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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텍·퀄컴 3나노 AP 동시 출격, TSMC 쏠림 속 삼성전자 반격 카드는?

미디어텍·퀄컴 3나노 AP 동시 출격, TSMC 쏠림 속 삼성전자 반격 카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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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멘시티 9500·차세대 스냅드래곤
중국도 도전장→글로벌 경쟁 가속
삼성은 엑시노스 시리즈로 재도약 야심
사진=미디어텍

글로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에서 미디어텍과 퀄컴이 TSMC 3나노 공정을 기반으로 생산된 신제품을 동시 공개하며 치열한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여기에 중국 샤오미까지 자체 개발한 3나노 칩을 선보이며 시장 다변화를 가속하는 상황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 2나노 공정 기반 엑시노스2600으로 반전을 노리고 있지만, 안정적 수율 확보 여부가 생존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차세대 시장 선점 경쟁 본격화

17일 업계에 따르면 미디어텍은 오는 22일 차세대 모바일 AP ‘디멘시티 9500’을 공식 발표한다. 비슷한 시기 퀄컴 역시 연례 기술 행사인 ‘스냅드래곤 서밋 2025’를 개최하고 최신 AP ‘스냅드래곤 8 엘리트’ 5세대 모델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들 칩은 앞으로 1년간 애플의 A19 프로, 그리고 삼성전자의 엑시노스 2600과 최고급 스마트폰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의 엑시노스 2600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공개가 유력해, 글로벌 AP 시장은 3파전 구도로 전개되는 형세다.

미디어텍의 디멘시티 9500은 ARM의 최신 루멕스 플랫폼을 토대로 C1 시리즈 코어와 12코어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탑재하는 등 하드웨어 사양을 대폭 강화한 게 특징이다. 중앙처리장치(CPU) 구성은 4.21GHz 초고성능 코어 1개, 3.50GHz 고성능 코어 3개, 2.7GHz 효율 코어 4개 등으로 짜였고, 연산 성능은 100TOPS급 NPU로 확장됐다. 메모리 지원은 LPDDR5X 10,667Mbps, 저장장치는 UFS 4.1 규격을 채택했다. 차세대 통신 규격인 5G, 와이파이7, 블루투스6.0까지 지원하며, 오포와 비보 등 중국 제조사 플래그십 모델에 우선 적용될 예정이다.

퀄컴은 5세대 스냅드래곤 8 엘리트를 앞세워 자체 CPU 아키텍처 오라이온과 개선된 아드레노 GPU를 내세웠다. 주력 코어는 최대 4.6GHz, 갤럭시 특화 버전에선 4.7GHz까지 끌어올린다. 초기 탑재 단말은 샤오미 17 시리즈로 확정됐고, 갤럭시 S26 울트라에 적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성능 수치는 벤치마크에서 싱글코어 3,393점, 멀티코어 1만1,515점, 안투투 420만 점 등을 기록하며 경쟁사들을 압도했다. 

양사의 신형 칩이 모두 TSMC 3나노 공정에서 생산된다는 점은 시장 판도를 좌우하는 변수로 꼽힌다. 단순 성능 경쟁을 넘어 첨단 공정 수주를 누가 독점하느냐가 향후 경쟁 구도를 바꿀 것으로 관측되면서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올해 TSMC가 5나노 이하 AP 제조에서 87%의 점유율을 보일 것으로 내다보며 “내년에도 애플·퀄컴·미디어텍의 2나노 제품까지 TSMC가 맡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세계 최초 2나노 공정 기반 엑시노스 2600으로 반격을 준비하는 삼성전자는 초기 물량에서 열세를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게 됐다. 

샤오미도 중국 최초 3나노 AP 출시

여기에 최근에는 중국 업체들마저 갈 길 바쁜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지난 5월 샤오미는 자사 최초의 3나노 공정 기반 모바일 AP ‘XRING 01’을 정식 출시하며 글로벌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는 애플과 삼성전자, 화웨이에 이은 세계 네 번째로 자체 모바일 칩 상용화로, 2017년 첫 도전작 ‘서지 S1’이 시장에서 실패했던 전례를 딛고 재도전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때문에 업계는 샤오미의 출사표를 단순 신제품 발표를 넘어 중국 반도체 산업의 자급화 전략 속에서 기술 자립을 실질적으로 가속한 사례로 받아들였다. 

XRING 01은 TSMC 3나노 공정으로 생산됐다. 샤오미는 미국의 수출 규제가 인공지능(AI) 특화 칩에 집중돼 소비자용 모바일 칩에는 아직 제약이 적다는 점을 활용, 첨단 공정을 확보했다. 내부 사양은 ARM 아키텍처 기반 CPU는 8코어 혹은 10코어 트라이클러스터 구조로, 최신 Cortex-X925 코어와 Immortalis-G925 GPU가 탑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해당 모델의 연산 성능이 퀄컴의 스냅드래곤 8 Gen 2세대를 상회한다는 평가가 나왔고, 이는 중국 스마트폰 업체가 처음으로 글로벌 프리미엄 칩셋 경쟁의 전면에 나선 신호로 읽혔다. 

샤오미의 강한 의지는 프로젝트 운영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중국 현지 보도에 의하면 XRING 01은 개발 인력만 1,000여 명이 투입됐고, 이 중에는 퀄컴 출신 고위 임원도 포함됐다. 이 같은 적극적 움직임으로 샤오미는 지난해 일찌감치 3나노 칩셋의 테이프아웃(설계 완료)을 마쳤다. 애초 시장에서는 샤오미가 통신칩 부문에서 미디어텍이나 유니SOC 모뎀을 활용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기도 했지만, 샤오미는 CPU·GPU에서 독자 설계를 이뤄내며 ‘자체 칩 개발사’로서의 위상을 구축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이 같은 샤오미의 행보는 시장 전반에 적잖은 파급력을 미친다. 중국 정부의 기술 자립 기조와 맞물려 향후 중국산 스마트폰에서 자체 AP 채택 비중이 확대된다면, 글로벌 생태계는 기존 퀄컴·삼성·애플 삼각 구도에 추가적인 변수를 안게 된다. 이는 가격 경쟁력과 대규모 내수시장을 무기로 한 샤오미의 전략이  퀄컴의 아성을 흔드는 것은 물론, 삼성에도 2나노 엑시노스 2600 성공 압박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삼성전자 생존 분수령 ‘안정적 수율 확보’

시장의 이목은 삼성전자가 엑시노스2600 2나노 공정에서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할 수 있을지로 쏠린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삼성은 이달 말부터 엑시노스2600의 양산을 시작하며, 내년 초 갤럭시 S26 시리즈에 해당 모델을 탑재할 예정이다. 이는 삼성 파운드리가 세계 최초로 2나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을 적용한 첫 모바일 칩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다만 업계가 평가하는 안정적 수율 기준인 60% 도달은 여전히 불확실해 일각에선 삼성전자의 AP 사업 철수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실정이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2600을 통해 압도적인 성능을 구현했다는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실제 긱벤치 시험 결과에서 엑시노스2600은 싱글코어 3,309점과 멀티코어 1만1,256점을 기록해 전작 엑시노스2500 대비 약 35% 개선된 성능을 자랑했다. 전력 효율과 발열 제어에서 신형 ‘히트 패스 블록(HPB)’ 솔루션을 도입해 안정성을 높였다는 점도 특징이다. 실제 모바일 탑재 환경에서 이러한 성능이 입증된다면, 삼성전자가 오랫동안 따라잡지 못했던 퀄컴과의 격차를 크게 좁힐 수 있을  것이란 게 업계 전반의 시각이다. 

