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공장 통째로 인수한 ‘만년 3등’ 마이크론, ‘SK하이닉스 추격’ 박차
대만 공장 통째로 인수한 ‘만년 3등’ 마이크론, ‘SK하이닉스 추격’ 박차
입력
수정
AI 서버 수요 폭증에 캐파 경쟁 가열 마이크론, 대만 공장 18억 달러에 인수 내년 하반기부터 D램 양산 본격화 전망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PSMC(파워칩 세미컨덕터 매뉴팩처링 코퍼레이션)의 제조 시설을 전격 인수하며, 인공지능(AI) 메모리 반도체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신규 팹을 건설할 경우 부지 확보부터 양산까지 5~7년이 소요되지만, 기존 클린룸을 활용하면 2년 내 안정적인 생산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최근 메모리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빠른 생산능력 확대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추격하겠다는 전략이다.
마이크론, '신규 팹' 대신 인수로 시간 단축
19일(현지시간) 마이크론은 대만 먀오리현에 위치한 반도체 업체 PSMC의 P5 공장(P5 팹)을 현금 18억 달러(약 2조6,500억원)에 인수하기 위한 의향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인수 대상에는 약 30만 제곱피트(약 2만7,871㎡) 규모의 300mm 팹 클린룸이 포함된다. 마이크론은 해당 시설을 통해 늘어나는 글로벌 메모리 수요에 보다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니쉬 바티아 마이크론 글로벌 운영 담당 수석 부사장은 “수요가 공급을 계속 웃도는 시장 환경에서 생산량을 늘려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이번에 인수하는 시설이 기존 마이크론 공장과 인접해 있어 운영 측면에서 시너지 효과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론의 D램 사업은 연구개발(R&D) 및 일부 양산을 일본 히로시마에서 수행하는 동시에, 대규모 양산은 대만에서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마이크론은 대만 전공정 기반을 확장하기 위해 2008년 이노테라 메모리즈(Inotera Memories)에 투자를 시작했으며, 2016년에는 지분 100%를 인수해 완전 자회사로 편입했다. 이어 2013년 일본 엘피다 메모리(Elpida Memory) 파산 지원 과정에서 엘피다의 전 지분을 확보하는 동시에, 엘피다 자회사였던 렉스칩 일렉트로닉스(Rexchip Electronics)도 인수했다. 이후 마이크론은 이들 생산 거점을 바탕으로 증설을 지속했으며 2023년에는 타이중 4공장을 개소하는 등 생산능력 확대를 추진해 왔다.
PSMC와 마이크론의 협력 관계는 당시 Powerchip Technology(현 PSMC)가 보유하고 있던 물량을 마이크론이 매입하던 시점부터 형성됐다. 양사는 지난해 말 순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방식, 기술 이전과 설비 이전을 결합한 방식, 유통 연계 방식 등 3가지 협력 모델을 검토한 바 있다. 이 가운데 유통 연계 방식은 PSMC가 생산한 메모리 웨이퍼의 일부를 직접 판매하는 형태로, PSMC에 가장 유리한 선택지로 평가된다.
AI발 메모리 반도체 품귀 현상, 가격 고공행진
마이크론이 인수하는 PSMC의 통뤄(Tongluo) 공장은 월 최대 5만 장 생산능력을 갖췄지만, 현재 8,000장 분량의 설비만 설치돼 가동률이 20%에 머물고 있다. 생산 확대가 시급한 마이크론 입장에서는 이미 완공된 공장에 설비만 추가하면 되는 만큼 신규 공장 건설보다 훨씬 빠르게 증산에 나설 수 있다. 해당 거래는 규제 당국의 승인 등 필요한 절차를 거쳐 올해 2분기까지 완료될 전망이다. 거래가 마무리되면 마이크론이 공장의 소유권과 운영·관리권을 확보하게 된다.
마이크론의 메모리 증설 배경에는 AI 확산이 있다. 최근 메모리 시장에서는 AI 서버용 수요 급증으로 메모리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메모리 가격 급등으로 D램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능력 확보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오른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DDR5 16GB 기준)의 지난달 말 평균 고정거래 가격은 20.8달러로 1년 전보다 5.3배 상승했다. 지난해 6월 말 5.1달러였던 DDR5 가격이 6개월 만에 4배가량 오른 것이다. 고정거래 가격은 기업간 계약에 활용되는 가격으로 제조사와 세트 업체의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D램 가격 상승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D램익스체인지는 올해 1분기 PC용 D램 가격이 전 분기 대비 55~60%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메모리 시장은 AI 데이터센터 투자로 급격히 변동성이 커진 상황이다. 여기에 제조사들이 HBM 같은 고성능 메모리 생산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범용 D램과 낸드 생산을 줄이거나 최종적으론 라인을 아예 접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어 수급 불균형은 더 심화되고 있다. 특히 서버 업체들은 차세대 AI GPU 수급이 어려운 상황에도 인프라 확장을 멈출 수 없어 DDR5 같은 범용 제품이라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동시에 클라우드 서비스업체(CSP)들은 대규모 데이터 저장·처리 수요가 늘고 있는 데 대응하기 위해 고용량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美 정부가 키우는 ‘D램 40%’ 프로젝트
이에 마이크론은 대만 공장 인수에 더해 이달 미국 뉴욕주 오논다가 카운티 클레이 타운에 1,000억 달러(약 145조원) 규모의 ‘메가팹’도 창설했다. 총 4개 공장으로 구성되는 이 프로젝트는 클린룸 면적만 축구장 40개에 달하는 초대형 설비로, 뉴욕주 역사상 최대 민간 투자다. 첫 팹은 올해 말 착공해 2030년 말 가동 예정이며, 전체 프로젝트는 2045년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메가팹 창설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도체 자립 전략에 따른 것이다. 미국 정부는 칩스법(CHIPS Act, 반도체 과학법)을 통해 마이크론의 뉴욕·아이다호 신규 팹에 총 61억6,500만 달러(약 9조원) 규모 보조금을 확정했다. 현재 2%에도 못 미치는 미국 내 D램 생산 비중을 향후 10년 내 4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공격적인 구상이다. 대규모 보조금과 세제 혜택, 정부 조달 우대가 결합될 경우 시장 논리를 뛰어넘는 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시스템 반도체(엔비디아·AMD)와 파운드리(TSMC·인텔)에서 자립 기반을 닦아온 미국이, 메모리라는 마지막 퍼즐을 채우려는 수순으로 분석된다.
당장은 한국 메모리 기업들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5년 4분기 영업이익 20조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달성했는데,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메모리에서 나왔다. SK하이닉스 역시 같은 분기 15조원대 영업이익이 전망되며, 두 회사 모두 AI 서버·HBM 특수를 누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기준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7%, 삼성전자 22%, 마이크론 21%로 한국 업체들이 압도적인 우위다.
반면 전체 D램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34%), 삼성전자(33%), 마이크론(26%) 순으로 격차가 예전만큼 크지 않다. 마이크론의 2026 회계연도 1분기(2025년 9~11월) 매출은 136억 달러(약 20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57% 급증했고, 2분기 매출 가이던스도 183~191억 달러(약 27조~28조2,000억원)로 제시되는 등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정책 지원이 본격 반영되면 2030년 이후 시장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