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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관세 25%에 연 9조원 손실, 3,500억 달러 투자보다 타격 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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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3,500억 달러 투자 이견에 협상 교착
미국이 수익 거의 가져가면 원금 회수 불확실
“차라리 관세 부과 받는 편이 낫다”
이재명 대통령과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지난 8월 2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결단의 책상'에 앉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백악관

한·미 관세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25%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0.4%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지난해 한국의 실질 GDP를 단순 대입하면 연간 최대 9조원의 경제적 손실에 해당한다.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규모지만 미국이 요구한 3,500억 달러(486조원)의 현금 투자보다는 타격이 작다.

한국 GDP 0.3~0.4% 감소 추정

16일 대외경제연구원의 ‘한·미 관세 협의의 경제적 타당성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예고한 대로 25% 관세를 적용할 경우 한국의 실질 GDP는 0.3∼0.4%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를 지난해 기준 한국의 실질 GDP(2,292조원)에 단순 적용하면 연간 7조~9조원에 해당한다. 실제 연간 피해액은 이보다 줄어들 수도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영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 연구는 현재 균형 상태와 미국 관세 정책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균형 두 가지를 비교해서 몇 % 정도의 실제 GDP 변화가 있는지를 추정한 것으로, 새로운 균형으로 이동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를 모형이 말해주는 건 아니다”라며 “균형에 도달하는 시간은 1년보다 조금 더 걸린다”고 설명했다. 미국 관세 정책 영향이 1년이 아니라 2~3년에 걸쳐서 장기간 나타난다면 GDP 0.3~0.4% 감소로 인한 연간 피해액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관세율이 15%에서 25%로 올라가면 한국이 연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관세가 260억 달러(약 36조원) 규모에 그친다는 추산도 나왔다. 16일 박수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관세율 10%가 적용된 올해 5월부터 7월까지 한국은 미국에 관세로 월평균 13억9,000만 달러(약 1조9,200억원)를 지급했다. 이를 토대로 관세율 15%가 적용되면 연간 249억4,000만 달러(약 34조5,000억원)를 미국에 내게 된다. 관세율이 25%로 10%포인트 더 오르면 추가로 260억7,000만 달러를 줘야 한다. 박 연구원은 관세 연간 증가분(260억7,000만 달러)은 대미 투자 펀드 3,500억 달러의 7.5%로, 약 13년 6개월에 걸쳐 나가는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관세를 부과 받는 게 총량면에서 피해를 덜 입는 길이라는 의미다.

다만 피해가 늘어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타결된 미·일 관세 협상 결과가 변수다. 한·미 관세 협상이 실패해 최종적으로 일본이 15% 관세를, 한국이 25% 관세를 적용받는다면 수출 타격은 예상보다 더 커질 수 있다. 일본산 제품보다 가격 경쟁력에서 뒤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은행도 미국 관세 정책으로 국내 경제가 타격을 받는다고 전망했다. 한은은 지난 1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미 관세 협상이 지연됐더라면 올해 성장률이 0.04%포인트, 내년은 0.1%포인트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한·미 관세 협상이 다시 예측하기 힘든 국면으로 들어가면 불확실성이 커져 유·무형의 경제적 충격이 더 커질 우려도 있다.

"일본이 잘못된 선례 남겨"

앞서 한국은 지난 7월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상호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바 있다. 대미 투자 조건 등 협의를 위해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 한미 간 실무협의를 진행한 데 이어 지난 12일에는 뉴욕에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이 장관급 협의를 진행했으나 여전히 협의가 진전을 이뤘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이 사실상 '투자 백지수표'를 요구하며 한국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으나, 한국 역시 합리적인 수준의 결론 도출을 목표로 맞서고 있어 협의가 장기간 공전할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 경우 7월 한국이 관세 협상을 통해 15%로 낮춘 상호관세가 25%로 원상 복귀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우리 정부는 협상 결렬에 따른 충격을 감당하기도,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놓여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외환보유고 4,000억 달러(약 553조원)의 상당 부분이 대미 투자로 빠져나가면 국내 금융시장에 충격은 물론, 국가신인도나 환율, 외환 운용에 큰 부담이 되기에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전문가들은 일본이 잘못된 선례를 남긴 영향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앞서 미일 무역 합의에서 총 5,500억 달러(약 765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일본은 이를 시행하기 위한 합의 과정에서 일본에 불리한 조항을 다수 수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의 대미 투자처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정하고, 투자 이익은 투자 원리금 변제 전에는 미국과 일본이 절반씩 나눠 갖고 변제 후에는 이익의 90%를 미국이 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아울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투자처를 지정하면 일본은 45일 이내에 자금을 대야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관세를 올리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런 상황에서 러트닉 장관은 김정관 장관과의 회담 하루 전인 지난 11일 미 CNBC 방송에 출연해 "나는 그들(한국)이 지금 일본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연함은 없다. 일본은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말해 한국에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합의를 압박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일본이 먼저 미국과 불리한 조건에도 합의문에 서명하면서 미국의 합의 압박에 한국이 협상할 공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美 1, 2심 법원 “상호관세는 위법” 판단

다만 변수는 남아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와 체결한 무역협정이 무효화될 수 있다. 소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4월 2일 만성적인 대규모 무역적자를 국가 안보·경제에 대한 큰 위협으로 규정하고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해 국가별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 시작됐다. 관세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 5곳이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4월 14일 국제무역법원(USCIT)에 소송을 제기했고, 같은 달 23일에는 오리건주를 비롯한 12개주까지 법적 분쟁에 가세했다.

1심인 국제무역법원은 5월 28일 “관세를 부과할 배타적 권한은 의회에 있다”며 상호관세를 철회하라고 명령했고,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즉각 항소했다. 하지만 2심에서도 위법 판결을 받았다. 미국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지난달 29일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 행정명령의 근거로 삼은 IEEPA에 대해 “대통령에게 수입을 규제할 권한만 부여할 뿐 행정명령으로 관세를 부과할 권한까지 주지는 않는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IEEPA가 국가 비상사태에 대응해 여러 조치를 취할 중대한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지만 이들 가운데 어떤 조치도 관세 등을 부과할 권한을 명시하지는 않는다”며 “의회가 IEEPA를 제정하면서 대통령에게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무제한적 권한을 주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상고한 상태로,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나온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기조인 관세 정책에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한국을 포함해 이미 관세 협상을 체결한 국가들과의 무역 관계도 재조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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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중독 후폭풍" 빚에 허덕이는 프랑스, 신용등급 강등에 국채-회사채 금리 역전까지

"재정 중독 후폭풍" 빚에 허덕이는 프랑스, 신용등급 강등에 국채-회사채 금리 역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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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채 금리, 자국·유로존 기업 회사채 금리 웃돈다
과도한 복지 지출에 불어난 부채, 긴축 시도한 총리들은 줄줄이 '불신임'
피치·S&P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 시선 '싸늘'

프랑스 국채 금리가 프랑스 민간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 금리를 웃돌기 시작했다. 과도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프랑스 정부의 재정 위기가 가시화하자, 투자자들 사이에서 프랑스 국채보다 프랑스 회사채가 더 안전한 투자처라는 인식이 확산한 것이다. 시장 상황이 눈에 띄게 악화했음에도 불구, 프랑스 정부는 의회 등의 반대에 부딪혀 별다른 재정 축소 방안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먹구름 낀 프랑스 경제

