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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완화로 판 커진 유럽 M&A 시장” 美 자본, 중국 공세에 무너진 기업 노린다

“규제 완화로 판 커진 유럽 M&A 시장” 美 자본, 중국 공세에 무너진 기업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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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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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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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규제 완화에 따른 M&A 거래 환경 급변
미국 IB, 현지 자문사 인수 통해 딜 소싱 역량 내재화
유럽 기업 가치 하락 속 글로벌 자본 유입 가속

미국의 투자은행(IB)들이 유럽 인수·합병(M&A)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개별 거래를 따내는 데 그치기보다는 현지 M&A 자문사를 인수해 딜을 발굴하는 인력과 네트워크를 한 번에 확보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이 같은 공격적 행보는 유럽연합(EU)의 규제 완화라는 제도적 유인과 더불어, 중국 공습으로 체력이 약화된 유럽 기업의 취약성이 맞물리며 더욱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美 중소형 하우스들, 유럽 M&A 자문사 인수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 IB 페렐라 와인버그 파트너스(Perella Weinberg Partners)는 최근 영국의 M&A 자문사 글리처 섀클록(Gleacher Shacklock)을 인수했다. 거래는 현금과 주식을 섞은 구조로 이뤄졌다. 이번 인수로 페렐라 와인버그 파트너스는 30여명의 유럽 현지 딜 발굴 인력과 영국 대기업 경영진 네트워크, 방산·금융 등 핵심 산업 딜 파이프라인(Deal-Pipeline)을 동시에 확보했다. 거래를 따내는 수준을 넘어 거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까지 한 번에 갖추게 됐다는 의미다.

이 같은 흐름은 다른 미국계 IB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월가 대형 투자자문사 에버코어(Evercore)는 지난해 영국의 중소형 자문사인 로비 워쇼(Robey Warshaw)를 인수하며 유럽 시장에 진출했다. 로비 워쇼는 규모가 크진 않지만 대형 딜에 접근 가능한 핵심 인맥을 보유한 조직이다. 소수 정예 딜 메이커를 확보해 거래 기회를 선점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전통적으로 유럽 M&A 시장은 유럽계 자문사와 글로벌 대형 IB가 경쟁하는 구도였다. 국가별로 시장이 분절돼 있고 기업 의사결정 구조가 폐쇄적인 만큼, 현지 네트워크를 장악한 유럽계 자문사와 자금력·구조 설계 역량을 앞세운 글로벌 IB가 시장을 양분해 온 구조다. 이 과정에서 미국 중소형 IB들은 네트워크와 딜 접근성에서 한계가 뚜렷해 입지가 좁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들 역시 현지 자문사를 잇달아 인수하며 외연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특히 인력과 고객 네트워크를 한 번에 확보하는 롤업(여러 회사를 하나로 인수·합병) 전략이 확산되면서 대형 IB와 견줄 수 있는 수준으로 역량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공정 따지다가 중국에 다 먹혀” EU, 기업 합병규제 대폭완화

미국 IB들이 유럽 시장에 집중하는 가장 큰 배경은 M&A 규제 완화다. 최근 EU 집행위원회는 기업결합 심사 기준을 크게 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비자 이익 침해와 독과점 여부를 더 이상 합병 승인이나 거부의 주요 기준으로 삼지 않겠다는 게 핵심이다. 대신 기업결합 규모와 혁신, 지속 가능성 등의 요소를 합병 심사 때 고려하기로 했다. 규모의 경제를 갖추게 되고 혁신을 선도할 수 있다면 과거와는 다른 잣대로 기업 합병을 승인하겠다는 것이다.

공식 발표를 앞둔 EU의 새로운 기업결합 가이드라인은 2000년대 이후 가장 급진적 제도 개편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모든 신규 입법 때 EU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 평가를 의무화하겠다”고 말했다. EU 기업이 새로운 규제 때문에 불필요한 비용과 행정 부담을 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글로벌 시장의 현실을 반영해 유럽 기업의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며 이번 개편안에 힘을 실었다.

