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경제 제재는 체제보다 국민을 고통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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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란 원유 제재, ‘경제난’으로 연결 인구 수백만 명 ‘비공식 노동’ 몰려 고통은 “정권 아닌 국민이”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2012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원유 수출에 전면적인 제재를 가하면서 이란은 전례 없는 경제 쇼크를 겪었다. 대상 품목의 교역에만 영향을 미치는 일반적인 경제 제재와 달리, 원유 수출국에 내린 원유 제재는 이란 경제의 핵심을 뒤흔들었다. 이란에게 원유는 주요 수출품일 뿐 아니라 정부 수입의 근원이었고 결국 수백만 명의 국민이 비공식 노동(informal labor, 법적 규제를 벗어나 운영되는 일자리) 시장으로 내몰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2012년 원유 금수조치로 ‘이란 경제 붕괴’
보통의 경제 제재는 생산 비용을 올리고 공급망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이란에 가해진 원유 금수 조치는 핵심 수출품의 교역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정부 지출의 근원이 되는 자금줄까지 끊었다. 2011년에 하루 250만 배럴에 달하던 원유 수출은 제재 이후 2013년 중반이 되자 110만 배럴로 감소했고, 이로 인해 정부 예산도 300억 달러(약 43조원)가 줄었다. 사회 기반 시설과 학교를 포함한 공공 투자도 하룻밤 사이에 증발했다.
물가 상승과 수요 감소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이란 경제는 장기 침체로 접어들었다. 2012~2014년 이란의 국내총생산(GDP)은 8%가 줄고 인플레이션은 2013년 중반 45%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진짜 고통은 공식적인 통계에 나타나지 않았다. 최악의 고통을 끌어안은 이들은 정규직을 잃고 비공식 일자리로 밀려난 수많은 이란 국민이었다.


산업 위기로 ‘비공식 고용 인구’ 급증
연구에 따르면 경제 제재 이후 무역 의존도가 높은 산업 및 연관 종사자들이 비공식 고용으로 이동할 확률은 5~6%P 더 높다고 한다. 이란의 경우는 수요 감소와 공급망 와해가 동시에 진행되며 도매상, 공장 노동자, 노점상, 서비스직 등 다양한 직종의 생계가 위협받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계층은 저학력 청년들이었다. 이미 24%라는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던 대다수는 차량 호출 서비스나 온라인 재판매 같은 임시직(gig work)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란 노동 인구의 25%를 차지하던 여성들도 다수가 정규직에서 내몰려 2013년 비공식 일자리의 40%를 점유했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는 사실상 이란을 글로벌 시장에서 분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교역이 끊어진 헤커-올린(Heckscher-Ohlin, 생산 효율이 높은 상품을 수출하고 효율성 낮은 상품은 수입하는 무역 방식)의 세계’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이란 산업의 근간인 자본 집약적 원유 생산과 석유화학 산업은 위기에 처했고 자본재는 휴면 상태에 들어갔다.
저숙련 노동력을 수용하던 건설 및 소매 등 원유 수입 의존 산업도 침체에 빠졌다. 무역 단절로 생산 요소 비용과 수요를 조율할 수 없게 되자 임금과 투자 수익률도 급감했다. 그나마 군수품 제조나 정유 시설 등 국영 기업은 정부의 보호를 받았지만 영세 상인과 노점상, 무허가 작업장 등은 치솟는 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경제 제재와 비공식 고용 ‘상관관계’
경제 제재와 비공식 고용의 관계는 이란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수십 년간 제재를 겪은 쿠바 역시 비공식 경제 인구가 전체의 44%에 이른다. 북한도 완전 고용을 달성하고 있다는 공식 주장과 달리 ‘장마당’으로 알려진 노점이 주민 생존의 근간이 된 지 오래다. 2022년 제재를 받은 러시아도 원유 수입으로 충격을 완화하려 했지만 물류 및 디지털 영역을 중심으로 비공식 노동의 빠른 증가를 경험했다.
이상이 사실이라면 정책 당국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체제를 겨냥한 경제 제재가 비공식 경제 인구를 포함한 서민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는 것이다. 제재로 무역이 중단되면 정부 수입이 줄고 당연히 지출도 감소한다. 공급망이 붕괴하면 가장 먼저 자리를 접어야 하는 것은 소상공인들이다. 인플레이션이 치솟아도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은 고용 계약도, 사회 보험도, 노조도 없는 비공식 노동자들이다.
적절한 구호 조치나 지원책이 없다면 경제 제재는 ‘긴축 정책’과 비슷하게 작용하는데 이마저도 계층 간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엘리트 계층과 국영 기업들은 정부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기지만 저소득층과 청년 및 여성은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한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빈곤과 불평등이 심화하는 것도 문제지만 경제 제재를 통해 얻고자 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도 심각한 고민거리다.
경제 제재의 의도와 목표는 적절하고 건전할 수 있다. 하지만 비공식 경제 인구에 미치는 악영향과 고통은 부수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치명적이다.
원문의 저자는 알리 모가다시 켈리쇼미(Ali Moghaddasi Kelishomi) 러프버러 경영대학원(Loughborough Business School) 강사 외 1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The impact of international economic sanctions on informal employment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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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휴전 대화 제안에 젤렌스키 화답 “러·우 전쟁 종지부 찍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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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휴전 먼저” 고수했지만 트럼프 만남 압박에 입장 선회 15일 튀르키예서 협상 재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평화 회담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즉각 회담 요구에 따른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직접 대화를 전격 제안하고 우크라이나도 이에 일단 응하기로 하면서 교착 상태이던 평화 협상 진전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젤렌스키 "튀르키예서 푸틴 기다리겠다"
12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저녁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나는 목요일(15일) 튀르키예에서 푸틴을 기다리겠다. 직접”이라고 밝혔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같은 날 새벽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당국에 오는 15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협상을 재개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단기간 휴전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도 공습을 이어 나가던 푸틴 대통령이 돌연 협상에 전향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런 푸틴 대통령의 깜짝 제안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협상의 급을 ‘정상’으로 높여 다시 기습 제안을 한 셈이다.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크렘린 대외정책 보좌관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와의 평화협상은 2022년에 논의됐으나 폐기됐던 평화안과 현재 상황을 고려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의 이스탄불 공동성명에 담겼던 내용과 함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 상당 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러시아가 2022년의 이스탄불 공동성명에서 합의된 우크라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포기 및 우크라이나 중립국화 등에 더해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러시아 땅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할 것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2022년 이스탄불 회담 실패 뒤에도 공동성명 내용에 따라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또 우크라이나 종전을 중재하는 스티브 윗코프 미국 특사도 이스탄불 공동성명을 향후 평화의 지침으로 언급해 왔다.
