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경쟁의 역풍” 한계 드러낸 美 전력망, 차세대 데이터센터 전략 빨라지나
“AI 경쟁의 역풍” 한계 드러낸 美 전력망, 차세대 데이터센터 전략 빨라지나
입력
수정
AI 데이터센터 폭증에 따른 전력망 병목 심화 노후 송배전망·전력 장비 부족에 공급 한계 현실화 우주·수중 데이터센터 등 비정형 인프라 부상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이 미국 전력망 체계 전반에 거대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생성형 AI 경쟁이 격화되면서 초대형 데이터센터 건설이 폭증하고 있지만, 미국 전력망은 이미 공급 한계와 노후 인프라 병목에 동시에 직면한 상태다. 여기에 변압기·송전선·계통 연결 장비 부족까지 겹치면서 산업 경쟁력 저하는 물론 가계 전기요금의 가파른 상승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PJM "내년부터 전력 부족 현실화" 경고
7일(이하 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최대 규모 전력망 운영사인 PJM 인터커넥션(PJM Interconnection)의 데이비드 밀스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공개한 서한에서 전력 수요가 전례 없이 급증함에 따라 미국 전력망의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밀스 CEO는 충분한 전력 공급을 보장하는 동시에 가정용 전기요금 급등까지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상황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The current situation is not tenable)"며 "가격, 예비전력, 투자 파이프라인에서 나타나는 압박은 약간의 조정이 필요한 설계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반영한다"고 했다. PJM이 직면한 위기에는 이르면 내년부터 예상되는 전력 부족 가능성, 미 최대 전력회사 중 하나인 아메리칸 일렉트릭 파워의 탈퇴 움직임이 포함된다.
원인은 AI 데이터센터다. PJM 지역 신규 전력 수요 증가분의 94%가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고 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생성형 AI 인프라 경쟁에 뛰어들면서 초대형 데이터센터 건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들은 매년 5~7기가와트(GW) 규모의 신규 전력 연결을 신청하는 반면, 새로 전력망에 연결되는 발전설비는 연간 2~3GW 수준에 그친다. 전력 수요 증가 속도를 신규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다.
미 상공회의소가 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PJM 관할 지역의 전기요금은 최근 5년간 급격한 상승률을 보였다. 특히 메릴랜드와 일리노이는 각각 51%, 41% 치솟았다. 전력 거래 시장 내 전력 가격도 폭등했다. 2025~2026년 PJM 용량 경매에서 메가와트(MW)당 하루 29달러(약 4만2,000원)였던 낙찰 가격은 2026~2027년 329달러(47만7,000원), 2027~2028년 333달러(약 48만3,000원)까지 뛰었다. 3년 만에 11배 상승이다. 이는 전기료 가정용 인상 압박으로 이어져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PJM은 이르면 내년 여름 6.6GW 규모의 전력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형 원전 여러 기가 동시에 멈추는 수준의 공급 공백이다. 서한과 함께 공개된 PJM의 정책 문서는 발전소 건설을 유도하기 위해 높은 전력 가격이 필요하다는 점과 소비자 전기요금 부담을 억제해야 한다는 목표 사이에서 발생하는 '신뢰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밀스 CEO는 "발전업체, 전력회사, 투자자, 소비자 모두가 최소한 기본적인 수준에서 규칙이 공정하고 안정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절차의 산물이라고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선택을 신중히 결정할 시간이 수십 년이 아니라 몇 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AI의 다음 병목은 전력망