엑시노스2600으로의 복귀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전략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다. 앞서 삼성전자는 발열 및 수율 이슈로 갤럭시 S23과 S25에 퀄컴 AP를 전량 탑재한 바 있다. 이번 S26 시리즈에 자사 칩을 다시 적용하면, 2년 만에 주력 라인업에 복귀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곧 원가 절감으로 연결된다. 올 상반기 삼성전자 스마트폰(MX) 사업부 AP 원재료 비용은 7조7,899억원으로 전년 대비 29% 늘었는데, 대부분이 퀄컴 조달분이었다. 이는 자사 칩 활용이 설계 경쟁력 회복의 발판인 동시에 비용 절감 효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엑시노스2600의 성공 여부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전반의 재도약과 직결된다. 양산 안정성이 확보되면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사업부의 신뢰 회복은 물론, 테슬라향 AI 칩과 애플 이미지센서 등 최근 따낸 수주와 함께 글로벌 고객사 확보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대로 수율 문제로 시장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삼성의 AP 사업은 다시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번 2나노 엑시노스2600이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사업 전반의 향방을 결정짓는 시험대로 여겨지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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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포럼] 중국의 ‘소프트 파워’, ‘이념 대신 경험을’

[동아시아포럼] 중국의 ‘소프트 파워’, ‘이념 대신 경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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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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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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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자학원’ 접고 ‘관광 진흥’으로
무비자 입국으로 ‘진입 장벽 낮춰’
SNS 통해 ‘애쓰지 않고’ 영향력 확산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 소프트 파워를 각인시키려는 중국의 노력이 본질적인 변화를 거치고 있다. 한때 공자학원(Confucius Institutes)의 글로벌 확산으로 정의되던 전략은 이제 관광, 문화유산,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를 안으로 끌어당기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2019년에만 해도 미국에 100개를 넘던 공자학원이 5개 아래로 줄었지만, 작년에는 전년 대비 두 배인 2,700만 명의 해외 관광객이 중국을 찾는 성과를 낳았다. 동시에 중국 내 박물관들은 모두 합쳐 14억 9천만 명 방문이라는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중국 ‘소프트 파워 전략’ 변경

교실과 강의를 수출하는 대신 경험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갖가지 절경과 미식 여행, 세계 수준의 박물관, 지역 축제들이 중국의 소프트 파워를 입증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등장했다. 재작년과 작년 무비자 정책과 환승 체류(transit stay, 국제공항의 환승 구역 내 호텔에 무비자로 체류) 기한 연장이 시행되면서 입국 장벽이 크게 낮아졌다. 올해 들어 무비자 입국이 전체 외국인 입국의 3/4을 차지하는 것을 보면, 그동안 세계가 중국에 무관심했던 것이 아니라 국경을 넘기가 어려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공자학원의 몰락은 관리 구조와 학문의 자유 침해에 대한 민주 진영의 의구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포기하지 않고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관광과 문화적 외교로 방향을 돌렸다. 방문객들이 비용을 부담하면서 중국을 경험한 후 자발적으로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산시키는 방식이다. 교실 수업보다 시안(Xi’an)의 야시장과 하얼빈의 얼음 축제가 외국인을 끌어들이기에 더 쉬웠음은 물론이다.

무비자 정책 및 관광 진흥 ‘성공적’

여기서 순차적인 정책 도입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중국은 비자 정책을 바꾼 후 ‘니하오! 중국’(Nihao! China) 캠페인을 도입해 보조금과 친숙화 여행(familiarization trip, 여행사 및 미디어에 제공하는 무료 및 할인 여행)으로 관심도를 높였다. 이렇게 해서 작년에 방문 목적을 망라해 중국을 방문한 내외국인은 1억 3,190만 명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에도 380만 명의 해외 관광객이 방문했는데 무비자 입국이 전년 대비 50% 이상 늘었다.

중국 해외 관광객 수 추이 (2023~2024년)
주: 관광객 수(단위: 백만 명, 좌측), 총관광객(좌측 막대그래프), 무비자 입국(우측 막대그래프) / 무비자 입국 점유율(%)(우측)

관광이 국경 내 진입을 유도한다면 디지털 플랫폼은 영향력을 확산한다. 올해 중국 최고의 브랜드로 꼽힌 틱톡은 짧은 동영상 콘텐츠가 중국의 문화 상품을 수출하는 최고의 홍보 수단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중국의 먹자골목과 축제, 절경을 보여주는 바이럴 영상(viral clips,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인기를 얻는 짧은 동영상 및 콘텐츠)은 엔터테인먼트와 광고, 외교의 영역을 허물었다. 여행객들이 트립닷컴(Trip.com)을 통해 예약하고 온라인상의 경험을 따라 하는 동안, 문화는 상업이 되고 상업은 영향력으로 변했다.

‘이념’ 아닌 ‘경험’ 제공

중국의 전략이 결정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국내 인프라다. 90% 넘게 무료입장이 가능한 7,000개 이상의 박물관은 중국이 내외국인을 끌어들이는 문화 기지가 됐다. 작년에 과학 박물관 입장객 수만 1억 명이 넘는다. 하얼빈의 빙설 경제(snow economy, 겨울 스포츠, 관광, 문화, 장비 제조 및 관련 서비스를 포괄하는 산업)는 각국의 도시들이 기후와 지리적 조건을 어떻게 문화 자산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중국 박물관 입장객 수 추이(단위: 십억 명, 2023~2024년)

물론 경험이 중심이 된 소프트 파워는 중국이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한국의 케이팝은 국내에서 잘 만들어진 문화 상품이 얼마나 폭발적으로 전 세계에 확산될 수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중국도 이를 따라 도시 브랜딩과 음식, 박물관, 문화유산 답사 등에 집중해 이념을 강요하지 않고 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이야기를 확산하도록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나머지는 ‘방문객들이 알아서’

이는 교육 당국도 눈여겨볼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대표적인데 공자학원식의 교실을 흉내 내지 말고 경험을 앞세운 교과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선전(Shenzhen)의 디자인 스튜디오나 난징의 박물관 중국어 과정, 청리(Chongli, 중국 허베이성의 자치구)의 올림픽 개최 후 환경 영향 조사 같은 것들이 있다. 단기에 학점을 취득할 수 있으며 실제 환경에서의 몰입 경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경쟁력 있고 매력적일 것이다.

중국 정부도 문화 기관들과 손잡고 이 기회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박물관 큐레이션 자격증은 취득 후 다방면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선전(propaganda)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고 영향력을 확산할 수 있다. 일대일로(Belt and Road) 장학금도 디지털 유산 보존(digital heritage)이나 영화 제작 등의 분야에 참가자를 모집하는 방식으로 재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중국은 더 이상 세계에 자신의 강의를 들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을 집으로 초대해 거리를 걸어 보고, 음식을 맛보고, 축제를 경험해 보라고 권한다. 메시지를 내보내는 대신 청중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변한 것이다. 이제 중국 밖의 정책당국과 교육계도 중국의 변화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념이 아닌 경험이 소프트 파워의 중심을 이룬다면 어떻게 중국의 공간 안으로 들어가 경험할 것인지와 귀국 후 어떤 이야기를 전할 것인지가 고민의 중심이 돼야 할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From Push to Pull: China’s Soft Power Now Runs on Experiences, Not Institutions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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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대기업 임금체불 급증, ‘영세 업체 전유물’ 통념 깨지며 노동시장 경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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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월 대기업 체불액 244억원 달해
정부 “임금체불은 범죄행위” 규정
‘고용 기반 약화 전조’ 해석 가능

올해 들어 7월까지 국내 사업장에서 발생한 임금체불액이 지난해 전체 체불 규모를 크게 웃돌며 노동시장의 불안정을 드러냈다. 정부는 임금체불을 범죄로 규정하며 법정형 상향을 비롯한 강경 대응 방침을 내놨지만, 정책 집행력과 예방효과를 두고 회의적 시각이 주를 이룬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일시 감소했던 체불이 다시 급증하는 가운데, 폐업과 고용 축소가 동반되며 장기적 일자리 기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단 우려 또한 제기된다.

대기업도 대응 여력 부족

1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 업종별·사업장 규모별 임금체불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임금체불액은 총 1조3,42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조2,261억원보다 1,159억원 증가한 규모다. 사업장 규모별로는 여전히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이 3,833억원으로 가장 많은 체불액을 기록했지만, 중대형 사업장의 체불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1,000명 이상 근로자를 둔 대기업 체불액은 지난해 연간 171억원이었으나 올해는 7월까지만 244억원으로 급증하며 작년치를 크게 웃돌았고, 중견기업 역시 100~300명 사업장 체불액이 1,522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체불액(1,510억원)을 초과했다. 이 같은 추세는 과거 임금 체불이 영세 사업장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세간의 통념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과다.

업종별로는 제조업(3,873억원)과 건설업(2,703억원)이 전체 체불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제조업과 건설업 외에도 운수창고·통신업(1,963억원), 학원·병원 등 기타 업종(1,706억원), 도소매·음식숙박업(1,536억원)에서도 심각한 수준을 보이면서 산업 전반에서 임금 지급 불안이 확산하는 흐름을 보였다. 

