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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폴리시] 국경 분열의 비용, 통합이 여는 성장의 길

[딥폴리시] 국경 분열의 비용, 통합이 여는 성장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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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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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분열은 교역 축소와 투자 위축으로 경제 손실 초래
지역 통합은 교역 확대와 신뢰 구축으로 성장 기반 강화
미·중 디커플링은 인재·기술 교류 위축으로 성장 잠재력 제한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경 갈등, 민족주의, 전쟁의 후유증으로 국가가 세계와 거리를 두면 경제는 즉각 위축된다. 교역은 줄고 투자는 이탈하며 성장 동력은 약화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극심한 분열이 세계 국내총생산(GDP)을 최대 7% 감소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단기 충격이 아니라 수조 달러 규모의 장기 손실로, 각국의 성장 잠재력을 근본적으로 제약한다. 부채 부담까지 겹치면서 인프라와 공공서비스에 필요한 투자 여력도 줄어들고 있다. 결국 국경이 장벽으로 굳어질 때 시장의 기회와 자원은 함께 사라진다.

사진=ChatGPT

통합이 가져오는 효과

지역 통합은 교역과 소득 증가로 이어진다. 아프리카 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가 완전히 실현될 경우 2035년까지 3,000만~5,000만 명이 극빈에서 벗어나고, 실질소득은 7~9% 증가하며 전체 수출은 약 29%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건에 따라 수치는 달라질 수 있지만, 장벽을 낮추고 제도를 정비하면 통합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2019~2000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역내 무역과 세계와의 무역 규모
주: 연도(X축), 무역 규모(Y축)/대세계 무역(진한 빨간색), 역내 무역(연한 빨간색)

반대로 통합이 약화될 경우 경제 손실은 곧바로 나타난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그 사례다. 영국 예산책임청(OBR)은 무역 규모가 브렉시트 이전 예상치보다 장기적으로 약 15% 낮게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으며, GDP는 4~5%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현재까지 이미 2~3%의 손실이 발생했으며, 2030년대 중반에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세관 절차, 규제 차이, 공급망 단절이 교역과 투자를 위축시킨 결과다.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사례는 또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두 나라는 오랜 갈등을 완화하며 교역 확대에 나섰다. 양국은 교역 규모를 100억 달러(약 13조5,000억원)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2023년 교역액은 약 58억 달러(약 7조8,000억원), 2024년 튀르키예의 대그리스 수출은 약 48억 달러(약 6조5,000억원)에 달했다. 비록 양국 GDP 대비 규모는 크지 않지만, 에너지·운송·대학 협력으로 이어지며 갈등 재점화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국경 분쟁의 역사적 뿌리

인접국 간 협력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더라도 실제로는 자주 무산된다. 가장 큰 원인은 역사적 배경이다. 아프리카의 갈등 다수는 오래된 것이 아니라 근현대에 형성된 문제다. 식민지 시기 강제로 그어진 국경선은 공동체를 분단시켰고, 그 결과 국경으로 갈라진 집단은 차별을 더 자주 경험하고 갈등 위험도 높았다. 이러한 구조는 지역 성장과 인적자원 축적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이 문제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2023년은 2017년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쟁이 발생한 해였으며, 상당수가 아프리카에서 집중됐다. 수단 내전은 대표적 사례다. 국제평화연구소(PRIO)는 2021년 이후 군사 사상자가 증가했다고 보고했고, 아워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 WOID)에 따르면 1989년 이후 분쟁 관련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아프리카에서 발생했다. 지역별 차이는 있지만, 폭력이 국경 인근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협력으로의 전환

이 같은 현실은 범 지역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오래전부터 국경이 증오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왔다. 인적 교류 확대, 공동 현안에 대한 협력, 자격 기준 표준화는 실질적 효과를 낼 수 있다. 예컨대 한 나라에서 훈련받은 전문가가 불필요한 절차 없이 인접국에서 일할 수 있다면 곧바로 신뢰 강화와 협력 확대로 이어진다.

심리학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집단 간 직접적 접촉은 적대감을 줄이고 협력을 촉진한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정치적 긴장이 높을 때에도 인적 교류 채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대로 온라인에서의 부정적 상호작용은 편견을 강화하므로, 대면 협력의 필요성은 여전히 크다.

아프리카 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의 예상 효과
주: 아프리카 시장(인구 12억 6천만 명, GDP 2.1조 달러), GDP 1~3% 증가, 후생 161억 달러 증가, 역내 수출 33% 증가, 무역적자 50% 감소, 고용 1.2% 증가

강대국 갈등의 파급효과

국경 갈등이 지역 경제를 약화시키듯, 강대국 간 갈등도 비슷한 위험을 낳는다. 최근 미·중 관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 ‘전략적 디커플링(Decoupling)’이다. 이는 안보와 정치적 이유로 무역·투자·기술 협력을 줄이고 경제 관계를 의도적으로 끊어내려는 전략을 의미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런 무역 분절이 세계 GDP를 0.2%에서 최대 7%까지 줄일 수 있다고 추정한다. 이는 다수 국가에서 연간 인프라 투자와 고용 창출 여력이 사라지는 수준이다. 극단적 상황이 아니더라도 공급망을 ‘우방 중심’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공동 연구, 기술 협력, 인재 교류가 위축돼 성장 잠재력이 약화될 수 있다.

통합을 위한 과제

분열의 파급효과를 줄이려면 이동성과 교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럽의 경험은 규칙에 기반한 교류가 장기간에 걸쳐 긍정적 효과를 누적시킨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력 교류는 업무 품질을 높이고 기관 간 협력을 촉진하며 기술 확산을 가속한다.

또한 분열이 초래하는 비용을 수치로 제시해 대중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영국의 소비자 조사에서도 민족주의적 정책이 물가와 임금에 실제로 타격을 준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공적 논의가 달라졌다. 이는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생활 수준과 직결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지역 차원의 협력 사업도 중요하다. 공동 프로젝트, 장기 교류 프로그램, 인력 부족 분야의 공동 자격제도는 주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낸다. 핵심은 현장 관리자가 협력할 권한과 예산을 갖는 것이다. 작은 협력이 반복되면서 신뢰와 회복력이 쌓인다.

마지막으로 통합은 이상적으로만 볼 수 없다. 권력자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이익이 불균등하게 분배되면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무역장벽 완화와 함께 연결성 투자, 사회안전망 확충, 불평등 관리가 병행돼야 지속 가능한 통합이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이런 제도가 마련돼야 협력이 분열을 자극하는 정치적 요인을 견딜 수 있다.

협력의 방향

세계가 극단적 분열로 치닫는다면 경제적 손실은 막대하다. 반대로 이웃 국가들이 규칙을 마련해 상품과 인재,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이동한다면 갈등 위험은 줄고 투자 여력은 확대된다. 아프리카 대륙 시장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점진적 화해는 어려운 역사적 배경 속에서도 실질적 진전을 이룰 수 있음을 입증한다. 유럽의 이동성 프로그램은 수십 년간의 교류가 경력과 신뢰를 함께 키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목표는 국경을 없애는 데 있지 않다. 국경이 분열의 요인이 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협력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정치 주기에 흔들리지 않는 교류 채널 보호, 분열의 비용을 시민에게 투명하게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이 뿌리내릴 때 다음 세대는 갈등을 줄이고 삶의 기회를 넓히는 국경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High Price of Distance: How Borders Become a Tax on Learning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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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신고가 만드는 외국인 머니” 도쿄 아파트, 버블 수준 가격 폭등에 몸살

“아파트 신고가 만드는 외국인 머니” 도쿄 아파트, 버블 수준 가격 폭등에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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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찾고 있습니다. 산업 현장을 취재한 경험을 통해 IT 기업들의 현재와 그 속에 담길 한국의 미래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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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침체 벗어난 日 아파트값 상승세
도쿄 핵심지 폭등, 양극화 현상 뚜렷
내 집 마련 멀어진 서민들 불만 고조

일본 도쿄의 아파트값이 연일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엔저에 힘입어 외국인 자금이 대거 유입되는 가운데, 공급 부족이 맞물리면서 아파트 값이 버블기 정점을 넘어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평균 가격은 불과 5년 만에 85% 치솟았고, 핵심 지역에서는 외국인 매수세가 30% 이상을 차지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이에 일본 내부에서는 외국인 투자 확산에 대한 반발과 시장 삼극화에 대한 위기감이 동시에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불붙은 도쿄 부동산 시장

17일 일본 부동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도쿄 23구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2020년 7월 평균 5,662만 엔(약 5억3,000만원)에서 올해 7월 1억477만 엔(약 9억9,000만원)으로 뛰었다. 5년 만에 85%가 오른 것이다. 이 같은 급등세는 지난달에도 이어졌다. 도쿄, 가나가와, 사이타마, 지바 등 1도 3현에서 출시된 신축 아파트의 평균가격은 1억75만 엔(약 9억5,0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28.4% 상승했다. 이 지역에서 지난달 출시된 신축 아파트의 평균 가격이 1억 엔을 넘은 것은 올해 3월 이후 4개월 만이다.

