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개정 무용지물" 재차 급증한 기술 유출 범죄, 美처럼 실질적 처벌 수위 높여야
"법 개정 무용지물" 재차 급증한 기술 유출 범죄, 美처럼 실질적 처벌 수위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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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유출 사건 급증,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 직격 법·제도 강화됐지만 실형은 솜방망이, 억제 효과 한계 기술 유출 사건 강경 대응하는 미국·대만 등 국가 선례 삼아야

지난해 중국 등 해외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한국의 핵심 기술이 유출된 사례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관련 법 개정을 통해 꾸준히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범죄 억제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 양상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단순 법률상 최대 형량을 상향 조정하는 것을 넘어 미국, 대만 등과 같이 실질적인 처벌 수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 유출 사건, 작년에도 '기승'
20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발생한 기술 유출 사건은 총 179건으로 전년 대비 45.5% 증가했다. 이 가운데 해외로 유출된 사건은 33건으로 집계됐으며, 국가별로는 중국이 18건(54.5%)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어 베트남 4건(12.1%), 인도네시아·미국 각 3건(9.1%) 순이었다. 기술 분야별로는 반도체가 5건(15.2%)으로 가장 많았고, 디스플레이 4건(12.1%), 이차전지 3건(9.1%), 조선 2건(6%) 등이 뒤를 이었다. 이는 대부분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이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첨단 기술 분야다.
기술 유출 문제의 심각성은 실제 유출 사례를 살펴보면 한층 명확하게 드러난다. 앞서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5월 고대역폭메모리(HBM) 관련 반도체 패키징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리려던 김모씨를 중국 출국길에 인천공항에서 긴급체포했다. 김씨는 국내 반도체 대기업에 정밀 자재를 공급하는 협력업체의 전 직원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김씨 외에도 공범 3명을 추가로 검거해 일당을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이 밖에도 메탄올 연료전지 제조 도면을 해외 투자자에게 전송한 일당 3명, 국가핵심기술인 이차전지 제조 기술 자료를 개인 노트북에 저장해 해외 경쟁업체로 이직하며 유출한 전직 연구원 등도 지난해 경찰에 검거됐다.
상기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기술 유출의 주체는 대부분이 내부자였다. 국내외를 합쳐 피해 기업의 임직원 등 내부자에 의해 발생한 유출은 148건으로 지난해 전체 기술 유출 사건의 82.7%를 차지했다. 피해 기업 규모별로 살펴보면 대기업은 24건(13.4%)에 그쳤고, 중소기업이 155건(86.8%)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중소기업의 처우와 보안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점을 노린 범죄가 집중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국회의 제도 개선 노력
정부와 국회는 기술 유출 사건을 최소화하기 위해 꾸준히 관련 법령 개정 논의를 진행해 왔다. 지난해 7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하 산업기술보호법)' 일부 개정안이 시행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해당 개정안은 기존 최대 15억원이었던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 시 벌금을 최대 65억원까지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처벌 범위도 기존에는 해외에 넘기려는 의도(목적)를 가진 경우에 한정됐지만, 시행 이후에는 유출된 기술이 해외에서 사용될 것을 알기만 해도 처벌할 수 있도록 확대됐다. 아울러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을 소개·알선·유인하는 브로커를 기술 침해 행위로 처벌하도록 규정했으며, 산업기술 침해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한도도 기존 3배에서 5배로 상향했다.
핵심기술 보유 확인제, 보유기관 등록제 등도 개정·신설됐다. 기존에는 기업의 신청이 있어야 국가핵심기술로 판정이 가능했으나, 기술 유출 우려가 크고 보호 필요성이 큰 경우에는 기업의 신청이 없더라도 국가가 직권으로 기업에 판정 신청 통지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된 기업 등은 '보유기관' 등록 이후 체계적인 관리를 받게 되며, 만약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을 정부의 승인 없이 불법으로 인수·합병하는 경우에는 정보 수사 기관의 조사 및 산업기술보호위원회의 심의를 생략하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즉시 중지·금지·원상회복 등의 조치 명령을 할 수 있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1일 1,000만원 이내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지난해 12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송재봉 의원이 국가첨단전략산업 보호 수준을 산업기술보호법과 동일하게 높이는 내용을 담은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 조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국가첨단전략기술 유출·침해의 범위를 크게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접근 권한자가 지정 장소 밖으로 무단 유출하거나 목적 외 사용·공개하는 행위, 유출을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 산업통상부 장관의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행위 등이 모두 금지 행위로 명시됐다.
처벌 수준도 대폭 상향된다. 전략기술이 외국에서 사용될 것을 알면서 유출·침해하는 경우 부과되는 벌금 상한은 기존 20억원에서 85억원으로 4배 이상 높아진다. 아울러 개정안은 유출·침해의 예비·음모 단계부터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해 유출 준비 단계 자체를 처벌 대상으로 삼고, 범죄로 취득한 이익은 몰수·추징하도록 해 부당이득을 완전히 환수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이에 더해 법인의 대표자나 종업원이 업무 과정에서 전략기술 유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행위자뿐 아니라 해당 법인이나 개인에게도 벌금형을 부과하는 양벌규정을 신설해 기업의 관리·감독 의무를 강화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외국에 산업 기밀을 유출하면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간첩법 개정안도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간첩법상 ‘적국’을 사실상 북한으로 한정해 적용해 온 탓에 북한 외 국가로 기밀을 넘긴 경우 간첩죄를 적용하기 어려웠다. 해당 법안이 시행되면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분야에서 기술 유출이 발생할 시 간첩죄 적용이 가능해진다.

실제 처벌 수위는 여전히 낮아
다만 시장에서는 정부의 제도 개선 노력이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질적인 처벌 수준이 미국 등 여타 선진국 대비 낮아 범죄 억제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미국은 피해액에 따라 기술 유출을 최고 36등급의 범죄로 상향할 수 있으며, 이 경우 188개월(15년 8개월)에서 최대 405개월(33년 9개월)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 미국의 범죄 등급(Offense Level)은 1등급부터 43등급까지 존재하며, 36등급은 중대한 경제 범죄나 심각한 강력 범죄에 적용되는 매우 높은 수준의 등급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반도체를 국가 주력 산업으로 삼고 있는 대만의 경우, 2022년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경제·산업 분야 기술 유출을 간첩 행위로 규정하고 징역 최대 12년과 벌금 1억 대만달러(약 46억원)를 부과하도록 했다. 실제 대만 사법당국은 지난해 벌어진 반도체 핵심 기술 유출 사건을 국가안보 범죄로 기소하기도 했다. 검찰은 피의자들에게 징역 7년에서 최대 14년을 구형했고, 법원은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전원 구속 수사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와 비교해 한국의 기술 유출 처벌 수위는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한다. 대법원에 따르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1심 판결이 내려진 33건 가운데 무죄와 집행유예가 차지하는 비중은 87% 이상에 달했으며, 2022년 영업비밀 해외 유출 사건의 평균 형량은 14.9개월에 그쳤다. 이후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2024년 3월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대폭 높여 잡고, 산업기술보호법이 개정되며 최대 형량이 상향됐지만 여전히 처벌은 솜방망이다.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기술 유출 양형 기준은 국외 기술 유출의 경우 기본 징역 1년~3년 6개월, 가중 처벌 시 최대 6년이 고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