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패키징 게임체인저 ‘유리기판’, 글로벌 양산 경쟁 가열
AI 패키징 게임체인저 ‘유리기판’, 글로벌 양산 경쟁 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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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AI 반도체 기판 핵심 소재 中·日, 생산라인 구축·시제품 개발 가속 기술 경쟁 넘어 양산 구조 구축 경쟁 본격화

중국과 일본이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기술로 부상한 유리기판(Glass Core Substrate) 시장 선점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성능 경쟁이 미세공정에서 패키징 기술 경쟁으로 확산되자 관련 기업들도 생산시설 구축과 공급망 확보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유리기판이 AI 반도체 확장성을 높일 핵심 기술로 평가받는 가운데, 수율 안정화와 원천기술 장벽 극복 여부가 향후 시장 주도권을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성장 가능성에 중국 업체 잇달아 출사표
11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BOE테크놀로지(BOE Technology), 비전옥스(Visionox), AKM미드빌(AKM Meadville), 운천반도체(Yuntian Semiconductor) 등 중국 반도체 유리기판 제조사들은 최근 다량의 검사 솔루션을 도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기판 외관 검사를 위한 광학 및 엑스레이 검사 장비 도입을 추진 중으로, 한국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과도 협력을 타진 중이다.
공식적으로 중국에서 반도체 유리기판 사업에 가장 먼저 뛰어든 건 BOE다. 글로벌 디스플레이 제조업체로, 액정표시장치(LCD) 등 유리 공정 기술력을 앞세워 반도체 유리기판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했다. 시장 진출을 선언한 지 약 2년 만에 시생산(파일럿) 라인을 구축할 정도로 속도전을 전개하고 있다. BOE는 특히 유리관통전극(Through Glass Via·TGV) 기술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TGV는 유리기판에 수직으로 관통하는 구멍을 뚫어 데이터가 오가는 통로를 만드는 핵심 공정이다.
중국 3대 디스플레이 기업으로 꼽히는 비전옥스는 지난해부터 유리기판 제조를 위한 소부장 공급망을 꾸리고, 현재 설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다수 소부장 기업과 접촉하며 최상의 공정 기술 구현에 공을 들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TGV 전문업체 WG테크, 장비업체 한스레이저 등과 함께 유리기판 공급망을 빠르게 형성하는 분위기다. 특히 비전옥스는 디스플레이 제조 과정에서 축적한 초박막 유리(UTG) 기술과 패널 생산 노하우를 반도체용 유리기판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최근 전담 조직을 확대하고 관련 연구개발(R&D) 투자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인쇄회로기판(PCB) 업체들도 유리기판 공급망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PCB 제조사인 AKM미드빌은 지난 1월 유리기판 시험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공정 검증에 착수했다. AKM미드빌은 매출 기준 세계 20대 PCB 공급업체이자 고밀도 인터커넥트(HDI) 기판 분야 세계 8위 업체로, 서버·통신장비용 고사양 기판 생산 경험을 바탕으로 유리기판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후공정 분야에서의 움직임도 가파르다. 중국 반도체 위탁 패키징·테스트(OSAT) 업체인 운천반도체는 유리기판 기반 첨단 패키징 기술 개발과 공급망 구축을 병행하고 있다. 운천반도체는 최근 화웨이 공급망에 편입되며 기술력을 인정받은 데 이어, 차세대 패키징 기술 확보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일본도 유리기판 생태계 구축 속도
일본에서도 유리기판에 대한 투자 및 기술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반도체 기판 업체 이비덴(Ibiden)이 유리기판 R&D에 나선 상황이다. 이비덴은 인텔과 엔비디아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첨단 패키지 기판을 공급하며 축적한 미세회로 형성 기술과 대형 기판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유리기판 상용화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현지 업계에서는 이비덴이 고성능 컴퓨팅(HPC)과 AI 서버용 고부가가치 기판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유리기판 상용화 과정에서도 영향력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최대 인쇄 기업인 다이니폰인쇄(DNP)도 유리기판 개발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DNP는 2028년 양산을 목표로 유리기판 파일럿 라인을 구축, 반도체 패키징용 유리 코어 기판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대면적 유리 가공과 미세 패턴 형성 기술을 활용해 차세대 AI 서버용 패키지 시장 공략을 준비하고 있다. DNP의 강점은 정밀 패턴 형성 기술이다. 회사는 반도체용 포토마스크와 디스플레이용 포토리소그래피 분야에서 축적한 미세 가공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유리기판 제조 공정에 접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일본 최대 유리 제조업체인 AGC도 유리기판용 소재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다. AGC는 초박막 유리와 반도체용 특수 유리 기술을 기반으로 유리 코어 기판 소재 개발을 진행 중이며, 글로벌 패키징 기업들과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유리기판 시장이 본격 개화할 경우 소재 공급이 병목 요인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선제적인 생산 체계 확보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장비 분야에서는 시부야공업이 TGV 가공 장비 개발에 나섰다. 시부야공업은 정밀 레이저 및 드릴링 기술을 활용해 미세 홀 가공 기술 고도화를 추진 중이며, 일본 반도체 장비 업체들과 공동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일본 기업들이 소재·기판·장비 전 분야에서 공급망을 구축하며 유리기판 시장을 미래 반도체 패키징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중국 기업들이 공격적인 투자로 추격에 나선 가운데, 일본 역시 차세대 패키징 기술 경쟁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AI 패키징 미래로 부상, 남은 과제는 수율과 특허
유리기판은 열(써멀)과 휨(워피지) 현상에 상대적으로 강하고, 미세 배선과 전기적 특성에서 장점을 갖고 있어 제작에 유용한 차세대 기판 기술로 주목받는다. AI 성능이 고도화되면서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얼마나 넓고 촘촘하게 연결할 수 있을지의 패키징 역량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는 추세인데, 이 가운데 유리기판 기술이 AI 반도체의 확장성을 높이는 차세대 패키징의 대안 기술로 부각되는 상황이다.