EU가 심사 장벽을 낮춰 M&A를 장려하려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거대 기업에 맞설 유럽의 챔피언 기업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유럽 기업들은 글로벌 산업, 특히 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에 뒤처져 있다. 그 결과 엄청난 단일 시장을 가졌음에도 현상 유지조차 버거운 경제블록이 되고 있다. EU통계청인 유로스탯 자료에 따르면, 세계 시가총액 상위 20개 기업 가운데 유럽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프랑스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미스트랄을 제외하면 규모를 갖춘 혁신기업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충격을 포함해 공급망 질서 재편 등의 과정에서도 유럽 경제는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EU의 합병 심사 기준 개선에 대한 산업계의 요구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2019년 독일 지멘스(Siemens)와 프랑스 알스톰(Alstom)이 철도 분야 세계 1위인 중국 국영철도사 중궈중처(CRRC)에 맞서기 위해 추진했던 철도 사업 부분 합병이 EU의 승인 거부로 무산된 것에 독일과 프랑스 정부가 강력히 반발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합병 무산은 CRRC의 독주에 대응할 유럽 기업의 성장을 막았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유럽 기업 전반 체력 고갈, 지금이 ‘줍줍’ 기회

여기에 더해 유럽 기업 전반의 체력 약화 역시 미국 IB 자본 유입을 자극하고 있다. 독일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1만3,993건이던 독일 내 기업 파산 건수는 2025년 2만3,900건으로 70% 증가했다. 기업 파산의 여파로 지난해 독일의 실업자 수는 294만8,000여 명, 실업률은 6.3%로 201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한 파산 기업 상위 10% 규모 기업에서 약 10만7,000개 일자리가 영향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19 이전 평균 대비 164% 높은 수준으로, 파산 건수 증가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기업의 부실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업별로 보면 건설업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파산 사례가 집중됐다. 건설업의 경우 고금리 환경에서 프로젝트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데다, 원자재 비용 상승이 수익성을 압박하면서 중소 건설사를 중심으로 파산 사례가 늘고 있다. 제조업에서는 에너지 비용 상승과 수출 수요 둔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수익성과 유동성이 동시에 악화된 기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 또는 법적 파산 절차를 선택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독일 제조업의 허리로 불리는 미텔슈탄트(중소·중견 강소기업) 모델의 균열은 10년 전부터 감지됐다. 2016년 세계 2위 산업 로봇 업체 쿠카(KUKA)는 중국 메이디그룹에, 플라스틱 가공용 기계 분야 세계 최고 기업이던 크라우스마파이가 중국화공그룹(CNCC)에 매각됐다. 이후 게트락(변속기), 보스로(디젤·전기 기관차), 오스람(조명), 비스만(공조) 등 굵직한 제조 기업들이 해외로 팔려나갔다.

이들 기업들은 모두 자기 영역에서 강력한 시장 점유율을 자랑했지만, 점차 치열해지는 경쟁 속 한정된 시장과 폐쇄적 지배구조 탓에 필요한 자본을 구하기 어려웠다. 이때 유출된 제조 노하우는 10년이 지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PwC에 따르면 독일 자동차 부품 업체들의 2024년 세계 시장 점유율은 23%로 10년 전보다 3%포인트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중국 기업들은 점유율을 5%에서 12%로 끌어올렸다. 한때 독일의 수출 텃밭이던 중국이 이제는 독일 기업을 잠식하는 가장 강력한 경쟁 시장으로 바뀐 것이다.

독일 기업들의 매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독일 자동화 설비 제조기업 만츠AG는 독일 내 전기차 산업 위축 여파로 지난해 파산해 테슬라에 인수됐다. 타이어 및 수리 용품 분야 히든챔피언으로 불리는 레마팁탑,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핵심 부품 공급사인 리겐트파인바우 등도 매물로 나와 해외 자본과의 인수 협상이 진행 중이다.

다른 유럽 기업들 사정도 마찬가지다. 특히 최근에는 금리 안정과 함께 방산·에너지 중심의 거래가 늘고, 사모펀드(PEF) 엑시트(투자금 회수) 재개 움직임까지 겹치면서 유럽 M&A 시장이 다시 움직이는 모습이다. 이 같은 변화는 향후 유럽 M&A 시장의 진입 장벽을 더욱 높일 것으로 관측된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딜 수행 역량만으로는 경쟁이 어려워지고, 얼마나 많은 딜메이커와 고객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는지가 성패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오를 것"이라며 "중소형 자문사들이 대형 IB에 흡수되는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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