15일(이하 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골드만삭스 자료를 인용, 최근 로레알, 에어버스, 악사 등 10개 프랑스 기업이 발행한 채권 금리가 비슷한 만기의 프랑스 국채를 밑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2006년 이후 최대 규모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전체를 기준으로 보면 80개 이상 기업의 회사채 금리가 프랑스 국채보다 낮은 수준에서 거래되는 중이다. 유로존 내에서도 특히 부유한 경제국으로 꼽히던 프랑스에서 이례적인 국채-회사채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프랑스 채권 금리가 급등한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재정 위기가 꼽힌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프랑스 국가부채는 지난해 기준 3조3,000억 유로(약 5,350조원)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13%에 육박한다. 이는 유로존 내에서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자, 6,800만 명의 국민이 1년간 번 돈을 모두 부채 상환에 투입해도 갚지 못하는 금액이다. GDP 대비 재정 적자 역시 EU 평균치(3%)의 약 두 배 수준인 5.8%까지 뛰어올랐다.

이처럼 재정 상황이 악화한 배경에는 각종 복지 지출 확대가 있다. 프랑스는 공공 지출 규모가 2023년 기준 GDP의 57%를 차지하는 국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공공 지출 규모가 42.6%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연금과 건강보험, 실업수당 등 OECD 분류상 ‘사회 보호 부문’ 지출 비중은 23.4%로, 핀란드(25.7%)와 스웨덴(25.0%) 다음으로 많다. 이 같은 대규모 재정 지출은 구조적 적자를 낳았고, 이후 이자 비용이 확대되며 부채 비율 상승 흐름이 고착화했다.

긴축 정책 내놔도 '무용지물'

프랑스의 경제 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하자, EU는 지난해 7월 프랑스에 과도적자절차(EDP) 개시를 권고했다. EDP는 EU 회원국의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를 감시·시정하는 제도다. EU 집행위원회가 프랑스의 재정 위기를 주목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에 같은 해 말 미셸 바르니에 내각이 긴축 예산안을 마련했으나, 여소야대 프랑스 의회는 ‘긴축 반대’를 정치적 무기로 삼으면서 재정 개혁을 위한 예산안 통과에 강하게 반대했다. 바르니에 당시 총리는 긴축안 강행 처리를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끝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다.

바르니에 내각의 뒤를 이은 프랑수아 바이루 내각 역시 긴축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7월 공휴일 2일 축소 △연금 동결 △의료 예산 감축 등을 통해 총 440억 유로(약 64조원)의 지출을 줄인 내년도 예산안을 내놓은 것이다. 야권은 “부자와 대기업 증세 없이 서민만 희생시키는 방안(좌파)”, “전기 요금 인상과 의료비 부담 확대로 인해 서민과 고령층의 생활고가 심해진다(극우)” 등 비판 의견을 쏟아내며 재차 반기를 들었다. 이에 지난 8일 프랑스 의회에서는 바르니에 당시 총리의 긴축 예산안을 둘러싼 신임 투표가 벌어졌고, 투표에서 패배한 바르니에 당시 총리는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프랑스의 정국 혼란이 ‘재정 중독’의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시장 전문가는 "한 번 늘어난 재정 지출을 줄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며 "민간이 혁신을 통해 경제 성장을 주도하지 않고, 정부 자금에만 의존하려 들면 국가 재정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어 "프랑스가 처한 상황은 중국은 물론 한국 등 '경제 포퓰리즘' 정책을 택하는 나라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례"라고 덧붙였다.

신용 등급까지 위태로워

글로벌 신용평가기관들도 현재 프랑스가 처한 상황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12일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했다. 지난해 말 프랑스 정부가 2025년 예산안을 발표했을 당시 부정적 전망을 제시한 후 1년도 되지 않아 강등 결정을 내린 것이다. A+등급은 영국과 한국보다 한 단계 낮고, 벨기에와 같은 수준이다.

피치는 보고서를 통해 “프랑스 정부가 신임 투표에서 패배한 것은 국내 정치의 분열과 양극화가 심화했다는 방증”이라며 “이러한 불안정성은 재정 건전성을 달성하는 정치 시스템 역량을 약화한다”고 강등 이유를 설명했다. 아울러 프랑스의 재정적자가 2026~2027년 GDP의 5% 이상으로 유지될 것이며, 국가부채도 2027년 121%까지 늘어나리라고 예측했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역시 프랑스 정부가 재정 적자를 줄이지 못하면 오는 11월 평가에서 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지난해 초 프랑스 신용등급을 ‘AA-’로 낮춘 뒤에도 부정적 시각을 거둬들이지 않은 셈이다. 시장에선 S&P마저 신용등급을 끌어내릴 경우, 프랑스가 차입 비용 상승으로 인해 재정 악화가 심화하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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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쇼크’에 디플레이션 압력 커진 중국, 정부 부양책으론 한계

‘트리플 쇼크’에 디플레이션 압력 커진 중국, 정부 부양책으론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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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생산·소비·투자 부진
인프라 등 고정자산 투자도 감소
연간 GDP 5% 성장 목표 흔들

지난달 중국의 생산·소비·투자가 일제히 시장 전망치를 밑돌며 ‘트리플 쇼크’를 기록했다. 상반기에 수출 호황이 멎으면서 하반기 중국 경제 둔화 가능성이 현실화하는 가운데 중국 정부가 목표로 제시한 올 5% 안팎 성장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생산·소비·투자 지속 둔화

16일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8월 산업생산은 전년 동월 대비 5.2% 증가하는 데 그쳐 시장 전망치(5.7%)에 못 미쳤다. 지난해 8월(4.5%) 후 1년 만의 최저다. 산업생산 증가폭은 지난 3월(7.7%) 이후 계속 둔화하고 있다. 내수 경기의 가늠자로 꼽히는 8월 소매판매도 전년 동기 대비 3.4% 늘어 시장 전망치(3.8%)와 전월 증가폭(3.7%)보다 낮았다. 지난해 11월(3%) 후 가장 낮다.

올해 1~8월 고정자산 투자도 전년 동기보다 0.5% 증가해 시장 전망치(1.5%)와 1~7월 증가폭(1.6%)을 크게 밑돌았다. 고정자산 투자는 공장, 도로, 전력망 등에 대한 투자를 뜻한다. 고정자산 투자는 올해 3월 4.2%에서 5월 3.7%, 6월 2.8%, 7월 1.6%로 빠르게 위축되더니 8월에는 0%대로 주저앉았다. 중국 정부가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자를 일정 부분 제한하면서 고정자산 투자가 위축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가도 하락하는 추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올해 2~5월 마이너스를 기록하다가 6월 0.1%로 상승했지만 7월 0%에 이어 8월 -0.4%로 다시 하락세로 전환했다. 경기 침체 속에 물가 하락이 지속되는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압력이 커진 것이다. 중국 경기의 가늠자 역할을 하는 부동산 투자는 이미 침체 수준이다. 올해 1~8월 부동산 개발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12.9% 감소했다. 2조 위안(약 400조원)에 달하는 빚더미를 감당하지 못해 시장에서 퇴출되며 부동산 위기를 촉발한 2021년 ‘헝다(恒大·Evergrande) 사태’ 이후 최악의 성적표다. 8월 전국 도시 실업률도 5.3%를 기록해 시장 전망치(5.2%)와 전월(5.2%) 수준을 넘어섰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외부 환경이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요소가 많아 경제 운영이 여전히 많은 위험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지만, 시장에서는 중국 정부가 보는 것보다 경기 상황을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 7월 경기지표가 올해 들어 최악을 나타냈는데 8월에 개선되기는커녕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달 8일 공개된 8월 수출액도 1년 전보다 4.4% 늘어나는 데 그쳐 시장 전망치(5.0%)와 7월 수출 증가율(7.2%)을 밑돌았다.