유럽 주요국 "러, 휴전 의지 없어, 제재 강화"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간 주고받기식 협상 제안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11일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당장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할 것을 촉구하는 소셜미디어(SNS) 메시지를 올리고 나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바뀐 입장문이 나왔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폴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유럽연합(EU) 등 이른바 '바이마르+(플러스) 그룹'이 러시아 측에 전면 휴전을 촉구한 움직임도 주효했다. 유럽 주요국은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 안보 강화 방안도 논의했다. 이들은 공동 성명에서 "러시아가 진전을 이루려는 어떠한 진지한 의도도 보여주지 않았다며 지체 없이 휴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크렘린궁의 수입 제한, 그림자 선단 단속, 유가 상한제 강화,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감축을 통해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낮추는 강도 높은 조처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키이우가 지속적인 평화 정착을 위한 어려운 협상의 출발점에 도달하기 위해 여러 차례 양보의 뜻을 보여왔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푸틴 대통령이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에 맞춰 나설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진지하지 않다면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무장관 역시 런던에서 기자들에게 "지금이야말로 푸틴 대통령이 유럽의 평화, 휴전, 그리고 진정한 협상에 대해 진지해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푸틴-젤렌스키 만난다면 2019년 이후 5년 5개월만
3자 간 긴박한 수싸움 속에 15일 협상 여건이 조성되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은 성공적인 개최 여부에 쏠리고 있다. 회담 자리를 제공하게 된 튀르키예도 적극 협조할 것임을 밝혔다. 하지만 실제 회담 성사 여부와 협상장에 누가 들어설지를 두고 추측만 있을 뿐이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실무진부터 고위급에 이르기까지 세부 논의를 거치는 일반적인 외교 관행에 비춰봤을 때, 적국 정상이 15일에 한 테이블에 앉는 것은 시간상 무리라는 평가도 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 임기가 끝나 정통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번 회담 성사 전망을 어둡게 한다. 푸틴 대통령이 회담에 직접 나오지 않을 경우 이를 이유로 우크라이나 측이 회담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도 커진다.
알자지라는 “푸틴 대통령이 협상장에 나오지 않으면, 러시아가 전쟁을 멈추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정치적 체스게임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BBC는 “양측 모두 원칙적으로는 협상 재개에 동의했으나, 협상과 실제 합의는 전혀 별개”라면서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그 간극은 여전히 크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스탄불에서 대면할 경우 두 사람의 만남은 2019년 12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분쟁을 중재하기 위해 독일·프랑스 정상과 함께 4자가 파리에서 ‘노르망디 형식’의 회담을 한 이후 5년 5개월 만이다. 노르망디 형식 회담이란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정부군과 친러 분리주의 반군 간 분쟁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독일·프랑스 4개국의 협상 틀을 일컫는다.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간 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제기된 15일은 공교롭게도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에 협상 장소인 튀르키예에 머물고 있을 때다. 루비오 장관은 14~16일 튀르키예에서 나토 회원국 외무장관들과 비공식 회의를 한다. 양국 정상 회담이 최종 성사되면 루비오 장관이 튀르키예 현지에서 직접적인 중재 역할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시기 중동으로 이동하는 움직임도 함께 지켜볼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부터 나흘 일정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3개국을 순방한다. 재집권 뒤 나서는 첫 국외 순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정학적 사안보다는 비즈니스 합의를 타결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워싱턴포스트(WP)는 예상했다. 11일부터 14일까지 중동에 머물 루비오 장관은 15일 튀르키예로 가기 전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간 회담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과 정보를 공유하고, 적극적인 중재 역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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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상원, 스테이블코인 법안 부결 “트럼프 암호화폐 이해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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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 사용 늘며 기존 시스템 안정 훼손 우려 거래수단으로 유용하나 시장 충격에 취약, 발행기관 신뢰성 문제도 일반적인 가상자산과 달리 강력 규제 필요성 확대

미국 상원이 민주당 반발 속에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GENIUS Act)를 처리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암호화폐 사업이 전례 없는 이해충돌을 초래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美 GENIUS Act, 민주당 반대로 무산
12일(이하 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미국 상원의원들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연방 규칙을 설정하려는 법안인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대한 자금세탁방지(AML) 요건을 강화하는 조항을 포함해 민주당 요구를 일부 반영했지만, 민주당이 막판 반대하면서 좌초됐다.
스테이블코인 법안에 대한 민주당의 핵심 이탈은 최근 발생했다. 9명의 민주당 상원의원은 법안 지지 의사를 철회하며 △자금세탁 방지 △외국 발행자 △국가 안보 문제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요구했다. 리사 블런트 로체스터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금융 이해충돌을 직접 지적했으며, 제프 머클리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영향력 관계를 얻기 위해 그가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암호화폐를 구매할 수 있는 현재 상황은 심각한 부패 구조"라며 "이는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정부에 대한 공공 신뢰를 훼손한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암호화폐를 통해 사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직전 밈코인 '오피셜트럼프'($Trump)를 직접 발행했으며, 최근 이 코인의 대규모 보유자들을 백악관 만찬에 초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해충돌 논란에 불을 지폈다. 리처드 블루멘탈 상원의원은 이에 대해 '대가성 거래'라고 비판했고, 암호화폐 부패 종식법을 발의한 엘리사 슬롯킨 미시간주 상원의원 역시 "대통령이 자기 코인을 팔아 사적으로 이익을 챙기는 걸 막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일가의 암호화폐 사업인 '월드리버티파이낸셜'(WLFI)이 아부다비 기반 투자사 MGX와 협력해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에 20억 달러(약 2조8,000억원)를 투자하려는 움직임도 법안 통과에 장애물로 작용했다. 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분석 회사 체이널리시스가 지난 5일 낸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의 밈 코인인 '오피셜 트럼프'의 발행자들은 지금까지 거래 수수료로만 3억2,000만 달러(약 4,546억원)을 벌었다.

