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MEMO] AI 시대, 의료 발전과 고용 불안이 만드는 수명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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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확산에도 고용·임금 정체 우려 고용·소득 격차가 건강수명 격차로 확대 의료 발전의 혜택 고르게 나누는 정책 필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이 의료와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의료 분야에서는 AI가 과학적 발견을 앞당기고 진단 정확도를 높여 인류의 건강수명을 늘릴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반면 경제 분야에서는 AI가 노동시장 구조를 재편하고 생산성 향상에 따른 이익을 일부 계층에 집중시키면서 고용 안정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러한 고용 불안은 소득 감소를 넘어 의료와 주거, 노후 준비 등 삶의 여건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이와 같이 AI가 의료 발전을 통해 건강수명을 늘리더라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지는 결국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에 좌우될 수 있다.
생산성 향상에도 더딘 고용 증가
AI 확산에 따른 노동시장의 변화는 '고용 없는 성장(unemployed growth)'의 형태로 나타난다. 생산량과 생산성은 높아지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는 그만큼 늘지 않는 현상을 뜻한다. 대규모 실직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생산성 향상에 비해 기업의 고용 증가가 더디다면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전면적인 자동화에 앞서 나타날 수 있는 '불균등한 증강(unequal augmentation)'이다. 로봇이나 완전자율시스템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규모로 대체하기 전에도 기업은 AI를 활용해 기존 인력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가능하다. 자료 조사와 보고서 작성, 프로그램 개발, 고객 응대 등에 필요한 시간이 줄어들면 적은 인력으로도 기존보다 많은 업무를 처리할 수 있어 추가 채용의 필요성도 낮아진다. 결국 AI로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져도 그 성과가 고용 확대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AI 확산이 키우는 노동시장 격차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모든 노동자에게 같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성과 의사결정 권한을 갖춘 인력은 AI를 활용해 업무 효율을 높이면서 조직 내 영향력도 확대한다. 반면 신입 직원은 그동안 실무를 익히고 역량을 쌓는 데 활용했던 기초 업무가 줄면서 경력을 개발할 기회가 좁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전체 일자리 수의 증감만큼 중요한 것이 핵심 업무와 성장 기회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다. 가치가 높은 업무가 소수에게 집중되면, 다른 노동자가 전문성을 쌓고 더 높은 수준의 직무로 이동할 기회는 줄어든다. 이러한 차이가 누적되면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노동자는 높은 임금과 주요 업무,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전략적 의사결정에도 더 많이 참여하게 된다. 다른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질이 낮은 일자리와 실직을 반복하거나 보험과 연금 혜택이 부족한 긱 노동(Gig Work)에 종사할 가능성이 커진다. 초기의 생산성 격차가 장기적으로 소득과 자산 격차로 확대될 수 있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자동화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과거 자동화 논의가 기계의 인간 일자리 대체에 초점을 맞췄다면 AI는 기존 인력의 생산성을 높여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한다. 이에 따라 기업은 대규모 인력 감축 없이 신규 채용을 줄이고 여러 사람이 맡던 업무를 소수 인력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재편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전면적인 자동화가 본격화하기 전부터 노동자 간 업무와 경력 개발 기회의 격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 불안이 수명에 미치는 영향
이 같은 변화에 노출될 수 있는 일자리의 규모도 상당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선진국 일자리의 약 60%가 AI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산했으며 신흥국은 40%, 저소득국은 26% 수준으로 내다봤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전 세계 일자리의 약 25%가 생성형 AI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직업 전체가 사라지는 방식보다 일부 업무가 AI로 대체되거나 기존 업무에 AI가 활용되는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전체 일자리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개별 노동자가 겪는 충격까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25~2030년 전 세계에서 9,2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1억7,000만 개가 새로 생겨 전체적으로 7,800만 개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기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새로운 일자리로 곧바로 이동하기는 쉽지 않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거나 다른 산업과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경력 단절과 소득 감소를 겪을 수 있어서다.
이러한 고용과 소득의 불안정은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안정적인 소득은 주거와 식생활, 의료서비스 이용, 노후 준비 등 건강을 좌우하는 생활 여건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이 의료서비스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일하고 나이 드는 환경과 경제·사회적 여건의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교육과 고용, 소득에서 발생한 격차가 생애 전반에 걸쳐 누적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소득에 따른 수명 격차는 기존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라지 체티(Raj Chetty) 교수 연구진이 미국의 14억 인년(person-year) 규모 자료를 분석한 결과 40세 기준 소득 상위 1% 남성은 하위 1% 남성보다 14.6년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도 상·하위 1% 사이에 10.1년의 격차를 보였다. AI 확산으로 고용 안정성과 소득의 차이가 커질 경우 이러한 수명 격차도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경력 단절과 불안정한 고용은 저축과 연금 납입 여력을 줄이는 동시에 주거와 식생활, 예방 의료 등에 쓸 수 있는 소득에도 영향을 준다. 여기에 고용 불안에 따른 스트레스가 장기간 누적되면 노동시장에서 시작된 격차가 건강과 수명의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

의료 혁신에도 엇갈리는 혜택
노동시장에서 발생한 격차와 별개로 AI 의료 자체에서도 혜택의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안정적인 소득과 보험, 디지털 활용 능력을 갖춘 사람은 AI 기반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고 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받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반면 의료기록이 부족하거나 디지털 접근성이 낮은 사람은 AI가 질병 위험을 조기에 발견해도 실제 검사나 치료를 받는 데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학습 데이터의 편향도 의료 격차를 키울 수 있는 요인이다. 특정 계층이나 환자군의 데이터에 의존할수록 다른 집단에서는 AI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아드 오버마이어(Ziad Obermeyer) 연구진이 분석한 미국 의료 알고리즘은 환자의 건강 상태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의료비 지출액을 활용하면서, 특정 인종 집단 환자의 의료 필요성을 실제보다 낮게 평가했다. 의료비에 기존의 의료 접근성 격차가 반영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에 존재하던 의료 격차가 AI의 판단 과정에서도 반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에 따라 AI 정책도 기술 개발과 재교육에 머물지 않고 고용과 복지, 의료제도까지 포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노동자가 새로운 직무로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고용 형태가 달라져도 복지 혜택을 이어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요구된다. 의료 분야에서는 다양한 계층을 반영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알고리즘이 특정 집단에 불리하게 작용하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결국 AI는 의료기술 발전을 통해 건강수명을 늘릴 수 있지만 노동시장 재편으로 발생한 소득과 고용 격차는 의료 혜택의 차이로 이어진다. 따라서 생산성 향상이 안정적인 고용과 소득으로 이어지고 의료 발전의 혜택도 폭넓게 누릴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 발전의 성과가 특정 계층에 집중되지 않도록 고용과 복지, 의료정책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 AI 시대의 과제는 기술의 발전 속도와 함께 그 혜택을 얼마나 폭넓게 공유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본 기사는 The Training Gap Behind the Rise of SuperHuman Labor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은 Keith Lee 교수(SIAI) 2026년 7월 3~4일 이탈리아 베네치아 조르조치니재단(Fondazione Giorgio Cini)에서 열린 ‘수명 불평등(Inequalities in Longevity)’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내용을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The Economy Review 형식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구성과 표현을 일부 조정했으나, 분석과 해석, 결론은 원 연구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기사는 원 연구의 공식 초록이나 원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