디플레이션 압력 심화

생산, 소비, 투자가 트리플 약세를 보이면서 시장에선 올해 하반기 중국 경제가 본격 둔화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유예 조치가 중국의 수출 물량을 미리 끌어당기면서 중국의 올해 상반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5.3% 증가하며 호조를 보였으나, 상반기 집중된 수요가 멎고 하반기 관세전쟁이 본격화하면 중국 정부의 목표인 ‘GDP 5% 성장’도 장담할 수 없다. 아울러 지난해 9월 중국의 대규모 부양책의 기저 효과로 중국의 디플레이션 압력이 하반기에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현재 중국은 내수 부진과 산업 공급 과잉이 가격에 지속적인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들의 구매력 약화로 인한 수요 부족과 동시에 각 산업에서 과도한 생산 능력이 유지되면서 디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중국의 공급 과잉은 중국 내부 경제에도 문제를 야기해 온 동시에 글로벌 이슈로도 부각된 상태다. 중국의 저렴한 제품들이 해외로 수출되면서 각국의 산업 경쟁력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이에 미국은 올해 초 중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공급 과잉 해소를 협상 요구 조건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유럽 국가들 역시 중국에 공급 과잉 해소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무역 불확실성이 공급업체들의 재고 정리 노력을 방해하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기업들은 불확실한 대외 환경 속에서 재고를 줄이기보다는 보유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공급 과잉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형세다.

과잉공급 줄이고 출혈경쟁 제어해야

상황이 이렇자 중국 정부는 과도한 가격 경쟁으로 인한 '인볼루션(내부 경쟁)' 현상을 억제하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해 왔다. 올해 공정 경쟁 심사 조례, 중소기업 대기업 지급 규정, 불공정 경쟁법 개정안, 가격법 개정안 등 경쟁 억제를 위한 법안들도 마련했다. 공장 출고가격을 추적하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7월 3.6% 하락에서 8월 2.9% 하락으로 축소된 것은 이 같은 정부 노력의 일부 성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3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어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목소리다. 특히 제조업 부문에서는 여전히 과잉 생산 능력이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이는 물가의 지속적인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가 하락은 소비자들의 구매 지연 심리를 부추기고, 기업들의 투자 의욕을 꺾어 경제 성장률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에서는 중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부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만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 경제가 당면한 과제는 단순한 경기 부양책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복합적 성격을 띠고 있는 만큼 과잉공급 구조를 정상화하는 동시에 민간의 혁신과 투자 확대를 이끌어내는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다만 이는 생산 감소에 따른 고용 축소를 동반하고 일자리 감소는 다시 소비 위축을 초래한다. 중국의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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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축미 방출에도 치솟는 일본 쌀값, 한국으로도 번지며 기후위기 ‘경고음’

비축미 방출에도 치솟는 일본 쌀값, 한국으로도 번지며 기후위기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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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축미 방출에도 쌀값 급등세 지속
유통 비효율성이 가격 불안정 심화
한국도 수확량 감소에 농산물 가격↑

지난 여름 잠시 주춤했던 일본 내 쌀값이 2주 연속 오르며 가파른 상승세를 그렸다. 정부 비축미 방출로도 진정되지 않은 가격 불안은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됐고, 한국 쌀값은 4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이에 단순한 유통 차질을 넘어 기후 변화로 인한 구조적 생산 위기가 한일 양국 모두의 밥상 물가를 압박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고품질 쌀 줄고, 가격은 ‘껑충’

15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달 1∼7일 일본 전역 마트를 대상으로 조사한 쌀 소비자가는 5㎏ 기준 평균 4,155엔(약 3만9,220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주보다 6.8% 오른 수준으로, 일본 내 쌀값은 2주 연속 급등세를 그렸다. 매체는 “정부가 수의 계약으로 방출한 저가 비축미 유통량이 줄고, 고가 햅쌀이 판매되면서 평균 쌀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올해 쌀 생산량이 전년 대비 56만 톤(t) 늘어나 쌀 부족 현상이 해소되고 가격도 안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장마가 이른 시점 종료되고, 가뭄에 따른 물 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일본에서 재배되는 벼 품종은 대부분 고온에 취약하다. 이 때문에 쌀알이 희게 변하는 유백미가 크게 늘었고, 올해 일본 내 1등급 쌀의 비율은 80% 수준으로 떨어졌다.

주식인 쌀의 가격이 치솟으면서 소비자들은 식비 절약하에 허리띠를 졸라맸으며, 일부 식당은 스시나 덮밥 가격을 인상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일본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했다. 이는 일본은행(BOJ) 목표치인 2%를 크게 웃도는 수치로, 쌀값 폭등이 전반적인 인플레이션 압박으로 이어짐을 의미한다.

이 같은 상황은 내달 4일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당초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과 함께 유력 후보로 점쳐지던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의 당선 가능성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그는 재임 초기 과감한 정부 비축미 방출로 국민 지지를 얻었지만, 그의 정책이 무위로 돌아갈 공산이 커지면서 선거 구도에도 변수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지난 13일 지지자 모임 직후 “당을 다시 하나로 묶어 야당과 맞서고, 국민이 가장 원하는 물가 대책 등을 해결하고 싶다”며 출마 의향을 밝혔다.

생산 차질에 유통 불안정까지 겹쳐

전문가들은 일본 내 쌀값 상승은 단순한 시장 일시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요인이 겹쳐진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주요 원인으로는 먼저 유통의 불안정성이 꼽힌다. 일부 업자가 모내기도 끝나지 않은 단계에서 매입 계약을 서두르며 시장 혼란을 키웠고, 정부가 방출한 비축미도 수의계약 물량이 줄면서 가격 안정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진단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일시적 소비 확대와 사재기 현상이 겹치면서 소매 가격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통 문제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이 때문에 생산 기반 자체가 약화된 점이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본의 벼 재배면적은 1970년대 300만 헥타르(㏊)에서 2024년 124만㏊까지 줄었다. 여기에 농가의 고령화도 심각하다. 농업센서스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일본 쌀 농가 경영주 평균 연령은 71세에 달하며, 후계자 부재로 은퇴 농가 또한 빠르게 늘고 있다. 생산 기반이 취약해진 상황에서 정부의 감산 정책이 장기간 이어지며 공급 여력이 위축됐다는 지적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기후 변수까지 악재로 작용했다. 앞서 언급했듯 일본 벼 품종은 냉해에는 비교적 강하지만, 고온에는 취약하다. 대표 품종인 ‘고시히카리’가 특히 그렇다. 폭염과 장마 조기 종료로 인해 일본 쌀 수확량은 예년 평균 700만 톤에서 올해 약 660만~670만 톤으로 5%가량 줄었다. 여기에 품질 저하 문제도 심각해 1등급 쌀 비율까지 줄었다. 이처럼 유통의 비효율성과 기후 위기로 인한 생산 차질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일본의 쌀값 급등은 단순한 시장 불안을 넘어 구조적 문제로 인식되는 상황이다.

