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협상] "유럽이 길 열어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외면하는 트럼프, 지상군 투입 가능성은 여전
[종전 협상] "유럽이 길 열어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외면하는 트럼프, 지상군 투입 가능성은 여전
입력
수정
이란,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부과하며 적국에 경제적 압박 트럼프는 유럽으로 책임 전가, 일방적 종전 선언 가능성도 美 병력 7,000여 명 중동에 배치, 호르무즈 인근 방어선 타격할까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부과 방안을 공식 승인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본격적으로 무기화해 미국, 이스라엘 등 적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은 대(對)이란 군사 작전에 협조하지 않은 유럽 동맹국들에 호르무즈 해협과 관련한 책임을 떠넘기면서도, 중동 작전 지역에 병력을 추가 투입하며 해협 인근 지역 공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란, 호르무즈 해협 무기화 행보 지속
지난달 30일(이하 현지시각) 이란 관영 프레스TV는 이란 의회 국가안보위원회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 규정을 적용하는 내용의 신규 관리 계획안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계획안에 따르면 향후 미국과 이스라엘 선박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수 없으며, 이란에 일방적인 경제 제재를 가한 국가들의 해협 접근도 제한된다. 이밖에 △호르무즈 해협 내 보안 조치 강화 △이란 해군 함정의 안전한 운항을 위한 세부 프로토콜 수립 △해협 관리 과정상 이란군의 역할 강화 등도 새로운 관리 방안으로 언급됐다. 사실상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톨게이트화'하겠다는 것이다.
향후 계획안이 정식 법률이 되기 위해서는 이란 의회 본회의 투표, 헌법수호위원회 검토, 대통령 서명 등 형식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이란이 이미 비공식적으로 호르무즈 해협 내에서 통행료를 징수하고 있는 만큼, 정식 법제화는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이란은 일부 우호국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허용하면서 1회당 200만 달러(약 30억원)에 달하는 통행료를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란 파스님통신은 앞으로도 이란이 선박당 200만 달러의 통행료를 징수할 경우 연간 1,000억 달러(약 150조원) 이상의 수입을 올릴 것이라 분석했다. 이는 지난 2024년 이란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웃도는 금액이다.
이란은 미국과의 종전 협상 조건으로 내건 다섯 가지 항에도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공식 통제권을 포함한 상태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 같은 이란의 행보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가장 좁은 지점은 이란과 오만의 영해에 각각 속하지만, 국제법상으로는 상선 등의 통행이 보장되는 국제 수로기 때문이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 이란의 통행료 징수 움직임에 대해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개별 국가들이 국제 해역을 점령하고 자기 것이라 주장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美-유럽 동맹 균열 확대
다만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에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의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 동맹국에 해협 재개방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 유럽 국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란 군사 작전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 요청에 난색을 표했으며, 스페인도 30일 미국 군용기의 영공 통과를 전면 불허했다. 이탈리아는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을 위해 시칠리아 공군 기지를 사용하는 방안을 거부했고, 폴란드 역시 자국 패트리어트 방공 시스템을 중동에 보내자는 미국의 제안을 거절했다. 프랑스 또한 미국의 이란 전쟁용 무기를 수송하려는 이스라엘의 영공 통과를 허가하지 않았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국가들을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달 31일 뉴욕포스트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 당장 이란을 완전히 초토화하고 있고, 그들의 공격력을 없애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더 있다”면서도 “우리는 그곳에 그리 오래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 생각에 그것(호르무즈 해협)은 자동으로 열릴 것”이라며 “이란에 힘이 남아 있지 않으니 해협을 이용하는 나라들(유럽 등)이 가서 직접 열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같은 날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도 “호르무즈 해협 때문에 제트 연료를 구할 수 없는 모든 국가, 예를 들어 이란 지도부 제거 작전에 관여하기를 거부한 영국 같은 나라에 제안을 하나 하겠다”며 “미국산 석유를 사든지, 늦었지만 용기를 갖고 해협으로 가서 석유를 가져가든지 하라”고 적었다.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 정상화 여부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종전 선언에 나설 가능성도 존재한다. 지난달 31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행정명령 서명식을 진행한 후 전쟁 종료 시점에 대해 “철수가 2~3주 안에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유가 안정 방안에 대한 질문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란을 떠나는 것이고, 그러면 유가는 폭락할 것”이라며 “미국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이란과의 합의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란 정권을 교체하고,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게 하는 전쟁 목표는 이미 달성했다는 주장이다.

美 병력의 핵심 공격 목표
일각에서는 미군이 종전 선언 전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서 병력을 움직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달 28일 미국은 해병대와 해군 병력 3,500명을 중동 작전 지역에 추가 투입한 바 있다. 이미 배치된 최정예 82공수사단까지 더하면 출격 명령을 기다리는 미군 병력은 7,000명에 달한다. 당초 이들이 투입될 만한 지점으로는 이란 원유 수출의 90%를 담당하는 하르그섬이 거론됐다. 이란 역시 미국의 공격에 대비해 하르그섬의 방어를 강화한 상태다. CNN이 지난달 25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란은 하르그섬에 추가 병력 및 방공 전력을 배치하고, 대인 지뢰와 대전차 지뢰 등을 설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하르그섬보다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는 7개 섬이 유력한 공략 후보지로 꼽힌다. 이들 섬은 호르무즈 해협을 따라 아치형으로 자리 잡고 있어 ‘아치형 방어선’으로도 불린다. 구체적으로 동쪽 입구에는 호르무즈, 라라크, 케슘, 헨감섬이, 서쪽에는 아부무사, 대툰브, 소툰브섬이 위치해 있다. 이란은 이들 섬을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간주하고, 고속정, 기뢰, 드론 전력 등을 배치해 군사 거점화하며 해협 통제 능력을 강화해 왔다.
미군이 이들 섬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공수부대 투입 혹은 해병대 상륙 작전을 단행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드릭 레이턴 CNN 군사 분석가는 미군의 점령 과정에서 동쪽의 4개 섬, 특히 라라크섬이 위협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란이 라라크섬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이나 소형 공격정으로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것'을 차단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섬 점령 성공 이후 추가 사상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점령 유지를 위해 배치된 지상군이 이란 본토에서 날아올 드론, 미사일, 포병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발생한 미군 사망자는 13명, 부상자는 300여 명이다.
이러한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해당 섬들은 하르그섬 대비 공략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칼 슈스터 전 태평양사령부 합동정보센터장은 CNN에 "하르그섬보다 아부무사 등 해협 서쪽의 3개 섬을 점령하는 게 미군에 전략적으로 이로울 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구상하는 미래의 이란 정부 경제를 훼손할 위험이 더 적다"고 말했다. 하르그섬을 공격할 시 이란 경제의 핵심 인프라를 직접 파괴하게 되지만, 아치형 방어선 공략에 성공한다면 군사적 효과를 얻음과 동시에 이란의 경제적 기반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