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 반사이익” 사우디·러시아·파키스탄 ‘역설적 특수’, 영구적 수혜는 불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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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홍해 송유관을 풀가동하며 원유 수출망 사수 파키스탄, 이탈한 글로벌 선박들 카라치항으로 흡수 러시아,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막대한 추가 세입

이란 전쟁으로 인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주변국들이 예상 밖의 수혜를 흡수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홍해 경로를 활용한 우회 수출로 공급망 주도권을 강화했고, 러시아는 원유 가격 급등과 제재 완화 흐름을 발판으로 추가 수익을 확보했다. 파키스탄 역시 걸프 물류 허브 공백을 틈타 환적 수요를 흡수하며 항만 기능을 급격히 확대하고 있다. 전쟁이 초래한 공급 충격이 특정 국가에는 역설적 특수로 전이되는 양상이다.
호르무즈 우회 사우디 송유관, ‘하루 700만 배럴’ 풀가동
29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사우디 동서(東西) 송유관은 현재 하루 700만 배럴의 최대 수송 능력으로 가동되고 있다. 이 송유관은 페르시아만을 통하지 않고 홍해 연안 항구 얀부까지 원유를 운송할 수 있는 핵심 인프라다. 이달 초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일부 고객에게 원유 선적지로 얀부항을 지정했다.
이 같은 조치는 지난해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주요 수출 경로로서 기능을 잃은 상황에서 시행된 비상 대응책의 일환이다. 전 세계 원유 및 액화천연가스(LNG) 유통량의 20%가 지나는 핵심 수송로는 사실상 마비됐으며 이란 의회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공식적인 ‘통행료’를 걷는 제도 도입까지 강행하고 있다. 개전 이래로 이란은 중국, 인도 등 우호국 일부 선박만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도록 허용했다. 이때 일부 선박에서 200만 달러(약 30억원)에 달하는 통행료를 중국 위안화로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은 이를 제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런 가운데 현재 얀부항을 통한 원유 수출량은 하루 500만 배럴 수준으로 집계됐으며 정제유 제품도 하루 70만~90만 배럴 규모로 함께 수출되고 있다. 동서 파이프라인은 페르시아만의 아브카이크 원유 처리시설에서 홍해 얀부를 잇는 길이 1,200㎞의 송유관이다. 2019년 하루 300만 배럴 정도 용량을 확장하면서 일일 700만 배럴까지 원유를 수출할 수 있다. 이미 유조선들도 페르시아만 대신 얀부항으로 모여들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원유를 200만 배럴 이상 선적할 수 있는 대형 유조선 약 30척이 앞으로 며칠에 걸쳐 얀부항으로 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파키스탄 카라치항, 전쟁 24일 만에 1년치 환적 수익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반사이익을 누리는 건 파키스탄도 마찬가지다. 중동의 전통적인 물류 허브가 마비되자, 파키스탄의 카라치(Karachi)항이 새로운 기착지로 급부상했다. 파키스탄 연방 해양부에 따르면 카라치항의 최근 환적 화물 처리 속도는 유례없는 수준이다.
이달 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폐쇄 이후, 두바이와 오만 살랄라 등 걸프 지역 허브항으로의 접근이 차단되자 머스크(Maersk), 코스코(COSCO) 등 글로벌 선사들이 지리적으로 인접한 카라치로 화물을 하역하기 시작했다. 홍콩의 허치슨 포츠(Hutchinson Ports) 등 카라치에 이미 진출해 있던 글로벌 항만 운영사들이 기존 네트워크를 활용해 즉각적으로 선적 전환을 지원한 것도 주효했다.
이에 카라치항은 단 24일 만에 과거 1년치에 달하는 환적 화물을 처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무함마드 주나이드 안와르 차우드리 해양부 장관은 "2025년 한 해 동안 취급한 환적 컨테이너가 약 8,300개였는데, 최근 24일 동안에만 8,313개를 처리했다"고 밝혔다. 불과 3주 남짓한 시간 동안 1년 치 실적을 달성한 것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극적인 재정 인센티브를 투입해 해운사들을 유인하고 있다. 지난 18일부터 항만 요금을 최대 60%까지 할인하는 정책을 시행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카라치항에 대규모 화물을 수용할 공간이 충분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 폐쇄 때문이다. 내륙 통과 무역이 중단되면서 비어 있던 터미널 공간이 글로벌 환적 화물을 받아내는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특수가 파키스탄이 국제 화물을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하는 계기가 됐으며, 걸프 지역 허브의 실질적인 대안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산 원유 한 달 새 53% 급등, 제재까지 풀려
이란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러시아도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지며 중동산 석유·가스 공급이 끊기자, 인도·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대체 공급원으로 러시아산을 앞다퉈 사들이는 형세다.
이는 수치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러시아 우랄산 원유는 이란 전쟁 이전인 1∼2월 배럴당 평균 52달러(약 7만8,600원)였으나 3월 들어 70∼80달러(약 10만5,000∼12만원)대로 급등했다. 러시아가 개전 후 12일간 석유 수출로 거둔 추가 세입만 최대 19억 달러(약 2조8,000억원)에 달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주 석유·가스 공급업체 회의에서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발생한 추가 수익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서방의 대러 제재까지 일시 해제되면서 러시아로선 예상치 못한 호재가 겹치고 있다.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러시아산 석유·가스 관련 제재를 한 달간 해제한다고 통보했으며,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지정학적 상황을 이유로 러시아산 석유 수입 영구 금지 계획을 연기한 상태다. 여기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이란 전쟁에 쏠리면서 미국과 EU의 군사 자원이 중동으로 분산돼 우크라이나 전선 지원도 흔들리고 있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지난 10일 브뤼셀 회의에서 "이란 전쟁의 유일한 승자는 러시아"라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단기 반사이익 불과, 장기화해야 진짜 수혜
다만 사우디, 파키스탄, 러시아의 특수가 영구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먼저 사우디의 경우 친이란 무장세력 후티 반군이 홍해를 봉쇄할 가능성이 크다. 홍해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항로 길목인 예멘에는 후티 반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황이다.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틀어쥐면 얀부항을 출발한 선박은 홍해를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 앞서 후티 반군은 2023년 11월 이스라엘과 하마스 충돌 당시 홍해를 점거하고 민간 선박을 공격한 바 있다.
파키스탄의 경우 아프가니스탄(탈레반)과의 오랜 갈등으로 가뜩이나 안보 불안이 높은 상황인데, 전쟁 장기화로 파장이 확산되면 이란 인접국으로서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파키스탄은 항만 용량을 최대로 늘린다는 계획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컨테이너 부두, 창고, 그리고 철도·트럭 운송이 결합된 '다중운송 물류 시스템'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고질적인 재정난이 이러한 인프라 고도화 투자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러시아 역시 호시절이 길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상하이국제문제연구소의 자오룽 연구원은 "러시아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익을 누릴지는 의문스럽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가 인하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었다. 크리스토퍼 뉴포트 대학교의 쑨타이이 교수도 "이란 전쟁의 기간과 규모에 따라 러시아의 수혜 규모가 달라질 것"이라며 "단기 이득만으로는 러시아의 어려운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란 정권 교체 없이 전쟁이 장기화해야 러시아에 더 큰 이득이 되겠지만, 미국이 신속한 승리를 선언하고 철수할 공산이 크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