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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전력망 재건, 대한전선 1,000억 수주로 韓 기업 시장 공략 가속화

美 전력망 재건, 대한전선 1,000억 수주로 韓 기업 시장 공략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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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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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전선, 캘리포니아 1,000억원 규모 턴키 프로젝트 수주로 기술적 신뢰 입증
AI발 전력 수요 폭증에 美 정부 인허가 단축·14조원 지원 등 인프라 재건 속도전
규제 완화에 따른 스마트 머니 유입 가속, LS그룹 등 국내 기업의 현지 투자도 확대

미국의 전력 인프라 시장이 1970년대 이후 최대의 격변기를 맞이했다. 수명을 다한 노후 설비의 교체 주기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촉발한 폭발적인 전력 수요가 맞물리면서, 단순한 인프라 보수를 넘어선 구조적 대개조가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인허가 절차를 대폭 단축하고 14조원 규모의 자금을 쏟아붓는 등 전례 없는 전력망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이 거대한 시장의 해결사로 부상했다. 대한전선과 LS그룹 등 국내 기업들은 제조 역량과 시공 노하우를 결합한 토탈 솔루션을 앞세워, 위기의 미국 전력망 시장을 기회의 땅으로 바꾸고 있다.

美 전력망 시장, 이 노린다

7일 대한전선은 미국 법인 T.E.USA를 통해 캘리포니아 남부 리버사이드 지역에서 1,000억원 규모의 230킬로볼트(kV)급 신규 송전선로 구축 프로젝트를 수주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수주는 미국 전역에서 일고 있는 '전력망 재건' 흐름의 단면을 명확히 보여준다. 계약은 설계부터 생산, 포설, 접속, 시험, 시운전까지 전 과정을 일괄 수행하는 '풀 턴키(Full Turn-Key)' 방식으로 체결됐다. 이는 고도의 엔지니어링 역량과 관리 능력이 필수적인 방식인 만큼, 미국 발주처들이 단순 자재 조달을 넘어 기술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사업은 리버사이드 지역의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고, 자연재해 등 비상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확보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 프로젝트다. 대한전선은 그간 미국 내 500kV 초고압교류송전(HVAC)과 320kV급 초고압직류송전(HVDC), 대도심 노후 전력망 교체 등 고난도 사업을 잇달아 수행하며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글로벌 경쟁사들을 제치고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대한전선은 "지난해 수주잔고 3조4,000억원을 달성한 기세를 몰아 연초부터 수주의 물꼬를 텄다"며 "본격화되는 미국의 인프라 투자를 기회 삼아 현지 법인과 지사를 통해 미국 전역으로 시장을 넓혀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한국 기업의 약진은 미국 전력망 시장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와 맞닿아 있다. 1960~1970년대에 구축된 미국 전력 설비의 상당수가 수명을 다하면서 잦은 정전과 계통 병목이 현실화됐고, 이에 따른 교체 수요가 폭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토목학회(ASCE)는 2024~2033년 미국 인프라 전반의 투자 필요액을 9조1,000억 달러(약 1경3,100조원)로 추산한다. 미국 정부가 데이터센터발 전력 수요 급증을 배경으로 전력망 접속 규칙과 인허가 병목 해소에 나서면서 제조 능력과 기술력을 겸비한 한국이 핵심 파트너로 부상한 것이다.

기회의 문은 전선 제조뿐 아니라 전력망 운영 및 시공 분야로도 확장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재난 복구 노하우와 운영 기술을 보유한 한국전력공사는 최근 미국의 대형 송·배전 시공사 번스앤맥도널(Burns & McDonnell)과 손잡고 765kV 송전망 건설 등 신사업 공동 추진에 나섰다. 단순한 내수용 인프라였던 전력망이 에너지 전환과 산업 안보가 교차하는 글로벌 신성장 산업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은 제조 역량과 운영 노하우라는 양 날개를 달고 미국 시장 내 입지를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AI발 전력 수요 급증에 속도전 나선 美, 심사 단축하고 14조 지원 사격

한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을 정조준하는 배경에는 AI 데이터센터가 촉발한 심각한 전력 병목 현상과 함께 이에 대응하는 미국 정부의 ‘속도전’이 자리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딜로이트는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현재 4기가와트(GW) 수준에서 향후 10년간 30배 이상 폭증해, 2035년에는 123GW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의 분석도 이러한 위기감을 뒷받침한다. 미 에너지부(DOE) 의회 요청으로 작성된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 보고서는 미국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 비중이 2023년 4.4%(176TWh)에서 2028년 최대 12.0%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평균 전력 용량으로 환산하면 2028년에만 74~132GW에 달하는 수치다. 이는 단일 원전이나 가스 발전소의 용량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특히 ‘하이퍼스케일러(초거대 기술기업)’들이 5GW급 초대형 캠퍼스를 잇달아 조성하면서, 기존 전력망으로는 감당 불가능한 ‘그리드 스트레스(Grid Stress)’가 현실화됐다는 지적이다.