임금체불 문제는 단순한 수치 증가를 넘어 현장의 분쟁으로도 직결된다. 2022년 14만4,000여건이던 임금체불 진정은 2024년 18만2,000건으로 급증했고, 같은 기간 관련 고소·고발 건수도 1만800여건에서 1만2,500건으로 늘었다. 불과 3년 사이 4만건 가까운 법적 대응이 추가된 셈이다. 올해 상반기에도 이미 9만7,000여 건이 접수돼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면서 또 한 차례 최고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농후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경기침체와 비용 압박의 직접적 반영으로 본다. 과거 임금체불이 유동성 취약 기업에 집중됐다면, 현재는 고정비 부담이 커진 대형 사업장까지 확산됐단 지적이다. 이는 산업 전반의 체력 저하를 보여주는 신호인 동시에 근로자 생활안정에도 중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 김 의원은 “임금체불은 단순히 청산 여부를 넘어 재발을 막는 예방책이 중심이 돼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가 함께 근본적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법적 처벌 강화 및 근로자 보호조치 확대 추진

정부 역시 임금체불을 ‘절도’와 같은 것으로 보고 강도 높은 제재에 돌입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달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범정부 임금체불 근절 추진 태스크포스(TF)’를 열고 임금체불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체불행위는 임금 절도이자 중대한 경제적 범죄라는 인식이 현장에 확실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임금체불이 발생하는 구조적 원인을 개선해 체불 발생을 원천 차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대책을 보면,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한 법적 제재가 강화된다. 현재 임금체불의 법정형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그치는데, 이를 횡령죄 수준인 5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높인다. 또 3년 내 두 번 이상 체불로 확정 판결을 받아야 공개되는 사업주 명단도 한 번의 판결만으로 가능해지도록 할 예정이다. 명단이 공개된 사업주가 다시 체불을 할 경우,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 형사처벌 불가능)에서 제외된다.

임금체불의 구조적 원인을 막기 위한 법 개정도 추진된다. 일례로 정부는 도급계약 때 임금에 해당하는 몫을 구분해 하청업체에 지급하도록 하는 ‘임금비용 구분 지급 의무’를 근로기준법에 담을 예정이다. 이를 위해 내년 상반기 표준하도급계약서를 보급한 이후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사회적 논의를 거쳐 개정 법을 적용할 업종을 확대할 방침이다.

노동계는 이 같은 정부의 대책 마련이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놨다. 박성우 직장갑질119온라인노동조합 위원장은 “체불사업주에게 임금을 늦게 줄수록 손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며 “지연이자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에도 사업주를 처벌해 체불임금이 신속하게 청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역시 “반의사불벌죄의 전면적·즉시 적용 제외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침체 장기화에 일자리 감소 가능성↑

불과 3년 전만 해도 임금체불 규모는 뚜렷하게 줄어드는 흐름을 보였다. 2019년 1조7,217억 원이던 체불액은 코로나19 확산 직후인2020년 1조5,830억 원으로 8.1% 감소했고, 2021년 1조3,505억 원, 2022년 1조3,472억 원으로 연속 감소세를 그렸다. 그러나 2023년 들어 상황은 급변했다. 당시 임금체불액은 1조7,845억 원으로 전년 대비 32.5% 급증했다. 특히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의 체불액은 2022년 4,533억 원에서 2023년 6,150억 원으로 35.7% 급증, 위기가 취약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했음을 시사했다. 

이 같은 임금체불 추세는 사업체 폐업 통계와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국세청 자료에 의하면 2019년 국내 폐업자 수는 92만2,000곳이었는데, 2020년 89만5,000곳, 2021년 88만5,000곳, 2022년 86만7,000곳으로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이 역시 2023년에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당시 폐업자 수는 98만6,000곳으로 전년 대비 13.7%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임금체불 폭증과 맞물렸다. 이와 함께 사업장 도산·폐업을 사유로 한 체불액 비중 또한 2022년 14.0%에서 2023년 지난해 상반기 18.1%까지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팬데믹 시기 정부 지원이 임금체불을 일시적으로 억눌렀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임금체불 원인분석 및 감소방안 마련’ 보고서에서 “체불 규모와 유의한 상관관계를 갖는 변수는 지역내총생산으로, 경기가 좋을수록 체불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2020년 지급된 고용유지지원금의 효과는 정량적으로 추정하기 어렵지만, 임금체불 억제에 일정한 영향을 준 점은 분명하다”고 짚었다. 이는 팬데믹 시기 일시적으로 급감했던 임금체불은 정부 개입에 따른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전방위적 금융지원이 지속되는 경기침체 국면에서는 그 효과를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체불 문제는 대지급금 지급이나 사업주 제재 강화로 해결할 수밖에 없으며, 소규모 사업장 지원만으로는 지속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사업주의 체불이 불가피한 상황인지 면밀히 따진 뒤, 필요한 경우에만 맞춤형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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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토류 공급망 불안정에 흔들리는 美 제조업, 자립 구상에도 ‘먹구름’

희토류 공급망 불안정에 흔들리는 美 제조업, 자립 구상에도 ‘먹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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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가격 상승→생산 차질 우려 확대
희토류 자립 외치는 미국, 회의론 확산
산업계 불만 고조에 생산기지 이전 논의도

미국의 관세 압박에 맞선 중국이 희토류를 전략적으로 무기화하면서 미국 산업계가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다. 전기차와 방산업 등 핵심 산업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지 못한 채 공급 불안을 호소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비용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의 이전까지 검토하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는 희토류 자립을 핵심 의제로 삼고 현실화를 추진 중이지만, 제련·가공 설비 및 기술 부족 탓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희토류 공급망 불안은 단순 산업계 불만을 넘어 정부가 설계한 산업 전략의 실현 가능성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국면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중국 ‘전략적 압박’ 카드 소기 성과

16일(현지시각) 미국 에너지 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에 따르면 최근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전기차 광물 공급망의 지정학적 혼란과 철강, 알루미늄 등 수입 금속에 대한 관세 확대로 인한 비용 상승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업계의 위기 인식은 주로 희토류 공급망 불안정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철강 관세는 차량당 원가를 수백만 원 올리는 요인에 그치지만, 희토류 병목은 전기차 구동 모터, 전력전자, 센서 등 핵심 부품의 생산 자체를 중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우려는 현실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중국이 올해 초 전기차 모터에 필수적인 중(重)희토류 일부의 수출을 제한하면서 공급 불안이 실물로 전이된 것이다. 미 완성차업계를 대표하는 자동차혁신연합(AAI)은 “공장 가동이 중단될 수 있다”는 내용의 비공개 서한을 트럼프 행정부에 전달했고, 디스프로슘 등 일부 품목은 불과 한 달 새 20%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기업은 수입선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지만, 통관 지연과 허가제 강화 등에 가로막히며 신차 출시 일정까지 늦춰지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방산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사마륨과 게르마늄, 갈륨 등은 군수품 핵심 소재로 쓰이는데, 중국의 수출 통제 강화로 가격과 납기 모두 불안정해졌다. 한 드론 부품 제조업체는 중국 외 공급처를 찾는 과정에서 주문 납품을 두 달가량 연기해야 했고, 또 다른 업체는 사마륨을 평시보다 60배 비싼 가격에 사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국방 소프트웨어 기업 고비니(Govini)의 조사에서는 미 국방부 무기체계에 쓰이는 부품 중 최소 8만 개 이상이 중국산 희토류에 의존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에선 이처럼 높은 중국 의존도가 단기간 내 해소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데 전망이 일치했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중국의 희토류 정련 분야 점유율을 92%로 추정한 바 있다. 이는 미국이 전략 비축 확대와 공급처 다변화, 무희토류 대체 기술 개발 등을 동시에 추진하지 않는다면 동일한 충격이 반복될 것이란 관측을 낳는다. 희토류를 무기로 한 중국의 전략적 압박이 지속되는 한, 미국 제조업은 생산 연속성과 국가 안보를 동시에 위협받는 처지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게 산업계 전반의 시각이다. 

단기 대응책 미비, 자립 목표도 현실화 요원

이에 미국은 희토류 자립을 공식 의제로 올렸다. 그러나 현장 평가와 실무적 제약은 냉정하다. 공급망 전문가인 코리 콤스 트리비움차이나 부국장은 “미국이 독립적으로 희토류 공급망을 구축하려면 최소 1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콤스는 해당 발언에서 중국이 정제·합금 단계에서 보유한 설비와 공정 노하우, 동맹국 간 조정에 필요한 인허가·환경영향평가·주민 수용성 문제, 신규 정제 설비의 대규모 설비투자(CAPEX)와 숙련 인력 확보의 시간 소요 등을 구체적 근거로 제시했다. 즉 ‘10년’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전망이 아니라 인허가·설비투자·기술검증·시범생산 등 실무적 항목을 합한 보수적 산출치인 셈이다. 

