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무역 흑자에도 웃지 못한 중국, 디플레이션 경고음에 경제 체력 시험대
사상 최대 무역 흑자에도 웃지 못한 중국, 디플레이션 경고음에 경제 체력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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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형 확대 이면 경제 규모 후퇴 국면
과잉 생산→밀어내기 수출 구조 한계
세계 공급 축소 및 인플레 반전 가능성

중국이 지난해 무역 흑자 1조 달러를 훌쩍 넘어서면서 사상 최대 수출 성과를 앞둔 모습이다. 자동차·배터리·반도체 등 첨단 제조업이 수출을 주도하면서 뚜렷한 외형 성장을 이룬 가운데, 내부에서는 과잉 생산과 수요 위축이 맞물리며 물가와 기업 수익성이 동시에 압박받는 흐름이 포착된다. 중국 당국은 내수 진작과 가격 안정에 정책 역량을 집중한다는 구상이지만, 시장에서는 중국발 디플레이션이 글로벌 시장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이례적인 흑자가 불러올 부작용을 더 주목하는 모양새다.
기업 수익·노동자 임금 압박↑
28일(이하 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무역 흑자(추정치)는 1조2,000억 달러(약 1,715조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등 첨단 제품이 흑자의 76%를 차지하며 수출 구성은 고도화된 양상을 보였다. WSJ는 “중국이 첨단 분야를 앞세워 빠른 외형 성장을 이뤘다”고 평가하면서도 “다만 내부적으로는 과잉 생산의 여파로 기업 이익이 감소하는 디플레이션 초입에 들어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수출 성과만 놓고 보면 성장의 증거처럼 보이지만, 내수 시장에서는 가격 하락과 수익성 악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이중 흐름이 관측된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괴리는 중국 경제가 지난 수년간 부채를 끌어당겨 규모를 확장해 온 경로와 상당 부분 맞닿는다. 그간 중국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지방정부 주도의 산업 육성, 전략 산업에 대한 집중 자금 투입을 통해 생산 능력을 빠르게 끌어 올렸지만, 실질 수요의 증가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생산 설비와 공급 능력이 이미 한계선을 넘어선 상황에서 늘어난 물량은 가격 인하를 통해서만 시장에 흡수되는 구조로 굳어졌다. 그 결과 수출 물량은 늘었지만, 기업의 마진과 노동자의 임금은 동시에 압박을 받게 됐다.
실물 경제의 현장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뚜렷하게 포착된다. 상하이 치푸로 의류 도매시장에서는 판매보다 반품 처리에 더 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것으로 파악됐으며, 여성복 도매상들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상인들은 고가 소비를 줄이고,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저가 음식 소비로 일상을 버티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인들의 어려움은 도매 단계 내부에서의 가격 인하 경쟁을 심화시키면서 제조업체의 출고 단가와 이익률까지 동시에 끌어내리는 흐름으로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전례 없는 수출 흑자는 경기 회복의 신호로 전혀 기능하지 못한다. 시장조사기관 팩트셋이 중국 본토 상장사 5,0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지수에서도 기업 이익률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철강과 콘크리트 등 전통 산업은 물론 전기차, 로봇, 화장품 등 신성장 산업까지 일제히 이익 감소에 직면한 결과다. 여기에 고정자산 투자 역시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감소세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부채를 끌어당겨서 억지로 키운 경제 규모가 다시 원래 사이즈로 돌아가는 과정에 가깝다고 입을 모았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중국의 대규모 무역 흑자를 “중견 국가 하나의 연간 GDP와 맞먹는 규모”로 표현하면서도 “정상적인 흑자가 아니라 내부 소비와 투자가 위축된 상태에서 수입이 줄어들며 만들어진 흑자라는 점이 핵심”이라고 꼬집었다. 수출 흑자가 기록적인 수준으로 확대된 시점에 가격 지표와 기업 수익성이 동시에 악화됐다는 점은 중국 경제의 문제 축이 ‘성장률’이 아닌, ‘수요 흡수 능력’으로 이동했음을 시사한다.
물가 37개월 연속 뒷걸음질
중국 정부도 내수 진작에 팔을 걷어붙였다. 관영 신화통신에 의하면 이달 초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초장기 특별 국채 625억 위안(약 13조원)을 사전 배정해 지방정부의 ‘이구환신 프로그램’을 지원하기로 했다. 가전·디지털 기기·자동차 등 내구재를 새 제품으로 교체하도록 유도해 단기 소비를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산업 생산 가동률을 방어하겠다는 정책 구상이다. 내수 부양을 정책 중심축으로 명확히 설정했다는 점에서 중국 당국이 현재의 경기 국면을 내부 수요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정책 방향 전환의 배경에는 소비 회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현실이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 소매판매 증가율은 전년 대비 1.3%에 그치며 시장 예상치였던 2.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11월이 중국 최대 쇼핑 축제인 ‘광군절’이 포함된 시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소비 심리 위축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보조금 정책도 이미 한 차례 실패를 경험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한 해에만 전년 대비 두 배 수준인 3,000억 위안(약 59조원)의 소비 지원금을 집행했지만, 가전제품 가격과 소비재 물가는 오히려 하락했다.