이 중 도쿄 23구는 고가격대의 대규모 물건이 많이 팔리면서 24.4% 상승했고, 평균 가격은 1억3,532만 엔(약 12억7,500만원)을 기록했다. 분양 가구수는 71.6% 증가한 1,045가구로, 고가격대의 분양 물건이 증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사이타마는 우라와 지역과 가와고에 지역에서 타워맨션(고가 아파트)이 공급된 영향으로 42.9% 상승한 7,070만 엔(약 6억6,500만원), 가나가와는 6% 상승한 6,478만 엔(약 6억1,000만원), 지바는 11% 상승한 5,932만 엔을 각각 기록했다. 분양 가구수도 크게 늘었다. 8월의 수도권(1도 3현) 신축 분양 아파트 가구수는 전년 동월 대비 34.1% 증가한 2,006가구를 나타냈다. 이는 3개월 만의 증가이다.

외국 투자자들 대거 유입

도쿄의 아파트 가격 급등의 주요 원인으로는 외국인의 투자목적 구매가 꼽힌다. 외국인 방문객과 해외 투자 자금이 몰려들면서 도쿄의 집값이 특히 들썩인다는 분석이다. 실제 미쓰비시UFJ은행이 부동산 관련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난해 7∼12월 신축 주택의 판매 실적 조사를 보면, 해당 기업 13곳 가운데 9곳이 지요다구, 시부야구, 미나토구 등 도쿄 핵심지 맨션의 구입자 중 외국인 비율이 20% 이상이라고 응답했다. 5곳은 30% 이상이라고 했으며, 한 곳은 절반 이상이 외국인 매수자라고 답했다.

일본 정부 차원의 명확한 실태 조사는 아직 없지만, 도쿄 부동산 구매자 가운데 상당수는 중국인으로 알려졌다. 중국 부유층이 도쿄, 요코하마, 고베 등 국제학교에 자녀를 대거 유학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 학부모로부터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은 도쿄대가 있는 분쿄구다. 분쿄구의 중국 국적 주민수는 2022년 4,792명에서 3년 만에 8,666명으로 증가했다.

이에 일본 내에서는 외국인 머니의 도쿄 부동산 시장 침투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장기 불황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사실상 외국인과 자국민이 동등한 조건에서 부동산을 구매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지난 6월 치러진 참의원 선거의 최대 승자로 꼽히는 신생 정당 참정당은 ‘외국인의 부동산 매입 억제’ 등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워 3년 전 2석에 불과했던 의석을 15석으로 늘렸다.

이런 도쿄의 집값 상승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진 서민들은 월세 시장으로 내 몰리고 있다. 일본 부동산중개업체 앳홈(AT Home)에 따르면 도쿄 23구에 거주하는 임차인의 소득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34%에 달했다. 일반적으로 소득 대비 월세 비율은 25∼30%가 한도치로 여겨지는데, 이를 넘어서는 상황은 가계에 심각한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한 중국인 건물주가 도쿄 임대 아파트의 월세를 일방적으로 2배 인상한 뒤, 세입자들이 반발하자 엘리베이터 운행을 중단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10%만 오르고 나머지는 하락, 부동산 삼극화 현상 가속

다만 이 같은 집값 폭등 현상은 도쿄에만 집중돼 있다. 도쿄의 인접 도시인 사이타마시의 경우 같은 기간 3,094만 엔(약 2억9,000만원)에서 4,324만 엔(약 4억1,000만원)으로 올랐다. 지방의 오름폭은 더 완만하다. 나고야시는 일본 중부 아이치현의 중심 도시지만 같은 기간 2,359만 엔(약 2억2,000만원)에서 2,907만 엔(약 2억7,000만원)으로 올라 14%에 그쳤다.

도쿄 일극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시장에서는 ‘삼극화(三極化)’ 현상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10~15% 부동산이 ‘가격 유지 또는 상승’하는 반면 70% 부동산은 ‘완만하게 하락’하고 있으며 나머지 15~20% 부동산은 ‘사실상 가치가 없거나 하락’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부동산 시장 전체가 뜨겁게 급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80~85% 부동산의 가치는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를 두고 일본 경제 전문가들은 일본 부동산 가격이 버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고소득자도 도쿄 시내 신축 아파트에 손을 대기 어려울 정도로 가격이 오르면서 ‘레이와(令和) 버블’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레이와는 2019년 시작된 일왕의 새 연호다. 전문가들은 레이와 버블이 1990년쯤 부동산 버블과 다른 건, 일부 고액 물건이 평균 가격을 끌어올리는 점이라고 짚었다. 실제 2023년에 준공된 ‘아자부다이힐즈’ 레지던스의 경우 펜트하우스 가격이 200억 엔(약 1,880억원) 이상이다. 이런 고가 아파트는 지요다, 미나토, 주오, 시부야, 신주쿠 등도심 5개 구를 중심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평균 가격을 밀어 올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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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파이낸셜] 인간은 어떤 이유로 얼마만큼 저축하는가?

[딥파이낸셜] 인간은 어떤 이유로 얼마만큼 저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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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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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하는 이유? ‘은퇴, 위기 대비, 상속’
측정 가능해 ‘교육 정책’ 활용 가능
변수 고려한 지원 제도 설계 ‘바람직’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인류가 저축하는 이유를 은퇴 및 위기 대비와 자녀들에 대한 상속으로 설명해 왔다. 그런데 연구에 따르면 이 가설은 실제와 맞을뿐더러 측정 가능하고 강력해 가구 경제를 넘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왜 저축하는가?

미국 생애 주기 자료를 근거로 한 최근 연구는 가구의 부와 일에 영향을 미치는 동기를 분석했다. 예를 들어 유산을 남기고 싶은 바람을 제거하면 가구의 부는 24% 줄어들고 근로 소득도 1% 감소한다. 은퇴 대비와 인생 전반에 걸친 불확실성만 남기고 모든 변수를 제외하면 부와 소득의 감소 폭은 더 커져 재산은 57%, 소득은 3% 준다. 유산이나 임금 관련 변수, 건강 이상, 가족 관계 등이 생애에 걸쳐 저축을 하고 노동 시간을 배분하는 이유와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는 교육 당국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등록금 납부 마감이나 학비 지원, 수업 일정 등이 위에서 언급한 변수들과 상호 작용하기 때문이다. 근로 시간과 돌봄 의무, 가족의 기대 사이에서 애쓰는 학생이 있다면 똑같은 위험과 동기에 반응하는 셈이다.

의료비 걱정만 덜면 저축 13% 감소

이 연구의 핵심 방법론은 요인 분석(factor analysis, 관찰된 상관 변수 집합에서 기본 잠재 요인을 식별하여 데이터의 복잡성을 줄이는 통계적 방법)이다. 그러니까 가구 경제를 분석할 때는 소득, 의료비, 근로 시간, 유산 등의 흩어진 변수들을 압축해 위험 회피, 유동성 압박, 후손에 대한 염려 등의 영향 요인으로 재분류하는 것이다.