한일 동시 쌀값 불안, 기후 리스크로 확산

우리나라의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또한 쌀 소비가 빠르게 감소하면서 2000년대 초부터 쌀 생산조정제 등 감산 기조의 정책을 펼쳐 왔다. 그 결과 이달 5일 기준 국내 산지 쌀값은 20㎏당 5만5,810원으로 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매가격도 20㎏ 평균 6만1,000원을 돌파하며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20% 이상 뛰었다. 이에 시장에선 “일본처럼 ‘쌀 대란’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는 양상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가격 상승의 직접적 원인으로 조생종 수확기에 이어진 잦은 비를 지목했다. 이로 인해 출하가 늦어지면서 공급 부족이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기후 변수에 취약한 국내 쌀 생산 구조가 더 큰 원인이라는 분석도 힘을 얻는다. 일본 사례에서처럼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은 단순 유통 차질보다 더 근본적이며, 생산량 감소와 품질 저하를 동시에 유발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쌀 공급 부족을 완화하기 위해 비축미를 연이어 방출하고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이미 3만 톤을 풀었지만, 2주 만에 절반이 소진되면서 나머지 물량 또한 이른 시일 내 동날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농식품부는 추가 2만5,000톤을 산지 유통업체에 대여하는 방식으로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13일 농식품부 유튜브 채널 라이브 방송에서 “늦어도 다음 달 중순부터는 본격적으로 햅쌀이 출하될 것”이라며 “쌀 소매가 또한 안정화에 접어들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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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원자력 협력 ‘맞손’, 차기 권력 구도까지 겨냥한 트럼프 행보에 촉각

미·영 원자력 협력 ‘맞손’, 차기 권력 구도까지 겨냥한 트럼프 행보에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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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안정성 확보 절실한 영국
에너지 정책 주도권 재편 가능성
美, 영국 강경 우파와 연계 모색

미국과 영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기술·원자력 협정을 추진한다. 이는 러시아산 가스 차단으로 에너지 비용 부담이 커진 영국 산업계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물론, 미국에도 첨단 기술 및 원전 수출 기회를 확대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은 난민·에너지 이슈로 급부상한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와도 교류를 강화하며 차기 권력 지형까지 염두에 둔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방위·안보·에너지 ‘패키지 딜’

14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오는 17일부터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에서 양국의 기술 및 민간 원자력 에너지 협정을 발표할 예정이다. 영국 총리실 대변인은 “18일 트럼프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총리의 정상 회담이 잡혀 있다”고 밝히며 “이 자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파트너십과 주요 민간 원자력 협정에 나란히 서명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올해 6월 원칙 합의가 끝난 관세 협정의 연장선으로, 방위·안보·에너지 관계 전반을 끌어올리는 데 그 목표가 있다는 설명이다.

기술 협정 축에서는 인공지능(AI)·반도체·통신·양자컴퓨팅이 핵심 축으로 제시됐다. 양국의 기술 부문 연계를 강화해 기업과 소비자에 직접적인 기회를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영국 정부는 이미 페이팔·뱅크오브아메리카 등으로부터 12억5,000만 파운드(약 2조3,500억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밝혔으며, 미국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 코어위브 역시 영국 투자 발표를 예고한 상태다.

원자력 협정은 에너지 비용 급등에 흔들린 영국의 전력 시스템을 겨냥한 조치로 해석된다. 유럽 전반에 불어닥친 재생에너지 확대 흐름 속에서 영국이 전력망 제약 및 균형비용 증가에 직면했고, 이에 따라 기저부하 전원으로서의 민간 원전이 정책 포트폴리오에 복귀하는 흐름도 뚜렷해졌다는 분석이다. 최근에는 영국의 에너지 규제 기관 오프젬(Ofgem)이 가정용 전기 공급가를 2% 인상한다고 밝히면서 해결책은 더 시급한 상황이다.

양국의 협정이 가져올 정치·경제적 파급력 또한 상당하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기조인 ‘글로벌 브리튼’을 현실화할 실물 투자와 전략기술 협력을 동시에 확보하고, 미국은 대서양 동맹의 기술 축을 강화해 대중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공고히 하는 명분을 챙긴다. 여기에 관세 이슈까지 진전을 보이면, 제조업·에너지 집약 산업의 단가 구조 완화에도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결과적으로 이번 합의는 양국의 기술(플랫폼·인프라 투자)과 원자력(전력 안보), 통상(관세·무역)을 일체화한 ‘복합 동맹 패키지’인 셈이다.

넷제로 정책 실패 인정

이런 가운데 영국 정부는 최근 공식 문서를 통해 “전기요금 상승의 핵심 요인이 화석연료 가격이 아니라 태양광·풍력 등 저탄소 기술 도입·운영 비용 때문”이라고 처음으로 인정했다. 영국 에너지안보·넷제로부(DESNZ)는 공공회계위원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재생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 저장 인프라, 송배전망 확충, 열펌프 보급 등 기반시설 비용이 소비자 전기요금을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실제 영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연평균 1,067파운드(약 1,447달러·201만원)로 가스요금 814파운드(약 1,100달러·153만원)보다 높으며, 산업용 전력요금은 미국과 비교해 최대 4배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현실은 “넷제로 정책이 에너지 비용을 낮춘다”던 기존 정부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영국의 넷제로 정책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0) 달성을 법적 의무화한 제도로, 재생에너지 확대와 건물 효율 개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 감축과 기술 혁신을 핵심으로 한다.

이를 두고 영국산업연맹(CBI)과 석유화학기업 INEOS의 짐 랫클리프 회장은 “좌파 정부의 반(反)화석연료 정서가 영국 산업을 파산 위기로 내몰았다”고 꼬집으며 “기업에 전가된 넷제로 비용을 정부 재정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디이터 헬름 옥스퍼드대 교수 역시 “(정부가) 재생에너지는 날씨 의존성이 크고 예비 전력이 필요하다는 구조적 한계를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재생에너지의 장기적 효과를 강조하는 반론 또한 제기되지만, 산업계와 학계의 비판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인 모양새다.

유럽 전반에도 영국과 유사한 부작용이 감지된다. 독일은 2021년 기후·에너지·산업을 통합한 경제기후보호부를 출범시켰으나, 이후 전력 도매가격 폭등과 제조업 경쟁력 붕괴라는 후폭풍을 맞았다. 결국 독일은 2023년 기후 부문을 다시 환경부로 이관하며 에너지·산업 정책을 재정비했다. 이처럼 무리한 전환 정책이 에너지 비용 폭등과 산업 위축으로 이어질 공산이 큰 만큼, 유럽 내에서는 이번 미·영 기술·원자력 협력이 ‘구세주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기대 또한 커지는 양상이다.

