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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17조 핵항모 승부수, ‘강제 홀로서기’ 내몰린 유럽의 위태로운 재무장

佛 17조 핵항모 승부수, ‘강제 홀로서기’ 내몰린 유럽의 위태로운 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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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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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17조원 규모 차세대 핵항모 건조 확정, "독자적 방위 역량 확보" 마크롱의 전략적 결단
美 안보 자립’ 요구 거세지만 재정난·병력 부족·산업 파편화 등 구조적 한계에 유럽 고민 심화
러시아의 안보 위협과 ‘회색지대’ 도발 현실화, NATO GDP 5% 국방비 투자 합의하며 대응 태세 강화

프랑스가 17조원 규모의 차세대 핵추진 항공모함 건조를 확정했다. 이는 급변하는 안보 환경 속에서 독자적인 방위 역량을 확보하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전략적 결단이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와 러시아의 안보 위협이 맞물리며, 유럽은 오랜 ‘평화 배당금’ 시대를 마무리하고 방위 태세 강화에 나섰다. 다만 재정 건전성 악화와 병력 부족, 방산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라는 현실적 과제가 산적해 있어 유럽의 재무장 행보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안보 자립을 모색하는 유럽의 복잡한 속내를 짚어본다.

안보 위기 속 자구책, 佛 재정 난관 뚫고 8만 톤급 핵항모 건조 확정

21일(이하 현지시각)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는 현 주력인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함’을 대체할 차세대 핵추진 항공모함(PANG·Porte-avions de nouvelle génération) 건조를 확정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같은 날 아랍에미리트(UAE) 주둔 프랑스군을 방문한 자리에서 “포식자의 시대에 적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며 건조 결정을 발표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변하는 안보 위기 속에서 독자적인 방위 역량을 강화해 안보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프랑스의 전략적 의지로 풀이된다.

이러한 강력한 의지는 지난 9월 셰르부르 조선소에서 선행 작업에 착수하며 본격적인 건조 절차에 돌입한 새 항모의 위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배수량은 샤를 드골함(4만2,000 톤)의 두 배에 육박하는 8만 톤급이며, 길이는 310m로 유럽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또한 최신형 K22 원자로 2기를 탑재한 핵추진 방식을 통해 장기 작전 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이 강력한 출력을 기반으로 미국 정부의 대외군사판매(FMS) 승인을 거쳐 전자기식 사출기(EMALS)와 강제착함장치(AAG)를 운용한다는 점이 차세대 전력의 핵심이다.

다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난관은 막대한 재정 부담이다. 총사업비가 102억5,000만 유로(약 17조원)에 달하는 데다, 프랑스는 이미 높은 재정 적자 비율로 유럽연합(EU)의 시정 절차(EDP) 대상이 된 만큼 예산 배정을 둘러싼 내부 진통이 예상된다. 실제로 군사 전문가들과 정치권 일각에서는 “본토 방어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며 건조 연기를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이런 부담에도 마크롱 정부가 건조를 추진하는 것은 항모가 단순한 무기를 넘어 ‘전략적 자율성’을 상징하는 핵심 자산이기 때문이다.