각국 규제 강화, '다크 스테이블코인' 활성화할 수도
그간 스테이블코인은 정부의 간섭이 없어 다양한 그룹에서 자산을 저장하는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하지만 최근 각국의 정부 규제가 강화되면서 '다크 스테이블코인'의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암호화폐 분석 회사 크립토퀀트의 주기영 대표는 "곧 각국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은행처럼 엄격한 규제를 받을 것"이라며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세금이 자동 징수되고, 정부 규정에 따라 지갑이 동결되거나 서류 제출이 요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대규모 국제 송금에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던 사람들은 검열에 강한 다크 스테이블코인을 대안으로 찾기 시작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당국의 간섭을 받기 쉬운 금 같은 자산 대신, 알고리즘 메커니즘을 통해 가치가 유지되는 다크 스테이블코인 또는 프라이빗 스테이블코인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주 대표는 일례로 체인링크와 같은 데이터 오라클을 사용해 USDC와 같은 규제된 코인의 가격을 추적하는 탈중앙화 스테이블코인을 들었다. 또 다른 예로는 금융 거래를 검열하지 않는 국가에서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이나, 테더(USDT)가 향후 미국 정부의 규제를 준수하지 않기로 결정한 경우를 꼽았다. 주 대표는 "USDT 자체는 검열에 저항하는 스테이블코인으로 간주되곤 했다"며 "테더가 향후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미국 정부 규제를 준수하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점점 더 검열이 심해지는 인터넷 경제에서 다크 스테이블코인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한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인가부터 우리가 개입"
유럽연합(EU)은 이미 '암호자산시장규제안(MICA)'을 도입한 상태다. 해당 규제는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 서비스 제공업체의 투명성과 책임을 강화하고, 합법적인 유통을 전제로 관련 프로젝트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요구한다. 이에 유럽에서는 테더보다 규정을 충족한 신규 스테이블코인을 찾는 이용자도 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정부와 중앙은행이 뒤늦게 스테이블코인 제도 설계에 나선 상황이다. 내달 대선을 앞두고 가상자산 2단계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한국은행도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제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한은은 지난달 '2024년 지급결제 보고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은 일반 가상자산과 달리 지급 수단적 특성을 내재해 광범위하게 발행·유통되고 있다"며 "법정통화를 대체하는 지급 수단으로 사용될 경우 통화정책, 금융안정, 지급결제 등 중앙은행 정책 수행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어 별도 규제 체제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상자산위원회 등 향후 진행될 스테이블코인 입법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며 "중앙은행 관점에서 디지털 금융 환경에 바람직한 지급결제 생태계 구축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달 12일에도 한은은 "스테이블코인은 통화정책, 금융안정, 지급결제 등 중앙은행의 정책 수행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발행자 진입 규제와 관련해 인가 단계에서 중앙은행에 실질적인 법적 권한이 부여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원화와 1대 1로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되면 법정 통화인 원화 수요를 대체할 가능성이 크고, 한은의 통화정책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렸다.
이번 발표는 한은의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더 구체화한 내용이기도 하다. 한은은 "중앙은행이 인가 단계에 실질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중앙은행 정책 수행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제화 설계부터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디지털 지급결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한은이 추진 중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이를 기반으로 한 예금 토큰, 스테이블코인을 모두 아우르는 미래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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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은 일상이 됐고, 고용은 사라졌다” 막 오른 실업급여 1조원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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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지급 1조원 '정체’ 아닌 ‘고착’ 양상 비정규직 폭증 이면엔 제도 설계 오류 건설 불황·제조 위축→고용 한파 장기화

한국의 실업급여 지급액이 석 달 연속 1조원을 넘어서며 고용 시장에 경고등이 켜졌다. 경기 침체 외에도 비정규직 증가, 수급요건 완화 등 제도적 문제까지 겹치며 구조적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건설·제조업 중심의 고용 붕괴가 현실화하는 가운데, 고용보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 또한 커지는 양상이다.
고용시장에서 터진 경고등
1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4월 국내 구직급여 지급액은 1조1,571억원으로 집계되며 전년 동월 대비 9.7%(1,025억원) 늘었다. 이는 4월 기준 코로나19 확산으로 고용시장이 얼어붙었던 2020년 4월(1조1,580억원) 이후 두 번째로 큰 규모다. 구직급여를 신청한 사람 역시 지난달 10만3,000명으로 2020년 4월(12만9,000명), 2021년 4월(10만3,000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수준을 보였다.
구직급여는 올해 2월(1조728억원)과 3월(1조510억원)에 이어 4월까지 3개월 연속 1조원 이상이 지급됐다. 구직급여 지급액이 3개월 연속으로 1조원을 초과한 것은 2020년 5~9월(5개월), 2021년 2~8월(7개월) 이후 역대 세 번째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직장을 떠난 사람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 구직급여 적용 대상이 넓어졌다는 점을 감안해도 고용시장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 버금가는 불황이라는 게 구직자들의 주된 시각이다.
이를 증명하듯 취업시장의 각종 지표도 악화일로다. 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를 뜻하는 구인배수는 지난달 0.43을 기록하며 4월 기준 2020년(0.34)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치를 그렸다. 이는 수요(구인자 수) 급증에서 기인한 것으로, 올해 들어 4월까지 구직자는 전년 동기 대비 14만2,000명 증가한 반면 구인자는 21만2,000명 감소했다.