실제 미국 전력업계에서는 최근 “AI의 다음 병목은 반도체가 아니라 전력망”이라는 평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30년 미국 전체 전력 소비의 11%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미국의 예비 전력 비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노후 발전소 폐쇄 속도 대비 신규 전력망 구축 속도 역시 현저히 뒤처지고 있는 실정이다. 전력망 용량 부족은 이미 미국 내 데이터센터 개발 속도를 늦추는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 전력망은 국가 차원의 단일 통합망이 아닌 주와 도시 단위로 파편화돼 있다. 이로 인해 지역별 전력 병목을 해결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변압기와 스위치기어 등 핵심 전력 장비의 부족 현상이다. 특히 초고압 변압기 공급 부족은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현장에서 가장 크게 체감되는 문제는 납기다. 대형 전력용 변압기의 경우 주문 후 설치까지 2~3년이 걸리는 사례가 흔해졌고, 일부 고출력 변압기 납기는 최대 5년까지 늘어난 상태다. AI 데이터센터는 통상 18개월 안팎의 구축 주기를 요구하지만, 전력 장비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미국의 110V 전력 체계 역시 비효율 요인으로 지목된다. 전압이 낮으면 같은 전력을 보낼 때 흐르는 전류(Amps)량이 많아져야 하는데, 110V는 이 과정에서 전선 내 저항에 의한 열 손실이 220V 체계보다 훨씬 높다. 데이터센터 내부에서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480V급 고전압을 들여온 뒤 다시 변환하는 방식을 쓰지만, 이 변환 과정 자체에서도 추가적인 전력 손실이 발생한다. 이에 업계에서는 동일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더 높은 전류가 필요해지고, 이 과정에서 송전 손실과 배선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전력망 현대화를 위해 향후 10년간 1조 달러(약 1,450조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수중부터 우주까지, 비정형 전략 대안으로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국 전역의 노후 전력망을 전면 교체하는 접근 자체가 현실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천문학적 송배전망 교체 비용이 투입되는 동안 AI 데이터센터 수요는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업계 내부에서는 기존 전력망 체계를 전면 개조하는 방식보다, 데이터센터를 특정 지역에 집적해 독립형 전력 생태계를 구축하거나 전력·냉각 문제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 비정형 전략이 더욱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하는 흐름이다.
현시점 가장 주목받고 있는 대안은 우주 데이터센터다. 구글은 차세대 AI 모델 '제미나이(Gemini)'를 우주 궤도 데이터센터에서 시범운영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우주는 밤낮 없이 태양광을 받을 수 있어 95% 이상 가동률의 전력 공급이 가능하며, 진공 상태를 이용한 자연 냉각이 가능하다. 다만 방사선 차폐, 파편 충돌, 전송 지연 등 난제가 남는다. 스타클라우드(Starcloud)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인 크리스 헤이스 박사는 “지상보다 10배 효율적인 전력 이용이 가능하지만, 비용은 100배 비싸다"며 “우주 데이터센터는 아직 실험실 단계"라고 말했다.
수중 데이터센터도 대표적인 대안 중 하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나틱(Natick) 프로젝트'는 2018년 스코틀랜드 앞바다에서 시행돼 PUE 1.07을 기록, 세계 최고 효율을 입증했다.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효율 지표인 PUE(Power Usage Effectiveness)는 데이터센터 전체 전력 사용량을 IT 장비(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장비 등)가 실제로 사용하는 전력량으로 나눈 값으로, PUE 1.07은 냉각 등 부수적인 용도에 사용된 에너지는 실제 IT 장비 운영에 들어간 에너지의 7%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이후 중국 하이란윈(Hailanyun)이 해상 풍력 발전과 결합한 수중 데이터센터를 상하이 앞바다에 착공했다. 해당 시설은 전력의 97%를 재생에너지로 공급받을 예정이다.
최근에는 플로팅 데이터센터도 각광받고 있다. 플로팅 데이터센터는 말 그대로 바다 위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구체화된 사례는 없지만 AI 데이터센터 확대를 노리는 국가와 기업들이 검토를 시작한 단계로, 해안가 접안 혹은 바다 한가운데에 짓는 것 모두 가능하다는 평가다. 바다 위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가장 큰 이유로는 부지 마련의 용이성이 꼽힌다. 바다 위에 발전 시설과 데이터센터를 모두 짓는다면 육상에 만들 때 필요한 부지 확보 비용을 현저하게 낮출 수 있다. 데이터센터 발열 문제 대응에도 유리하다. 냉각수로 풍부한 바닷물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유식 시설에 자체적인 그린 에너지 발전 수단을 탑재하거나, 인근 해상풍력을 활용할 경우 전력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