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떠받친 러시아산 LNG, 美 에너지 제재 실효성 시험대
중국이 떠받친 러시아산 LNG, 美 에너지 제재 실효성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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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러시아 LNG 의존도↑
서방 제재 속 양국 에너지 연계
시장 블록화→통제 가능성 축소

중국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시장에서 러시아산 물량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공급 순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러시아는 대규모 할인과 새로운 물류 경로를 앞세워 시장 2위로 올라섰고, 중국은 서방 제재 국면에서도 러시아산 LNG를 꾸준히 받아들이며 에너지 블록화를 가속했다. 여기에 북극 LNG 프로젝트와 새로운 운송 경로까지 더해지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 내 ‘힘의 배분’에 대한 해석 역시 달라지는 형국이다.
중국 에너지 수요가 러시아 수출 지탱
24일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의 러시아산 LNG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142.6% 급증한 160만 톤을 기록했다. 이는 중국 전체 LNG 수입량의 23.5%에 해당하는 규모로, 지난해 시장 점유율 11%에서 두 배 넘게 거래량을 늘린 결과다. 반면 오랜 시간 중국의 최대 공급원이었던 호주는 1년 사이 수출량이 33.6% 감소하며 점유율이 36%에서 21.1%로 급락했다. 이로써 러시아는 호주를 제치고 중동에 이어 중국 내 LNG 공급 순위 2위로 올라섰다.
이 같은 수입 확대에는 가격 조건과 공급 경로 변화가 동시 작용했다. 11월 기준 러시아의 대중 LNG 수출 가격은 중국에 LNG를 공급하는 12개국 가운데 가장 낮았으며, 평균 가격 대비 약 10% 낮은 백만 BTU(MMBtu)당 9.85달러로 집계됐다. 이를 두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러시아가 서방 제재에 따른 거래 리스크를 반영해 시장 평균가 대비 약 10~40% 낮은 가격에 LNG를 공급하고 있다”면서 “가격 경쟁력이 (중국) 수입 물량 확대의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공급 측면에서도 서방의 제재 대상인 ‘아크틱(Arctic·북극) LNG 2’ 프로젝트가 주요 출처로 언급된다. 중국은 지난 8월부터 해당 프로젝트에서 생산된 LNG를 베이하이 터미널을 통해 수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9월을 기점으로 러시아산 LNG 물량이 중국 통계에 본격 반영되기 시작했다. 유럽 시장으로의 수출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러시아가 아시아 최대 가스 시장인 중국으로 물량을 전환한 흐름이 본격화한 것이다.
다만 지금과 같은 러시아산 LNG 공급 확대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북극 항로를 운항할 수 있는 쇄빙 LNG 운반선인 Arc7급 선박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겨울철 결빙이 심화하면, 수출 물량 또한 감소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11월 이후 아틱 LNG 2의 생산량은 물류 한계로 인해 전월 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러시아가 중국 내 기업들과 얼마나 효과적으로 협력하느냐가 내년도 공급량을 결정지을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규제 공백’과 다름없어
시장은 중국이 미국과 서방의 제재 국면에서도 러시아산 LNG 수입을 지속적으로 늘려 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선박 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아크틱 LNG 2 프로젝트에서 출항한 운반선이 8월 이후 중국으로 이동한 사례는 최소 11차례에 달했다. 아이리스호를 포함한 복수의 선박은 러시아 동부 부유식 저장시설에서 적재를 마친 뒤 중국으로 이동했는데, 해당 저장시설과 선박들 모두 미국의 제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제재 대상 프로젝트와 운송 수단이 아무런 장벽 없이 운용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러시아산 LNG 공급 확대는 비단 특정 프로젝트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 제재 이후 사실상 중단됐던 포르토바야 LNG 공장에서 생산된 물량이 중국으로 공식 선적되기도 했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이 제공하는 선박 데이터에 의하면 러시아 국적 LNG 운반선 ‘발레라(구 벨리키 노브고로드)’는 발트해 연안 포르토바야 LNG 공장에서 이달 초 적재한 화물을 중국 베이하이 LNG 터미널로 운송했다. 2022년 9월 가동을 시작한 포르토바야 LNG 공장은 올해 2월 미국의 제재 목록에 포함되면서 수출이 사실상 멈췄던 곳이다.
이러한 흐름은 제재 이후 러시아 LNG의 주요 수요처가 중국에 집중됐음을 보여준다. 서방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선박들은 부유식 저장시설을 활용해 대규모 LNG 물량을 중국으로 인도했고, 일부 물량은 말레이시아 인근 해상에서 선적을 옮겨 싣는 방식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로스네프트와 루코일 등 국영 에너지 기업을 제재 명단에 올리면서 LNG를 직접 겨냥한 추가 제재는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블룸버그는 이를 일종의 “규제 공백”으로 정의하며 “계속되는 제재 국면에서도 실물 거래 흐름이 계속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에너지 영향력 이동 흐름
이처럼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블록화가 가속하면서 미국 중심의 제재가 실물 거래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에도 균열이 생기는 모양새다. 서방이 금융과 보험, 운송 등을 포함한 각종 제재 수단으로 러시아의 에너지 수익원을 압박하는 상황에서도 대규모 LNG 물량은 중국이라는 세계 최대 시장을 향해 흐른다. 이는 제재의 강도 자체보다 에너지 실물 거래가 갖는 대체 불가능성과 수요국의 선택이 제재 효과를 좌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으로 읽힌다.
이 같은 흐름은 육상과 해상을 아우르는 러시아·중국 간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현재 양국은 ‘시베리아의 힘 2(Power of Siberia 2)’ 가스관 사업을 통해 연간 500억㎥ 규모의 천연가스를 중국으로 공급하는 프로젝트를 구축 중이다. 러시아에서 몽골을 거쳐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로 연결되는 해당 노선이 완공되면, 중국의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는 보다 극대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해상 LNG에 비해 제재·운송 리스크가 낮은 육로 공급망이 확대될 경우, 서방 제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 또한 줄어드는 까닭이다.
해상 운송 측면에서도 변수는 적지 않다. 미국 제재를 받는 아크틱 LNG 2 프로젝트의 운반선이 중국 베이하이 수입 터미널로 향하는 다수 사례는 북극항로가 새로운 물류 축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북극항로는 기존 수에즈 운하나 말라카 해협을 경유하는 항로보다 운송 거리를 단축할 수 있어 매우 경제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해양 전문 매체 지캡틴(gcaptain)은 “러시아 선적 LNG 운반선이 급증하는 최근의 추세는 양국 간 프로젝트 불확실성이 일정 부분 해소됐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제재의 실효성은 한층 더 옅어진다. 영국 싱크탱크 옥스퍼드 글로벌 소사이어티(Oxford Global Society)의 지니비브 도넬론-메이는 “중국이 러시아 가스를 대량 도입하면, 글로벌 에너지 영향력은 해양에서 대륙으로 이동하게 된다”면서 “이는 미국이 LNG 수출을 통해 구축해 온 에너지 영향력의 작동 방식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미국의 금융 제재나 관세가 에너지 실물 거래를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는지는 수요국과 공급국이 형성하는 블록 내 결속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란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