다만 고용시장은 개선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천경기 고용부 미래고용분석과장은 “구직급여 인원 증가 폭이 올해 1월부터 둔화하는 등 고용 상황이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고용보험 가입자 규모 증가나 계약 종료 후 구직급여를 타는 사람들이 꾸준한 증가세에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고용 상황이 나쁘다고 판단할 수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구조적 허점 반영한 결과 속속
이런 가운데 2019년 실업급여 지급 기간 및 금액 확대를 기점으로 비정규직 근로자가 급증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중소기업 전문 민간 연구기관 파이터치연구원에 의하면 실업급여 지급액이 실직 전 평균 임금보다 1%p 증가할 때마다 비정규직의 비중 또한 0.12%p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2019년 관련 제도를 개편하며 실업급여 지급 수준을 평균 임금의 50%에서 60%로 인상하고, 지급 기간도 90~140일에서 120~270일로 연장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추산한 비정규직 근로자 증가분은 24만1,000명에 달한다.
보고서는 실업급여 제도가 비정규직 근로자를 증가시키는 원인으로 반복 수급 가능성을 지목했다. 자발적 퇴직자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지만, 계약기간이 정해진 비정규직 근로자는 실업급여 수급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근로자가 고용 안정성이 낮은 비정규직 근로를 반복하면서 실업급여를 지속 수급하려는 유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파이터치연구원은 “높은 수준의 실업급여가 반복 수급을 조장하고, 종국에는 노동시장 왜곡을 심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실업급여가 최저임금을 웃도는 ‘역전 현상’을 들었다. 실제 지난해 최저임금인 시급 9,860원을 기준으로 월 209시간을 근무한 근로자의 월 실수령액은 184만3,463원이지만, 실업급여 수급자가 받는 월 최소액은 189만3,120원에 이른다. 일하는 것보다 실업 상태에서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기형적 구조가 형성됐다는 비판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실업급여 수급 요건의 느슨함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현행법에 따르면 구직자들은 실직 전 18개월 중 180일만 일하면 실업급여 수급이 가능하다. 이는 독일(30개월 중 12개월), 스위스(24개월 중 12개월), 스페인(6년 중 360일) 등 주요국들과 비교해 매우 완화된 기준이다. 이와 관련해 고용부 관계자는 “실업급여 지급 기준이 완화되면서 반복 수급 사례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며 “실업급여의 취지를 유지하면서도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전 산업 장기적 수축 국면 진입
전문가들은 실업급여 지급의 증가 배경으로 단순히 제도 악용을 넘어 건설·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인 산업 위축이 자리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건설업계는 수주 급감, 자재비 상승, 고금리 부담이 겹치며 ‘사실상 고용 붕괴’ 수준의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고용부가 발표한 ‘행정 통계로 본 노동시장 동향’에 의하면 올해 2월 기준 건설업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는 약 1만9,200명으로 전체 신규 신청자의 40%가량을 차지했다.
제조업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고정비 절감과 자동화 설비 확대 속에서 중소 제조업체들은 신규 인력 채용을 꺼리고 있으며, 기존 인력도 ‘퇴사-단기고용-퇴사’의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노동시장의 유효 수요를 감소시키고, 실업률 통계보다 더 깊은 구조적 침체를 시사한다. 특히 청년층과 중장년층 모두 구직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은 고용 사다리 전체가 삐걱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문제는 건설업과 제조업의 침체를 단순한 경기 순환적 현상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매달 발간하는 경제 동향 보고서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건설업 부진과 수출 여건 악화로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지는 모습”이라며 “미국을 중심으로 통상 갈등이 심화하면서 세계 무역 위축에 대한 우려도 확대되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실업률 증가세가 실업급여 수급자의 증가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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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中서 설 자리 잃나” 中 애국소비 열풍 속 판매량 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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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 팬덤’ 샤오미 1위로 화웨이·오포·비보도 약진 아이폰 판매량은 갈수록 '뚝뚝'

중국 시장에서 애플 등 외국산 휴대전화의 입지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쏘아 올린 관세 전쟁을 계기로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궈차오(國朝·애국소비)’ 열풍이 거세진 데 따른 결과다.
애플, 中 시장 ‘출하량 급감’
12일(현지시각) 중국 공업정보화부 산하 정보통신기술연구원(CAICT)은 외국산 브랜드 휴대폰의 지난 3월 출하량이 총 188만7,000대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의 374만7,000대에 비해 무려 49.6% 감소한 수치다.
CAICT는 개별 브랜드에 대한 세부 출하량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애플의 출하량 감소를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아이폰은 그간 중국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으나, 최근 들어 점유율 하락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조사기관 IDC의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이 호황을 보인 가운데 애플 아이폰만 출하량 감소세를 보였다.
여기엔 자국 브랜드의 약진이 한몫했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최근 들어 오포, 비보, 샤오미, 화웨이 등 자국 브랜드들이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실제 지난 1분기 중국 내 아이폰 출하량은 980만 대에 그친 반면, 샤오미는 1,330만 대의 스마트폰을 출하하며 전년 동기 대비 40% 급성장했다. 이 외에 화웨이는 10%, 오포 3.3%, 비보 2.3% 등 중국 제조사들은 전년 동기 대비 출하량이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고성능 반도체 칩을 탑재한 신모델을 출시해 고급폰 시장까지 공략하면서 애플과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자국 브랜드 우선 사용 기조에 '샤오미 스마트폰' 불티
중국 내 애국소비 분위기도 애플 부진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 정부는 민감한 분야에서 자국 브랜드를 우선 사용하자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으며 일부 국영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외국산 전자기기의 사용을 제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가격 경쟁력 이상의 문제로, 외산 브랜드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비등하다.
실제로 애플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 내 점유율이 하락세로 돌아섰으며, 특히 젊은 소비자층 사이에서 ‘국산 선호’가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애플 제품 불매 운동이 한창으로, 웨이보와 더우인 등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애플 제품 사용 금지' 해시태그가 수십억 회 사용되는 등 많은 중국 네티즌이 애플 불매에 동참하고 있다.
중국 내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점도 이러한 애국소비를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샤오미나 화웨이의 경우 스마트폰뿐 아니라 전기차와 가전제품 등에 독자 운영체계(OS)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美 영화 제재 이어 여행·유학도 금지령
이런 가운데 최근 중국 정부는 자국민의 미국 여행과 유학에 대한 규제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 교육부와 문화관광부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잇따라 미국 유학과 여행에 대해 안전성과 리스크 요인을 내세우며 신중한 결정을 당부하고 나섰다.