관찰 변수를 통한 영향 요인 분석
주: 미납금, 긴급 지원 요청, 심야 로그인 증가, 교대근무 변경 요청, 어린이집 이용(좌측부터) , *첫 번째 막대그래프는 현금 압박, 두 번째는 일정 부담의 비중을 의미

이러한 영향 요인들을 생애 주기 모델에 입력하면 반대 가정(counterfactuals)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월급이나 의료비 걱정이 사라지면 부와 저축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와 같은 질문들이다. 그 결과 임금 걱정이 사라지면 가구의 부는 10% 줄었지만 근로 소득은 2% 증가했다. 임금이 안정적이면 근로 소득과 소비가 함께 늘어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또 의료비를 변수에서 제외하면 부는 13%, 소득은 0.7% 각각 감소했다. 결혼 및 이혼도 미혼자와 기혼자들의 저축과 근로 양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가구 저축 동기가 부와 소득에 미치는 영향(%)
주: 유산 상속 동기 제거, 의료비 걱정 제거, 월급 걱정 제거, 결혼 및 이혼 변수 제거, 은퇴 대비 및 불확실성 외 모든 변수 제거(좌측부터), 부의 변동 폭(좌측 막대그래프), 소득 변동 폭(우측 막대그래프)

저축 동기 파악하면 ‘학생 지원’에도 효과적

중요한 점은 이러한 동기들이 측정될 수 있으니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중 하나가 과거의 유물로 치부되던 유산 상속으로, 저축 패턴과 은퇴 시 재산, 인생 초기 증여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볼 때 현재도 매우 중요한 변수가 틀림없다. 유럽의 연구 결과도 은퇴자들이 비용을 아끼는 것은 생계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자손에게 부를 물려주고 싶은 바람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유산 상속에 대한 기대 역시 저축에 영향을 미친다.

이를 교육에 적용하면 학비를 지원할 때 부를 유동성과 동일시하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자식에 대한 상속을 염두하고 있는 이들은 자산을 처분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타당함에도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가구가 자산을 팔아 교육비를 마련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판이 될 수 있다. 그보다는 가구 소득에 기반한 등록금 환급, 납부 연기, 소득 흐름을 감안한 일정 등이 실질적 도움이 된다.

실제로 학생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생애 주기에 맞닥뜨리는 위험을 반영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시간제 및 교대 근무자들은 예상치 않게 근무시간이 줄어들 수 있어 예측 가능한 등록금 납부 일정이 부담을 낮출 수 있다. 갑작스러운 수술의 경우에도 4시간 이내에 응급 지원이 제공되면 보험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결별이나 이사로 맞벌이가 깨진 경우에도 융통성 있는 수업 일정과 휴학 및 복학 제도가 저축 및 근로 일정에 도움이 된다.

학생의 어려움은 가구의 어려움

관련 기관들은 관찰 가능한 데이터를 요인 분석에 적용한 위험 현황판을 활용할 수 있다. 미납금이나 긴급 지원 요청, 출석률 감소, 어린이집 이용 등을 함께 분석하면 현금 흐름 압박이나 돌봄 스트레스처럼 감춰진 변수들이 드러날 수 있다. 학생들의 이탈 요인을 찾아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정책당국과 기부자들과의 의사소통도 진화해야 한다. 긴급 지원은 도덕적이지만 비용 효율적이기도 하다. 임금 및 건강상의 변수가 감춰진 위협이라면 소규모의 빠른 도움이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해 학업 유지를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산에 대한 동기를 인정하는 것도 가족이 반대하는 지원 방식만을 고수하지 않게 해 줄 것이다.

결국 등록금 정책과 지원 프로그램도 가구의 감춰진 동기와 위험에 맞춰 설계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학생들이 안정된 일정 속에서 대출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 학업에 전념할 수 있다면 성공적인 결과가 아니겠는가? 인간이 저축하는 이유를 안다는 것은 위험을 감안한 더 현명한 교육 정책이 가능하다는 얘기와 같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When Data Finds the Hidden Reasons We Save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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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다음은 AI” 오픈AI, 청소년 전용 챗GPT 출시

“스마트폰 다음은 AI” 오픈AI, 청소년 전용 챗GPT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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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적·폭력적 콘텐츠 차단·위기 상황 법 집행 연계
올트먼 "새롭고 강력한 기술, 청소년은 상당한 보호 필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 조사 착수 계기

오픈AI가 18세 미만 청소년을 위한 전용 챗GPT 버전을 공개했다. 폭력·선정적 콘텐츠를 자동 차단하고, 부모가 사용시간과 기능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안전 장치가 강화된 것이 핵심이며, 일부 특수 상황에서는 법 집행기관에 통보 기능도 포함된다. 이번 조치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청소년 보호 문제를 본격 조사하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미국 각 주에서 학교 내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올트먼 “미성년자는 자유보다 안전이 우선”

16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블로그를 통해 "우리는 청소년의 프라이버시와 자유보다 안전을 우선시한다"며 "이 기술은 새롭고 강력하며, 미성년자는 상당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앞서 오픈AI는 지난달 부모 통제 기능이 도입된 챗GPT 출시 계획을 알린 바 있으며, 이번에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공개했다.

새 기능은 부모가 자신의 계정과 청소년 계정을 이메일로 연결해 사용 금지 시간을 설정하고, 특정 기능을 제한·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챗봇의 응답 방식을 안내하고, 청소년이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부모에게 알림을 전송하는 기능도 포함됐다. 또한 오픈AI 측은 사용자의 연령을 더 정확히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나, 정보가 불확실하거나 불완전할 경우 기본적으로 18세 미만 전용 환경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올트먼 CEO는 "전용 챗GPT 출시 결정은 쉽지 않았지만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최선이라고 판단했다"며 "우리의 의도를 투명하게 밝히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강화 조치는 최근 미국 FTC가 오픈AI를 포함한 기술 기업들을 대상으로 AI 챗봇이 청소년에게 미칠 잠재적 악영향을 조사하기 시작한 이후 나왔다. FTC는 보도자료에서 챗봇의 안전성 확보 조치를 확인하기 위해 기업들에 자료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보호 담론 속에 포장된 새로운 수익 창출로 보는 시각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미성년자의 안전과 학습 환경을 고려한 조치지만, 실상은 전용 계정 판매라는 전략적 의도가 읽힌다는 분석이다.

50개 주 중 35개 주, 학교 내 휴대전화 사용 금지

챗GPT의 이번 움직임은 전 세계 교육 현장에서 진행 중인 스마트폰 사용 규제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의 경우 50개 주 중 35개 주가 학교 내 휴대전화 또는 전자기기 사용을 법률이나 규정으로 제한한다. 이러한 변화는 2023년 플로리다주가 최초로 관련 법을 통과시킨 이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새로운 규정에 따라 일부 주에서는 수업 시간뿐 아니라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도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휴대전화를 자석 파우치나 사물함에 보관해야 한다.

이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애틀랜타 인근 맥네어 고등학교의 3학년 오드레아나 존슨은 “처음엔 대부분이 휴대폰을 반납하기 싫어했지만, 지금은 많은 학생들이 주의가 산만해지는 걸 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는 습관이 있는 학생들은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부모들의 입장도 다양하다. 에모리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휴대전화 제한 정책에 가장 큰 장애물은 부모의 반대였다. 존슨의 어머니는 “학교 폭력이나 위협 상황에서 자녀와 즉시 연락할 수 있어야 한다”며 휴대전화 소지를 지지했다. 전국 부모 연합의 제이슨 앨런 이사는 “대다수 부모는 제한 정책을 지지하지만, 자녀의 안전과 일정 조정 등 실질적인 소통 수단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책의 효과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다. 에모리 대학의 줄리 가즈마라리안 교수는 “교사들은 방해 요소가 줄어들어 교육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며, 학생들 간의 긍정적인 상호작용도 늘었다”고 밝혔다. 다만 괴롭힘 감소나 정신 건강 개선 여부는 아직 명확한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과제 대신해 주는 챗GPT, 학생들 생각 멈추게 해

교육 현장이 스마트폰 사용과 더불어 AI를 경계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학습의 외주화다. 학생들이 챗GPT에 과제를 떠넘기고 이를 그대로 제출하는 현상은 이미 여러 학교에서 빈번히 보고되고 있다. 그런데 AI가 제공하는 편의성은 단기적으로 학업 부담을 줄여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사고 능력과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마비시키는 위험을 내포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조슈아 윌슨 델러웨이대학 교육학과 부교수는 “우리의 사고력은 글쓰기 과정을 통해 향상된다”며 “챗GPT는 과정을 생략하고 완성품으로 점프하는 것으로 학생들이 사고하는 방법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주제에 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사라지면서 논리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기 힘들어진다는 지적이다.