미국을 방문한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가 3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나이절 패라지 대표 X

강경 우파 네트워크 강화 움직임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원자력 협력을 통해 영국 정치의 다음 국면까지 염두에 둔 이중 트랙을 병행하는 모양새다. 차기 영국 총리로 유력 거론 중인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와의 밀착이 이를 방증한다. 패라지 대표는 이달 초 워싱턴 미 하원 사법위원회에 출석해 ‘표현의 자유와 캔슬 컬처’를 비판했고, 곧바로 보수 성향 매체 GB뉴스의 워싱턴 지국 개국 행사에 참석했다. 현장에는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 등 트럼프 행정부 고위 인사들이 총출동해 트럼프-패라지 간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패라지의 노선은 강경 우파적이다. 그는 영국 안보를 직접 위협한다며 향후 5년간 최대 60만 명의 불법 난민 강제 송환 계획을 발표했고, 이를 위해 유럽인권협약(ECHR) 탈퇴, 1951년 유엔난민협약 적용 유예를 공언했다. 유럽 내 일부 언론은 이를 두고 “추악한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내놓기도 했지만, 보수 언론계에선 “중산층의 바람을 반영했다”는 우호적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처럼 난민 이슈가 영국 정국을 뒤흔드는 양상은 미국 보수 진영의 관심사와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트럼프 정부가 영국 현 정권과 원전·기술 협력을 서두르면서 동시에 패라지 같은 차기 주자와도 교류를 강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규제 완화와 에너지 안보 강화를 내세운 우파 정치인의 부상이 자국 기업에 장기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제공할 것이란 기대에서다. 노동당 정부와의 협정으로 에너지 안정성과 투자 기반을 다지고, 나아가 차기 주자와의 네트워크를 확장함으로써 정권 교체 이후에도 기술·원자력 수출 가능성을 지키겠다는 구상이다. 양국의 이번 협력이 영국 권력 지형 변화에 대비한 미국의 중장기적 포석으로 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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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미 관세 협상에서 통화스와프 제안, 대미 투자로 외환시장 혼란 우려

정부, 대미 관세 협상에서 통화스와프 제안, 대미 투자로 외환시장 혼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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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 투자 3,500억 달러, 외환보유고의 83%
대규모 펀드 조성 과정에서 환율 급등 우려 
관세 협상 마무리한 日, 16일부터 15% 관세

한국과 미국의 무역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한국 정부가 3,500억 달러(약 483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 조성을 위해 한미 통화스와프를 미국 측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미 투자액의 규모가 한국 외환보유고의 80%를 넘어서는 만큼, 대미 투자펀드 조성 과정에서 외환시장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다만 현실적으로 합의 가능성은 낮으며 협상 전략의 일환일 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美, 대출·보조금 대신 직접투자 확대 요구

15일 기획재정부는 "미국과의 관세 후속 협상 과정에서 외환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구체적인 협의 내용에 대해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미국 측에 양국 중앙은행 간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통화스와프는 유사시 자국 화폐를 상대국에 맡기고 미리 정해진 환율로 상대국 통화를 빌려올 수 있도록 하는 계약으로 한국과 미국 간 통화스와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체결돼 2021년까지 유지됐다.

정부가 이 같은 카드를 검토하는 것은 대미 투자펀드 조성 과정에서 외환시장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미 투자액 3,500억 달러는 한국의 외환보유액 4,200억 달러(약 579조7,000억원)의 83.3%에 달하는 규모다. 한국은 직접 투자 대신 보증·대출·보조금 등으로 부담을 분산하려 하지만, 미국은 최근 일본과 체결한 합의처럼 직접투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본식으로 추진할 경우,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의 외환시장이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 향후 외환위기급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준기축통화국 日, 환율 방어 기제 견고해

한국과 일본은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차이가 크다. 일본은 달러·유로와 함께 세계 3대 기축통화로 꼽히는 엔화를 보유한 준기축통화국이다. 달러·엔 통화스와프도 무제한 가능해 외화 유출이 발생해도 시장 불안으로 직결될 가능성은 낮다. 무엇보다 견고한 펀더멘털이 강점이다. 일본은 막대한 대외 순자산을 축적한 데다, 경상수지 흑자 기조도 이어지고 있어 단기적인 엔 매도 압력이 곧바로 환율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도 일본 외환보유액(1조3,200억 달러·약 1,822조원)의 41.6%에 불과해, 단순 비중으로 보면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대규모 직접투자가 오히려 외환시장 안정화에 기여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달러·엔 환율은 미국 고용통계 발표 이후에도 146~148엔 선에서 보합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러한 안정세가 일본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과 직접투자 과정에서 발생하는 엔 매도·달러 매수 흐름에 의해 억제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일본 기업들은 대규모 인수나 출자를 진행할 때 환율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달러 매수를 장기간에 걸쳐 분산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매수 수요가 누적돼 달러 강세·엔 약세를 떠받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외환시장에서는 대미 투자 5,500억 달러 중 얼마가 엔 매도·달러 매수 주문으로 유입될지에 주목한다. 지급이 달러로 이뤄지면 보유 중인 달러를 충당이 가능하고, 자금 조달 역시 달러로 하면 환 거래가 발생하지 않아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JP모건체이스은행 환율 조사부장 타나세 준야는 “대출의 대부분은 환율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달러로 조달이 될 가능성이 높아 환거래가 발생하는 규모는 극히 일부에 그칠 것”이라며 “엔 매도는 트럼프 대통령의 잔여 임기인 3년 반 동안 수조 엔에 그칠 것이며,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25% 적용받은 韓 자동차 타격 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지난 4일 한국보다 앞서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일단락 지었다. 미국과 일본은 지난 7월 22일 15% 관세에 합의한 후, 세부 사항을 두고 후속 협상을 진행해 왔다. 당시 백악관은 ‘미·일 무역 합의 이행에 관한 행정명령’을 공개하면서 “일본 정부가 미국산 쌀 구매량을 75% 늘리고, 옥수수·대두 등 연간 80억 달러(약 11조원)어치 미국산 농산물과 관련 제품을 구매하는 방안을 신속하게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협정은 16일부터 발효된다.

이번 합의로 미국 시장에 수출되는 일본산 자동차는 15%의 품목 관세를 적용받는다. 반면 한국 완성차 업계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한국도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지만, 후속 협의 과정에서 대미 투자 펀드와 관련한 합의를 이루지 못해 여전히 25%의 관세를 부담하는 상황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일본보다 2.5%포인트 낮은 관세로 가격 경쟁력을 유지했던 한국산 자동차가 이제 일본보다 10%포인트 높은 관세를 부담하게 된 것이다.

일본뿐 아니라 유럽연합(EU)도 조만간 자동차 관세 15%를 이끌어낼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한국은 다급한 처지가 됐다. 현대차·기아는 지난 4월부터 부과된 25% 관세로 2분기(4~6월)에만 영업이익이 1조5,000억원 감소했다. 미리 출고돼 미국에 쌓여 있던 재고가 완충 역할을 했는데도 타격이 컸다. 미국 관세로 줄어든 이익이 현대차 8,282억원, 기아 7,860억원에 달했다. 국내 증권가에서는 관세로 인한 현대차의 3분기 이익 감소분이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추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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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고도화 위한 것" 직원 1,500명 중 500명 자른 xAI, 실상은 자금난 견디기 위한 전략?