중국 교육부는 지나달 14일 홈페이지 공문에서 유학을 목적으로 미국을 방문해야 할 경우, 안전성 여부를 잘 고려해야 하고 예방과 대비 의식을 제고해야 한다는 공문을 발표했다. 문화관광부는 중미 경제무역 관계 악화 및 미국 내 안전 형세를 이유로 미국을 방문하는 중국 유커(游客,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사전에 충분히 리스크 요인을 평가 점검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체제 특성상 국무원 산하 해당 부처의 이런 권유는 사실상 미국 유학과 여행을 제한하거나 또는 금지하는 한미령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중국 당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125%의 관세를 부과하자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미국 할리우드 영화 수입도 축소했다.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영화 시장으로 특히 할리우드의 중요한 수출 시장이었는데 이번 조치로 디즈니를 비롯해 워너브러더스, 파라마운트 등의 영화사 경영이 곤경에 부딪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미국 영화 수입을 줄이는 반면 다른 나라의 우수한 영화 수입을 늘리는 방향으로 영화 수입 시장의 다원화를 추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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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 시장 부활 꿈꾸는 제약·바이오, ‘상장을 위한 상장’ 가능성에 짙어지는 의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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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상장 나선 중견 제약사 속출
‘실탄’이 필요한 건 회사가 아니다?
공장·신약·비전 부재, 시장 신뢰도↓

최근 제약·바이오업계에서 줄줄이 기업공개(IPO)가 추진되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겉으로는 신약 개발을 위한 실탄확보 등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업계 안팎에서는 오너 일가의 승계 작업을 위한 상장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대부분 기업이 뚜렷한 성장 전략 없이 IPO에 나서는 상황에서 제약업계 전반의 성장성까지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명분 없는 상장이 기업의 신뢰를 갉아먹는 것을 넘어 시장 자체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IPO 시장, 제약·바이오 중심으로 다시 들썩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유한양행 자회사 이뮨온시아는 이달 7일과 8일 양일간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상장 청약을 진행한 결과 913.2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청약 건수는 총 16만9,191건으로 집계됐으며, 증거금으로는 3조7,563억원이 모였다. 앞서 이뮨온시아는 지난달 22일부터 28일까지 진행한 기관 투자자 대상 수요 예측에서도 공모가를 희망 범위 상단인 3,600원으로 확정하는 등 IPO 흥행에 청신호를 알린 바 있다.
이뮨온시아 외에도 항체약물접합체(ADC) 플랫폼 개발사 인투셀, 녹십자 계열 임상유전체 분석 기업 지씨지놈 등이 IPO를 위한 일반 청약 또는 수요 예측을 앞두고 있다. 인투셀은 오는 13~14일 일반 청약을 진행한다. 공모예정금액은 188억~255억원으로, 상장 이후 예상 시가총액은 1,854억∼2,521억원이 될 전망이다. 지씨지놈은 오는 19일부터 기관 투자자 대상 수요 예측을 진행하며, 상장 후 예상 시총은 2,130억~2,485억원 수준이다. 이들 두 기업은 상장 주관사로 각각 미래에셋 증권, 삼성증권을 선정했다.
중견 제약사들은 하반기 상장을 위한 본격 움직임에 나섰다. 잇몸 치료 보조제 ‘이가탄’과 변비 치료제 ‘메이킨’으로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명인제약은 최근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을 위해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시장은 명인제약의 기업가치가 7,000억원 수준에 책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1985년 설립된 명인제약은 이가탄, 메이킨 등 일반의약품 외에도 치매와 파킨슨병을 비롯한 중추신경계(CNS) 전문의약품을 주력으로 생산 중이다.
명인제약 외에도 1973년 설립된 삼익제약, 6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마더스제약(1962년 설립), 익수제약(1970년 설립) 등 다수의 중견 계약사가 줄줄이 상장을 앞두고 있다. 삼익제약은 오는 10월 상장을 목표로 하나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했으며, 마더스제약은 NH투자증권과 KB증권을 주관사로 낙점했다. 이들 기업이 연내 무사히 IPO를 마치면 짧게는 52년, 길게는 63년 만의 ‘늦깎이 상장’이 된다.

“성장 목적? 글쎄요”
시장에서는 특히 명인제약의 늦깎이 상장을 주목하는 양상이다. 명인제약의 곳간이 넉넉한 만큼 자금 조달 외 또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2020년부터 매년 6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며 ‘알짜 기업’으로 통하는 명인제약은 지난해 2,696억원의 매출과 영업이익 901억원을 거뒀다. 지난해 말 현금성자산(단기투자자산 포함) 또한 2,543억원에 달하며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자랑했다.
이렇다 보니 이번 IPO의 목적이 승계 문제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명인제약은 창업주인 이행명 회장과 두 딸 이선영·이자영 씨 등 특수관계인이 지분 95.3%(1,067만6,000주)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상 가족 회사다. 이 회장이 1949년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2세 경영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문제는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속세다. 상장사와 비상장사의 상속증여세율은 최대 60%(최대 주주 할증과세 적용)로 같다. 다만 IPO를 통해 자산가치보다 낮은 시가총액을 형성하게 되면, 가격 괴리를 활용해 과세표준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나아가 상장주식을 통한 유동화가 가능해 주식 담보 대출, 회사 배당 등 증여세를 납부할 여력이 커진다.
가장 최근 확인된 명인제약의 기업가치는 이 회장이 지난해 6월 명인다문화재단을 출범하며 적용한 주당 평가액 5만원으로, 이를 바탕으로 추산한 시가총액은 약 5,600억원이다. 만약 이번 IPO에서 시가총액이 이보다 낮게 형성되면, 상장을 통한 승계가 오너 일가에는 훨씬 유리하다. 일각에서 “실탄이 필요한 건 회사가 아닌 오너 일가”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제약업계의 상속세 이슈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는 고(故) 백부현 전 회장의 장·차남인 백승호 회장과 백승열 부회장 형제 경영 체제를 유지해 온 대원제약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원제약은 현재 창업주 3세 경영 승계 작업을 일부 마친 상태다. 백승호 회장의 장남인 백인환 사장은 지난 1월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백승열 부회장의 장남인 백인영 이사는 지난해 말 상무로 승진하며 경영진에 이름을 올렸다. 백 신임 대표이사와 백 상무가 납부해야 할 추정 상속세는 각각 154억원, 182억원에 달한다.