AI가 청소년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진단도 있다. 앞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지난달 25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16세 소년의 부모가 오픈AI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매튜 레인과 마리아 인 부부는 소장에서 아들 애덤이 숙제를 위해 챗GPT를 활용하다가 점점 더 의존하게 됐고, 지난 4월 11일 마지막 대화에서는 자살에 도움을 주는 답변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애덤은 챗GPT와 대화를 나눈 지 몇 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손해 배상을 포함, 자해와 관련한 모든 대화의 자동 종료와 미성년 자녀를 위한 보호 기능 같은 안전 조치를 명령해 달라고 법원에 요구했다.

미국 비영리단체 디지털증오대응센터(CCDH)의 보고서에 따르면 13세 청소년을 가장한 연구진에 대한 챗GPT의 응답(1,200개) 중 절반 이상(53%·638개)이 청소년에게 해로운 내용인 것으로 조사됐다. 챗GPT는 연구진의 요구에 따라 자해, 약물 남용, 식욕 억제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심지어 자살 충동을 보인 이용자에게 가족·친구에게 남길 유서를 작성해 주기도 했다. 챗GPT가 답변을 거부해도 ‘발표 준비를 하는 것’이라는 설명만으로 쉽게 우회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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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테크] 공정성 검증이 관건인 AI 선거 정보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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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AI 선거 가이드, 선거 단순화 효과와 편향 위험 공존
규칙 설정과 출처 공개를 통한 오류 최소화
독립적 감독으로 패배한 측도 수용 가능한 신뢰 확보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Research Memo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년은 전 세계적으로 선거가 집중된 해였다. 약 70개국에서 37억 명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이는 인류의 절반에 해당한다. 같은 시기 네이처 휴먼 비헤이비어(Nature Human Behaviour)에 실린 연구는 토론 상황에서 대형 언어모델(LLM)이 인간보다 설득력을 가질 확률이 64%에 달했다고 밝혔다. 성별이나 정치 성향 같은 민감한 정보를 활용하지 않고도, 최소한의 개인 정보를 바탕으로 맞춤형 논리를 제시했을 때 효과가 두드러졌다.

이 결과는 인공지능이 적은 정보만으로도 유권자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방대한 선거 정보를 정리해 전달할 잠재력도 확인됐다. 따라서 후보자의 입장과 정책을 신속히 요약해 제공하는 정치 정보 도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내용을 요약할지, 출처의 비중을 어떻게 둘지, 답변을 제한할 조건을 어디에 설정할지는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정치적 결정과 직결된다. 핵심 과제는 새로운 도구의 도입 여부가 아니라, 경쟁에서 패한 세력까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공정하게 설계할 수 있느냐다.

사진=ChatGPT

실험으로 확인된 가능성과 한계

2024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민발의안 선거에서 진행된 무작위 대조 실험은 이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다. 당시 유권자들은 12개 이상의 발의안을 검토해야 했으며, 각 문항은 수십 쪽에 달하는 공식 안내문으로만 제공됐다. 연구팀은 이 안내문을 그대로 제공하는 표준 가이드와, 동일 자료를 기반으로 질의응답을 지원하는 인공지능 챗봇을 비교했다.

그 결과 챗봇을 활용한 집단은 정책 세부 질문에 대한 정답률이 18% 높았고, 응답 시간은 10% 단축됐다. 다른 발의안을 추가로 확인한 비율도 70% 이상 증가했다. 이는 긴 문서를 읽지 않고도 핵심을 파악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투표율과 표심 변화에는 별다른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고, 지식 향상도 반복 사용이 없으면 유지되지 않았다. 정보 접근성은 개선됐지만 민주적 참여의 질적 향상으로 자동 연결되지는 않았다.

캘리포니아 선거용 AI 챗봇 사용 효과
주: 그래프(a) 정답 비율, 그래프(b) 응답시간, 그래프(c) 정답에 대한 확신/심화 문항에서는 정답률이 상승하고 응답 시간이 단축되었으며, 기초 문항에서는 변화가 거의 없거나 부정적이어서, 효과는 이해 난도가 높은 문항에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뢰성과 공정성의 과제

문제는 신뢰성이다. 2024년 미국 예비선거 기간 진행된 독립 테스트에서 범용 챗봇은 선거 행정 질문의 절반 이상을 잘못 답변했고, 약 40%는 오도되거나 유해한 응답으로 판정됐다. 사용자는 효율성을 느낄 수 있지만, 검증 체계가 부족할 경우 오류가 대규모로 확산될 위험이 크다. 실제로 2025년 조사에서도 미국 성인의 3분의 1만이 선거 정보 검색에 챗봇을 활용한 경험이 있었으며, 신뢰 수준은 낮게 나타났다.

공정성 역시 핵심 쟁점이다. 정치 정보 도구가 중립을 표방하더라도 정보를 배열하고 요약하는 방식이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 기존 검색엔진의 순위 조정만으로도 부동층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특정 후보의 의정 활동을 강조하거나, 다른 후보는 공약만 부각하는 식의 불균형은 사실상 의제 설정 권력을 행사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요약 기능 자체를 배제하기보다는 동등한 노출, 출처의 균형, 이의 제기 절차를 제도화하는 접근이 요구된다.

오류 관리와 설계 원칙

대규모 환경에서 작은 오류도 치명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선거 직전 2주 동안 100만 건의 질의가 집중될 경우, 오류율이 5%만 돼도 수천 건의 잘못된 답변이 발생한다. 따라서 불확실한 경우 답변을 중단하고 공식 출처로 안내하며, 오류를 신속히 수정하는 체계가 필수적이다.

정치 정보 도구의 성격은 결국 설계 원칙에 달려 있다. 출처, 균형, 신중함이 핵심이다. 첫째, 법률·표결 기록·공식 성명 등 권위 있는 자료를 우선 인용해 오류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둘째, 모든 후보의 정보를 동일한 틀과 순서로 제시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설득력과 개인화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민족·성별·성향에 따른 개인화는 금지하고, 출처가 불분명하면 답변을 거부하며, 정확도 기록과 사후 감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합의 가능한 공공 서비스로

정치 정보 도구가 공정성을 인정받으려면 네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모든 후보의 공식 문서를 동일한 기준으로 처리하는 대칭적 입력이다. 둘째, 모든 주장을 법률, 표결, 예산 등 구체적 근거와 연결하는 출처의 가시성이다. 근거가 없을 경우에는 추측하지 않고 명확히 밝혀야 한다. 셋째, 잘못된 정보가 노출될 경우 후보 측이 정식으로 수정 요청을 할 수 있는 이의 제기 절차다. 이 과정은 공개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넷째, 선거 관리기관이나 제3자가 정기적으로 정확도를 검증하는 독립적 감독이다. 이는 신뢰를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검증 가능한 체계로 옮겨가는 과정이다.

또한 설득이나 맞춤형 메시지는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 정치 정보 도구는 정보를 제공하는 수단일 뿐 특정 선택을 유도해서는 안 된다. 유권자가 환경 보호와 감세를 동시에 중시한다고 질문할 경우, 특정 후보를 권하는 대신 각 후보의 기록과 정책 간 상충 요소를 근거와 함께 제시해야 한다.

