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즌2 오나” 재택·4일근무에 이동은 대중교통으로, 고유가 쇼크에 일상 통제 나선 각국
“팬데믹 시즌2 오나” 재택·4일근무에 이동은 대중교통으로, 고유가 쇼크에 일상 통제 나선 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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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리스크에 에너지 위기 고조 유럽·아시아 각국, 소비 억제 정책 가동 이란 전쟁發 경제 충격 대비, 에너지 비상 돌입

미국·이란 전쟁으로 에너지 수급 위기가 현실화하자 각국 정부가 에너지 절약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급등하는 유가를 감당하지 못한 각국 정부는 재택근무부터 주4일 근무제, 대중교통 권장, 휴교령까지 도입하는 등 초강수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일상 전반을 통제하는 이러한 흐름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를 연상케 한다.
EU, 재택근무 다시 확대 추진
21일(이하 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다음 주 회원국들에 에너지 수요 감소, 에너지 효율 개선, 청정 에너지로의 전환 지원 등을 위한 권고안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번 권고안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 당시 시행됐던 조치들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화석 연료 의존도를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 사용을 장려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EU는 초안 문서에서 기업들이 가능한 경우 적어도 주당 하루는 의무적인 재택근무를 시행하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대중교통 보조금 지급과 히트펌프, 태양전지판에 대한 부가가치세 인하를 권고했다. EU는 회원국들이 히트펌프, 전기 자동차, 소형 배터리 등 청정하고 효율적인 기술을 위한 사회적 리스 제도를 개발하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다만 관계자들은 이러한 조치가 지침이 아닌 권고 사항임을 강조했다. 한 EU 관계자는 “에너지 부족 사태에 직면했을 때 시민들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라며 “우리는 사람들의 삶을 세세하게 간섭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EU는 2022년에도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실내 온도 조절기를 1도 낮추도록 권고했는데, 당시 에너지 사용량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EU는 전기에 대한 세금을 화석 연료보다 낮은 수준으로 부과하도록 지침을 개정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동남아도 석유 소비 줄이려 '고육책'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잇따라 에너지 소비 억제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12일 태국 내각은 대민 서비스와 직접 연관되지 않은 모든 정부 기관에 재택근무를 즉시 시행하도록 지시했다. 필수 국제회의를 제외한 공무원의 해외 출장도 당분간 금지하고, 관공서 냉방 온도는 26도로 제한했다. 태국 국가경제사회개발위원회(NESDC)는 성명을 통해 “정부는 모든 부문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민간 부문에는 자발적 에너지 절약을 촉구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공급 차질이 심화할 경우 오후 10시 이후 간판 조명 소등과 주유소 영업시간 제한 같은 의무 조치 도입도 검토 중이다.
중동산 석유 의존도가 95%를 넘는 필리핀은 휘발유 가격이 두 배로 급등하자 일찌감치 강제 조치에 착수했다. 필리핀은 지난달 9일부터 경찰·소방서와 최일선 대민 서비스 종사자를 제외한 모든 정부 기관에서 주4일 근무제를 시작했다. 모든 관공서에 연료·전력 소비량을 10∼20% 줄이도록 하고 연수 출장이나 온라인으로 대체 가능한 오프라인 회의도 금지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성명에서 "중동 혼란이 언제 종식될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선택하지도, 원하지도 않은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도 민간 기업 대상으로 가능한 한 재택근무를 시행하도록 권고했다. 또 시민들에게 개인 차량 사용을 자제하고 대중교통이나 자전거, 카풀을 이용하며 연료 사재기나 투기 행위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베트남 산업무역부는 성명에서 베트남이 중동산 에너지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연료 공급 차질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국가 중 하나라고 밝혔다. 베트남국영석유그룹(페트롤리멕스)에 따르면 이란 공습이 시작된 2월 28일 이후 베트남에서 휘발유 가격은 32%, 경유는 56%, 등유는 80% 각각 치솟았다.
인도네시아는 재정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무상 급식을 줄이기로 했다. 지난달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급식 제공 일수를 주 6일에서 5일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정부 산하 국가영양청의 나닉 수다랴티 데양 부청장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조치로 40조 루피아(약 3조6,000억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인도네시아 정부는 연료 소비를 억제하기 위한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인도네시아는 원유 생산국이지만 순수입국으로, 국내 소비자에게 연료와 천연가스에 대한 보조금을 대폭 지급하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 절약 대책으로는 공무원들의 주 1회 재택근무, 공무 출장 축소, 자전거, 전기차, 대중교통 이용 장려 등이 포함된다.

남아시아는 주4일 근무·휴교령까지
남아시아 국가들도 비상 대응에 나섰다. 인도양 섬나라 스리랑카는 지난달 18일부터 매주 수요일을 공휴일로 하는 주4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는 정부기관과 학교를 중심으로 적용되고 있지만, 향후 민간 부문으로의 확대도 예정돼 있다. 스리랑카 정부 관계자들은 현재 휘발유와 경유 재고량이 약 6주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만약 연료 추가 확보에 차질이 생기면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리랑카는 원유를 전량 수입하며 발전용 석탄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모든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고 실내 온도를 25도 이하로 낮추지 못하도록 했다. 최근 사재기가 확산되자 연료 구매 상한제도 도입했다. 인구 1억7,000만 명의 방글라데시는 석유·가스 수요의 95%를 수입에 의존한다. 몰디브와 네팔 역시 취사용 액화석유가스(LPG) 공급을 제한하고 전기레인지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세계 2위 LPG 수입국인 인도는 조리용 LPG 수요 줄이기 조치에 들어갔다. 남부 벵갈루루 소재 식당의 경우 평일 식사를 하루 2끼로 제한하고 음식은 조리 시간이 적은 메뉴로 바꾸도록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각국이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현 상황이 1970년대 오일쇼크를 능가하는 대규모 에너지 위기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란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전쟁이 끝나더라도 세계 경제 회복이 장기간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전쟁 여파로 중동 에너지 시설이 파괴되면서 국제유가가 최소 1년 이상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실제 이란 전쟁 이후 중동 주요 산유국들의 생산은 급감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이라크는 하루 생산량이 2월 420만 배럴에서 3월 160만 배럴로 61% 줄었다. 쿠웨이트(-53%), 아랍에미리트(UAE·-44%)도 감소폭이 컸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하루 1,010만 배럴에서 780만 배럴로 23% 감소했다. 이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세는 세계 경제 전반에 하방 압력을 가하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