소비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생산과 수요 간 괴리는 더욱 벌어졌다. 국가통계국(NBS) 집계에서 지난해 말 중국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 동기 대비 2.1% 하락하며 37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하락 폭은 9월의 -2.3%보다 다소 축소됐지만, 산업 전반에 누적된 가격 압력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같은 기간 중국 산업이익은 5.5% 감소하며 앞선 두 달간의 증가세에서 급반전했다. 생산은 유지되거나 확대됐지만, 수요 흡수 능력이 이를 받쳐주지 못하면서 기업 수익성만 빠르게 결과다.
과잉 생산 물량을 해외로 밀어내는 방식의 조정도 한계에 부딪혔다. 중국 수출가격 지수는 2022년 이후 하락세를 이어오다 지난해 6월 0.5% 상승(전년 동월 대비)하며 25개월 만에 플러스 전환했다. 달러 기준 중국 상품 수출가격도 같은 기간 약 1.5% 상승했다. 다만 이는 가격 붕괴가 멈췄다는 신호에 가깝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중국의 수출가격은 2022년 평균 대비 약 17% 낮은 수준에 머무르면서 글로벌 시장이 중국산 저가 물량을 더 이상 무제한으로 흡수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줬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1930년대 미국 대공황과 비교하기도 했다. 생산 능력이 유지되거나 확대되는 상황에서 소비와 투자가 동반되지 않으면서 가격 하락과 수익성 악화가 반복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는 지적이다.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이 부동산 침체와 소비 부진의 영향으로 눈에 띄게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은행 북경사무소는 이달 초 보고서에서 “중국 경제는 정부 정책 지원에도 불구하고 4% 중반 수준의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기 비용 절감 효과가 불러올 후폭풍
더 큰 문제는 중국발 디플레이션의 파급력이 전 세계로 확산할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디플레이션 압박 속에서도 중국 산업계는 철강과 알루미늄, 태양광 패널, 전기차 배터리 등 중간재를 초저가로 해외에 대량 공급했다. 과잉생산된 재화는 글로벌 공급망을 장악하며 각국으로 흘러들었고, 가격 경쟁력을 잃은 현지 제조업의 기초 체력을 약화시켰다. 지난해 말 미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8까지 하락했는데, S&P글로벌은 이를 두고 “중국의 저가 공세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중간재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제조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은 철강과 반도체 부품 가격 급락으로 공장 운영비가 20% 줄었지만, 판매 가격 하락이 더 커 수익성은 도리어 악화했다. 또 독일 자동차 업계는 배터리 비용 절감에도 중국산 완성차 수입 증가로 생산라인 가동률이 75%까지 내려간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의 저가 공급이 단기 비용 절감 효과를 제공하는 동시에 각국 산업의 존속 가능성을 압박하는 양면성을 드러낸 셈이다.
중국 내수 둔화는 원자재 시장을 통해서도 세계로 전파됐다. 지난해 중국의 원자재 수요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20년 대비 25% 줄어 구리·알루미늄·석유·철광석 가격이 일제히 하락했다. 이에 따라 호주·브라질·칠레 등 광물 수출국의 GDP 성장률도 2%p 낮아졌고,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 감소로 루블화 가치가 15%가량 하락했다. 심지어 남아공의 광산 실업률은 30%를 넘어서며 위기 단계에 들어섰다. 원자재 가격 변동성은 에너지 비용을 자극해 항공 화물 운송비를 40% 넘게 끌어올렸고, 세계 무역량은 5.1% 위축됐다.
중국 지도부 역시 이 같은 문제 인식을 공유하며 타개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핵심은 무질서한 가격 인하 경쟁을 억제하고, 과잉 설비의 질서 있는 조정을 유도하는 방향이다. 이를 위해 일부 산업에서는 신규 투자 속도 조절, 비효율 설비의 단계적 퇴출, 원가 이하 판매에 대한 규제 강화를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이러한 조치들이 실제로 글로벌 가격 체계와 공급 흐름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한 실정이다. 중국 제조업의 수익 기반이 단기간에 약화할 경우, 생산 축소가 세계 물가의 방향을 반전시킬 부작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