전 세계적 논의는 이미 이러한 원칙을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공정한 출처 인용, 균형 있는 요약, 불확실 시 답변 중단, 정기적 검증 공개가 뒷받침된다면 정치 정보 도구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변수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공공 서비스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선거 신뢰를 위한 과제

2024년의 세계적 선거 주기는 끝났지만, 과제는 반복된다. 인공지능 기반 정치 정보 도구는 앞으로 더 널리 쓰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도입 여부가 아니라 공정한 입력, 투명한 출처, 오류 관리, 독립적 감독 같은 원칙을 제도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신뢰는 단기간에 생기지 않으며, 선거마다 검증과 개선을 거쳐야만 축적된다. 다음 선거의 공정성은 바로 이 준비에 달려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Case for a Contestable “Politician Scan”: Designing AI That Even the Loser Can Trust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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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폴리시] 중국, 관세 갈등 속 협력 전략으로 영향력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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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빈국 무관세 확대와 ECB 통화스와프 연장
관세 충격 속 교역 다변화와 지역화 추진
미국의 강압과 대비되는 협력적 이미지 부각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년 12월 1일 중국은 최빈국에 전면 무관세를 허용했다. 이어 2025년 6월까지 외교관계를 맺은 아프리카 53개국에도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보여주기식 인프라 건설과 달리 현지 기업이 즉각 체감할 수 있는 수출 비용 절감과 신속한 선적을 가능하게 한다.

같은 시기 중국인민은행은 유럽중앙은행(ECB)과 3,500억 위안(약 67조원)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2028년까지 연장했다. 불확실성이 커진 국제 환경에서 신뢰 가능한 금융 지원임을 강조한 조치다. 관세 장벽이 높아지는 가운데서도 중국의 대외 경제협력은 확대되고 있으며, 2024년 일대일로(BRI) 계약 규모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2025년 상반기에도 증가세를 이어갔다.

사진=ChatGPT

관세 충격과 교역 다변화

2025년 8월 미국의 평균 실효 관세율은 소비자 기준 18~19%로 치솟아 1930년대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미·중 기업 심리는 위축됐고, 같은 달 중국의 대미 수출은 급격히 감소했다. 반면 대EU 수출은 증가세를 보이며 지역별 차별화가 나타났다. 중국은 이를 계기로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으로 교역망을 넓히고 있다.

국제 여론도 변화하고 있다. 최근 조사에서 다수 지역에서 미국 호감도가 하락한 반면, 선진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중국에 대한 평가는 개선됐다. 무관세 확대와 금융 지원, 투자 협력이 위기 대응 능력을 보여주면서 중국의 외교적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2025년 6월 12일 기준 중국의 아프리카 무관세 적용 범위
주: 100% 무관세 혜택 적용(98%), 혜택 적용 제외(2%)

협력 중심 전략으로의 전환

2010년대 중국은 해외에 세운 중국어·문화 교육 기관인 공자학원이나 대형 인프라 건설 같은 상징적 사업에 집중했고, 분쟁 지역에서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파트너국의 비용과 위험을 줄이는 무관세, 통화스와프, 개발은행 지원 등 실용적 정책으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제도적 기반도 강화됐다. 베이징에 본부를 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회원국 110개로 확대됐으며, 2025년 6월 저우자이가 총재로 선임됐다. 인민은행의 통화스와프망은 아르헨티나에서 유로 지역까지 확대·연장돼 위기 시 위안화 유동성을 공급한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교역 역시 발효 3년간 38조6,000억 위안(약 7,670조원)에 달하며 중국 무역의 30% 이상을 차지했다.

외교 기조 또한 달라졌다. 최근 동남아 순방에서 중국은 이념 대신 신뢰와 산업 협력을 강조했고, 인도와는 국경 갈등에도 불구하고 교역 재개 움직임이 나타났다. 미국 경제 운영에 대한 불신이 커지며 아시아 지역에서는 위험 관리와 역내 연대 논의가 강화되고 있다. 이는 중국의 무관세와 금융 지원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문화·교육 전략도 변화했다. 서방에서 기존 교육 기관은 위축됐지만, 중국은 장학금과 문화 프로그램을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 집중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의 협력 방식

중국의 협력은 크게 세 가지다. 무관세 확대를 통한 직접적 혜택, 통화스와프를 통한 금융 안정망, 그리고 일대일로 사업과 같은 지속적 거래 흐름이다. 아르헨티나는 50억 달러(약 6조7,000억원) 규모의 위안화 자금을 확보해 수입 비용을 줄였고, 2024년 BRI 사업은 1,220억 달러(약 162조원), 340건에 달해 협력국이 실제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미국의 관세는 양국 교역을 줄였지만, 중국은 이를 계기로 교역 다변화와 지역화를 강화했다. 캄보디아의 RCEP 교역은 2024년에만 18% 늘었고, 아세안은 같은 해 중국의 최대 교역 파트너로 부상했다. 다만 중국 내 미국 기업들의 신뢰도는 하락했고 수출 증가세도 둔화됐다. 그럼에도 미국이 제3국에도 2차 관세를 추진하자 중국은 스스로를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대안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기후·개발 지원도 활용되고 있다. 2024년 다자개발은행의 기후 금융은 1,370억 달러(약 182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중국의 자금은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인프라와 기후 적응 과제를 안고 있는 개발국에는 중국의 시장 개방과 자금 지원이 매력적 선택지로 작용하고 있다.

2023년~2025년 상반기 일대일로(BRI) 참여 추세
주: 연도(X축), BRI 참여지수(Y축)

협력 대 강압의 대비

2025년 중국은 무관세 확대, ECB와의 통화스와프 연장, BRI 거래 확대를 통해 협력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혼란스러운 무역 환경에서 거래를 원활하게 하고 금융 흐름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파트너라는 점을 강조한다. 반대로 미국은 고율 관세와 2차 제재 같은 강압적 조치에 의존한다.

그러나 교역국이 실제로 중시하는 것은 정치적 압박이 아니라 안정적 공급과 원활한 결제다. 이 차이는 각국이 중국과 미국을 평가하고 협력 대상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When Concessions Over Coercion: China's Post-Tariff Playbook for Leadership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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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배터리 굴기’ 강화, 日 전고체 승부수에도 추월 가속

중국 ‘배터리 굴기’ 강화, 日 전고체 승부수에도 추월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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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너지 시장 연계, 산업 생태계 확장
전고체 배터리로 ‘게임 체인저’ 노려
日 자존심 특허·기술력도 위태로운 상황

중국이 배터리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격상하며 ‘세계 1위’ 입지 강화에 나섰다. 48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해 신에너지 저장 시스템 확장과 대체 기술 개발을 동시 추진하고, 오는 2027년까지 자국의 에너지 저장 용량을 현재의 두 배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경쟁국인 일본은 전고체 특허와 기술력에서 우위를 지키려 하지만, 중국이 자본력을 앞세운 속도전으로 격차를 빠르게 좁히는 양상이다. 그러는 사이 한국은 투자 여력의 한계에 부딪혔고, 글로벌 배터리 산업 구도 내 세 국가의 입지 또한 재조정되는 모양새다. 

글로벌 주도권 확보 의지, 장기 전략 노출

16일(현지시각)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최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와 국가에너지국(NEA)은 공동으로 ‘에너지 저장 기술 분야 리더십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계획은 에너지 저장 기술을 현대 전력 시스템의 핵심 도구로 육성하고, 2027년까지 중국의 에너지 저장 능력을 두 배 가까이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2,500억 위안(약 350억 달러·48조원)을 투자하기로 했으며,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를 기반으로 구축된 신에너지 저장 시스템(6월 기준 95GW)을 180GW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 같은 대규모 확충은 중국의 탄소 중립 로드맵과도 맞닿아 있다. 신재생 에너지원의 변동성을 보완하고, 피크 시간대 전력 수급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저장 기술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NEA는 에너지 저장을 “전력 시스템의 유연성과 안전성을 담보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규정하며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 기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중장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막지대와 폐석탄 화력 부지를 활용한 대형 프로젝트를 장려하고, 수소 저장·압축공기 저장·나트륨 이온 배터리 등 대체 기술 개발을 병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자신감에는 자국 배터리 산업의 가파른 성장세가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인포링크(InfoLink)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 세계 에너지 저장 배터리 셀 출하량은 240.21기가와트시(GWh)로 전년 대비 106.1% 급증했다. 이 가운데 상위 10개 셀 공급업체가 모두 중국 기업으로, 글로벌 출하량의 91.2%를 점유했다. 대표 기업인 닝더스다이(CATL)와 선그로우(Sungrow)의 주가는 최근 사상 최고치를 찍으며 시장 참여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는 중국 기업이 배터리 시장 내 양적 우위를 넘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도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중국은 에너지 저장 기술을 전략산업으로 격상시키며 산업 생태계 전반을 구조적으로 강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를 두고 후아타이 증권은 “중국은 정부 계획이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기업은 독립 저장 수익 모델을 마련하면서 산업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성장 도모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에 일찌감치 세계 최대 규모의 에너지 저장 시스템을 갖춘 중국이 향후 재생에너지 발전 및 전기차 보급에 힘입어 글로벌 주도권을 공고히 할 것이라는 전망에도 힘이 실린다. 