이에 엔비디아, 브로드컴, AMD, 인텔 등 주요 반도체 업체뿐 아니라 애플,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도 차세대 AI·모바일칩 제작을 위해 유리기판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AI·모바일칩은 TSMC 패키징 공정의 한계로 연 생산량에 제한이 있는데, 유리기판을 도입하면 생산 병목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텔은 수년 전부터 유리기판을 차세대 패키징 핵심 기술로 지목해 왔다. 인텔은 유리기판이 기존 유기기판 대비 트랜지스터 집적도 향상과 패키지 크기 확대, 전력 효율 개선 측면에서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엔비디아와 AMD 역시 AI 가속기 성능 경쟁이 심화되면서 대형 패키지 구현이 필수 과제로 떠오른 상황이다.
다만 시장의 기대와 별개로 양산까지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가장 큰 난관으로 꼽히는 것은 유리 특유의 취성(Brittleness) 문제다. 유리는 미세 충격에도 균열이 발생할 수 있으며 공정 과정에서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크랙(crack)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 패키징에서는 수 마이크로미터(㎛) 수준의 균열도 제품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만큼 정밀 검사 기술 확보가 필수적이다. 최근 중국과 일본 기업들이 광학 검사 장비와 엑스레이 검사 장비 도입에 적극 나서는 배경에도 이러한 기술적 난제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TGV 공정 이후 발생하는 미세 균열은 유리기판 상용화의 최대 변수로 지목된다. TGV는 유리에 수천~수만 개의 미세 홀을 가공하는 공정이라 응력 집중 현상이 발생하기 쉽다. 업계에서는 균열 발생 여부를 신속하게 검출하고 수율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검사 기술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대량 생산 체제 구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글로벌 장비 업체들은 AI 기반 결함 분석과 고해상도 엑스레이 검사 기술 개발에 경쟁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원천기술 장벽 역시 후발주자들의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유리기판 핵심 특허 상당수는 미국과 독일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다. 미국 인텔과 코닝(Corning), 독일 쇼트(Schott) 등이 유리 소재와 가공 기술, 패키징 구조 관련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상태다. 특허 장벽은 생각보다 높다. 유리기판 관련 특허는 유리 소재 자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TGV 형성 방식과 금속 충진 공정, 신호 손실을 최소화하는 배선 구조, 열팽창에 따른 변형 제어 기술, 대면적 기판 제조 공정 등 상용화에 필요한 핵심 기술 전반에 특허가 촘촘히 얽혀 있다. 인텔과 코닝, 쇼트는 10년 이상 R&D를 진행하며 관련 특허를 선점해 왔다.
이에 일각에서는 향후 유리기판 시장이 본격 개화할 경우 생산능력 경쟁과 별개로 특허 분쟁 가능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반도체 산업은 기술 표준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에서 특허가 시장 지배력으로 직결되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유리기판 역시 기술력 확보와 함께 특허 포트폴리오 구축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유리기판 경쟁은 실제 양산을 전제로 한 구조를 누가 먼저 완성하느냐의 문제"라며 "초기에는 수율 안정과 공급 신뢰도가 중요해 단일 기업보다는 여러 전문 업체가 역할을 나눠 협력하는 방식이 불가피하지만, AI 반도체 확산으로 고성능 패키징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만큼 밸류체인과 원천 특허를 선제적으로 확보한 기업이 중장기적으로 시장 주도권을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