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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O 카드’ 내려놓은 우크라이나, 종전 논의 무게중심 ‘안보 보장·재원 문제’로 이동

‘NATO 카드’ 내려놓은 우크라이나, 종전 논의 무게중심 ‘안보 보장·재원 문제’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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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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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 지원 축소 및 재정 한계
러시아와 세부 조건 조율 국면 진입
동결자산 처리 방안 두고 의견 분분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포기를 시사하면서 러시아와의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 공간을 넓혔다. 이는 군사적 열세와 재정 의존이 누적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한 종전 명분을 마련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현재 미국과 유럽이 논의 중인 안보 보장 구상은 NATO 헌장과 유사한 집단 방위 원칙을 참조하지만, 형식적 가입이 아닌 맞춤형 보호 장치에 초점을 뒀다. 이에 따라 종전 논의 역시 우크라이나가 NATO 가입 목표를 내려놓는 대가로 어느 수준의 법적·군사적 안전장치를 확보할 수 있느냐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미국 측 평화안 ‘수용 가능한 형태’로 재편

15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종전을 위해 전날 독일 베를린에서 미국 대표단과 협상에 돌입했다. 이번 회담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NATO 가입을 포기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우리는 미국과의 양자 간 안보 보장을 비롯해 미국의 집단 방위조약과 유사한 수준의 보장, 유럽 각국과 캐나다, 일본 등으로부터의 보장도 고려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보장들이 러시아의 또 다른 침공을 막을 장치가 될 것이란 설명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은 종전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우크라이나가 검토할 수 있는 선택지의 범위를 외부에 드러낸 신호로 읽힌다. 우크라이나는 2019년 헌법에 NATO 가입을 명시하며 이를 국가 안보의 핵심 축으로 삼았고, 러시아의 무력 침공 이후에는 사실상 유일한 안전보장 수단으로 인식해 왔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다시 협상 카드로 꺼낸 데는 자국을 둘러싼 군사적 상황과 외교 환경이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태도 변화의 배경에는 미국과 유럽의 지원 여건 변화가 자리한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대규모 군사·재정 지원에 대한 정치적 피로감이 누적된 상태며, 유럽 역시 장기전에 따른 재정 부담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론이 갈수록 확산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가 협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지렛대도 점점 줄어드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측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는 베를린 회담 첫날 “20개 항으로 구성된 평화안과 경제 아젠다를 놓고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말했으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고문 드미트로 리트빈은 “초안 문서들을 현재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은 미국이 제시한 평화 구상안이 결국 우크라이나가 수용 가능한 형태로 재편되는 과정으로 분석된다. BBC 보도에 의하면 지난달 말 미국이 제시한 평화안은 총 19개 항으로 구성됐는데, 기존 초안에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볼 만큼 대폭 수정됐다. BBC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신청이 자동으로 거부된다는 조항은 유지되는 대신, 우크라이나 군 병력 규모를 제한하는 내용이나 러시아 점령지의 일방적 양도 조항은 빠진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안보 보장의 실효성을 일정 부분 확보할 여지가 남았다는 평가다.

결국 협상의 핵심은 우크라이나 NATO 미가입이라는 정치적 양보를 하는 대가로 어떤 수준의 안보 보장과 국제적 지원을 확보하느냐로 좁혀지는 모양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등 일부 유럽 지도자는 NATO 헌장 5조와 유사한 보호 장치의 마련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NATO 헌장 5조는 “회원국 중 한 나라가 공격을 받으면, 그 공격을 전체 회원국에 대한 침공으로 간주해 모든 회원국이 집단적으로 대응한다”는 집단방위의 핵심 원칙을 담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NATO에 대한 형식적 목표를 내려놓는 대신 실질적인 안전장치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협상 구도가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유럽 책임 분담 조율 시급

이처럼 안보 보장 틀이 윤곽을 드러내는 가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종전 논의는 미국이 제시한 합의안을 두고 세부 조건을 조율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베를린에서 진행된 이번 종전 회담에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위트코프 미국 특사,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참석했으며, 트럼프 대통령 역시 전화로 논의에 참여했다. 외교 채널이 다층적으로 가동된다는 점은 종전 논의가 단순한 탐색 국면을 넘어 실질적 합의 문구를 다듬는 단계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유럽 국가들도 합의안의 실질적 이행 주체로서 역할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에 나섰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10개국 정상과 유럽이사회,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의 지원을 받는 유럽 주도 다국적군 창설을 제안한다”며 “우크라이나는 평시에도 광범위한 지원을 계속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 병력 규모를 80만 명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다만 큰 틀에서 제시된 이 같은 합의안에도 불구하고 실제 부담과 책임을 누가 얼마나 떠안을지에 대해선 미국과 유럽 간 조율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외교적 조율 국면 속에서도 전장은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 휴전 논의가 한창이던 15일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수중 드론을 활용해 러시아 잠수함을 공격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노보로시스크 항구에서 발생한 이번 공격은 3,000톤급 잠수함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 사례로, 우크라이나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순항미사일 발사대를 무력화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이러한 군사 행동이 협상의 큰 흐름을 뒤집을 변수가 될지는 미지수다. 현재 국면에서는 합의안 문구와 보장 수준을 둘러싼 외교적 조율이 종전 성사의 관건이라는 분석이 외교계의 중론이다. 

러시아 자산 반환 요구, 마지막 변수로

전선과 외교가 동시에 요동치는 상황에서 종전의 마지막 핵심 쟁점은 유럽에 동결된 러시아 국유자산 처리 문제로 수렴되는 분위기다. 최근 EU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내에 보관돼 온 러시아 자산을 무기한 동결하기로 합의하며 종전 이후 질서와 재건 재원의 방향을 사실상 선제적으로 설정했다. 무기한 동결이 결정된 러시아 자산 규모는 최대 2,100억 유로(약 363조6,500억원)에 달하며, 이 가운데 1,850억 유로(약 320조3,600억원)가 벨기에 금융기관 유로클리어(Euroclear)에 보관돼 있다.

EU가 이처럼 강경한 결정을 내린 것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재원이 고갈됐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침공이 4년을 향해 가면서 우크라이나는 심각한 재정 압박에 직면했고, 향후 2년간 필요한 자금만 1,357억 유로(약 234조9,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EU는 이 가운데 약 3분의 2를 부담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사실상 중단하기로 하면서 유럽의 부담은 더 커졌다. 이에 EU와 우크라이나는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활용해 우크라이나의 군사·경제를 지원하는 ‘배상 대출(reparations loan)’ 구상을 추진하고 나섰다. 러시아의 동결 자산은 러시아가 파괴한 것을 재건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다.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EU의 대출 계획에 대응해 벨기에 유로클리어를 상대로 모스크바 중재법원에 18조1,700억 루블(약 336조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러시아 정부는 EU의 자산 활용 계획을 “‘절도’에 가깝다”고 비난하며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EU 경제 담당 집행위원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는 “EU 금융기관들은 법적 절차로부터 완전히 보호받고 있다”고 선을 그었으나, 소송 장기화 국면에서 정치적·외교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자산이 집중된 벨기에는 이번 결정의 최대 부담 주체로 지목된다. 벨기에 소재 중앙예탁기관(CSD) 유로클리어의 최고경영자(CEO) 발레리 우르뱅은 “러시아 자산을 활용하는 계획이 국제 금융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고, 바르트 더 베버르 벨기에 총리 역시 “이번 계획이 자국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경우,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결국 러시아 동결 자산의 처리 방안에 대한 각국의 입장차가 좁혀져야만 그간 외교 무대에서 쌓아 온 합의 또한 실제 종전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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