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집에서 일하는 시대의 숨은 비용
[딥폴리시] 집에서 일하는 시대의 숨은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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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 근무 확산, 가정 내 역할과 평가 기준 동시에 이동 보이는 근무, 성과를 앞지르며 경력학습 불균형 누적 교육 일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수록 부담은 개인에게 집중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원격 근무의 확산은 일하는 방식과 함께 집 안의 역할 분담 구조까지 바꾸고 있다. 2023년 기준 미국에서는 고용자의 35%가 재택근무를 했으며, 이는 2019년의 24%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이들은 재택근무일에 평균 5.1시간을 집에서 일했다. 이는 집에서 이뤄지는 일이 부수적인 업무가 아니라, 정규 근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트북이 식탁 위에 놓이는 순간, 집은 휴식 공간이자 업무 공간으로 동시에 인식된다. 일터와 가정의 경계가 겹치면서 “집에 있으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 결과 근무 시간 중에도 가사나 돌봄에 응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따라붙는다. 이 변화는 일부 가구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원격 근무가 일상화된 환경에서 다수의 가구가 공통으로 마주하는 구조적 변화다.
사적 영역을 넘어 제도에 영향을 주는 가사노동
원격 근무가 일상화되면서 가사노동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공적 영역의 이슈로 이동하고 있다. 일과 집이 분리돼 있던 시기에는 교육 정책과 행정이 가정 내 노동을 고려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재택근무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이러한 전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2023년 기준 유럽연합(EU)에서는 15~64세 취업자의 22%가 정기적 또는 간헐적으로 재택근무를 했다.
미국의 시간 사용 자료에서도 변화는 분명하다. 같은 해 여성의 86%, 남성의 71%가 하루 평균 가사노동을 수행했다. 여성은 하루 2.7시간, 남성은 2.1시간을 가사노동에 썼다. 격차는 과거보다 줄었지만, 누가 휴식과 회복의 시간을 확보하는지는 여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이 차이는 개인의 생활 패턴에 그치지 않고 학습 시간, 업무 집중도, 제도 참여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가사노동은 이제 노동시장과 교육 일정에 영향을 주는 구조적 변수로 작동하고 있다.

주: 2023년 미국에서 재택근무를 포함한 근로 환경에서도 여성은 남성보다 가사노동과 집안일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으며, 특히 청소·세탁 등
일상적 가사노동에서 격차가 뚜렷하게 확인된다.
보이지 않는 근무와 성과 평가
재택 근무 방식은 경력 평가에 새로운 불균형을 만들고 있다. 2025년 연구에 따르면 주로 원격으로 근무한 여성은 주로 현장에서 근무한 여성보다 승진 가능성이 낮게 나타났다. 같은 조건에서 남성의 승진률에서는 이와 같은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 이 결과는 원격 근무 환경에서 성과의 질보다 조직 내에서 얼마나 자주 보이는지가 평가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왜곡은 교육기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강의, 디지털 콘텐츠 제작, 원격 학생 지원 업무가 빠르게 늘어났지만, 이상적인 교직원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캠퍼스에 상주하며 개인적 부담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 여전히 기준으로 작동한다. 그 결과 가정 내 책임을 병행하는 근무 형태는 공식 평가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
이 구조에서는 비용이 눈에 띄지 않게 쌓인다. 집 안의 역할은 기록되지 않은 부담으로 남고, 그 부담은 시간 차를 두고 경력의 속도를 늦추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시간보다 ‘존재’가 기준이 되는 순간
원격 근무는 가사 분담의 기준을 근무 시간에서 집에 있는지 여부로 이동시켰다. 과거에는 누가 더 오래 유급 노동을 수행하는지가 집안일 분담의 주요 기준으로 작동했다. 재택근무가 확산된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화상회의 사이의 짧은 공백은 설거지나 저녁 준비 같은 즉각적인 가사노동으로 채워진다. 이러한 작은 업무가 반복되면서 집에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기본 대응자가 된다.
이 변화는 일상적 기대 속에서 강화된다. 온라인 논의에서도 “재택이면 더 해야 한다”는 인식과 “집에서 하는 일도 근무다”라는 주장이 맞부딪친다. 이 갈등은 개인 간 다툼을 넘어, 새로운 규칙이 형성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가정은 이제 근무 시간보다 위치를 기준으로 부담을 배분한다.
중요한 점은 이 전환이 합의나 선언 없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원격 근무가 만들어낸 ‘존재의 시간’은 별다른 결정 없이 책임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 가정 내 역할 분담의 기준선이 조용히 이동한다.

주: 가상 시나리오 실험 결과, 응답자의 성별과 무관하게 ‘집에 있는 남성’이 여러 가사노동을 더 많이 수행할 것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이는 재택근무 환경에서도 성별 고정관념이 가사 분담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육 일정이 부담의 귀속을 정하는 구조
원격 근무의 부담은 교육 시스템과 맞물릴 때 더욱 선명해진다. 재택근무는 고학력 노동자에게 특히 흔하게 나타난다. 미국에서 25세 이상 근로자 중 학사 학위 이상 보유자의 52%는 근무일에 재택근무를 했으며, 고등학교 졸업 이하에서는 22%에 그쳤다. 이들 가구는 대체로 엄격한 학교 일정 속에서 자녀를 양육한다. 학교가 한낮에 회의, 서류 제출, 연락을 요구하면, 누군가는 근무 시간과 가정 책임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그 부담은 가정 내에서 조용히 분배된다.
이 구조는 학생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고등교육 학생의 약 20%는 부모이며, 학부 기준으로 310만 명 이상에 이른다. 이 가운데 44%는 전면 온라인 과정에 등록돼 있다. 온라인 수업은 이동 시간을 줄여주지만, 가정 내 역할 충돌을 자동으로 해소하지는 않는다. 수업과 돌봄, 가사노동이 같은 공간에서 동시에 발생한다.
결국 일정이 기준이 된다. 교육 일정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수록 부담은 특정 개인에게 집중된다. 교육은 이 구조를 전제로 삼고 설계될 필요가 있다.
집에서 일하는 시대의 기본 설계
원격 근무는 이미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20~64세 인구 기준으로 유급 근무일의 약 4분의 1이 재택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2024년에는 유럽연합(EU) 기업의 52.9%가 온라인 회의를 진행했다. 일의 방식이 이렇게 바뀐 환경에서 교육의 역할은 분명해진다. 일정은 현실에 맞게 조정돼야 하고, 원격 근무자는 근무 장소를 이유로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학생과 교직원 모두에게 가정 시간은 실제로 작동하는 한계다. 학교와 대학이 이 시간을 여유로 간주할수록 부담은 개인에게 전가된다. 반대로 일정과 평가 기준이 현실을 반영하면, 학습 참여와 업무 성과는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핵심은 구분이다. 시간과 존재를 혼동하지 않는 설계, 보이는 근무와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함께 고려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이것이 집에서 일하는 시대에 교육이 준비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제도 정비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Intersection of Remote Work and Housework: Implications for Education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