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북한·러시아 군사 협력, 전장을 넘어 흔들리는 안보 질서
[딥폴리시] 북한·러시아 군사 협력, 전장을 넘어 흔들리는 안보 질서
입력
수정
탄약·인력 공급으로 굳어진 러시아 전쟁의 새로운 보급 축 방위 협정과 감시 공백이 만든 제재 무력화 구조 사실상 핵 보유국 인식이 키우는 동북아 연쇄 압박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은 더 이상 우크라이나 전장의 주변 변수로 남아 있지 않다. 2023년 중반 이후 북한이 러시아에 대규모 탄약과 인력을 공급하면서, 이 협력은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을 넘어 지역 안보 질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구조로 굳어졌다. 흐름은 단순한 무기 거래를 넘어선다. 제재 집행이 느슨해지고, 핵 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판단이 미묘하게 흔들리면서, 동북아 안보 환경까지 함께 긴장 국면으로 밀려났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시작된 이 협력은 이제 유라시아 전반의 전략 계산을 바꾸는 요인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쟁을 떠받치는 새로운 공급축
북한은 러시아의 전쟁 수행을 떠받치는 실질적인 보급 축으로 자리 잡았다. 핵심은 물량이다. 한국 국방부와 미국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2023년 중반 이후 약 6,700개의 탄약 컨테이너를 러시아로 보냈고, 2024년 겨울에는 그 규모가 1만 개를 넘을 것이라는 추정도 제시됐다. 이 물자에는 대량의 포탄뿐 아니라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포함돼 있으며, 단순 소모품을 넘어 전투 양상을 바꾸는 자산도 함께 이동했다.
이 같은 지원은 전장에서 확인됐다.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분석 결과, 러시아는 하르키우 인근 공격을 포함한 여러 작전에서 북한제 KN-23·KN-24급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실제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측은 2025년 초까지 발사된 수량을 약 100발로 추산하고 있다.
이 보급은 러시아의 선택지를 넓혔다. 포탄 부족에 대한 압박을 완화하는 동시에, 기존 생산 라인을 보다 정밀한 무기 체계로 전환할 시간을 확보했다. 그 결과 북한은 단순한 지원국을 넘어, 러시아 전쟁의 지속성을 떠받치는 공급자로 기능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주: 2023~2024년 추정치 기준으로 북한에서 러시아로 향한 탄약 컨테이너(6,700개)보다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돌아간 식량·연료 지원
컨테이너(9,000개)가 더 많아, 무기 대가로 지원이 오가는 교환 구조가 빠르게 형성됐음을 보여준다.
군사 협력을 제도화한 방위 약속
물량 중심의 협력은 2024년 들어 법과 정치의 보호를 받는 단계로 올라섰다. 2024년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무력 공격을 받을 경우 상호 군사 지원에 나선다는 내용을 담은 협정을 체결했다. 그동안 비공식 채널과 관행으로 이어져 온 협력이 문서화되며, 공동 방위 성격의 관계로 격상된 것이다.
이 합의는 상시적 합동 작전이나 자동 개입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효과는 분명하다. 북한은 국제적 고립을 완화하는 정치적 보호막을 확보했고, 러시아는 전시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탄약 파트너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였다. 협정에 우주·원자력 분야 협력 가능성이 포함된 점도 눈에 띈다.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장기간 제한해온 영역으로, 협력의 범위가 군수 물자에만 머물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이 방위 약속은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을 단기적 이해관계에서 떼어내, 법적 틀 속에서 지속되는 관계로 굳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제재의 지속, 감시의 공백
문제는 이 협력이 제재의 공백 속에서 더욱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3월 러시아는 북한 제재 이행을 감시해온 유엔 전문가 패널의 활동 연장을 거부했다. 제재 결의 자체가 폐기된 것은 아니지만, 선박 간 석유 이전이나 해외 노동자 파견처럼 반복적으로 제기돼 온 위반 행위를 공식적으로 조사하고, 국제사회에 공개하던 감시 체계는 사실상 멈췄다. 규칙은 남았지만 이를 확인하고 문제를 제기할 창구가 사라진 셈이다.
이후 흐름은 수치로 드러난다. BBC와 오픈소스센터(Open Source Centre)의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4년 한 해 동안 북한에 100만 배럴 (약 1억5,900만 리터)이 넘는 석유를 공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유엔이 허용한 연간 상한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여기에 식량과 연료가 함께 유입되면서 북한 내부의 물가 안정과 군수 공장 가동을 떠받치는 조건도 동시에 형성됐다.
제재 규칙은 문서상으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감시·보고·공개라는 집행의 핵심 축이 약해지면서, 북한과 러시아의 교환 구조는 제약을 받기보다 오히려 더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경로로 굳어지고 있다. 제재가 존재함에도 실제 억제 효과는 빠르게 희석되는 국면이다.

주: 아산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는 비율은 2024년 70.9%에서 2025년 76.2%로 상승하며, 억지 수단이었던 선택지가 주류 정책 압력으로 전환되는 흐름을 보여준다.
핵 보유국 인식이 만드는 연쇄 압박
이 변화의 종착지는 결국 핵 문제다. 러시아가 유엔에서 북한을 보호하고, 군사 협력을 실질적으로 이어가면서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전제로 한 논의가 점차 늘고 있다. 공식적인 인정이 없어도, 강대국들이 다른 현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북한의 핵 능력을 기정사실로 다루기 시작하면 국제사회의 인식은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핵 문제가 협상의 전제가 되는 순간, 지위는 말없이 굳어진다.
이미 파장은 주변국에서 확인된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실시한 2025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는 비율은 76.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정 정치 성향이나 세대에 국한된 흐름이 아니라, 주류 여론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본 역시 법적·문화적 제약은 유지되고 있지만, 핵 공유와 관련한 언급이 공개적으로 오가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전장 효과도 무시하기 어렵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북한 미사일을 사용하면서, 북한이 정확도와 신뢰성 같은 핵심 성능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동북아 방어 환경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이 일상으로 굳어질수록, 주변국의 불안은 커지고 억지 수단은 한층 강경해지는 방향으로 밀려나고 있다.
순환을 끊지 못할 때 굳어지는 불안 구조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은 단속 가능한 개별 사건의 범주를 넘어 관리해야 할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탄약과 인력, 식량과 연료가 맞물린 교환은 제재 약화와 정치적 보호 속에서 하나의 순환 고리를 형성했다. 이 흐름을 방치할 경우 전쟁은 장기화되고, 북한의 핵 지위는 사실상 전제로 취급되며, 동북아 안보 불안은 더욱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밖에 없다.
선택지는 분명하다. 제재의 존재보다 집행의 지속성을 복원해야 한다. 동시에 무기와 에너지가 오가는 경로를 차단하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동북아 안보를 분리하지 않는 대응이 요구된다. 이 순환을 지금 끊지 못한다면, 불안은 일시적 위기가 아닌 구조적 상수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How North Korea-Russia Military Help is Changing Security in Eurasia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