이에 미국 정부는 인허가 규제라는 모래주머니를 과감히 제거하며 대응 수위를 높였다. 크리스 라이트 DOE 장관은 지난해 10월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에 서한을 보내, 데이터센터 등 20메가와트(MW) 이상 대규모 부하에 대한 계통연계 규정의 조속한 정비를 주문했다. 서한의 방점은 '속도'에 찍혀 있다. 라이트 장관은 전력 절감이 가능한 ‘커테일러블(Curtailable) 부하’나 자체 발전 설비를 갖춘 경우, 접속 심사를 60일 내에 완료할 수 있는지 검토하라고 요청했다. 특히 최종 조치 시한을 올해 4월 30일로 못 박으며 규제 기관을 강하게 압박했다. 라이트 장관은 이를 “AI 경쟁력 확보와 제조업 리쇼어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에너지-산업 통합 전략’”으로 명명하며, 고질적인 계통연계(Interconnection) 병목을 해소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제도 개선과 함께 막대한 실탄도 투입한다. DOE는 전력망 유연성 강화를 위해 총 105억 달러(약 15조1,900억원) 규모의 'GRIP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이미 1·2차 지원을 통해 76억 달러(약 10조9,900억원) 규모의 지원 대상을 확정했으며, 2차 지원 명분으로 '데이터센터 부하 대응'을 명시해 정부의 의지를 재확인했다. 제도적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FERC는 'Order No. 1920'을 발령, 송전망 계획을 최소 20년 단위의 장기 시나리오 기반으로 수립하도록 의무화했다.

다만 시장은 정부의 속도전을 반기면서도, “규제 빗장을 푸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신중론에 무게를 싣고 있다. 진짜 병목 구간은 행정 절차가 아닌 변압기·터빈 등 필수 기자재의 물리적 공급망에 있다는 지적이다. 경고음은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미 국가인프라자문위원회(NIAC)는 대형 변압기의 납기(Lead time)가 80주에서 최대 210주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로이터통신 또한 2019~2025년 사이 발전소용 승압변압기(GSU) 수요가 274% 폭증하면서, 2025년 2분기 기준 평균 납기가 143주에 달한다는 데이터를 제시했다. 투자은행 레이먼드제임스의 파벨 몰차노프 애널리스트는 “핵심은 서류 작업이 아닌 물리적 장비의 공급 능력”이라고 꼬집으며, “이번 조치는 단기전이 아닌 장기 인프라 경쟁의 서막”이라고 규정했다.

美 전력망에 몰리는 베이스파워·LS그룹 투자

정부가 규제 빗장을 풀자 ‘스마트 머니’가 즉각 반응했다. 물리적 공급 부족을 해결할 전력망과 분산 전원이 차세대 투자처로 낙점된 것이다. 최근 미국 텍사스 오스틴의 에너지 스타트업 베이스파워(Base Power)는 시리즈 C 라운드에서 10억 달러(약 1조4,500억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30억 달러(약 4조3,000억원)를 인정받았다. 베이스파워의 고성장 비결은 ‘진입 장벽 완화'와 '가상발전소(VPP)'의 결합에 있다. 특히 수천 달러에 달하던 배터리 초기 설치비를 695~995달러(약 100만~144만원) 선으로 획기적으로 낮춘 구독형 모델이 주효했다. 덕분에 설립 2년 만에 100메가와트시(MWh) 규모의 배터리를 보급했고, 월평균 30%라는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흩어진 개별 배터리를 하나로 묶어 전력망에 되파는 이들의 VPP 기술은, 2021년 대정전의 악몽을 겪은 텍사스에서 확실한 그리드 안정화 솔루션으로 시장성을 검증받았다. 잭 델 베이스파워 최고경영자(CEO)는 “지금이 전력 시스템을 재발명할 적기”라며 확보한 실탄을 하드웨어 생산 내재화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내 기업들도 이 거대한 흐름에 올라탔다. LS그룹은 미국 전력망 인프라에 누적 1조5,000억원을 투자하며 현지 공략에 나섰다. 구자은 LS그룹 회장이 강조한 '전력에서 솔루션으로' 전환 전략의 핵심 무대가 미국인 셈이다. LS그룹은 미국이 2035년까지 송전망 투자를 2배로 늘릴 것이라는 전망에 맞춰 해저케이블과 배터리저장장치(BESS)의 두 축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실제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LS전선의 자회사 LS그린링크는 버지니아주 체서피크에 6억8,000만 달러(약 9,800억원)를 투입해 북미 최초의 대형 해저케이블 공장을 짓고 있으며,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LS일렉트릭 역시 삼성물산과 손잡고 500MW급 BESS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1,329억원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전력 솔루션 사업을 수주했다. 이에 힘입어 LS일렉트릭의 전체 매출 중 북미 비중은 2020년 3%에서 올해 상반기 31%까지 치솟았다. 회사 관계자는 "미국은 전력 인프라 관련 세계 최대 시장"이라며 "해저케이블, 전력기기, 통신 사업 등에 30억 달러(약 4조3,000억원)를 추가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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