이 같은 격차는 양국의 역사적 선택과 산업 정책 차이에서 비롯됐다. 미국은 2002년 캘리포니아 마운틴패스(Mountain Pass)의 정제 시설을 사실상 폐쇄한 이후 정제·합금 역량 재건을 등한시했고, 정제·가공·자석 제조 역량을 대부분 해외에 의존했다. 반면 중국은 핵심광물 탐사에서 채굴·정제·합금·자석 제조·재활용에 이르는 밸류체인을 내재화하며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나아가 2만5,000여 건에 달하는 희토류 관련 특허를 축적하며 제도적 도구로서의 통제를 공고히 하기도 했다.

결국 미국은 정부의 직접 개입을 선언하고 나섰다. 미 국방부는 지난 7월 희토류 채굴·가공 기업 MP머티리얼즈 우선주 인수에 4억 달러(약 5,500억원)를 투입하고, 1억5,000만 달러(약 2,000억원) 대출을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동시에 고출력 자석의 핵심 소재인 네오디뮴·프라세오디뮴(NdPr)에 대해 kg당 최소 110달러의 가격을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올해 2분기 평균 시세였던 52달러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으로, 시장 가격이 바닥을 향해 떨어져도 투자 리스크를 줄여주는 ‘수요 앵커’를 정부가 직접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미 국방부가 민간 기업의 설비 확충을 단순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 지분을 보유하고 장기 가격까지 보장하는 것은 MP머티리얼즈의 사례가 처음이다. 이는 군수품 공급망을 민간 계약에만 의존하지 않고, 국가 차원에서 안전판을 깔아놓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다만 공급 물량과 실제 스펙, 정제 효율에 관한 구체적 수치는 공개되지 않아 미국 내 대규모 자동차·방산 수요를 단기간에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는 평가 또한 이어지는 실정이다. 

정책과 산업계 전략 간 괴리 심화, 내부 불만 증폭

공급망 불안정으로 인한 생산 차질이 실제 가동 중단으로 이어지면서 미국 내 제조업계의 불만도 쇄도하는 상황이다. 특히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일부 완성차 업체들은 미완성 전기모터를 중국으로 보내 자석만 부착한 뒤 역수입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는 전언이다. 중국 내 생산 기지를 활용하는 것이 단기적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두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이 희토류 앞에서 되레 중국 의존을 강화하는 역설적 결과로 이어지는 모양새”라고 평가했다. 

중국발 희토류 수출 통제가 불러온 불만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자동차부품협회(CLEPA)는 “4월 이후 회원사들이 제출한 수백 건의 희토류 수출 허가 신청 중 4분의 1만 승인됐다”면서 “중국 내 일부 지역 당국은 지식재산권 및 고객 명단까지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일본 스즈키 역시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소형차 ‘스위프트’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산업계가 관세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중국 현지 조달을 검토하는 배경에는 이와 같은 글로벌 차원의 생산 중단 위험이 깔려 있는 셈이다.

이는 다시 미국 정부가 추진해 온 ‘리쇼어링’ 전략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제조업의 국내 회귀를 명분으로 고율 관세 정책을 밀어붙였지만, 정작 기업들은 라인 가동을 위해 중국 내 역조립이나 생산기지 이전을 논의하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작금의 희토류 공급망 불안은 개별 기업의 위기 대응 차원을 넘어, 미국이 설계한 산업정책 자체의 실현 가능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산업계의 불만이 단순한 원성을 넘어 냉철한 현실 진단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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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 무역협상 교착 상태, 빠른 타결보다는 '전략적 지연' 필요해

韓·美 무역협상 교착 상태, 빠른 타결보다는 '전략적 지연'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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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 대미 펀드 투자 방식 두고 이견
美 입장 수용 시에는 제조업 붕괴 우려
中, 지연 전략으로 11월까지 관세 유예

한·미 무역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우리 정부는 3,500억 달러(약 486조원)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의 세부 이행 방식을 두고 미국과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투자 구조와 수익 배분 등에서 '일본식' 방식을 요구하는 반면, 우리 정부는 환율 방어와 제조업 붕괴 가능성을 제기하며 수용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빠른 합의가 반드시 국익을 보장하지 않는 만큼, 충분한 검토와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韓·美 무역협상, 최종 타결 이뤄지지 않아

16일(이하 현지시각)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워싱턴DC에서 카운터 파트너인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회동했다. 지난 11~14일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만난 데 이어 연달아 고위급 협상을 이어간 것이다. 양국은 지난 7월 30일 새로운 무역협정을 체결하기로 큰 틀에서 합의했으며, 지난달 25일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이를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세부 이행 사항을 두고 양측이 이견을 보이면서 최종 타결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특히 양국은 한국의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와 관련해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하고 이행하느냐를 놓고 이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달러 현금을 한국에서 받아 미국이 투자처를 결정하고, 투자금 회수 이후에는 투자 이익의 90%를 가져가는 일본식 합의를 요구 중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 이러한 방식이 국가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 본부장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며 "디테일을 갖고 치열하게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약속한 대미 투자 펀드 3,500억 달러 외에 국내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1,500억 달러(약 210조원)를 합해 총 5,000억 달러(약 690조원)를 미국에 투자할 경우 외환위기는 물론 국내 산업 공동화까지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한 카드로 미국 측에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제한했지만, 이것이 설사 현실화하더라도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낮출 수는 있어도 국내 제조업의 붕괴는 막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로 대미 해외직접투자(FDI)가 급증한 2015~2024년에 국내 제조업 고용 비중과 부가가치 비중이 동시에 감소했다.

조지아 주 韓 근로자 구금 등 압박 수위 높여

이런 가운데 양국 간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지난 4일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은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조지아 주 합작 공장을 급습해 300여 명의 한국인 근로자를 체포·구금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강한 유감을 표명했고, 구금된 이들은 8일 만에 석방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ICE가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지만, 시점과 맥락을 고려할 때 관세 협상에 대한 의도적인 압박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11일에는 러트닉 장관이 "한국은 협정을 수용하든지, 아니면 25%의 관세를 내야 한다"며 "더 이상의 유연성은 없다"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미국과의 협상에 성급하게 대응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빠른 타결이 반드시 국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닌 만큼 전략적 지연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과거 미국은 전통적 우방인 일본에도 자국 우선주의를 관철시킨 바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85년 플라자 합의다. 당시 미국은 대일 무역 적자가 급증하자 엔화 가치를 강제로 끌어올리는 조치를 취했다. 이후 엔화 가치는 달러 대비 50% 가까이 상승해 일본의 수출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일본 정부가 저금리 정책으로 대응했지만, 이는 과도한 유동성을 유발해 주식·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키는 '버블 경제'로 이어졌다.

1986년과 1991년의 미·일 반도체 협정도 치명적이었다. 일본 반도체업계는 외국 업체에 시장 점유율 20%를 보장하고, 미국이 정한 가격 규제를 따르는 조건을 수용해야 했다. 그 결과 1980년대 세계 시장 절반을 점유했던 일본 반도체 산업은 한국과 대만에 밀려 주도권을 상실했다. 지난 4일 타결된 미·일 무역협상 결과를 두고도 일본 내에서는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5,500억 달러(약 760조원)에 이르는 대미 투자의 운용 권한을 미국이 가지고 있는 데다 미·일 펀드가 상환하지 못하면 일본 국책 금융기관이 대신 상환해야 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블룸버그 "美·中 협상, 장기간 휴전에 돌입"

