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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막히자 우회로 뚫는다, 81조 반도체시장 허리 장악하는 中

첨단 막히자 우회로 뚫는다, 81조 반도체시장 허리 장악하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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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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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물량 공세에 대만 업계 위기, 2027년 성숙공정 파운드리 점유율 역전 전망
기업 구조조정과 레거시 공급망 장악 통한 中의 글로벌 시장 지배력 확대
中 100조원대 추가 지원 및 28나노 기술 내재화를 통한 질적 성장 가속화

미국의 고강도 제재로 14나노(nm) 이하 첨단 공정 진입이 차단된 중국이 '레거시(구형·범용) 반도체' 시장으로 화력을 집중하며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초미세 공정의 장벽을 뚫는 대신, 전 산업의 필수재인 28나노 이상 성숙 공정에 천문학적 자본을 쏟아부어 글로벌 공급망의 '허리'를 장악하는 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중국은 저가 물량 공세로 부동의 1위 대만을 턱밑까지 추격한 데 이어, 100조원대 추가 부양책과 기술 내재화를 통해 양적 팽창을 넘어선 질적 고도화를 꾀하고 있다.

中 가격 공세에 설 곳 잃은 대만, 수년 내 점유율 역전 전망

6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미국 주도의 첨단 반도체 제재가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이 산업용 반도체의 허리인 '성숙 공정(Mature Node)' 지배력을 공고히 하며 시장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이에 따라 563억 달러(약 81조3,800억원) 규모의 레거시 반도체 시장을 주도해 온 대만 업체들은 중국의 거센 추격에 밀려 생존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러한 판도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대만 파워칩테크놀로지 사례다. 최근 로이터통신은 이 회사의 사례를 들며 과거의 파트너가 오늘의 적이 된 업계의 격세지감을 전했다. 2015년 중국 허페이시와 합작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 넥스칩(Nexchip)을 설립할 당시만 해도 이는 유망한 중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여겨졌으나, 불과 10년 만에 넥스칩은 강력한 경쟁자로 돌변했다. 실제로 넥스칩은 안후이성 최초로 12인치 파운드리 양산에 성공한 데 이어, 현재 LCD 구동칩 파운드리 세계 1위, 중국 전체 파운드리 3위 자리를 굳히며 급성장했다. 결국 파워칩은 자신이 키운 넥스칩의 거센 저가 공세에 밀려, 한때 캐시카우였던 디스플레이용 집적회로 시장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몰렸다.

현재 중국은 28나노 이상 성숙 공정에 정부 차원의 보조금을 쏟아부으며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넥스칩뿐 아니라 SMIC, 화훙반도체(Hua Hong) 등이 파격적인 할인과 공격적인 설비 확충을 앞세워 대만 파워칩, UMC, VIS 등을 위협하는 중이다. 대만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제재로 막힌 활로를 레거시 반도체에서 찾으며, 정부 자금을 등에 업고 덤핑에 가까운 가격 공세를 펼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물량 공세는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된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4년 국가별 성숙 공정 파운드리 생산력 점유율은 대만(43%)이 중국(34%)을 앞서고 있으나, 중국의 증설 속도가 빨라 2027년에는 중국이 대만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조사에서도 2023~2025년 가동을 시작하는 전 세계 신규 팹(fabrication·반도체 생산설비) 97개 중 과반인 57개가 중국에 위치할 만큼 중국의 설비 투자는 압도적이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내 '자국산 우대 정책' 또한 대만 기업의 설 자리를 없애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대만 반도체 설계업체 관계자들은 로이터에 "패널 등 소비자 관련 분야를 중심으로 중국 고객사들이 당국의 공급망 현지화 요구에 따라 중국 파운드리업체에 제조를 위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특히 차이나모바일이나 차이나텔레콤 등 국영 기업들의 경우 중국산 부품 사용에 더욱 엄격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만 업체들은 생존을 위한 '탈출'과 '변혁'을 선택했다. UMC는 인텔과 협력해 첨단 공정을 개발하는 등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섰고, 프랭크 황 파워칩 회장 또한 중국 시장용 칩 사업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생존할 방법이 없다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황 회장은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디스플레이 구동칩 생산을 줄이고 3D D램 기술 등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미 실물경제 쥐락펴락, 구조조정으로 공급망 요새 굳히는 中