여기에는 계열사 다나젠이 적극 활용됐다. 다나젠의 주력 사업은 의약품 판매대행 사업(CSO)으로, 대부분을 대원제약에 의존 중이다. 대원제약 제품을 다나젠이 판매하고, 수수료를 받는 식이다. 이 같은 사업 구조에서 다나젠은 대원제약으로부터 2021년 173억원, 2022년 210억원, 2023년 3분기 기준 185억원의 수수료를 지급받으며 몸집을 키웠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배당 또한 꾸준히 확대해 왔다.
현재 다나젠 주주구성으로는 대원제약 지분 27.6%와 최남희 다나젠 대표 지분 4.5%만이 공개돼 있다. 나머지 68%에 달하는 기타 주주 가운데 대원제약 오너 일가가 포함돼 있을 공산이 크다는시장 참여자들의 주된 시각이다. 이 경우 다나젠의 배당금은 상속세 재원으로 활용될 가능성 또한 커지게 된다.
‘상장 위한 상장’ 프레임, 업계 왜곡 우려
제약업계의 IPO 러시와 관련해 시장이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상장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에쿼티 스토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통상 기업이 상장을 추진할 때는 연구개발(R&D 확대), 신제품 출시, 글로벌 진출 등 구체적인 성장 전략을 함께 내세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일 제약사 대부분은 명확한 투자계획이나 중장기 사업 로드맵을 공개하지 않은 채 그저 “기업가치 제고”란 말만 반복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제약·바이오 산업 전체의 신뢰도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일관된 견해다. 이미 2010년대 중후반 바이오 붐과 함께 상장했다가 신약 개발 실패, 기술력 부재 등의 이유로 투자자들을 실망시킨 사례가 속출한 전례가 있는 탓이다. 여기에 또 한 번 명분 부족의 IPO 러시가 반복되면, 시장에서는 ‘상장 리스크’를 더 크게 인식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상장 이후의 과제 또한 가볍지 않다. 제약업계는 여타 산업에 비해 규제 강도가 높고 R&D 기간이 길어 투자자들의 전폭적인 신뢰가 필수로 여겨진다. 이는 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이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활용되지 않고 지배구조 유지나 단기 재무개선에 소모될 경우, 기업가치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랴부랴 늦깎이 상장에 나선 중견 제약사들의 행보에 기대보다 회의론적 시각이 주를 이루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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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은 미국, 기술은 외부? 무너지는 일본 배터리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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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분전에 日 배터리 업계 먹구름
배터리 공급망 전략 수정 불가피
수입 의존도 확대, 일본 내 대안 전무

닛산과 도요타 등 일본 완성차 업체들이 자국 내 배터리 생산을 사실상 포기하고 외부로 눈을 돌리면서 일본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 상실이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남아 있는 완성차 업체들도 자국 내 공급망을 확보하지 못해 고립되고 있으며, 설령 일본 기업이 추후 생산설비를 늘린다 하더라도 자국이 아닌 미국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에 일본이 배터리 산업의 주도권을 잃고 수입에 의존하는 수요처로 전락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세계 10대 배터리 업체 중 日 기업 파나소닉 유일
13일 일본의 경제신문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닛산자동차는 일본에 첫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겠다던 계획을 취소하기로 최근 가닥을 잡았다. 규슈 섬 기타큐슈시에 건립 예정이던 해당 공장은 인산철 리튬(LFP) 배터리를 주력 생산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이르면 2028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닛산은 공장 설립 계획 무산을 알리며 그 이유로 자동차 제조업체의 부진한 수익과 투자 금액 재검토 필요성 등을 언급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닛산의 비즈니스 전략뿐만 아니라 일본의 국내 배터리 공급망 개발 야망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METI)은 오는 2030년까지 자국 배터리 생산 능력을 연간 150기가와트시(GWh)로 늘리는 목표를 설정했으며, 부품 및 자재 생산을 포함한 약 30개 프로젝트에 보조금을 승인했다. 그러나 최대 557억 엔(약 5,365억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한 닛산 기타큐슈 공장이 무산되며 목표 달성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현재 일본에서 배터리 생산시설 구축과 관련해 진행 중인 대형 프로젝트는 파나소닉에너지가 스바루와 함께 총 4,630억 엔(약 4조4,500억원)을 투자하는 공장 건설이 유일하다.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한 해당 공장은 이미 공정이 상당 부분 진행돼 무산될 가능성은 낮지만, 그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닛산이 빠져나간 공백을 채우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일본의 배터리 패권은 빠르게 위축 중이다. SNE리서치에 의하면 지난해 세계 10대 자동차 배터리 제조업체 중 6개가 중국 기업이었으며, 그중 CATL은 37.9%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로 8년 연속 1위를 지켰다. 파나소닉은 이 명단에 포함된 유일한 일본 기업으로 6위에 그쳤다.
도요타도 발 빼며 일본 배터리 산업 실질적 ‘항복 선언’
자국 내 생산 시설 확대에 회의적인 기업은 비단 닛산뿐만이 아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일본 최대 자동차 그룹 도요타가 후쿠오카현에 건설 예정이었던 차세대 배터리 공장 건설을 전면 보류했다. 건설이 중단된 공장은 도요타자동차의 배터리 생산 자회사 도요타배터리가 공장 건설과 운영을 맡아 2028년부터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EV 시장 성장세가 예상보다 부진한 데다,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세에 낮아진 영업이익까지 부담으로 작용하며 결국 계획 철수 수순을 밟게 됐다.