대미 협상에서 손해를 본 일본과 달리 중국은 지연 전략을 활용해 유리한 위치를 확보했다. 자국의 소비시장과 공급망 경쟁력, 희토류 수출 통제 등 강경한 비관세 장벽을 협상 카드로 사용하며 협상력면에서 사실상 미국을 앞섰다는 평가다. 트럼프 행정부가 정치적·안보적 문제를 카드로 내세워 포괄적 합의를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은 일부 사안과 관련해 단기적 조치에만 합의하면서 자신의 페이스대로 협상을 이끌고 있다. 더욱이 협상 기간 동안 미국이 관세 조치를 11월까지 유예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기존의 관세가 유지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장기간 휴전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 합의를 이뤄내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하며 무역협정 타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지만,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와 달리 미국과의 무역 합의를 서두르는 데 총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그보다는 자국의 협상 능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협상을 지연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양국이 장기간 지속 가능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특히 중국은 미국 기업이 중국 소비시장과 핵심 산업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어렵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최근 중국 규제당국은 미국 반도체 기업을 상대로 반덤핑 조사를 시작하면서 이러한 의지를 더욱 분명히 했다. 엔비디아 반도체에 보안 문제를 이유로 들어 자국 기업들에 구매를 자제하도록 촉구한 데 이어진 조치다. 미국산 반도체를 수입하지 못할 경우 중국 제조산업 및 인공지능(AI) 기업도 타격이 불가피하나, 자국의 기술 및 생산 능력으로 이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러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적 상황도 미국이 불리하다. 지난달 미국의 고용 및 투자 지표가 악화하면서 트럼프 정부 정책의 악영향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미국 여론조사도 트럼프 대통령에 점차 불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며 "이는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불안감을 더하는 요소일 수밖에 없다"고 바라봤다. 미국 대법원이 항소법원의 판결을 인용해 상호관세 정책에 대한 위법 판결을 내놓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분석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무역 합의를 긍정적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일이 시진핑 주석보다 더 다급한 처지에 놓여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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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 늪에 빠진 중국” 국채금리 9개월來 최고치, 통화+재정 부양책 주목

“디플레이션 늪에 빠진 중국” 국채금리 9개월來 최고치, 통화+재정 부양책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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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뜨거워지며 채권시장 매력 식어
인민은행 채권 매입 재개할까 관심
5% 경제 성장률 장담 못해, 정부 부양책 주목

중국 국채 시장이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압력 속에서 요동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이 조만간 국채 매입을 재개해 유동성을 확대할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하면서 채권 수요가 위축되는 양상이다.

10년물 국채 수익률 급등

1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의 벤치마크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5개월 만에 최고치인 1.806%로 상승했다. 이는 지난 3개월 동안 17bp(베이시스 포인트) 하락한 것과 대조된다. 반면 CSI 300 주가지수는 같은 기간 17% 상승하며, 투자자들이 채권보다 주식에서 더 큰 수익을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투자자들이 중국 채권 시장에서 이탈한 데는 중국 인민은행이 지난 1월 이후 중단했던 시장 개입을 재개할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싱자오펑 호주뉴질랜드은행(ANZ) 중국 담당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인민은행이 5년물 국채를 중심으로 거래를 재개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채권시장이 안정되고 있다”며 “이르면 이번 달 중으로 매입이 시작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 증권시보 역시 애널리스트 인터뷰를 인용해 “인민은행의 채권 매입 재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중국 채권시장은 증시로 자금이 쏠리며 투자 심리가 위축된 상태다. 지난 6월 말 이후 10년물 국채 금리는 약 25bp(1bp=0.01%포인트) 상승했다. 30년물 국채 금리도 2.1%대까지 오르며 지난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상태다. 특히 지난주 초에는 성과보상 중심의 뮤추얼펀드 수수료 개편안이 제안되면서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떨어지는 채권 투자 수요가 더 위축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이런 상황에서 인민은행이 다시 채권을 매입할 경우,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최근 국채 금리 상승이 정부의 조달 비용을 증가시키고 있는 만큼, 정책 당국 역시 그 필요성이 커졌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유동성 관리를 위한 새로운 통화정책 수단으로 채권 거래를 도입했다. 인민은행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5개월 연속 순매입을 진행했지만, 1월 이후 매입을 중단한 상태다.

하반기 경제 둔화세 뚜렷

통화정책에 더해 재정 투입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중국 경제지표가 하반기 들어 뚜렷한 둔화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8월 산업생산은 전년 동월 대비 5.2% 증가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 5.7%를 밑돈 것이자, 전월 증가폭(5.7%)보다도 낮다. 중국의 산업생산 증가폭은 올해 3월 7.7%로 정점을 찍은 후 꾸준히 둔화하는 추세다. 8월 증가폭은 지난해 8월(4.5%)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소매판매도 3.4% 늘어 지난해 11월(3.0%) 이후 최저 증가폭을 기록했다. 시장 예상치(3.8%)와 전월 증가폭(3.7%)을 모두 밑돌았다. 산업·소비 지표가 부진한 이유는 지난달 폭우·폭염 등 계절적 영향과 함께 대내외 수요가 줄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8월 중국 수출액(달러 기준)과 수입액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4.4%, 1.3% 증가해 전월(7.2%, 4.1%)보다 크게 둔화했다.

올해 1~8월 고정자산 투자 역시 전년 동기 대비 0.5% 증가에 그쳐 시장 예상치(1.5%))와 1~7월 증가폭(1.6%)을 크게 밑돌았다. 특히 올해 누적 고정자산 투자 증가폭은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다. 3월 4.2%에서 5월(3.7%) 3%대까지 떨어졌고 6월 2.8%, 7월 1.6%로 급락하더니 8월에는 0%대까지 떨어졌다. 최근 중국 내에서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자를 제한하는 기조가 작용하면서 고정자산 투자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디플레이션 압력 '지속'

생산자 출고가격(PPI) 지표는 더욱 심각하다. PPI는 2022년 10월 -1.3%를 기록하면서 첫 마이너스 성장을 나타냈다. PPI는 그 후로 단 한 번도 플러스 전환을 하지 못한 채 마이너스만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7월까지 중국의 PPI는 무려 34개월 동안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물가 하락이 이어지는 만큼 중국의 공업 이익 역시 약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의 공업 기업 순이익은 2.3% 감소했고, 지난해 공업 기업의 순이익은 3.3% 감소했다. 올해 6월까지 누적 공업 기업 순이익은 전년 대비 1.8% 감소했는데, 6월 한 달의 공업 이익은 4.3% 감소했다. 3년 연속 감소세다.

모건스탠리는 보고서에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중국의 하반기 성장률이 4.5% 미만으로 둔화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중국의 디플레이션 상황은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오히려 하반기 들어 미국의 상호 관세로 인해 외부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수출 수요가 감소하면 수출 기업들은 제품을 내수로 돌릴 것인 만큼, 이는 추가적인 물가 약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UBS는 수출 선행 효과가 약화하고 관세 압박이 커지면 하반기 수출이 약화, 중국의 하반기 대미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24%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디플레이션이 심화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통신은 “실망스러운 지표로 인해 경제학자들은 정책 입안자들이 연간 성장률 목표인 ‘약 5%’를 달성하기 위해 더 많은 단기 재정 지원이 필요한지 의견이 분분하다”고 보도했다. 중국 내부에서도 하반기 경제 성장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부양책 발표는 시간 문제로 보고 있다. 중국 동하이증권의 밍다오위 연구원은 “정책적인 관점에서 올해 양회와 정치국 회의에선 보다 적극적인 재정 정책과 적당히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강조했다”면서 “외부 충격과 내수가 지속적으로 둔화하면 3분기 말과 4분기 부양 정책을 계속 내놓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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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디지털 자산 모두 제어 필요” 한국은행 총재의 신중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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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금리·코인’ 두 가지 핵심 메시지 정리
부동산 시장 장기 안정성 확보 논리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한계와 과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8월 28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대학 특강에서 금리만으로는 부동산 가격을 억제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며 기준금리 2.50% 동결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는 정부가 연속적인 대출 규제와 공급 확대로 투기 심리를 꺾으려는 기조와도 맥락이 닿는 발언으로, 단기적인 경기 부양보다 근본적 해법에 초점을 둔 그의 철학을 드러낸다. 또 이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역시 국제적 수요와 제도적 기반이 부족하다며 ‘G2’ 담론을 공포마케팅으로 일축했다. 시장 전문가들 역시 원화 역외거래 허용, 단기 국채 도입 등 구조적 과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실질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데 이 총재와 전망이 일치했다. 

금리·통화정책 전반에 일관된 관점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총재는 전날 서울대에서 열린 ‘통화정책과 구조개혁’ 특강에 강연자로 섰다. 이 자리에서 이 총재는 “금리로는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없다”면서 “금리 0.25%p” 인하를 한두 달 미뤄도 경기를 잡는 데는 큰 영향이 없겠지만, 금리 인하 시그널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더 고생한다”고 말했다. 7월에 이어 지난달도 기준금리를 2.50%로 동결한 것은 일방적인 유동성 공급으로 부동산 시장 불안정을 야기하지 않겠다는 철학에 따른 결정이란 의미다. 