"서비스 고도화 위한 것" 직원 1,500명 중 500명 자른 xAI, 실상은 자금난 견디기 위한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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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달라지는 세상과 발을 맞춰 걸어가고 있습니다.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에, 관성보다는 호기심에 마음을 쏟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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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쓰겠다" xAI, 일반 AI 튜터 팀 대규모 해고
천문학적 지출에 말라붙은 수입, 감원은 비용 절감 대책인가
수익성 제고 위해 AI 챗봇에 광고 삽입하는 방안도 고려 중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인공지능(AI) 기업 xAI가 직원 1,500명 중 500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단순 업무를 수행하는 인력을 대폭 줄이고, 전문 AI 튜터 팀을 꾸려 서비스를 고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xAI의 행보가 서비스 질 제고보다는 비용 절감을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xAI, 500여 명 한 번에 감원

1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최근 xAI는 일반 AI 튜터 팀 직원들에게 해고를 통보하고 이들의 시스템 접근 권한을 차단했다. 일반 AI 튜터 팀은 xAI 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던 조직으로, 원시 데이터를 분류하고 맥락화하는 등의 작업을 담당해 왔다. 해고 전까지만 해도 1,500명에 달했던 xAI 직원들이 활동하던 슬랙 메인 채널의 소속 인원은 해당 해고 조치 직후 1,000명 남짓까지 줄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최소 500명 이상이 단번에 해고된 셈이다.

xAI 측은 "즉각적인 '전략적 전환(strategic pivot)'을 발표하면서 '전문 AI 교사'의 확장을 가속화하고 우선순위를 높이는 한편, 일반 AI 교사 역할에 대한 집중은 축소하기로 했다"고 해고 사유를 설명했다. 비디오·오디오 주석, 문서 작성 등 일반적 과제를 수행하던 기존 인력 대신,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코딩, 금융, 법률, 의학, 미디어 등 특정 분야에 전문 지식을 보유한 인력을 중심으로 AI 모델 그록(Grok)을 고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xAI 측은 해고 이후 소셜미디어(SNS) 엑스(X)에 올린 게시물을 통해 전문 AI 튜터 팀을 10배로 확장하겠다고 밝혔으며, 공식 웹사이트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 AI 튜터를 모집하는 공고를 게재했다.

xAI의 고질적 자금난

다만 일각에서는 xAI의 이번 구조조정이 인건비 절감을 위한 방책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재 xAI는 경쟁사들과 달리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과의 협업 없이 독자적으로 데이터센터를 구축·운영 중이다. 서버 구축과 AI 모델 학습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자체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xAI가 올 한 해 동안 지출할 현금이 130억 달러(약 17조원) 규모로 추산되며, 수익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뾰족한 수익 창출원 없이 지출만이 불어나는 상황이 지속되자, xAI는 외부 자금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나섰다. 지난 6월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xAI가 50억 달러(약 6조9,000억원) 규모의 담보부 채권 발행과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50억 달러 규모의 전략적 지분 투자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지난 7월에는 외신을 통해 머스크 CEO가 AI 칩 구매를 위해 추가로 120억 달러(약 16조6,000억원) 조달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머스크 CEO는 xAI의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들과 서비스까지 속속 활용 중이다. 머스크 CEO가 설립한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는 xAI에 20억 달러(약 2조7,600억원)를 수혈했고, 6월 발행한 50억 달러 규모 회사채의 담보도 AI 모델 그록의 지식재산권(IP)을 포함한 핵심 자산이었다.

그록에 광고까지 넣는다

이에 더해 머스크 CEO는 수익성 제고를 위해 그록에 광고를 삽입하는 방안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비즈니스인사이더 보도에 따르면, 머스크 CEO는 광고주와 진행한 온라인 대화의 자리에서 “사용자 질문을 해결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광고로 내보낼 수 있다”고 발언했다. xAI가 2023년 11월 선보인 그록은 출시 초기 X 사용자에 한해 제공됐으나, 최근 자체 홈페이지를 갖추고 모델 4까지 출시하며 본격적으로 AI 시장 경쟁에 뛰어든 상태다. 다만 아직 구독 요금제를 제외한 수익 모델은 마련되지 않았다.

머스크 CEO는 광고주가 광고를 업로드하면 그록이 알아서 적합한 이용자에게 노출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창출한 광고 수익은 그록 구동에 필요한 고가 그래픽처리장치(GPU) 비용 충당에 활용된다. xAI는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 엔비디아 GPU 20만 장을 갖춘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올해 3월 추가 부지를 매입한 뒤 증설 작업을 진행해 추가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머스크 CEO는 “지금까지는 그록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고 정확한 인공지능으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며 “이제는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지 고민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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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술 쇼핑’ 나선 독일 자동차 거인들, 글로벌 전기차 ‘DNA 재설계’

‘중국 기술 쇼핑’ 나선 독일 자동차 거인들, 글로벌 전기차 ‘DNA 재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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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폭스바겐, 中 파트너와 공동 개발
르노·포드, 中 EV 플랫폼 활용 '글로벌 모델' 모색
"수십억 달러·수년 개발 시간 절약"
중국 SAIC와 공동으로 개발한 아우디 전기차(EV) 시리즈의 첫 번째 모델인 '아우디 E5 스포츠백'/사진=아우디

독일 완성차 기업들이 중국 업체들과의 제휴를 강화하며 신차 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제공하는 소프트웨어가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의 신차 경쟁을 관통하는 ‘차이나 인사이드’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다만 일각에서는 단기적 협업의 이점과 달리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브랜드의 기술 자립성과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우디, 中 파트너와 공동 개발

1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아우디·폭스바겐 등 전통 강자들은 중국 전기차의 플랫폼과 소프트웨어를 이식받아 신차 개발 속도전에 뛰어들고 있다. 이러한 판도 변화의 시작은 2021년 아우디 경영진이 중국 지리자동차그룹의 고급 브랜드 '지커(Zeekr)'가 내놓은 '001' 모델을 마주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 특유의 세련된 미학과 압도적인 주행거리를 갖춘 지커 001의 등장은 독일 고급차 브랜드에 거대한 충격파를 던졌다.

위기감을 느낀 아우디의 선택은 중국과의 협업이었다. 아우디는 상하이자동차(SAIC)와 공동 개발한 ADP(어드밴스드 디지털 플랫폼, Advanced Digitized Platform)를 바탕으로 'E5 스포츠백'을 포함한 전기차 3종을 기획해 올해 중국 시장에 내놨다. 부품·배터리·인포테인먼트·운전자 보조 시스템 등 핵심 기술을 SAIC에서 제공받아, 기존 독일 생산 모델보다 출시 시간을 30% 이상 단축했다. 아우디는 외관·실내 디자인과 고급 설계에 집중하고, SAIC가 소프트웨어·구동계(전기모터, 배터리관리 등)·연결성·하드웨어 개발을 주도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나눴다.