안와신에너지테크놀로지가 공개한 전고체 배터리 엔지니어링 샘플/사진=안와신에너지테크놀로지

리튬이온 배터리 한계 돌파 야심

중국은 차세대 배터리의 핵심으로 전고체 배터리를 주목했다. 전해질을 액체 대신 고체로 대체한 전고체 배터리는 폭발 위험을 줄이는 동시에 충전 용량과 주행거리를 두 배 이상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지난해 중국 정부는 60억 위안(약 8억4,000만 달러·1조3,000억원)을 투입해 CATL, BYD 등 주요 배터리·자동차 기업 6곳에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하며 기술 상용화를 선언했다. 정부와 산업계, 학계의 협력체계를 기반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구상에서다. 

이 같은 정부 주도형 지원은 중국의 배터리 산업 전반을 자극했다. 상하이자동차(SAIC)는 연내 전고체 배터리 생산라인을 가동해 내년부터 양산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초기에는 액체 함량이 10%인 1세대 제품으로 시작해 단계적으로 완전 고체화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2027년에는 ‘즈이’ 신차 시리즈에 완전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하겠다는 목표까지 제시했다. CATL 또한 같은 시기 소규모 양산을 시작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이 같은 흐름은 전고체 배터리의 대량 상용화 가능성을 중국이 가장 먼저 실증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기술 발전에도 가속이 붙었다. 중국 안와신에너지테크놀로지는 지난 7월 고체 배터리 샘플을 공개하며 향후 2년 내 3세대 고밀도 제품을 양산하겠다고 예고했다. 샘플로 공개된 제품은 파운드(0.45kg)당 약 227Wh의 에너지 밀도를 구현해 전기차 주행거리를 크게 늘릴 수 있으며, 건식 제조 공정 도입으로 생산 비용을 기존 대비 30% 절감한 것도 특징이다. 여기에 이미 체리자동차의 신형 전기차 ‘Exeed Exlantix ET’에 탑재가 예정돼 있어 실질적 상용화 단계로의 진입 또한 임박한 상태다. 

이 같은 추세는 전고체 배터리가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중국 정부와 업계의 확신을 보여준다. 경쟁국인 일본과 한국이 특허 출원과 시제품 개발에 매진 중이지만, 중국은 막대한 내수시장과 정책적 자원을 무기로 가장 빠른 양산 로드맵을 현실화하고 있다. 이는 곧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화가 리튬이온 배터리의 한계를 돌파하는 기술적 도약을 넘어 중국이 글로벌 배터리 산업에서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는 결정타가 될 것이란 관측을 낳는다.

속도전으로 경쟁국과 격차 축소

이에 대응해 일본 역시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전고체 배터리를 국가적 전략산업으로 육성 중이다. 일본은 한때 세계 배터리 시장을 압도했지만, 지금은 중국과 한국에 주도권을 내주며 점유율이 5% 이하로 추락한 상태다.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세계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6조 엔(약 410억 달러·55조원) 이상 규모의 민관 투자를 약속했다. 토요타, 파나소닉 등 핵심 기업들 역시 파일럿 라인과 양산 체계 구축을 서두르며 전고체 배터리를 전기차 시장의 승부수로 여기는 양상이다. 

일본은 전고체 배터리 기술 경쟁에서 특허와 연구개발(R&D) 성과를 앞세워 우위를 지킨다는 구상이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3년까지 전 세계에서 출원된 전고체 배터리 특허 가운데 일본 기업의 특허 건수는 7,046건으로,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중국은 4,625건으로 2위에 올랐고, 한국은 3,225건으로 한·중·일 3국 중 가장 뒤처졌다. 학술 논문 편수에서는 중국이 899편으로 1위를 차지했고, 미국이 587편, 일본이 295편을 기록했으며, 한국은 176편으로 6위에 머물렀다.

이 같은 격차는 정부 지원 규모에서도 확인된다. 일본 정부는 2020년 2조 엔(약 136억 달러·18조원) 규모의 ‘그린 이노베이션 기금’을 조성했고, 이 가운데 1,500억 엔(약 10억 달러·1조4,000억원)을 향후 10년간 전고체 배터리 연구개발과 파일럿 양산에 투입하기로 했다. 지난해에는 민관 합산 총 5조7,000억 엔(약 387억 달러·54조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으며, 별도로 3,200억 엔(약 22억 달러·3조원) 규모 보조금을 배정해 전고체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한국은 다소 뒤처지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주도 산학연 연계를 통한 R&D 예산 투입, 고분자·산화물·황화물계 등 다양한 기술 트랙 동시 지원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사업화 인허가를 비롯해 대규모 실증 인프라, 장기 자금 지원 등 대다수 측면에서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배터리 시장 구도는 일본이 기술력과 특허로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사이 중국이 막대한 내수 시장과 정책 자원을 무기로 격차를 좁히고, 한국은 제한된 투자 여력에 발목이 잡혀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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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파이낸셜] 전원 국내 송환은 한국의 ‘조용한 경고’

[딥파이낸셜] 전원 국내 송환은 한국의 ‘조용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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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 인력 부족에 허덕이는 ‘미국 산업화’
한국 기술자 추방으로 정책-현실 ‘괴리 입증’
비자 문제, 산업정책에 포함해야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산업 기반의 재구축을 서두르는 미국에게 냉혹한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공장을 많이 짓는다고 생산량이 자동으로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난 7월 반도체 및 전기차, 친환경 에너지 부품 라인이 가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채워지지 않은 제조업 일자리가 437,000개에 달했다. 그사이 미국의 제조업 건설 비용은 2,230억 달러(약 308조원)를 넘어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미국, ‘제조업 인력’ 부족 사태

고숙련 노동력 없이 돈만 써서는 생산량을 늘릴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다. 관세는 자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정도지만, 숙련 인력이 있어야 지식이 전파되고 결과가 만들어진다.

미국 숙련 노동력 부족 현상은 조지아 배터리 공장 현장에서 수백 명의 한국 기술자들이 떠들썩한 이민국 단속으로 강제 추방되며 심각하게 드러났다. 현대 측은 이번 사건으로 공장 가동이 2~3개월 지연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는 미국 산업정책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해외 전문가들이 법적 문제 없이 안심하고 일할 수 없다면, 대규모 프로젝트가 투자만 받아놓고 기술 부족으로 발이 묶이는 일이 생길 것이다.

한국 기술자 추방으로 '지연 불가피’

미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과의 무역 논의가 관세에 집중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상징적인 측면이 크다.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 FTA) 이후 대부분의 공산품에 대한 관세가 사라졌고 한국 수출기업들은 국내와 거의 같은 조건으로 미국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미국의 문제는 노동력 수급이다. 미국 제조기업들은 지난 2년간 꾸준히 400,000~500,000명의 결원을 기록해 왔는데, 여기에는 300,000개가 넘는 일자리가 달린 신규 공장 건설 문제가 포함된다. 미국 내 교육훈련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기업들은 2030년까지 채우지 못하는 일자리가 수천 개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관세가 문제가 아니라 생산을 담당할 기술자와 엔지니어, 운영자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미국 제조업 노동력 결원 및 생산 시설 투자(2025년 5월~7월)
주: 일자리 결원 수(단위: 천 명, 좌측 막대그래프), 생산 시설 투자(단위: 십억 달러, 우측 막대그래프), 제조업 건설 비용(단위: 백만 달러, 선 그래프) / 5월, 6월, 7월(좌측부터)

노동력 부족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복잡한 장비를 설치하고 미국 기술자들을 훈련할 해외 전문가들이 없으면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프로젝트가 하염없이 대기 상태에 놓일 수 있다. 당사자인 미국 산업계도 국내 인력만으로는 수립된 일정을 맞출 수 없다고 조사를 통해 보고하고 있다.