이번 발언으로 이 총재는 단기적 경기 부양보다 시장 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드러내며 금리 정책의 한계를 분명히 했다. 섣부른 금리 인하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면, 투기적 수요를 자극해 시장 불안정을 키울 것이란 경계심에서다. 이는 금리 등 통화 정책이 경기 흐름을 조절하는 데 단기적으로 일정 역할을 하더라도 부동산과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부족하다는 그간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이 총재는 이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논의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생기는 이익은 잘 안 보이는데, 기존 화폐제도를 흔드는 면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원화를 기초로 한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기반의 시장 침투를 막아내거나 한국을 새로운 발행 축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일부 주장은 사실상 근거가 부족하다고 반박했다. 이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든다고 달러 스테이블코인 침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짚으며 “우리가 먼저 발행하면 ‘스테이블코인 G2(주요 2개국)’가 될 수 있다는 말은 공포마케팅에 가깝다”고 일갈했다. 

나아가 이 총재는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 둔화와 구조개혁 필요성도 함께 언급했다. 그는 한은이 지난달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9%로 제시한 것에 대해 “위기 상황이라기보단 잠재성장률이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재정·금융정책만으로는 구조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정치적 리더십에 기반한 근본적인 개혁 추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결국 이 총재의 메시지는 금리나 스테이블코인 같은 단기적 변수에 집착하기보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개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에 방점이 찍혀 있다.

투기 억제·공급 정책이 관건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 또한 이 총재의 통화정책 철학과 궤를 같이한다. 이 총재가 금리만으로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담보할 수 없다고 강조한 것처럼, 정부 역시 투기 심리를 꺾고 공급 기반을 확충하는 직접적 수단에 초점을 맞췄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11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대책을 낼 수밖에 없다”고 밝히며 대출 규제, 전세제도 개편, 주택공급 확대를 연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금리정책보다 구조적 해법을 중시하는 접근으로, 시장 안정화에 대한 중앙은행과 행정부의 인식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앞서 정부는 6·27 부동산 대책을 통해 수도권 및 규제지역 주택담보대출 상한을 6억원으로 제한하고, 생애 최초 대출의 담보인정비율(LTV)을 기존 80%에서 70%로 낮췄다. 여기에 6개월 내 전입 의무와 전세대출 보증비율 90%에서 80%로 축소하는 등 세부적 장치를 병행했다. 이후 불과 두 달여 만에 나온 9·7 대책에서는 오는 2030년까지 수도권에 135만 호를 신규 착공하겠다는 대규모 공급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단기 수요 억제와 중장기 공급 확충을 동시에 겨냥한 투 트랙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금융위원회는 전세대출 한도를 일괄 2억원으로 낮추는 조치를 발표했다. 기존에는 보증기관별로 2억~3억원 사이로 제각각이었으나, 이를 단일화하면서 수도권 1주택자 약 5만2,000명 중 1만7,000여 명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평균적으로 약 6,500만원씩 대출 여력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전세자금 조달 구조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조치다. 아울러 규제지역 내 주택담보대출의 LTV 상한을 기존 50%에서 40%로 낮추면서 고가 아파트 중심의 과열 수요를 직접 겨냥했다. 

다만 이 같은 조치에도 부동산 가격 상승세는 여전히 지속 중이다. 9월 둘째 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09% 상승해 오름폭이 확대됐으며, 강남·서초·용산 등 핵심 지역의 가격 상승세 역시 뚜렷해 규제만으로는 불안 심리를 진정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확대, 토지거래허가제 강화 등 추가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는 상황이다. 결국 이 총재가 강조한 바와 같이 금리 신호에만 의존하기보다는 투기 세력과 건설사의 기대를 꺾고, 공급 정책을 통한 구조적 해법을 병행해야 한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지는 형국이다. 

해외 수요 부족·역외거래 제한 등 근본적 제약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해서도 이 총재의 시각은 시장과 전문가 평가에 힘을 얻는다. 그는 “국내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서둘러 발행해도 달러 기반 흐름을 바꾸기 어렵다”는 취지로 선을 그었는데, 최근 논의의 초점 역시 ‘통화 실험’ 자체가 아닌 원화의 기초 체력과 시장 인프라에 맞춘 단계적 접근에 있다. 외환·채권 인프라가 취약한 상태에서 발행을 서두르면 기대 대비 실효가 낮고, 준비자산 관리와 페깅(가치 연동) 유지 과정에서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계심에서다. 국내 결제 편의 개선이라는 단기적 명분에도 불구하고 역외에서 원화 유통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으면 대외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은 이러한 시각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12일 발간한 ‘지니어스법 통과와 스테이블코인: 국제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성공 여부는 결국 원화의 국제 경쟁력에 달려 있다”고 전제하면서 “원화의 역외 거래를 점진적으로 허용하고 단기 국고채를 도입하는 등 외환·채권시장의 인프라 선진화를 이뤄야 한다”고 진단했다. 준비자산 요건을 충족하려면 고유동성 단기채를 충분히 확보해야 하고, 역외 유통 창구가 열려 있어야 글로벌 결제·헤지 수요를 흡수할 수 있다는 논리다. 

KIEP는 “2024년부터 해외 소재 금융기관의 국내 외환시장 참여가 가능해지고 거래 시간이 연장되는 등 부분적 개편이 진행 중”이라면서도 “역외 허용의 범위를 넓히고 단기 국고채 도입 제약을 풀어야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나아가 “디지털자산 규율의 법제화, 발행사의 정보 공시·회계감사 의무, 자본·유동성 규제와 정기 스트레스 테스트 등 거시건전성 감독 장치를 병행해야 ‘코인런(대규모 인출 사태)’이 금융시장 전반으로 번지는 전이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민간 컨퍼런스에서 제기된 시각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피터 정 프레스토 리서치센터 수석 연구원은 10일 서울 강남구 슈피겐HQ 슈피겐홀에서 열린 ‘비트콘 서울 2025(BTCON SEOUL 2025)’에서 한국이 스테이블코인을 확산하기 위한 방안으로 원화 활성화를 강조했다. 그는 “블록체인 상에서 통용되는 자산은 전 세계가 원하고 신뢰하는 자산이어야 한다”며 “현시점에서 달러와 금 정도만이 그 기준을 안정적으로 충족한다”고 평가했다. 정책 일관성과 시장 신뢰가 확보될 때 비로소 국내 결제 보완재를 넘어 역외 수요까지 아우르는 실질적 확산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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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틱톡 매각 합의했지만 무역 협상은 여전히 난제 산적

美·中, 틱톡 매각 합의했지만 무역 협상은 여전히 난제 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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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 미·중 고위급 무역 협상 마무리
틱톡 매각·트럼프 방중 등 중점 논의
펜타닐·러시아산 원유 수입 등도 현안

미국과 중국이 최근 열린 고위급 무역 협상에서 틱톡의 미국 내 사업권 매각과 관련해 사실상 합의에 도달했다. 그러나 러시아산 원유 수입, 펜타닐 유입,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 등 민감한 현안이 여전히 남아 있어 협상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양국의 정치적 상황이 맞물리면서 최종 합의에 도달하기까지 난항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무역협상 잘 진행되고 있어"

16일(이하 현지시각)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진행한 중국과의 무역 협상과 관련해 "회담이 거듭될수록 생산적으로 되고 있다"며 "중국도 이제 무역 합의가 가능하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미·중 무역협상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는 전날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유럽에서 열린 미국과 중국 간 대규모 무역 회담은 매우 잘 진행되고 있다"며 "곧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 ‘해방의 날(Liberation Day)’ 조치를 통해 전 세계 교역국에 고율 관세를 발표하면서 중국에 대해서는 최대 145%의 관세를 예고했다. 이후 양국 협상이 재개되면서 한 차례 관세를 유예했고, 당초 지난달 12일 종료 예정이던 유예 조치는 다시 11월 10일까지 연장됐다. 지난 14~15일 진행된 미·중 협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도입 이후 4번째로 진행된 고위급 무역 협상으로 관세 현안과 틱톡 매각과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틱톡 매각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미국 젊은이들이 간절히 원하던 특정 기업에 대해 합의가 이뤄졌다"며 "그들이 매우 기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는 1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할 예정이며 양국 관계는 여전히 매우 강력하다"고 강조했다. 베선트 장관도 “트럼프 대통령이 서비스를 중단할 의지가 있음을 확인하자 중국도 합의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며 틱톡 매각과 관련해 양국이 사실상 합의에 이르렀음을 시사했다.