돈·사람·산업 ‘3중고’ 직면한 유럽, 안보 홀로서기 과제 산적

프랑스의 이 같은 결정은 미국의 안보 공약 약화 우려 속에서 유럽 전체가 직면한 구조적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최근 발표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SS)이 2027년을 기한으로 유럽의 방위 분담 확대를 강력히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군비 증강은 이제 필수불가결한 과제가 됐다. 실제로 2024년 기준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전체 방위비의 약 3분의 2를 홀로 감당하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나토는 2025년 헤이그 정상회의에서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 5% 수준의 안보 투자를 약속했고, 이를 핵심 국방력과 기반 시설 강화에 배분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브뤼겔(Bruegel)·킬 세계경제연구소(IfW Kiel)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공백을 메우고 러시아 위협에 독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당장 약 30만 명의 추가 병력과 연간 2,500억 유로(약 433조7,600억원)의 예산 증액이 시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취약한 재정이 발목을 잡고 있다. EU는 ‘안정성장협약(SGP)’에 따라 연간 재정적자를 GDP의 3%, 국가부채를 60% 이내로 관리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은 기준을 한참 벗어나 있다. 2024년 기준 폴란드(6.5%)와 프랑스(5.8%) 등 12개국이 적자 상한선을 넘겼고, 그리스(154%), 이탈리아(135%) 등 12개국은 부채 한도를 초과한 상태다. 재정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국방비 확대는 결국 증세나 복지 예산 조정 중 하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고령화된 유럽 사회에서 복지 축소에 따른 정치적 반발과 사회적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와 맞물려 진퇴양난의 딜레마를 낳고 있다. 이성원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유연성을 발휘하더라도 군비 증강은 결국 각국의 재정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예산 문제만큼이나 심각한 것은 병력 부족이다. 냉전 말기 340만 명에 달했던 유럽 병력은 현재 200만 명 미만으로 줄었고, 영국 국방위원회 등에서는 고강도 분쟁 시 전투력 유지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개인주의 확산과 민간 취업 선호로 구인난이 가중되자 독일은 징병제 논의를 재점화하며 2035년까지 현역 병력 확충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일부 국가에서 파격적인 급여와 혜택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젊은 층의 호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병력 수급 불균형 문제는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국방비 증액이 내수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승수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나토에 따르면 최근 유럽 국가들의 미국산 무기 수입 비중은 오히려 급증하는 추세다. 이는 유럽 내부 방산 생태계가 겪고 있는 극단적인 파편화 현상 때문이다. 실제 유럽 각국 군대는 10여 종의 주력전차와 30여 종의 헬기 모델을 혼용하고 있어 상호 호환성이 크게 떨어진다. 설상가상으로 프랑스와 독일의 차세대 전차(MGCS) 사업이 지연되는 등 기업 간 알력 다툼도 여전하다. 여기에 유럽투자은행(EIB)이 그간 살상 무기 분야에 대한 직접 투자를 제한해 온 점 역시 방산 역량 강화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휴전은 평화 아닌 폭풍의 눈”, 경계심 높이는 유럽

재정·인력·산업이라는 구조적 삼중고 속에서도 유럽이 준전시 체제 전환을 서두르는 배경은 명확하다. 바로 러시아가 주는 실존적 공포감 때문이다. 유럽 지도자들이 느끼는 우려의 핵심은 러시아의 단순한 군사적 강함이 아니라,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집요한 확장 의지에 있다. 실제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행보를 1938년 아돌프 히틀러의 주데텐란트 점령에 빗대며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푸틴은 결코 거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 또한 “분쟁이 문턱까지 와 있다. 과거 우리 조부모 세대가 겪었던 규모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며 수년 내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을 상대로 직접적인 군사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을 강하게 경고했다.

특히 유럽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기폭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서두르는 우크라이나 조기 종전 시나리오다. 유럽 안보당국은 현재 전선을 기준으로 한 섣부른 휴전이 이뤄질 경우, 이는 진정한 평화가 아닌 ‘폭풍전야’에 불과하다고 경고한다. 러시아가 휴전 기간을 틈타 소진된 무기고를 채우고 전력을 재정비한 뒤, 다음 목표인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이나 폴란드로 총구를 돌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NSS를 통해 고립주의 노선을 시사함에 따라, 미국의 핵우산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공포가 유럽의 독자 생존 본능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

유럽 대륙에서 전쟁은 더 이상 먼 미래의 가정이 아니다. 이미 전선 밖 회색지대에서는 비군사적 수단을 앞세운 하이브리드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블레이즈 메트러웰리 영국 MI6 국장이 “전선은 모든 곳에 있다”고 경고했듯, 사이버 공격과 가짜뉴스 유포는 물론 기반 시설에 대한 물리적 타격까지 자행되는 실정이다. 실제 독일 정부가 항공관제 시스템에 대한 해킹 시도를 확인한 것을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해저케이블 절단, 철도망 방화, 민간 항공기 GPS 교란 등 러시아가 배후로 의심되는 사보타주(파괴 공작)가 잇따르고 있다. 유럽 정보당국은 이를 단순한 사회 교란을 넘어, 유사시 나토의 병력 전개를 지연시키고 방위 태세를 무력화하려는 치밀한 사전 공작으로 간주하고 있다.

결국 유럽은 지난 30년간 누려온 ‘평화 배당금’의 시대가 완전히 저물었음을 직시하고 있다. 프랑스의 차세대 핵항모 건조부터 독일의 병력 확충, 나토 차원의 방위비 증액 합의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안보 홀로서기라는 험난한 여정에 나섰다. 막대한 재정 부담과 사회적 합의라는 높은 파고가 기다리고 있지만, ‘힘이 곧 생존’인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 앞에서 유럽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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