아우디뿐 아니라 토요타도 광저우자동차(GAC)와 손잡고 중국 전용 모델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르노와 포드는 중국 전기차 기업의 플랫폼을 세계 신 모델 개발에 직접 도입하거나 사용권 계약 방식으로 활용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르노는 중국 둥펑의 플랫폼으로 유럽 소형 전기차 '다치아 스프링'을 생산했으며, 포드는 중국 최대 배터리 제조사 CATL(닝더스다이, 寧德時代)의 배터리 기술을 북미 생산 라인에 적용했다.

허샤오펑 샤오펑 CEO가 2024년 11월 6일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2024 AI 데이' 행사에서 자사 자율주행용 AI칩 '튜링'을 소개하고 있다/사진=샤오펑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 중국 기술에 의존 심화

폭스바겐도 중국 샤오펑(Xpeng)과 손잡고 '차이나 온리(China Only)' 전기차 모델을 공동 개발하며, 세계 시장 출시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지난해 폭스바겐은 4.99%의 지분을 확보하는 대가로 샤오펑에 7억 달러(약 9,712억원)를 투자한 바 있다. 이를 통해 폭스바겐은 자체적으로 개발하기 어려웠던 스마트카 소트웨어에 접근할 수 있게 됐고, 샤오펑은 재정적 이익과 함께 글로벌 확장 기회를 얻게 됐다.

양사는 최근 인공지능(AI)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샤오펑의 공동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허샤오펑은 1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자사가 설계한 '튜링'(Turing) AI 칩을 내년에 중국 시장에 출시 예정인 일부 폭스바겐 차량 모델에 통합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허 CEO는 지난 11일 신형 전기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G7' 출시 행사에서 "우리의 튜링 AI 칩의 실질적인 연산 성능은 미국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칩 '오린X'보다 3배 더 뛰어나다"고 주장한 바 있다.

FT는 "샤오펑은 엔비디아, 퀄컴 등 서방 반도체 업체에 도전장을 내민 중국 자동차 기업 중 하나"라며 "샤오펑의 자율주행용 칩 개발은 수년간 외국 반도체 의존도를 줄이려 한 중국의 칩 설계 역량 진전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진단했다. 이어 "샤오펑이 폭스바겐과 같은 경쟁 자동차 업체에 자사의 칩 기술을 판매하기로 한 것은 치열해지는 전기차 경쟁 속 외국 자동차 제조사들이 중국 기술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중국에 밀려 추락하는 독일 車업계, '차이나 인사이드' 선택

독일 대표 자동차 기업들이 중국 기업들과 손 잡는 것은 중국 수렁에 빠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자동차 산업은 현재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풀린 돈이 물가를 끌어올리면서 생산 비용 부담은 커졌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경기가 얼어붙었다. 주머니 사정이 팍팍한 소비자들은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독일 자동차 3사의 작년 실적을 보면, BMW(-37.7%)·벤츠(-30.8%)·폭스바겐그룹(-15.1%) 등 독일 업체들의 영업이익이 최고 30%대 급감했다. 현대차그룹(+0.6%), 일본 혼다(+16.4%), 미국 제너럴모터스(+20.2%)와 대비된다. 지난해 주요 완성차 기업 중에선 중국 1·2위 업체인 BYD와 지리그룹만 판매량이 늘고 나머지는 대부분 판매량이 전년보다 줄어든 가운데, 수익성 면에서 독일차의 부진이 두드러진 것이다.

이런 상황 속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의 중국을 향한 러브콜은 중국 전기차 제조사에 새로운 수익 창출원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국 내 출혈 경쟁과 심화하는 무역 갈등 속에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세계 제조사들은 개발 장벽을 단숨에 뛰어넘고 신차를 빠르게 출시할 수 있는 지름길을 얻는다. 이 같은 전략은 1990년대 PC 시장을 휩쓸었던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 캠페인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인텔이 최첨단 부품 공급을 통해 PC를 고급 제품으로 격상시켰듯, 이제는 중국 기업들이 전기차 소프트웨어를 판매한다.

하지만 이 같은 전략이 장기적으로 봐도 상생 모델로 남을지는 미지수다. 가장 큰 우려는 세계 브랜드가 중국 기술에 종속돼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앤디 파머 전 애스턴마틴 CEO는 "기업들은 연구개발(R&D) 비용을 아낄 수는 있겠지만, 제3자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단순한 유통업체로 전락해 결국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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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에 빅컷 요구하는 트럼프, 시장은 "기준금리 0.25%P 인하 가능성 높아"

연준에 빅컷 요구하는 트럼프, 시장은 "기준금리 0.25%P 인하 가능성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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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금리 인하하기 좋은 시점, 빅컷 있을 것"
전문가·시장은 나란히 9월 스몰컷 점쳐
금주 日·英 등 주요국 다수 통화 정책 결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빅컷(기준금리 0.5%P 인하)’을 주문하고 나섰다. 인플레이션이 진정 흐름을 보이고 있는 만큼, 기준금리를 대폭 인하해 주택 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연준의 이번 달 금리 인하 폭이 0.25%P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추세다.

트럼프, 재차 금리 인하 압박

14일(이하 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빅컷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지금은 금리를 인하하기에 완벽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4.25∼4.50%인 미국의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는 연준에 ‘금리를 1% 수준으로 낮추라’고 요구해 왔다. 자신의 요구대로 금리를 과감하게 인하하지 않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향해서는 과격한 언행을 서슴잖으며 해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은 금리를) 인하하기에 완벽하다"며 "그(파월 의장)는 (금리를 유지함으로써) 주택 시장에 가장 큰 해를 끼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주택 외에는 모든 경제 상황이 양호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에너지, 식료품 등 거의 모든 것의 가격이 내렸다"며 "하지만 연준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바람에 주택 가격은 그렇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대로 최근 미국 물가 지표는 안정적인 추이를 보이고 있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2.9% 상승했다. 이는 로이터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2.9%)에 부합하는 수치다. 같은 기간 CPI의 선행 지표로 꼽히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월 대비 0.1% 하락하며 0.3% 상승을 예상한 다우존스 집계 전문가 전망을 크게 밑돌았다.

미국 국채금리 추이/자료=파이낸셜타임스

시장, 연말까지 0.25%P 인하 3회 예상

다만 전문가들은 연준이 이번 달에 빅컷을 단행할 확률은 낮다고 본다. 주요 지표상 금리 인하는 기정사실이지만, 금리 인상 폭은 0.25%P 선에서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로이터통신이 지난 8~11일 경제학자 10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중 105명은 연준이 16~17일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 인하하리라고 예상했다.

시장 또한 유사한 전망을 내놓는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현재 연방기금금리(FFR) 선물시장에서 미 기준금리가 이달 4.00~4.25%로 0.25%P 하향 조정될 가능성은 96.4%, 빅컷 가능성은 4% 미만으로 반영되고 있다. 연준이 연말까지 총 3차례(0.75%P)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74% 수준으로 집계됐다. CME 페드워치툴은 금리선물시장의 동향을 근거로 미국 금리 전망을 산출한다.

미국의 국채금리 역시 기준금리 인하 기대 속에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벤치마크 10년물 국채금리는 지난 11일 뉴욕 채권시장에서 장중 3.994%까지 내려 4월 '관세 쇼크' 이후 최저치를 경신했으며, 현재는 4.07%를 기록 중이다. 2년물은 3.5%대에서 소폭 등락을 반복 중이며, 30년물은 지난 11일 4.65%로 2bp 넘게 떨어진 뒤 지금은 4.68% 선을 유지 중이다. 채권의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인다. 금리가 하락하면 그만큼 채권 가격이 상승한다는 의미다.