틱톡 매각 시엔 美 중심 이사회 구성

틱톡 매각 문제는 애초부터 협상의 최대 뇌관으로 지목돼 왔다. 지난해 미 의회는 '외국의 적이 통제하는 앱으로부터 미국인을 보호하는 법(틱톡금지법)'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은 틱톡의 모회사인 중국 바이트댄스를 겨냥한 것으로, 이들이 보유한 앱의 미국 내 사업권을 매각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초 매각 시한은 오는 17일이었으나, 지난 16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12월 16일까지 추가 연장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다만 틱톡 매각과 관련해 양국 간 최종 합의가 임박한 만큼 매각 시한 연기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합의가 성사될 경우 미국 투자자의 지분 비중이 80%로 확대되고, 중국 투자자가 나머지 지분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새로운 미국 법인의 이사회는 미 정부가 임명한 인사 1명을 포함해 미국인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오라클이 텍사스에 있는 자사 데이터센터에서 미국 사용자 데이터를 관리할 예정이다.

여러 사안 얽혀 일괄 타결 어려울 듯

틱톡 매각 문제는 실마리를 찾았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여전히 풀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 또 난제 중 하나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에 공식 서한을 보내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중단하고, 중국을 비롯한 수입국에 50~10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중국은 러시아 원유를 에너지 안보의 핵심 자원으로 간주하고 있어 이 사안에서 양보할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이와 함께 미국은 중국에 펜타닐 불법 유입 차단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중국 업체들이 펜타닐 전구체를 멕시코 등지로 공급해 미국 내 마약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해 왔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 내 수요가 근본 원인”이라며 책임을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의 희토류 수출 재개 지연,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겨냥한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 등 민감한 현안이 얽히면서 이번 협상도 난항이 불가피하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전문가들은 협상 진전이 더딘 가장 큰 이유로 ‘양측의 계산법 차이’를 꼽는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 가시적 성과가 필요하다. 제조업·농업 기반의 지지층을 의식하면 관세 완화와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 확대가 절실하다. 반면 중국은 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블룸버그통신은 "서로 다른 성격의 사안이 얽혀 있어 일괄 타결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중국은 시간을 끌면서 미국 내부의 정치적 압박을 활용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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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보급형 RGB LED TV ‘기대 이상’ 평가, 삼성전자 ‘20년 왕좌’ 빨간불

中 보급형 RGB LED TV ‘기대 이상’ 평가, 삼성전자 ‘20년 왕좌’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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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석우 사장 “RGB 미니 LED TV 출시 계획 없다”
중국 RGB 미니 LED 화질 기대 이상, OLED에 근접
고급화 택한 삼성전자 TV 전략 차질 우려
지난 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IT 전시회 ‘IFA 2025’의 삼성전자 전시관에서 삼성전자 모델들이 115형 RGB 마이크로 LED TV를 소개하고 있다/사진=삼성전자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중국의 추격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특히 TV 분야에서 RGB 미니 LED를 앞세워 프리미엄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잠식하고, 패널 분야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점유율을 끌어올려 한국 기업들을 몰아 붙이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TV 시장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RGB LED TV에서 중국과의 보급형 경쟁을 포기하고 하이엔드 라인업으로 대응에 나설 예정이지만, 최근 중국 기업들이 선보인 RGB 미니 LED TV가 기대 이상의 평가를 받으면서 이 같은 고급화 전략이 무색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 RGB LED TV '하이엔드 라인업'으로 중국과 차별화

17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용석우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사장은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IT 전시회 ‘IFA 2025’에서 중국 가전 기업들이 쏟아내고 있는 RGB 미니 LED TV의 대응 전략에 대해 “RGB 미니 LED TV를 내놓는 방식으로 정면 대결할 계획은 없다”며 “RGB LED TV는 하이엔드 라인업으로 인치수를 다양화하는 방식으로 고급화 전략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RGB LED TV는 LCD 패널과 적(R)·녹(G)·청(B) 컬러필터를 적용하는 기존 LCD TV 구조를 골격으로 한다. 외부 광원이 필요한 ‘비(非)자발광’ 제품으로, 후면광원(백라이트유닛·BLU)으로 RGB 발광다이오드(LED)를 사용한 것이 백색 LED 후면광원을 적용하는 기존 미니 LED-LCD TV와의 차별점이다. RGB LED를 후면광원에 사용하면 백색 LED를 사용할 때보다 색재현율과 명암비를 높일 수 있다.

RGB LED TV는 LED 소자의 크기와 집적도에 따라 하이엔드급인 마이크로 LED와 그보다 저렴한 가격대의 미니 LED로 나뉜다. 중국 기업들은 미니 LED를 기반으로 한 RGB 미니 LED TV를 내놓으며 보급형 시장을 공략 중인데, 삼성전자는 이를 피해 마이크로 LED 방식으로 하이엔드 전략을 구사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115인치 크기의 RGB 마이크로 LED TV를 출시했으며, 미국에서도 곧 출시할 예정이다. 이후 75인치, 85인치, 그리고 98인치 모델 등의 다양한 크기로 제품군을 출시하는 것과 동시에 글로벌 주요국에도 순차적으로 판매할 계획이다.

‘IFA 2025’에서 중국 하이센스가 전시관 맨 앞줄에 배치한 'The RGB-Mini LED TV 116" UX'/사진=하이센스

중국, 정부 지원 앞세운 RGB 미니 LED로 추격 가속

삼성전자가 라인업을 수정한 이유는 명확하다. 중국 업체들이 보급형과 중저가형을 넘어 프리미엄 시장까지 빠르게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기능, 구독 서비스, OLED 전환, 초대형 화면 등 다양한 기술을 내세워 프리미엄 전략을 지켜왔다. 이런 차별화 전략 덕분에 중국이 LCD 중심으로 보급형 시장을 확대하는 동안 프리미엄 시장만큼은 지켜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판도가 달라졌다. 중국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과 규모의 경제만으로 프리미엄 시장 점유율까지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실제 이번 IFA 2025에서도 중국 기업들은 진일보한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세계의 눈을 집중시켰다. 먼저 세계 TV 시장 점유율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바짝 뒤쫓고 있는 하이센스는 지난 7월 출시한 RGB 미니 LED TV를 전시하며 ‘RGB 미니 LED TV의 근본’, ‘세계 최대 크기인 116인치’ 등의 문구를 새겨넣었다. 전시관 중앙에는 2026년에 열릴 북중미 피파 월드컵 후원사로서 ‘하이센스·피파 공식 후원존’을 설치해 축구 경기를 연이어 송출하며 선명한 색감 구현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이센스는 언론인들과 관계사를 대상으로 연 간담회에서도 RGB 미니 LED TV를 중점적으로 홍보하며 ‘세계 최대 크기’와 ‘에너지 고효율’을 강조했다. 대니스 리 하이센스 비주얼테크 CEO(최고경영자)는 “AI로 헤일로(광륜·햇무리) 현상을 60% 가량 줄이고 밝기를 20% 증가시키는 한편, 블루라이트도 42% 감소시켰다”며 “수많은 회사가 RGB LED TV를 시도했지만 대중 생산에 실패했지만 하이센스는 칩셋 기술을 통해 성공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중국 가전기업 TCL 역시 163인치 RGB 미니 LED TV를 행사장 중앙에 설치해 크기와 규모로 압도했다. TCL 관계자 측은 2,488만 개 LED와 최대 밝기 1만 니트(nit)를 구현했다고 강조했다. 크기와 스펙으로 압도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스콧 라미레스 TCL 부사장은 “TCL은 RGB 미니 LED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며 “최신 TV엔 초고출력 LED 칩을 탑재한 데다 정밀한 빛 제어를 위해 응축 렌즈와 광학 설계 기술을 적용했다”고 했다. 이를 앞세워 TCL은 지난해 북미 시장에서 TV 제조사 중 시장 점유율을 가장 많이 늘렸다고도 강조했다.

