한 수입품에 대한 과세가격에 따라 종가로 부과되며, 계산 공식은 ‘세관이 결정한 수입품에 대한 과세가격 × 반덤핑 관세율’이다. 수입 부가가치세는 세관이 결정한 수입품에 대한 과세 가격에 관세 및 반덤핑 관세를 가산해 종가 기준으로 부과된다.
지난 9월 10일~12월 16일까지 수입 사업자가 잠정 결정 공고에 따라 중국 세관에 제공한 보증금은 최종 결정에서 확정된 반덤핑세 부과 대상 제품 범위와 반덤핑세 세율에 따라 계산한 뒤 반덤핑세로 전환하며, 해당 부가가치세 세율에 따라 수입 단계 부가가치세를 부과한다. 이 기간 관련 수입 사업자가 제공한 보증금 중 반덤핑세를 초과하는 부분 및 과다 징수된 수입 단계 부가가치세 부분은 관세청이 환급하며, 부족 징수 부분은 더 이상 징수하지 않는다.

EU의 中 전기차 견제 행보
시장에서는 이번 돼지고기 반덤핑 관세가 사실상 '보복'의 성격을 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이 EU산 돼지고기 등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시점이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EU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보조금 조사 결론을 토대로 중국산 전기차에 잠정 관세를 추가 부과한다는 방침을 자동차 제조사들에 통보했다. 당시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Valdis Dombrovskis) EU 통상 담당 집행위원은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받는 전기차 수입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조치를 취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이로 인해 우리 업계가 피해를 입을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추가 관세율은 조사 협조 여부, 제조업체에 따라 다르게 책정됐다. 지난해 10월 기준 중국산 BEV(배터리 전기차)에 대한 확정 상계관세율은 △테슬라 7.8%p △BYD 17%p △지리 18.8%p △SAIC 35.3%p 등이다. 기본 수입차 관세율(10%)을 합한 최종 관세율은 최대 45.3%에 달한다. 체리자동차는 EU 조사에 협력한 기타 업체로 분류돼 20.7%의 상계관세를 부과받았다. 해당 관세 조치는 향후 5년간 지속될 예정이다.
문제는 이 같은 무역 장벽이 중국 전기차의 공습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중국 업체들은 유럽에 BEV 대신 저가 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제품을 대거 수출하며 관세 부담을 우회하고 있다. 지난해 8월 779대에 불과했던 중국 업체의 유럽 내 PHEV 판매량은 지난 8월 1만1,064대로 무려 1,320% 폭증했다. 같은 달 EU 시장 내 PHEV 상위 10개 모델에는 △BYD '씰 U' △재쿠 'J7' △MG 'HS' 등 중국 모델 3개가 포함되기도 했다. 재쿠는 체리자동차, MG는 상하이자동차(SAIC) 소유 프리미엄 브랜드다.
이에 EU는 부랴부랴 내연기관차 규제를 완화하고 나섰다. 저가 공세를 펼치는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 전기차 투자 비용 등에 짓눌려 부진을 면치 못하는 역내 완성차 업체들을 고려해 정책 노선을 전환한 것이다. EU 집행위원회가 16일 공개한 법 개정안에는 2035년 신차 탄소 배출 감축량을 당초 목표인 100%가 아닌 90%로 낮추는 내용이 담겼다. 2035년에도 디젤차 등 일부 내연기관 차량이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을 EU 역내에서 판매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신 차량 제조사들은 저탄소 방식으로 생산된 유럽산 철강을 사용하거나, 친환경 연료를 써 차량을 생산하는 등 별도 방식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EU-中 협력 가능성 사실상 '휘발'
EU와 중국의 무역 분쟁에 재차 불이 붙은 가운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발(發) 관세 전쟁 속 고개를 들었던 양국 협력 가능성은 사실상 의미를 잃게 됐다. EU와 중국의 외교 관계는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수개월간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중국의 외교 사령탑인 왕이 외교부장(장관)은 지난 2월 유럽을 찾아 영국, 아일랜드, 독일을 순방했다. 중국의 ‘경제 실세‘인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3월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 담당 집행위원과 만나 “일방주의와 보호주의를 함께 막아내고 다자 무역 체제를 지켜내자”며 “중국과 EU가 대화와 교류를 강화하고 상호 개방을 확대해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촉진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양국은 7월 정상회담을 열고 대미 공동 대응 방안도 모색했다.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을 만나 “중국과 EU 관계가 전환점에 있다”며 “혼란한 시기에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중국과 EU가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고 기후변화와 같은 세계적 과제 해결에 협력하며 다자주의의 횃불이 인류의 미래를 밝혀주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에 맞서 공급망·관세 문제 등에서 협력 관계를 구축하자는 의미로 풀이된다. 아울러 그는 “중국과 EU 사이에 근본적 이해 충돌이나 지정학적 모순이 없다”며 유럽이 경제·무역과 관련한 제한 조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대중 무역적자를 언급하면서 중국이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의 협력이 깊어짐에 따라 불균형도 커졌다”며 “중국은 EU 각국의 우려를 인정하고 진정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중국 정부가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 제조업 분야에 대대적인 국가 보조금을 투입해 과잉 생산을 유도한 뒤, 이를 유럽 시장에 저가로 수출해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명백한 입장차 속 양측은 파리기후변화협정 체결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짤막한 '기후변화 대응에 관한 공동성명' 외에는 명문화된 회담 성과물을 내놓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