전원 본국 송환은 한국의 ‘경고’

여기서 한국의 입장을 살펴보자.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후 한국의 재벌들은 미국 시장에 자유롭게 수출과 투자를 진행하며 꿀을 빨아 왔지만 이제 그 시대는 끝났다. 기본 관세와 국가별 추가 관세로 이뤄진 조정이 기업과 정부를 수세로 몰고 있기 때문이다. 15%의 관세율과 맞물린 3,500억 달러(약 489조원)의 대미 투자 약속은 무관세 시절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농산물 수입과 환율 인상 문제도 정부의 협상력을 무디게 만든다.

하지만 한국의 협상력이 하나 남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고숙련 인력이다. 조지아 배터리 공장 사태가 이 협상력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300명에 가까운 한국 기술자들을 자국으로 송환하며 공장 가동을 지연시킨 것은 한국 정부가 보내는 경고가 틀림없다. 앞으로 확실한 비자 조치가 없으면 기업들은 미국 내 확장을 꺼릴 것이다. 일자리와 생산량 증가가 목표라면 미국 정부는 투자 및 시장 진입 문제와 더불어 비자도 산업정책에 포함해야 한다.

참고할 사례들은 많다. 미국-칠레, 미국-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을 보면 고숙련 인력들을 위한 H-1B1 비자를 특별히 마련해 놓고 있으며 호주의 E-3 비자도 비슷한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한국에도 칩스법(CHIPS) 투자와 관련된 기술 전문가들을 위한 단기 특별 비자를 제공하되, 명확한 기한과 고용주의 보고 의무, 교육훈련 시행 등을 명시하면 된다. 해외 전문가들이 미국의 견습생들과 일하며 당장의 기술 격차를 줄이고 장기적인 국내 인력 양성에 기여하도록 할 수 있다.

고숙련 인력 수용을 위한 미국 비자 제도
주: H-1B1 비자(칠레, 싱가포르), E-3 비자(호주), *숫자는 비자 발급 한도

한국 기술 인력 비자 문제 ‘해결해야’

관세 조치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해외 인력 수용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미 대법원이 대통령의 관세 조정 권한에 대한 적법성을 저울질하는 가운데 한미 양국 모두 관세 협상을 위해서는 자국 내에서 넘어야 하는 장애물이 존재한다. 이 시점에서 비자 문제를 산업정책에 포함하는 것은 조기에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기술은 정책이 바뀌거나 관세가 오르내린다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무역 양상 속에서 기술 인력이야말로 가장 내구력 있는 자산이 틀림없다.

미국은 신속한 산업화를 추구하지만, 437,000명의 제조업 일자리 결원율이 보여주듯 이상과 현실 간 크나큰 괴리를 맞이했다. 관세로는 절대 풀 수 없는 문제다. 한국과의 비자 문제를 풀면 미국의 고숙련 인력 수요와 한국의 자본 및 전문성, 유학생을 일치시켜 생산 설비 가동 문제와 국내 인력 육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조지아 사태는 정책적으로는 패착이 분명하지만 공장을 제때 지으려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전문 인력의 입국을 허용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계기였다. 비자 문제의 해결은 미국의 양보가 아니라 산업화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Visas for Investment: Urgent Measures Needed to Address the U.S.-Korea Rift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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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포럼] 미국, 관세보다 ‘인력 확보’가 시급

[동아시아포럼] 미국, 관세보다 ‘인력 확보’가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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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리쇼어링’, 기술 인력 확보가 현안
‘인도 기술 인력’ 수용 확대 필요
인력 수요와 공급, ‘양국 필요’에도 부합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3~2024년 기간 미국 대학에 등록한 인도 학생 수는 331,602명으로 한 국가의 미국 유학생 수로는 역사상 가장 많다. 또한 인도는 2009년 이후 다시 미국에 가장 많은 유학생을 보낸 나라가 됐다. 인도 유학생들은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다수가 ‘선택적 직업 훈련’(Optional Practical Training, 자격을 갖춘 유학생들에게 실무 경험 목적의 임시 취업 허가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첨단 기술 분야에 진출해 연구소와 병원, 데이터센터에서 일한다. 갈수록 많은 인력이 배터리와 반도체 등 미국 정부가 강조하는 핵심 산업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 ‘산업화’, 기술 인력 부족이 ‘발목’

여기서 문제는 미국의 정책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올해 중반 미국의 신규 일자리가 720만 개에 이르는데 H-1B 비자(특수 직종 취업을 허용하는 비이민 비자) 추첨을 통해 2026 회계연도에 선발된 해외 인력은 120,000명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산업적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말 그대로 너무 부족하다. 미국 정부가 국내 산업을 다시 일으키려면 인도 상품에 대한 관세가 아니라 인도의 인재들이 필요하다.

공장도 보조금이 아닌 사람에 의해 돌아간다. 미국 제조업체들은 2033년까지 연간 380,000명의 기술 인력을 필요로 하는데 이대로면 절반이 부족할 것이라고 한다. 전반적인 노동 시장 지표가 냉각되면 지역의 인력 부족은 더욱 심각해진다. 프로젝트가 멈추고, 인건비가 상승하며, 비숙련 인력 증가로 인한 위험도 커진다.

미국 기술 인력 수요 및 인력 확보 현황(단위: 명)
주: 2033년까지 연간 기술 인력 수요, H-1B 비자 발급 수(2026 회계연도), 선택적 직업 훈련 참여자 수(2024년), STEM 직업 훈련 참여자 수(2024년)(좌측부터)

생산 시설 건설도 ‘지연’

물론 교육훈련에 대한 투자는 증가세에 있다. 작년의 경우 680,000명이 공인된 견습생 과정에 있었으며, 칩스법(CHIPS Act, 미국 반도체 역량 강화를 위한 법안) 예산으로 인력 육성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 간 격차가 매우 커 충분한 국내 인력이 공급될 때까지는 해외 인력 공급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사례들이 미국의 현실과 정책 간 괴리를 보여준다. 조지아에서는 배터리 공장 건설 일정을 맞추기 위해 투입된 한국 기술자들이 이민국의 단속으로 추방되는 사건이 있었다. 애리조나에 짓고 있는 TSMC의 주력 반도체 생산 시설도 인력 부족 때문에 올해로 완공을 미룬 바 있다.

숙련 기술자 부족으로 인한 생산 시설 가동 지연(단위: 개월)
주: TSMC 애리조나 반도체 생산 시설(상단), 현대-LG 조지아 배터리 생산 시설(하단)

‘인도 기술 인력’ 수용이 답

그런데 인도가 미국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도울 수 있다. 인도의 대학교와 기술 학교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엔지니어를 배출하는 곳 중 하나다. 미국에서는 98,000명의 인도 학생이 사실상 미국 전략 산업의 훈련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선택적 직업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H-1B 비자 한도와 수요 간 격차가 너무 큰 데다, 고용주들이 후원하는 영주권을 취득하는 데도 3.4년이 걸린다.

하지만 인도의 국가적 입장은 명확하다. 2023년 재외국민들로부터의 송금액이 1,250억 달러(약 172조원)에 이를 만큼 해외 취업을 권장하는 데다, 미국이 최대 5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 만큼 협상의 의지도 강하다. 양국 간 논의를 통해 인도는 고숙련 노동자들의 해외 취업 기회를 넓혀 주고, 미국은 생산 시설 가동에 필요한 기술 인력을 얻는다면 그야말로 ‘상생’에 해당할 것이다.