현재 중국은 미니 LED를 OLED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 기술로 앞세우고 있다. 로컬 디밍 존을 활용해 블록 단위로 밝기를 조절하며 기존 LCD의 한계를 보완하고, 명암비를 개선해 OLED와 화질 경쟁을 시도하는 방식이다. 특히 정부 보조금과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생산량을 빠르게 늘리면서 시장 장악을 가속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RGB LED TV가 OLED의 우수성을 뛰어넘긴 힘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시장 수요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RGB LED TV는 OLED TV보다는 성능이 다소 떨어지지만, 미니 LED TV보다는 우월한 만큼 가격대도 그 중간 지점에 형성될 전망이다. 프리미엄 TV를 구매하고 싶지만 OLED TV는 너무 비싸 망설이던 소비자를 겨냥해 만든 절충안이 RGB LED TV인 셈이다.

글로벌 1위 위태, 내년 중국에 왕좌 내줄 수도

이에 삼성전자는 하이엔드 시장 공략을 통해 중국 기업들과 기술 격차를 벌리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나, 시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초프리미엄 제품 특성상 가격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전자의 115인치 크기의 RGB 마이크로 LED TV 가격은 4,490만원으로, 기술적으로 더 우위에 있는 OLED TV보다도 가격이 높다. 게다가 판매 지역도 미국과 한국으로 국한돼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중국 경쟁사들이 RGB 미니 LED TV의 화질을 꾸준히 개선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결과적으로 보급형 시장뿐만 아니라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RGB 마이크로 LED TV가 RGB 미니 LED TV에 비해 4~5배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기술적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중저가 TV뿐 아니라 고가형 TV 시장마저 잠식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글로벌 1위 자리도 위태롭게 할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는 2006년 TV부문에서 글로벌 판매 1위를 달성한 이후 19년 동안 한 번도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지속적인 기술·디자인 혁신과 자사 다른 기기와의 호환성 등 생태계 전략을 기반으로 기술과 브랜드 양면에서 경쟁사 대비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삼성전자가 중국 기업에 왕좌를 내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속속 나오고 있다. 디스플레이 시장조사기관 유비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TV 출하량은 2020년 5,000만 대에서 지난해 3,000만 대 중반으로 감소했으며, 내년이면 하이센스가 삼성전자를 앞지르고 2028년에는 TCL도 삼성을 능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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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테크] AI 시대 교육, 핵심은 사고력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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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기와 AI 확산, 학생들의 집중력·사고력 위협
통제만으로는 부족, 사고 과정을 평가하는 학습 필요
AI는 정답이 아닌 피드백 보조로, 교육은 사고 중심 전환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Research Memo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22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 따르면, 하루 1시간 이내로 디지털 기기를 여가용으로 사용한 학생들의 수학 점수는 하루 5~7시간을 사용한 학생보다 평균 49점 높았다. 사회·경제적 배경을 고려해도 표준편차 절반에 해당하는 큰 차이다.

이처럼 디지털 기기 사용 습관이 학업 성취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청소년의 인공지능(AI) 활용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10대의 26%가 과제 수행에 챗GPT를 사용한다고 답했으며, 2023년보다 두 배 증가한 수준이다. 손쉽게 답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이 확산되면서 학생들의 집중력과 학습 태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그러나 핵심은 단순히 기계와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일상화된 환경에서 학교 과제가 사고 과정을 충분히 요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진=ChatGPT

빗나간 논쟁

AI가 학생들의 사고력을 약화시키는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논쟁의 초점은 잘못 맞춰져 있다. 진짜 문제는 과제가 지나치게 단순해져 프롬프트 입력만으로 답이 완성되는 구조다. 이런 경우 더 이상 사고력을 요구하는 과제라 보기 어렵다. AI는 기억과 정리, 심지어 판단까지 대신 수행하며 학습의 본질을 약화시킨다.

2023년 vs 2025년: 미국 10대의 학교 과제 ChatGPT 사용 비율(단위: %)
주: 연도(X축), 사용 비율(Y축)

실제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확인됐다. AI의 답변이 사실과 달라도 사람들은 주변 단서를 무시한 채 그대로 수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학생 개인의 한계가 아니라, 속도와 정답을 우선하는 환경이 낳은 결과다. 따라서 단순한 차단보다는 사고 과정을 드러내고 검증할 수 있는 수업 설계가 필요하다.

정보 환경의 변화도 학습 방식을 흔들고 있다. 구글이 제공하는 AI 요약을 읽은 뒤 추가 검색을 중단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런 ‘즉답 습관’은 교실에서도 나타난다. 문제는 학생들의 태도가 아니라, 초안 작성과 수정 과정을 요구하지 않는 과제 구조다. 하지만 학습의 핵심은 바로 그 과정을 반복하며 사고를 다듬는 데 있다. 결국 과제의 성격을 바꾸지 않는 한, 피상적 학습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AI 요약 유무에 따른 추가 검색 클릭률 차이
주: AI 요약 없음(15%), AI 요약 있음(8%)

휴대전화 통제의 한계

네덜란드와 영국은 학교에서 휴대전화 규제를 강화한 이후 학생들의 집중력이 개선됐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성적 향상이나 정신건강 회복 효과는 뚜렷하지 않았다. 방해 요인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학습 성취를 높이는 데까지는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휴대전화 금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챗봇이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유지되는 한 근본 문제는 해소되지 않는다. 단순 통제는 일시적 효과에 그칠 뿐, ‘정답 맞추기식 과제’라는 구조적 한계를 해결하지 못한다.

인지적 마찰의 필요성

학교를 기술을 배제한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교실을 사고 친화적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지적 마찰’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쉽게 얻은 정답에는 불편함을, 사고 과정을 거친 답변에는 보상을 부여하는 구조가 효과적이다.

예컨대 과제를 시작하는 첫 10분 동안은 계획, 주장, 반증 실험 두 가지를 손 글씨나 칠판에 기록하도록 한다. 이후 AI 활용은 가능하더라도 학습의 기초 토대는 학생 스스로 제시해야 한다. 실제 시범 운영에서는 답안의 획일성이 줄고 토론의 깊이가 늘어났다.

과제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단순 답변 대신 세 가지 반론과 그 근거를 제출하게 하고, 자료는 서로 독립된 출처 두 곳과 하나의 자료 집합을 활용해 검증하도록 한다. 과학에서는 최종 답보다 오류 분석을, 글쓰기에서는 수정 기록을, 수학에서는 매개변수를 바꿔 풀이 과정을 설명하는 구두 답변을 더 중시하는 방식이다. 이는 OECD가 PISA 2025에서 강조하는 ‘자기조절 학습’과 ‘계산적 사고’의 방향과도 일치한다.

또한 AI 자체를 학습 대상으로 삼는 접근도 가능하다. 동일한 AI 작성 초안을 학생 전원에게 제공하고, 사실과 근거 부족, 오류, 누락된 부분을 평가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감 있게 제시되지만 틀린 답변’을 구별하는 훈련이 된다. 아울러 AI를 사용했다면 어떤 내용을 활용했고 어떻게 검증했는지를 공개하도록 해 감시보다 투명성에 기반한 학업 윤리를 확보할 수 있다.

정책은 설계로 완성

학교는 ‘자유로운 사용을 보장하되, 과정을 증명할 책임은 분명히 한다’라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답안이 어떻게 도출됐는지를 종이나 구두 발표로 추적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계획안·수정 기록·구두 발표 등을 평가 기준에 포함해야 한다.

유네스코도 2023년 보고서에서 “기술은 접근성과 맞춤화를 높일 수 있지만, 본질적 사고를 대신하면 해롭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무조건적 금지보다는 유익한 활용은 허용하고, 학습을 저해하는 사용은 차단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학생을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학습자로 존중하는 접근이 지속 가능하다.

휴대전화 역시 같은 맥락이다. 수업 중에는 제한하되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는 허용하고, 의료적 필요에는 예외를 두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무조건적 자유와 전면적 통제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며, 궁극적 목표는 사고 과정을 드러내는 수업 전환에 있다.

기술 활용의 양면성

PISA 결과는 인과관계를 확증하지는 않지만, 현장 교사들의 경험과는 일치한다. 여가성 기기 사용이 늘면 학업 성취와 집중은 약화되지만, 수업 속에서 구조화된 기술 활용은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따라서 쟁점은 ‘기술 금지’가 아니라, 제한된 주의력과 사고력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다.

성적은 반드시 사고 과정을 드러내는 답변을 통해 평가돼야 하며, AI는 결론을 대신 내는 수단이 아니라 피드백을 강화하는 보조 장치로 활용돼야 한다. 결국 남겨야 할 메시지는 분명하다. AI가 학생들의 역량을 약화시킨 것이 아니라, 학교가 더 사고 중심적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Make Thinking Visible Again: How to Teach in an Age of Instant Answers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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