각국 '금리 인하 릴레이' 예정

시장 전망대로 연준이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경우, 통화 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주요국의 셈법은 한층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말까지 주요 7개국(G7) 중 4개국을 비롯해 글로벌 경제 전체 규모의 5분의 2에 해당하는 국가들이 통화 정책 조정을 앞두고 있다. 오는 17~19일 사이 미국과 캐나다, 영국, 일본 중앙은행들이 금리 조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며, 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의 중앙은행들도 이번 주 중에 금리 회의를 연다.

일본의 경우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동결할 공산이 크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은행 내에서는 미국의 고관세 정책이 국내외 경제·물가 정세에 미치는 영향을 우선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시장에서도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며, 다음 금리 인상 결정은 빨라야 10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에 힘이 실리는 추세다. 이 밖에도 영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남아공 역시 금리를 바꾸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캐나다·노르웨이 중앙은행은 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금리를 낮출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는 인플레이션 상승세 속 고용 악화, 경기 둔화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현재 2.75%에서 2.5%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 노르웨이의 경우 인플레이션 과열 양상이 시장 예상을 뛰어넘고 장기화하며 금리 인하 필요성이 제기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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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 루피화 사상 최저치 하락, 트럼프 관세에 흔들리는 모디노믹스

印 루피화 사상 최저치 하락, 트럼프 관세에 흔들리는 모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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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징벌적 관세로 외국인 자본 이탈
올 들어 증시도 급락, 시총 1조 달러 증발
대미 무역 협상이 경제 성장의 핵심 변수

인도 정부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두고 미국과의 갈등을 이어가는 가운데, 미국의 징벌적 고율 관세가 루피화 가치를 끌어내리며 달러 대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인도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본시장 전반에서 빠르게 이탈한 것이 루피화 약세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최근 경제성장률이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인도의 핵심 경제 전략인 '모디노믹스'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 둘러싸고 美·印 갈등

15일(이하 현지시각) 닛케이 아시아는 "루피화가 지난 11일 달러당 88.491루피로 장을 마감하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며 "올해 초부터 이어진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이 루피화의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월 루피·달러 환율은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 흐름에 글로벌 달러 강세가 맞물리며 88.00루피까지 하락했다. 지난 1일에도 장 중 한때 88.33루피까지 떨어지며 최저점을 찍었지만, 인도중앙은행(RBI)이 달러 매도 개입에 나서면서 88.19로 마감한 바 있다.

외국인 자금 이탈의 배경으로는 대미 무역 갈등이 꼽힌다. 러시아안 원유 수입에 따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징벌적 관세가 불확실성을 키워 성장에 타격을 입힐 것이란 우려가 루피화의 가치까지 끌어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부과한 대인도 관세율은 50%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가까운 친구이자 파트너'라고 하면서도 유럽국에도 인도에 대한 징벌적 관세 부과를 요구하는 등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인도는 에너지 시장 안정을 위해 러시아산 원유를 계속 수입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미국의 조치는 불공정하고 부당하다”고 반발했다. 양측은 지난달까지 5차례 협상을 진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징벌적 관세는 양국이 수십 년 동안 쌓아 온 긴밀한 관계를 뒤엎는 조치”라며 "이번 관세 인상 조치가 외환시장의 트리거로 작용하면서 올 들어 루피화의 수익률은 아시아 통화 가운데 가장 나쁘다"고 짚었다.

印 주가 하락에 국내 상장 EFT 손실 확대

인도 자본시장의 불안은 증시에서도 확인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본격화한 지난 3월 인도 주식시장은 약세장으로 진입했다. 인도 증시의 양대 대표 지수인 니프티50(Nifty 50)과 선섹스(SENSEX)는 지난해 9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최장기간 하락세를 보이면서 각각 14% 하락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1조 달러(약 1,380조원)가 증발했다. 중·소형주 중심의 스몰캡과 미들캡 지수도 20% 이상 떨어지며 약세장을 형성했다. 8월 들어 조정 국면에 들어서면서 증시가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뚜렷한 반등 흐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인도 증시의 약세가 장기화하는 사이 국내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한 인도 상장지수펀드(ETF)들은 올해 들어 대부분 손실을 나타냈다. 이들 상당수가 인도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했던 2023년에 상장돼 높은 기대를 모았지만, 투자자들의 기대와 달리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다. 지난달 기준 국내 상장 인도 ETF 12종 중 2종만 보합권을 유지했으며, 나머지는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인도 니프티50 ETF의 경우, 최근 6개월 기준 수익률이 –2.01%에 그쳤다. 3개월 기준으로는 -3.69%, 최근 1개월 기준은 –4.84%다.

인도 ETF 부진은 다른 아시아 증시가 고공행진 중이라는 점에서 한층 대비된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중국과 홍콩 관련 ETF는 총 44종으로, 최근 1개월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ETF는 2종뿐이다. 일본 증시 ETF는 반도체 집중투자 ETF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수익을 내고 있다. 도쿄 증권거래소 시가총액 상위 100개 종목으로 구성된 KODEX 일본TOPIX100 ETF의 경우 지난 한 달간 7.18%나 급등했다. 베트남에 투자하는 국내 유일의 ETF인 ACE 베트남VN30(합성) ETF는 최근 1개월 수익률이 15.05%, 3개월 수익률이 26.57%에 달한다.

4년 만에 최저 성장률, 체질 개선 필요

일각에서는 경기선행지수인 증시 침체가 모디노믹스의 둔화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총선 승리로 출범한 모디 정부 3기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 제조업 육성, 금융·세제 개혁 등을 촉진할 핵심 정책을 내세웠지만, 지정학적 긴장과 공급망 변화, 경제 성장 둔화라는 복합적인 외부 요인으로 정책 효과가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 관세 정책으로 인한 불확실성과 높은 인플레이션, 소비 위축, 실업률 상승, 빈부 격차 심화 등이 겹치면서 근본적인 체질 개선 없이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인도 경제는 4년 만의 최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인도 통계청에 따르면 2024~∼2025 회계연도(2024년 4월∼2025년 3월) 인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6.5%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9.2%) 대비 2.7%포인트 하락한 수치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인 2020∼2021 회계연도(-5.8%)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모디 정부가 목표로 제시한 연 8%대 성장률에도 크게 못 미친다. 이와 관련해 AFP통신은 지난해 인도 경제의 둔화 배경으로 제조업 부진, 긴축적 통화정책,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소비심리 위축 등을 꼽았다.

올해 상황도 녹록지 않다. 샘 조킴 EFG자산운용 이코노미스트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인도는 2025∼2026 회계연도에도 6.5% 성장할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의 관세 정책은 여전히 큰 불확실성"이라며 "모디 정부가 섬유, 신발 등 취약 업종을 지원하고 소비세 개편을 포함한 개혁을 추진해 경기 충격을 완화한다는 계획을 내놓기는 했지만, 결국 미국과 협상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느냐가 향후 인도 경제의 핵심 변수"라고 밝혔다. 시티그룹도 이번 관세가 인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6~0.8%포인트 낮출 수 있다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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