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DC형으로 옮겨가는 연금, 장기채 시장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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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형 축소·DC형 확대에 연기금 자산 배분 변화 장기채 매입 유인 약화로 국채 수요 감소 가능성 네덜란드 연금 전환, 채권시장 파급효과 본격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국 연방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미국의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가입자는 9,340만 명에 달한 반면 전통적인 확정급여형(DB) 가입자는 1,110만 명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1984년까지만 해도 두 연금의 가입자 비중은 반대였다. 이러한 역전은 단순한 인구구조 변화를 넘어 수조 달러에 이르는 연금 자금의 배분 방식까지 바꾸고 있으며 그 영향은 국채시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DB형에서 DC형으로의 전환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최근 그 규모가 커지면서 연금제도 차원의 논의를 넘어 장기채 수요를 좌우하는 변수로 부상했다.
전 세계로 확산하는 확정기여형 연금
이 같은 변화는 미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제정책연구센터(CEPR)가 소개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유럽 선진국부터 칠레와 콜롬비아 등 신흥국에 이르기까지 DB형 연금은 꾸준히 줄어드는 반면, DC형은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BLS) 자료를 CRS가 분석한 결과 미국 민간 부문 근로자의 DB형 연금 가입 비율은 2010년 20%에서 2025년 14%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DC형은 59%에서 70%로 높아졌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 변화만으로 연기금의 채권 투자 감소를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연구진에 따르면 DB형과 DC형 모두 채권 등 전통적인 고정수익 자산에 직접 투자하는 비중을 줄이고 뮤추얼펀드 투자를 늘려왔다. 결국 DC형 확대가 채권 투자 감소를 앞당기고 있지만, 연기금의 자산 배분 변화에는 다른 요인도 함께 작용한 셈이다.

달라지는 연기금의 자산 배분
그중 하나가 지난 20년간 이어진 저금리다. 채권 수익률이 낮아지자, 연기금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뮤추얼펀드와 해외자산, 대체투자 등으로 투자처를 넓혔다. 미국 공적연금 데이터베이스(Public Plans Database)에 따르면 미국 주·지방정부 연기금에서 사모펀드와 부동산, 인프라, 헤지펀드 등 대체투자가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초 10% 미만에서 2024년 30% 이상으로 증가했다. 국가별 자료에서도 금리와 자산 배분의 연관성이 확인됐다. 연구진이 1980~2023년 87개국 자료를 분석한 결과,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1%포인트 하락할 때 연기금의 채권 비중은 약 1%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뮤추얼펀드 비중은 1.5%포인트, 해외자산은 3%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금리 하락에 따른 자산 배분 변화는 DC형보다 DB형 연기금에서 더 두드러졌다.

연금제도 전환의 시험대, 네덜란드
이처럼 연금제도와 투자 환경이 함께 연기금의 자산 배분을 바꾸는 가운데 네덜란드는 DC형 전환이 채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할 수 있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네덜란드는 2023년 7월 1일 ‘미래연금법(Wet toekomst pensioenen)’을 시행하고 유로존 최대 규모의 퇴직연금 체계를 2028년 1월 1일까지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네덜란드 중앙은행(DNB)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34개 연기금이 전환을 마쳤으며, 새 제도에 따라 운용되는 자산은 5,890억 유로(약 918조1,390억원)로 집계됐다. 전체 연금자산 1조7,200억 유로(약 2,681조1,530억원)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올해 1월 1일 기준 전체 가입자의 절반 이상이 이미 새 제도로 옮겨갔으며, 에디 반 히윔 네덜란드 사회고용부 장관은 앞으로 1년 반 안에 약 95%가 전환을 마칠 것으로 내다봤다.
전환 일정은 일부 늦춰지고 있다. 글로벌 보험중개사 에이온(Aon)의 프랑크 드리센 투자·자산관리 책임자는 일부 연기금이 운용시스템의 기술적 문제로 일정을 미루면서 전환 작업이 가장 집중되는 시점도 올해에서 2027년으로 늦춰질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일정 조정과 별개로 제도 전환은 계속되고 있다. 네덜란드 연기금은 그동안 유럽 국채시장에서 장기물을 대규모로 보유해온 만큼 자산 배분 방식이 달라지면 장기채와 금리스와프 수요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DC형 전환에 줄어드는 장기채 수요
네덜란드의 변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DB형과 DC형의 지급 방식 차이가 장기채 수요와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에 따르면 DB형 연기금은 가입자에게 정해진 연금을 장기간 지급해야 해 미래 지급액과 보유자산 사이에서 발생하는 금리 위험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에 장기 국채를 매입하거나 금리스와프를 활용하며 기관투자자가 보유한 유럽 장기 국채 가운데, DB형 연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대 3분의 2에 이른다. 반면 DC형은 투자 성과에 따라 가입자가 받을 연금액이 달라져 DB형처럼 미래 지급액에 맞춰 장기채를 보유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다. DB형에서 DC형으로 옮겨가는 자금이 많아질수록 장기채와 금리스와프에 대한 연기금 수요가 줄어들 수 있는 이유다. 이 경우 장기 금리가 상대적으로 상승하면서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장기채 수요 감소는 시장 변동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연기금은 시장 불안기에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채를 매입하며 채권 수요를 뒷받침해왔다. 연구진은 시장에서 이러한 장기투자자의 비중이 절반에서 3분의 1로 낮아질 경우 대규모 충격이 발생했을 때 채권 금리의 반응이 두 배로 커질 수 있다고 추산했다. 특히 연기금이 줄어든 자리를 가격 변화에 민감한 뮤추얼펀드가 채우면 시장의 움직임도 달라질 가능성이 커진다. 뮤추얼펀드는 시장이 안정적일 때 국채 발행을 뒷받침하지만 변동성이 커지면 채권 매도를 늘리는 경향이 있다. 이에 DC형 전환은 장기채 수요를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 충격이 발생했을 때 금리 변동을 더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연기금 변화와 미 국채시장
이러한 분석은 최근 미 국채시장의 움직임과 맞물리며 주목받고 있다. 두카스코피은행(Dukascopy Bank)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5월 미국 10년물 국채 입찰 낙찰금리는 4.468%로 3월 4.217%보다 상승했다. 같은 기간 응찰률은 2.45배에서 2.13배로 낮아졌으며, 예상금리와 낙찰금리의 격차는 0.7bp에서 5.5bp로 확대됐다. 해외 기관투자자와 중앙은행의 수요를 보여주는 간접입찰 비중도 74.5%에서 64%로 하락해 장기 국채 수요가 약해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를 연금제도 변화의 결과로 단정할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 최근 미 국채 수요 약화에는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 기대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영향을 미치고 있어 연기금 수요 감소의 영향을 별도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DB형 축소로 장기채를 보유해야 할 필요성이 낮아지는 만큼 연기금의 수요 변화가 장기 금리에 상승 압력을 더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은 제기된다. DC형 전환이 실제 장기채 시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는 앞으로 관련 자료가 축적되면서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네덜란드에서 제도 전환이 본격화하는 만큼 장기채의 주요 투자자인 연기금의 역할 변화가 국채 수요와 금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가 될 전망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Shift to Defined Contributions Is Changing Demand for Bond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