중국은 단순한 설비 증설을 넘어,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레거시 반도체 경쟁력을 효율화하며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화훙은 자매사인 화리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HLMC) 지분 97.5%를 82억6,800만 위안(약 1조7,000억원)에 인수하며 외형 확장에 나섰다. 화훙은 이번 인수로 HLMC가 보유한 65·55나노 및 40나노 로직·스페셜티 공정 포트폴리오를 흡수하고, 월 3만8,000장 규모의 12인치 웨이퍼 생산능력(CAPA)을 단번에 확보했다. 화훙은 이와 별도로 최대 75억5,600만 위안(약 1조5,600억원)의 자금을 추가 조달해 성숙 공정의 고도화와 증설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SMIC 역시 유사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SMIC는 지난해 12월 29일 28~65나노 성숙 공정의 핵심 거점인 자회사 'SMIC 노스(SMIC North)'의 잔여 지분 49%를 406억 위안(약 8조4,000억원)에 인수해 완전 자회사로 편입했다. 이는 첨단 공정 진입이 제한된 상황에서 성숙 공정 중심으로 자원을 재배치해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구형 반도체는 안전하다'는 서방의 인식 또한 변화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의 성숙 공정 확대를 '기초(레거시) 반도체' 차원의 공급망 및 가격 왜곡 문제로 규정하고, 하류 제품까지 포함한 무역법 301조 조사를 공식 개시했다. 실제로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 조사에서 응답 기업 제품의 3분의 2 이상이 중국 기반 파운드리에서 생산된 칩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될 만큼, 글로벌 공급망 내 중국산 레거시 칩의 의존도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다.

이러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이미 실물 경제의 리스크로 현실화하고 있다. 일본 혼다자동차가 반도체 부족으로 중국 내 공장 3곳의 가동 중단을 2주 연장해 재개 시점이 오는 19일로 미뤄졌는데, 업계에서는 그 배경으로 넥스페리아(Nexperia) 사태를 지목한다. 네덜란드 정부가 지난해 9월 30일 안보 우려를 이유로 넥스페리아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자, 중국은 이에 대응해 해당 칩의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후 10월 30일 미중 정상 회동을 계기로 중국이 민간용에 한해 면제 신청을 허용하며 11월부터 빗장을 일부 풀었으나, 이 과정에서 발생한 공급 병목현상이 자동차 업계의 생산 차질로 이어진 것이다. 중국은 이처럼 구형이지만 필수적인 부품 공급망을 지렛대로 활용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협상력을 입증하고 있다.

돈으로 허리 굳힌다, 100조 실탄 장전하고 질적 도약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막대한 자본 투입을 통해 2라운드로 진입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현재 중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 보조금과 금융 지원을 포함해 2,000억~5,000억 위안(약 42조~104조원) 규모의 추가 정책 패키지를 검토 중이다. 최대치가 현실화될 경우, 이는 미국 상무부의 반도체법(CHIPS Act)에 버금가는 규모로 단일 국가 기준 역대 최대 수준이 될 전망이다. 시장은 중국이 반도체를 단순한 경기 부양 수단이 아닌, 중장기 국가 전략 산업으로 재정의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최근 미국이 엔비디아 H200 칩의 중국 수출을 승인한 상황에서, 중국은 합법적으로 해외 첨단 칩을 확보하는 동시에 자국산 반도체 생태계를 육성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초화 대신증권 연구원은 "중국은 단기간 내 기술 격차를 좁히기 어려운 첨단 공정 대신, 현실적으로 국산화가 가능한 영역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며 "정책 자금 역시 최첨단 공정보다는 반도체 장비와 자율주행·산업용 등 응용 반도체 분야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번 투자 구상은 기존 '반도체 빅펀드'의 제조 기반 확충을 넘어, AI 데이터센터·전력·네트워크 인프라까지 아우르는 '전방위 패키지' 형태로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즉각적이고 가시적 수혜는 범용·레거시 반도체 영역에 집중될 전망이다.

중국의 전략은 단순한 저가 칩 양산을 넘어 '허리 기술(28~40나노급)'의 내재화와 고도화로 진화하고 있다. 5일 대만 IT 매체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넥스칩은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 신잔 하이테크 구역에서 355억 위안(약 7조3,500억원)을 투입해 '4기 프로젝트(Phase Ⅳ)'를 착공했다. 이번 증설의 핵심은 12인치 웨이퍼와 성숙 공정이다. 공장이 완공되면 넥스칩은 월 5만5,000장의 12인치 웨이퍼 생산 능력을 추가로 확보하게 된다.

이는 주력 공정을 기존 55~150나노에서 고부가가치 영역인 28나노로 전환해 AI 스마트폰과 스마트 차량용 반도체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의도다. 업계에 따르면 모바일 컴퓨팅과 AI 작업부하가 증가하면서 28나노급 성숙 공정이 컴퓨팅과 스토리지 전반에서 공급 병목현상을 빚고 있다. 특히 보안용 CIS나 차량용 OLED 구동칩 같은 특수 공정 수요가 늘고 있어 넥스칩이 이 틈새시장을 정확히 조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넥스칩은 지난해 7월 28나노 이상 공정용 포토마스크 내재화까지 추진하며 외부 의존도 줄이기에 나선 상태다.

이번 투자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판도를 가늠할 중요한 신호다. 중국이 비록 5나노 이하 최첨단 공정에서는 미국에 뒤처져 있지만, 전 세계 전자제품의 필수재 역할을 하는 20~40나노 대역에서는 압도적인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장악하려 하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리스크 속에서도 믿을 수 있는 내수 생산 기지를 확보하려는 중국의 독자 노선이 28나노 공정에서 구체화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한국 반도체 산업에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메모리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받는 직접적인 타격은 제한적일 수 있으나, 레거시 영역과 장비 시장에서는 중국의 거센 가격 압박과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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