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전반으로 번지는 양극화, 늘어나는 ‘1조 클럽’, 사라지는 중소형 점포들
유통업계 전반으로 번지는 양극화, 늘어나는 ‘1조 클럽’, 사라지는 중소형 점포들
입력
수정
초대형 핵심 점포에 매출 집중되며 서울 쏠림 심화 소비·유통 환경 변화 속 사업구조 재편 국면 팬데믹 이후 부진 겪은 美 메이시스, 고급화로 반등 성공

지난해 연 매출 1조원 이상을 기록한 백화점 점포가 13곳으로 전년보다 1곳 늘어난 반면, 수익성 악화로 서울 소재 점포 2곳이 문을 닫는 등 백화점업계의 매출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소비 양극화와 온라인 채널 확대 속에서 초대형 핵심 점포는 매출을 흡수하며 성장하는 데 반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점포는 시장에서 밀려나는 흐름이 고착화되는 양상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초고가와 초저가 전략으로 시장이 양분화되는 상황에서의 이 같은 변화를 일시적 조정이 아닌 유통 사업구조 재편이 본격화되는 신호로 보고 있다.
지난해 백화점 2곳 폐점
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한 백화점 점포는 13곳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대전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아트앤사이언스가 개점 4년 만에 연 매출 1조원을 넘어서며 '1조 클럽'은 전년보다 한 곳 늘었다. 3조원 이상 점포는 지난해와 동일하게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롯데백화점 잠실점 2곳이었다. 2조원 이상 점포는 현대백화점 판교점이 새롭게 이름을 올리며 총 5곳으로 확대됐다. 특히 현대 판교점은 매출이 전년 대비 16% 증가하며 개점 10년 4개월 만에 2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는 국내 백화점 중 가장 빠른 기록이다.
유통사별로는 신세계가 5곳으로 가장 많았고, 현대 4곳, 롯데 3곳, 갤러리아 1곳 순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서울에 전체 1조 클럽 점포의 61.5%가 몰려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구체적으로는 연 매출 1위인 신세계 강남점을 비롯해 롯데 잠실점·본점, 현대 무역점·본점, 더현대서울, 신세계 본점, 갤러리아 명품관 등 총 8곳이 서울 소재 점포다. 지방에서는 부산이 2곳(신세계 센텀시티점·롯데 부산본점), 대구·대전·경기 지역이 각각 1곳씩(신세계 대구점·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현대 판교점) 포함됐다.
이처럼 1조 클럽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수익성이 낮은 점포는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그랜드백화점 일산점과 현대 디큐브시티점 2곳이 문을 닫았다. 반면, 새롭게 문을 연 점포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3월에는 롯데 분당점이 개점 26년 만에 영업을 종료한다. 롯데백화점의 경기도 첫 점포였던 롯데 분당점은 한때 지역 대표 백화점으로 자리 잡았지만, 소비 패턴 변화와 내수 부진 속에 경쟁력이 약화됐다. 2024년 기준 롯데 분당점 매출은 1,623억원으로 국내 5대 백화점 68개 점포 중 58위에 그쳤다.
백화점업계는 이 같은 양극화를 일시적 구조조정이 아닌 업계 전반의 체질 변화로 보고 있다. 온라인 채널의 확대와 인구 감소, 소비 양극화가 맞물리면서 수익성이 낮은 중소형 점포는 문을 닫고, 강력한 집객력을 갖춘 초대형 거점 점포만 살아남는 구조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해 연 매출 1조원을 넘긴 점포들의 총 거래액이 전체 과반을 차지했다. 점포 수가 3.4% 감소했음에도 점포당 매출은 16.3% 늘었다. 이들 핵심 점포가 업권 전체 매출을 견인하면서 백화점업은 지난해 7월 이후 5개월 연속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美 삭스피프스애비뉴도 재정 악화로 위기
백화점업계의 사업구조 재편은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고급 백화점 체인 삭스피프스애비뉴(Saks Fifth Avenue)의 모회사 삭스 글로벌(Saks Global)은 최근 부채 이자를 상환하지 못할 정도로 자금난이 악화해 파산보호 신청을 포함한 구조조정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2024년 고급 백화점 체인 니먼마커스(Neiman Marcus)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자금 조달 부담이 커졌고, 합병 이후 북미 지역 주요 럭셔리 백화점 브랜드를 산하에 두었음에도 매출이 뚜렷한 반등을 보이지 못하면서 재무 여건이 급속히 악화됐다. 지난 2일에는 자구책 차원에서 최고경영자(CEO)가 전격 교체되기도 했다.