미국은 먼저 H-1B 비자 한도를 보충하기 위해 반도체와 배터리를 포함한 전략 산업 중심으로 기술 인력 할당제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 또 ‘선택적 직업 훈련’ 및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 직업 훈련을 영주권 취득과 결합해야 한다. 신규 공장 가동을 위해 인도의 전문 인력을 대상으로 단기 취업을 허용하되, 혜택을 입는 업체에 지역 인력에 대한 교육훈련을 요구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의 인력 육성 프로그램과 인도의 기술 학교를 연결해 수업과 연구, 견습생 제도를 공유하도록 하는 것도 좋다.

노동 수요를 모두 해외 인력으로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국내 프로그램이 장기적인 인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부족분을 메우자는 얘기다.

‘수요-공급 차원’ 양국 이해 맞아

이민이 미국 정치에서 민감한 사안인 것은 분명하지만 조사 결과를 보면 유권자들도 저숙련 및 고숙련 인력을 나누어 보고 있으며 고숙련 해외 인력 유입에는 호의적이다. 해외 인력 채용으로 혜택을 보는 미국 기업에는 지역 대학 장비 지원 및 견습생 제도 운영, 엄격한 작업장 기준 준수를 요구하고 교육훈련을 게을리하는 업체에는 불이익을 주는 것도 고려하라. 비자 일정을 앞당길 필요도 있다. 인력 확보를 위한 비자 발급에 3년이 넘게 걸리면서 ‘국내 산업 유치’를 외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미국-인도 간 인력 확보 협상이 잘 진행돼 1년 후 미국 생산 설비에 충분한 기술 인력이 확보되고, 인도 엔지니어들이 중추적 역할을 하는 가운데 더 많은 미국 국내 인력이 배출된다면 성공적이라고 평가해도 될 것이다. 무역 협상에서 인력 공급을 논하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지만 현재 양국의 필요와 정확히 들어맞는다. 미국으로서는 인도와의 무역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Swap Tariffs for Talent: The Only India, U.S. Trade That Delivers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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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일그룹, KFC코리아 인수 추진 “日 KFC와 결합한 ‘볼트온’ 시너지 구상”

칼라일그룹, KFC코리아 인수 추진 “日 KFC와 결합한 ‘볼트온’ 시너지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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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PE, 인수 2년여 만에 매각 추진
공격적 출점·가맹점 성과로 실적 반등 성공
칼라일, 간만의 바이아웃, 日 KFC와 시너지 기대
KFC 건대입구역점 전경/사진=KFC코리아

실적 반등과 외형 확대에 성공한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KFC코리아가 매각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투자사 칼라일그룹(Carlyle Group Inc.)이 인수자로 나섰다. 지난해 일본 KFC를 인수한 데 이어 한국 시장까지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행보로, 아시아 외식 프랜차이즈 네트워크 구축 전략을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칼라일그룹, KFC코리아 실사 진행

1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칼라일그룹은 KFC코리아를 인수하기 위한 실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르면 이달 중 실사를 마치고 주식매매계약(SPA)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KFC코리아의 대주주인 사모펀드(PEF) 오케스트라프라이빗에쿼티(PE)는 올해 초 삼일PwC를 주관사로 선정하고 KFC코리아의 매각을 추진해 왔다. 오케스트라PE가 KG그룹으로부터 KFC코리아를 인수한 건 2023년으로, 당시 KFC코리아 구주 및 신주를 포함해 700억원대 자금을 투입했다.

오케스트라PE는 KFC코리아 매각가로 3.000억원 이상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칼라일그룹이 매도자 측의 요구를 얼마나 수용하느냐에 따라 매각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KFC코리아의 실적이 턴어라운드하면서 몸값이 올라갔다"며 "매도자와 인수 후보 모두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거래 성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매장 재정비·가맹사업으로 체질 개선

실제 오케스트라PE 인수 후 KFC코리아 실적은 빠른 속도로 반등 중이다. 오케스트라PE가 KFC코리아를 인수한 2023년만 해도 KFC코리아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KFC코리아의 2023년 매출액은 전년보다 9.8% 성장하고도 영업이익이 53.0%나 줄었고, 다시 순손실이 발생하며 적자 전환했다. 재무구조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케스트라PE가 인수 직후 두 차례에 걸친 유상증자로 총 120억원을 투입했음에도 2023년 말 KFC코리아의 부채비율은 4,531.6%였다.

KFC코리아가 긴 부진을 겪은 배경엔 40년 가까이 고수해 온 직영점 체제가 있다. 직영점은 본사에서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인건비, 임대료 등의 고정비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가맹사업에 비해 수익성이 낮다. 가맹점에 비해 공격적인 출점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롯데리아, 맘스터치 등이 전국에 1,000개 이상의 매장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KFC의 매장수는 2023년 말 기준 200개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2023년 오케스트라PE 품에 안기면서 전략적 변화를 맞았다. 오케스트라PE는 글로벌 본사 얌브랜즈와 논의를 거쳐 프랜차이즈 사업 진출을 결정했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서울 문정역점이 첫 가맹점이었다. 현재 KFC코리아 가맹점은 28곳으로 확대된 상태며, 같은 기간 직영 매장은 구조조정 및 리뉴얼을 거쳤다. 전체 매장 규모는 5월 기준 206곳으로 전년 대비 12곳 증가했다. 올해 브랜드 최초로 다점포 경영주가 등장하는 등 가맹 사업이 순항하고 있는 만큼 매장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오케스트라PE는 이 구조적 장점을 활용해 매출 볼륨도 확대했다. 2024년 기준 본사 매출은 2,923억원, 영업이익은 164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역시 매출 1,678억원, 영업이익 93억원으로 반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새로 썼다. 큰 변수가 없다면 2025년 연간 실적도 전년도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 시장 확장, 볼트온 시너지 구상

칼라일그룹은 일찍부터 KFC코리아의 유력한 원매자로 거론됐다. 지난해 5월 KFC홀딩스재팬(KFC Holdings Japan Ltd.)을 인수한 데 이어 KFC코리아까지 인수하면 양국에서 시너지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칼라일그룹은 최근 수년간 일본 기업을 프랜차이즈 기업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인수 행보를 이어왔다. 4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다양한 일본 기업을 편입하며 ‘바이 재팬(Buy Japan)’ 전략을 구체화했는데, 이번 KFC코리아 인수 추진은 그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동일 브랜드 내 통합 구매, 물류, 마케팅 구조를 구축해 비용 효율성을 높이고 추후 글로벌 외식기업이나 전략적 투자자(SI)에게 매각하는 ‘볼트온’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시장 목소리다.

IB업계에 따르면 이번 거래 초반에는 칼라일그룹 일본 사무소가 관여했지만 현재는 한국에서 인수 작업을 주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간 칼라일그룹은 지난 수년간 한국에서 구강 스캐너 기업 메디트, 종합 환경 기업 에코비트 등 대형 M&A(인수합병)에 참여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이번에 KFC코리아를 인수하면 2021년 커피 프랜차이즈 투썸플레이스 이후 오랜만에 바이아웃(경영권 거래) 실적을 쌓게 된다.

다만 3,000억원이라는 몸값에 대해선 의문 부호가 붙는다. 올해 상반기 기준 KFC코리아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141억원이다. 단순 연환산 수치를 적용하면 약 282억원으로, 통상 F&B 프랜차이즈 거래에 적용되는 5~6배 멀티플을 적용할 경우 1,500억원 안팎의 몸값이 산정된다. 또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치킨 브랜드 포화가 극심한 상황인 데다, 곡물, 유지류 등 글로벌 식재료 가격의 고공행진으로 외식업계 성장세에도 의구심이 따르고 있다. 여기에 고든램지버거, 오바마버거 등 외국계 프리미엄 버거들이 잇따라 국내에 진출하면서 버거시장 경쟁도 심화되고 있는 추세다. 이에 일각에서는 KFC코리아의 매각 행보를 놓고 경기침체를 고려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경영 환경에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한국 시장 등에서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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