도요타가 자국 내 신규 배터리 공장 설립 계획을 보류하면서 일본 배터리 산업의 한계 또한 수면 위로 부각되고 있다. 도요타는 향후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업계에선 이를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 모두에서 뒤처진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배터리는 전기차 시장에서 핵심 부품이자 전략 무기인데, 일본 최대 완성차 업체마저 자체 생산을 미루고 수입에 의존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는 지적이다.
도요타는 자국 생산 대신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이 운영하는 미국 랜싱 공장에서 15억 달러(약 2조1,300억원) 상당의 배터리를 구매하기로 했다. 이 같은 도요타의 결정은 자국 내 공급망을 직접 구축할 수 없을 만큼 일본의 배터리 산업 기반이 약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십 년간 세계 자동차 기술을 주도해 왔던 일본이 핵심 부품 확보에서조차 타국에 의존하게 됐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게 업계의 주된 시각이다.

산업 경쟁력 퇴보, 플레이어에서 단순 구매자 전락
이런 가운데 향후 도요타가 생산기지를 확대한다 해도 그 대상을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도요타는 현재 건설 중인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 공장에 이어 신공장 추가 건설 등을 검토 중이다. 션 서그스 도요타자동차 노스캐롤라이나 사장은 “향후 EV 수요가 증가하면 공장 증설이나 신공장 건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다른 지역도 검토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도요타의 행보는 자국보다 미국 시장에 더 큰 미래 전략을 배치하고 있다는 뜻이자, 그만큼 일본 내 제조 기반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오는 2030년까지 북미에서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차 판매 비중을 현재의 50%에서 80%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도요타의 중장기 목표다. 다만 구체적인 추가 투자 시점은 2~3년 동안 시장 수요를 점검한 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일본 정부는 전기차 및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도요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든 민간 기업들의 선택은 점점 바깥으로 향하고 있다. 고비용 구조, 불확실한 수요 전망, 기술력 격차 등 복합적 한계가 일본 내 설비 확장을 막고 있단 진단이다. 일본이 글로벌 배터리 경쟁에서 ‘메이드 인 재팬’ 전략을 포기하는 날이 머지않았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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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중심 금융 생태계 태동” 툴·월터 부호 연합, AI 활용 금융 투자사 설립에 20조 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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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툴·마크 월터 개인 재산 53조원 모은 ‘TWG’ xAI, TWG·팔란티어 손잡고 금융 데이터 AI 도구 출시 슈퍼컴퓨터 활용해 금융 혁신 박차

영화 제작사 레전더리 픽처스 전 대표 토마스 툴(Thomas Tull)과 LA다저스 구단주이자 구겐하임 파트너스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월터(Mark Walter) 두 부호가 인공지능(AI)을 앞세운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두 사람은 금융·스포츠·방위 등 여러 분야에서 AI 활용 기업 인수와 투자를 위해 150억 달러(약 21조원) 상당의 자금 마련을 거의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TWG, UAE 3대 국부펀드 ‘무바달라’ 투자금 유치
12일(이하 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6일 툴과 월터는 각자 가진 400억 달러(약 56원)을 한데 모아 ‘TWG 글로벌(TWG Global)’이라는 지주회사를 세웠다고 밝혔다. TWG는 FT에 아랍에미리트(UAE) 3대 국부펀드인 무바달라 캐피털(Mubadala Capital)이 모은 100억 달러(약 14조1,500억원) 우선주 투자를 포함해 외부 자금 모으기를 거의 끝냈다고 말했다. 아울러 TWG는 무바달라 캐피털 지분 5%를 사들이기로 했다고 전했다.
무바달라 캐피털은 UAE가 펼치는 경제 다각화 정책에 기여하고, 국내총생산(GDP)에서 비석유 비중을 높이기 위해 다 양한 산업군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 무바달라 캐피털은 아부다비투자공사(ADIC), 무바달라 캐피탈, AI·반도체 분야 기술 투자 회사인 MGX 등 자회사들을 통해 투자 영역을 확장했다. 현재 무바달라 캐피털은 아웃바운드 투자로 에너지, 석유화학, 생명과학, 헬스케어 분야에 집중하고, 인바운드 투자로는 스마트 시티, 교육, 금융 분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부펀드 리서치기관 글로벌국부펀드(SWF)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국부펀드 중에서 무바달라 캐피털의 투자액이 가장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무바달라 캐피털의 작년 투자금은 292억 달러(약 41조3,000억원)로 이는 전년 175억 달러(약 24조7,000억원) 대비 67%나 급증한 수치다. 반면 지난해 전 세계 국부펀드 평균 투자액 증가율은 7%에 불과했다.
TWG·팔란티어, 금융 서비스 분야 AI 합작 벤처 설립
TWG는 이번 투자금을 활용해 데이터 분석기업 팔란티어(Palantir)와 함께 '금융 데이터 분석용 AI 도구'를 내놓을 예정이다. 앞서 지난 3월 TWG와 팔란티어는 금융 서비스 분야 AI 합작 벤처를 발표했다. 지난 1년간 TWG는 팔란티어와 협력하며 자사 기업들에 AI를 통합해 왔는데, 이는 이번 합작 벤처 설립의 기반이 됐다. 팔란티어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포함한 정부 기관과 다국적 기업에 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제공해 온 기업 분석 분야 강자다.
합작 벤처는 △은행 △투자 관리 △보험 및 기타 서비스를 대상으로 하며, 현재의 분산된 접근 방식과 대조되는 포괄적인 기업 전반의 AI 전략 개발을 목표로 한다. 양사의 공동 파트너십을 두고 시장에서는 양사 협력이 이익 증진뿐 아니라, 금융 서비스 산업의 AI 통합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설정하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 정보 플랫폼 인베스팅프로(InvestingPro)에 따르면 특히 팔란티어는 강력한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어 이번 전략적 확장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xAI’도 합류
이런 가운데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설립한 AI 기업 xAI도 최근 공동 파트너십에 합류하면서 협력 관계가 확대됐다. xAI는 대형언어모델(LLM) ‘그록(Grok)’ 시리즈와 슈퍼컴퓨터 ‘콜로서스(Colossus)’를 금융 비즈니스 운영에 통합해 AI 기반 솔루션을 제공할 예정이다. 그록은 대규모 데이터를 신속하게 분석하고, 금융 시장의 예측과 리스크 관리에 활용된다. 콜로서스는 이러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 거래 분석과 예측 모델을 지원한다.