미국의 대표적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Macy’s)도 구조조정의 한복판에 서 있다. 1902년 문을 연 메이시스는 온라인 쇼핑의 급성장과 이를 촉진한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2020년 한 해에만 125개 점포의 문을 닫았다. 2026년까지 150개 매장이 추가로 폐점될 예정으로 한때 1,000개에 달하던 점포 수는 350개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실적 부진도 이어지고 있다. 2023년 연 매출은 231억 달러(약 31조2,000억원)로 전년 대비 5.5% 감소했고, 동일 매장 매출(Comparable Store Sales)은 6.9% 줄었다. 온라인 매출마저 7% 감소하면서 단순히 오프라인 채널의 문제가 아니라 브랜드 경쟁력 자체가 약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장 평가도 냉정하다. 메이시스가 보유한 부동산 자산 가치가 85억 달러(약 11조5,000억원)로 추산되는데, 지난해 인수 제안을 받았던 가격은 그보다 낮은 58억 달러(약 7조8,000억원)에 그쳤다. 부동산보다 못한 기업이란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취임한 토니 스프링(Tony Spring) 신임 CEO는 ‘새로운 챕터(New Chapter)’라 불리는 전략을 내놨다. 미국 시장의 소비 양극화를 고려해 고소득층을 겨냥한 럭셔리 스토어를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기존 매장의 현대화와 소규모 매장 확대를 병행한다는 구상이다.
다행히 이 같은 전략은 지난해 하반기 들어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달 발표된 메이시스의 3분기 매출은 47억1,000만 달러(약 6조9,300억원)로 시장 예상치인 46억2,000만 달러를 상회했다. 조정 주당 순이익(EPS)은 0.09달러를 기록해 0.14달러 손실을 예상했던 시장의 전망치를 크게 상회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회사 전체의 동일 매장 매출은 3.2% 증가했고, 폐쇄 예정 매장을 제외한 핵심 매장에서는 3.4% 증가했다. 이는 메이시스가 지난해 턴어라운드 전략을 본격화한 이후 가장 강력한 성장 모멘텀으로 평가된다.
유통업계, 프리미엄·가성비 전략으로 이분화
전문가들은 메이시스가 고급화 전략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낸 만큼, 국내 백화점업계 역시 같은 방향의 전략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간 가격대 상품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위축되는 반면, 소비자는 ‘가성비’와 ‘프리미엄’이라는 두 극단을 명확히 선택하는 흐름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신세계와 롯데는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VIP 고객을 타겟으로 에르메스·루이뷔통·샤넬 등 글로벌 명품과 그라프, 반클리프 아펠, 제이콥앤코 등 초고가 주얼리 라인을 확대했다. 현대백화점과 한화갤러리아도 고급 브랜드 입점과 매장 확대, 체험형 공간 강화로 하이엔드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반면 대형마트와 편의점은 생활필수품 중심으로 초저가 전략을 이어갈 전망이다. 다이소는 5,000원 이하 화장품이 소셜미디어(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지난해 화장품 매출이 전년 대비 80% 성장했다. 대형마트도 저가 상품군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마트는 LG생활건강과 협업해 4,000원대 기초 화장품을 출시했고, 최근에는 생활용품 1,340여 종을 1,000~5,000원에 판매하는 초저가 편집존을 와우샵을 론칭했다. 롯데마트 역시 4,950원 스킨케어 제품을 출시해 전국 80개 점포에서 판매 중이다.
초저가 PB(자체 브랜드) 상품 강화도 핵심 전략으로 떠올랐다. 편의점 3사의 전체 매출에 PB 비중은 2022년 26~27%대에서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 3분기 기준 30%에 육박했다. 매출 증가율도 매년 두 자릿수를 기록 중이다. 대형마트 역시 PB 상품이 제조사 브랜드(NB)를 대체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일례로 롯데마트의 PB 미역국 라면은 지난해 외국인 특화점 10개 점에서 신라면과 불닭볶음면을 제치고 라면 매출 1위를 기록했고, 이마트의 PB 식혜와 밀크초콜릿 등은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