협력 구조상 솔루션 설계와 현장 배포는 TWG가 주도한다. TWG는 고객사 임원진과 직접 협업해 현업에 특화된 AI 활용 방안을 모색하고 시스템 구축을 추진할 계획이다.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CEO는 이번 협력에 대해 “주요 금융 기관들이 AI의 잠재력을 활용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며 “운영 중심에 AI를 두면 고객에게 더 빠르고 의미 있는 결과를 제공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사회에 훨씬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협력이 금융 산업 전반에 걸쳐 AI 도입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하며, 향후 더 많은 파트너사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측했다. 금융 부문에서의 협력 외에도 xAI는 AI 인프라 확장을 위해 주요 기업들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3월 xAI는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투자펀드 MGX, 블랙록이 지원하는 컨소시엄에 합류하며 미국 내 AI 인프라 구축을 강화하기로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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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 "아시아 통화 역사적 저평가" 재조명, 달러 약세 속 원화 반등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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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저평가된 아시아 통화에 주목, 원화 반등 여력 커 인도네시아 루피아, 인도 루피, 대만달러 등 함께 거론 위안화 절상 막으려는 中에 추가 상승 어렵다는 분석도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아시아 신흥국 통화들이 다시 주목 받는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조치 이후 달러 강세가 한풀 꺾이면서 그간 저평가됐던 원화와 대만 달러, 인도네시아 루피아 등이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지난 주 미국 달러 가치가 급락하고 대만달러 등 아시아 주요 통화 가치가 이례적으로 급등하자 일각에서는 아시아 통화가 약세가 아닌 강세를 보이는 '역(逆) 외환위기' 가능성이 제기된다.
아시아 주요 통화, 역사적 평균 대비 저평가
11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은 "가장 안정적인 통화로 꼽히던 아시아 주요 통화의 가치가 역사적 평균 대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며 "수년간 라틴아메리카 캐리 드레이드의 인기에 밀려 2위를 차지했던 아시아 통화가 이제는 저렴함의 상징이 됐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가 국제결제은행(BIS)의 실질실효환율(REER)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국 원화가 10년 이동평균 대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해 가장 저평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저평가된 통화로는 인도네이사 루피아, 브라질 헤알, 대만달러, 인도 루피가 뒤를 이었다.
골드만삭스그룹은 원화를 달러 자산을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통화로 지목하며 인도네시아 루피아, 인도 루피, 남아공 랜드 등을 유망한 신흥국 통화로 꼽았다. 영국의 글로벌 금융그룹 바클레이즈 역시 원화와 더불어 싱가포르달러, 대만달러 등의 추가 상승 가능성에 주목했다. 블룸버그는 이 같은 전망에 대해 "달러 약세, 중국 경기 부양에 대한 기대감, 미국과 아시아 간 무역 협상 진전 가능성 등이 맞물리면서 아시아 통화의 매력이 재부상하고 있다"며 "아시아 통화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저렴해 수익 실현 여지가 크다"고 보도했다.
대만달러 급등에 아시아 주요 통화 동반 강세
실제로 이달 초 감지된 대만달러의 급등세가 인근 국가 통화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아시아 통화 전반이 강세 흐름을 타고 있다. 대만달러의 폭등(절상)은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단 2거래일 동안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지난 1일 종가 32.077대만달러였던 환율이 이틀 새 8~9% 급락해 장중 29.458대만달러까지 떨어졌다. 2일 하락률(절상률)은 4.15%로, 1980년대 이후 하루 기준 최대폭을 기록했다. 6일 이후 일부 반락이 나타났고, 이후 30대만달러선에서 환율이 회복된다.
원화 역시 2일 2.5% 급등한 데 이어 5일 1.5% 추가 상승하면서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싱가포르달러 역시 아이사 통화 강세 분위기 속에서 절상 압력을 받았다. 중국 위안화도 연휴 뒤 거래가 다시 시작되면서 1달러에 7.23위안까지 올라 지난 3월 20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엔화는 간밤 0.9% 급등한 뒤 1달러에 143.99엔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호주달러는 지난 6월 5개월 만의 최고치(0.6449달러)에서 거래되면서 다른 통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아시아 통화 강세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세계 무역 및 동맹 재편 움직임 속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 비중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무역 협상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면서 아시아 통화에 대한 투자 심리는 점차 개선되고 있다. 블룸버그 아시아 통화 지수는 4월 저점 대비 약 3% 상승했고, 글로벌 자금은 인도네시아·태국·한국 등 아시아 통화 채권을 사들이고있다. 달러 약세 압력이 커지자 홍콩 통화청은 페그제 방어를 위해 외환시장 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美 통화 정책 불확실성으로 세계 경제에 영향
이러한 아시아 통화 강세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세계 무역 및 동맹 재편 움직임 속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 비중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대만달러 급등 시점이 미-대만 무역 협상 종료와 겹치면서 이러한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거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등이 말했던 '아시아판 브레턴우즈 협정', 곧 아시아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통화를 평가절상할 가능성도 다시 떠오르고 있다.
많은 아시아 통화가 심각하게 저평가된 상태인 만큼 이론적으로는 타당하지만, 관광 부진을 겪는 대만 등이 10% 평가절상을 견디기는 실제로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대만과 한국이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점이 통화 절상 압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만 중앙은행은 이러한 거래 가능성을 거듭 부인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대만달러 급등에 당국의 암묵적 승인이 있었고, 미국 역시 이를 환영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적으로 아시아에서 시작된 환율 불안은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을 일으켜 세계 증시 상승세에 제동을 걸 수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통화 정책 방향도 주요 변수다. Fed는 금리를 묶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앞으로 정책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영국 중앙은행(BoE) 역시 이번 주 회의에서 트럼프 관세 정책의 영향 등을 생각해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나온다. 노르웨이와 스웨덴 중앙은행은 금리를 묶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